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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의 추적자 ‘고재열’

 

 

 

나의 추적자 ‘고재열’

 

원(原) 〈시사저널〉시절부터 〈시사IN〉시절에 걸쳐 나를 추적하며 먹잇감으로 취재하거나 부려먹은 젊은 기자 한 명이 있다. 그 추적자는 정치·문화기자 고재열이다.

그는 고집은 가슴속에 감추고 겉은 수줍은 체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는 친구다. 또 예민한 시각으로 세상을 쏘아보는 친구다.

20032월 어느 날, 〈시사저널〉 편집고문실로 문화부 기자 고재열이 올라왔다. 당시 나는 경원대학교에서 언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사저널〉 고문을 겸직하고 있었다.

 

인터넷 성감대 

 

뛰어난 인터넷 전문기자인 고재열은 인터넷 문화의 ‘성감대’를 주제로 특집을 기획하고 내 글을 받아 싣겠다고 한다. 기자 출신의 언론학자로서 50․60세대를 대표하여 인터넷을 서핑한 후에 그 순행기(巡行記)를 써달라고 강력 하게 주문한다. 그의 강청에 마지못해 내가 써낸 인터넷 관전평은 『만화경, 혹은 감각의 제국』이라는 제목을 달고 고재열의 특집을 뒷받침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042월 어느 날, 고재열이 다시 내 방에 나타났다. 그달에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대박을 내고 있을 때다. 내가 6·25전쟁으로 아버지와 영영 생이별한 분단가족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태극기 휘날리며’의 영화평을 써달라고 주문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태극기 휘날리며’는 6·25전쟁 전후의 서울 공간을 실감나게 되살려놓고 있었다. 초여름의 햇볕 아래 전차가 다니는 서울의 거리 정경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슬픈 공간이었다. 그는 나의 영화평에 『가슴 파고든 그 여름 서울 풍경』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는 명민했다. 2007년 〈시사IN〉 초기에 경영이 매우 어려워 세 끼니 밥 먹을 임금도 받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그는 한국방송(KBS)의 생방송 ‘퀴즈 대한민국’에 나가더니 장원을 해서 상금 2,000만원을 획득하여 화제를 뿌렸다. 그 돈으로 그는 배곺은 처자를 공양하는 데 썼다고 우스개로 말했다.

 

세력가 독설닷컴

 

고재열 기자는 ‘몽골기병’(내가 원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붙인 별칭)의 한 명으로 〈시사IN〉 창간에 가담했다. 고재열은 부업으로 소셜뉴스를 개척하여 강력한 블로그 ‘독설닷컴’의 운영자가 되었다. 당시 추종자 257,000명을 이끄는 막강의 ‘트위터독설’도  겸영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 인터넷 세계에 몇 안 되는 최강자였다.

 

'since1962.tistory.com' 내력

 

그는 나에게 블로그 'since1962.tistory.com'를 작명하고 구축해 주었다. 1962년부터 〈한국일보〉에서 기자직을 개시했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그덕에 나는 일찌감치 블로그의 선진으로 행세를 할 수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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