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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 5'와 안젤리나 졸리는 함께 울었다


 

'물망초 5'와 안젤리나 졸리는 
                            함께 울었다

 

 

 헐리웃 영화 ‘체인질링’을 본 것은 지난 설 연휴 때이다. 아직 사이코패스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이었다.

192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와인빌 양계장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사라진 아들의 행방을 찾아 홀로 세상과 맞서는 어머니의 아픔과 한을 내면으로 연기해 냈다.

유미자는 실제로, 졸리는 연기로

안젤리나 졸리라면 미국의 가장 섹시한 남자배우라는 브래드 피트의 아내로서 육체파 배우의 인상을 주던 배우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녀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 친선대사를 지내고 불우한 외국 어린이들을 입양하는 등 약자를 돕는 미덕을 지녔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한이 맺힌 엄마 크리스틴 콜린스가 되어 눈물이 마를 때가 없다. 크리스틴은 아들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으니, 살아 있다고 믿고 1996년 자신이 눈을 감을 때까지 수색을 계속했다.

나는 당장 한국의 한 어머니를 떠올렸다. 유미자 씨. 무참하게 살해당한 딸을 결코 잊지 못한다 하여 ‘물망초’라는 블로거 이름을 만들어 3년이 넘게 “홀로 세상과 맞서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는 엄마이다.

그녀는 작년 10월 9일에 내가 대표하고 있는 언론인권센터 후원의 밤에 나와서 ‘물망초, 정지해버린 엄마의 숨결’이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읽었다. 가슴에 못을 박은 딸의 죽음을 널리 알리고 딸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부조리가 있다고 항의하는 비절한 글이다.

그날 유미자 씨는 말했다.

“단 하루의 비극으로 23년 기쁨의 세월이 무참히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밤늦게 울린 한 통의 전화.

야근하던 딸이 죽임을 당했다는 말에 저의 심장박동은 멎는 것 같았고, 자식을 사랑하며 자식에게 사랑받으며 평탄하게 살아오던 제 인생은 절대 암흑에 매몰되고 말았습니다. (후략)”

나는 ‘체인질링’을 본 다음 날 바로 물망초 유미자 씨에게 전화를 걸어 영화를 꼭 보라고 권했다. 물망초가 ‘체인질링’을 봄으로써 내면에 쌓여 있던 억압적인 응어리를 다소라도 해소하고 마음을 정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관객에 미치는 중요한 작용의 하나로 카타르시스 곧 정화(淨化)를 꼽지 않았던가.

범인 얼굴 공개하면 경각심 높여

나는 물망초에게 영화를 보고난 감상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한마디로 소감을 압축하여 “내 얘기같더군요”라고 했다. 그리고 ‘물망초5’라는 별명으로 글을 써서 보내왔다.

당초 유미자씨는 ‘물망초’라는 별명의 블로거였다. 그녀가 지금 블로거 이름을 ‘물망초5’라고 고쳐 쓰게 된 이유를 문의하니 이런 회신이 왔다.

“제가 올린 글을 보고 상대방이 권리침해신고를 해서 글을 많이 삭제 당했습니다. 물망초1은 블라인드 가처분신청까지 당했고 물망초2도 그랬습니다. 처음에 시작한 ‘억울한 사연 호소’의 블로그는 모두 해지 되었구요. 블라인드를 두 번이나 당했기 때문에 여분으로 블로그 물망초3, 물망초4, 물망초5를 만들었는데 여러 블로그를 감당하기 힘들어 물망초5 블로그에만 집중했지요…….”

짐작하건대 가슴의 한을 풀지 못하는 유미자씨의 공격적인 글이 그런 일들을 때로 불렀을 것이다.

그녀가 보낸 영화 감상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언론인권센터 이사장님이 체인질링을 보며 물망초가 생각났다면서 꼭 보라고 하셔서 보게 되었고 소감을 적어 보라고 하시기에 제 생각을 적습니다. 영화는 자식을 잃은 아이 엄마가 진실을 밝히려고 하자 경찰 권력자들이 자기 잘못을 감추려고 오히려 피해자를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실화를 재구성한 것으로 제 처지를 생각나게 하여 눈물이 났습니다.

때로, 기자들이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경찰에서 얘기하는 대로 기사를 쓰는 것을 보고는 제가 겪은 일과 같아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반인륜적 범죄자의 얼굴은 공개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말한다.

“살인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경각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인자가 꼭 그럴지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껴서 속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강호순의 경우 자기 얼굴이 언론에 공개된 것을 전해 듣고서 당황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강호순은 얼굴이 공개됨으로 인해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가 ‘우리 애들은 어떡하라고’ 한마디 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니 그렇습니다.

범죄자의 인권을 위한다고 얼굴을 베일에 가려준 것이 범죄자들의 죄책감을 무디어지게 한 역기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

이제 물망초5가 된 유미자씨는 평범한 서민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경찰관, 약자를 위해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는 법조인, 언제나 힘없는 시민의 편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인, 순기능을 해주는 종교인이 많아져서 다시는 내 가엾은 딸과 같은 피해자와 비통한 엄마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금도 편히 잠들지 못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