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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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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04건

  1. 2018.03.17
    스티븐 호킹 최초 인터뷰
  2. 2017.11.02
    편집국 괴담 (1)
  3. 2017.11.01
    나의 추적자 ‘고재열’
  4. 2017.09.13
    '강철 무지개' 시퍼런 칼날 밟고 서다
  5. 2017.05.15
    왜 '문재인 개혁'을 미국 일에 비유하는가 (1)
  6. 2017.04.30
    베트남 어머니 고통을 조각하는 미국인
  7. 2017.04.30
    왜 베트남에 가가
  8. 2017.04.29
    통일베트남 42주년-어머니의 힘
  9. 2017.04.28
    베트남 2017년 4·30 전야에 (1)
  10. 2017.04.27
    고우영 만평-파리 특파원의 신경질

최초 인터뷰

 

스티븐 호킹 박사

 

언론인 안병찬 Ph.D 시사저널발행인

 

 

호킹 박사 초청

 

휠체어를 탄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와 인터뷰한 것은 19909월이다. 시사저널창간인의 한 사람으로서 제작 책임을 맡고 있던 때였다.

나는 까다로운 호킹 박사 인터뷰를 손수 맡을 수밖에 없었다. 호킹 박사를 시사저널표지 기사로 올리자고 우겨서 급기야 시사저널초청으로 그를 한국 땅에 오도록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그가 투숙한 신라호텔 잔디밭에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나는 즉석에서 영문 질문지를 만들어 호킹박사와 대면했다.

호킹박사와의 인터뷰는 특례라고 하겠다. 역경을 극복하고 언어합성기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그의 의지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는 팽창우주론에서 평행우주론으로 이어지는 우주물리학의 진정한 탐험가로 여겨진다. 그는 브라질 월드컵의 승패를 도출하는 공식을 만드는 것이 우주연구 보다 더 어렵다면서 예측치를 내놓아 화제를 만들었다. 호킹은 손가락도 쓰지 못하고 눈동자 움직임으로 음성합성기를 작동시켜 의사를 밝혔다.

그는 질문을 던지면 잠깐씩 생각하고 부자유한 한쪽 손의 손가락을 겨우 움직여 언어합성기를 조종했다. 그러면 이윽고 컴퓨터기계음성이 호킹박사의 견해를 내놓았다.

 

호킹의 사고실험

 

그는 사고하는 인간이다. 복잡한 두뇌작용을 통해 머릿속에서만 성립되는 실험을 한다. 시간과 공간의 변수로 이루어진 기존 이론에서 시간의 변수를 모두 마이너스 변수로 돌려놓아 보기도 한다. 그러자 만유인력에 의한 수축의 이론은 정반대로 팽창의 이론이 된다. 그 모형에 따르면 우주가 지금처럼 계속해서 팽창하다가 언젠가는 다시 수축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이러한 사고실험(思考實驗)’을 그는 거듭한다.

달 전 프랑스의 천체물리학자 위베르 리브가 호킹을 가리켜 그렇게 말했다. 위베르 리브 자신은 50억 년 안에 태양은 소진하게 되므로 인간은 따뜻한 행성을 찾아 목성 주위를 도는 달로 이사를 가든지, 지구를 통째로 옮겨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든지, 아니면 태양에 초특급 수소폭탄을 터뜨려 다시 점화하든지 택일해야 한다고 가상적 제안을 한 과학자인데, 그가 두말없이 스티븐 호킹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비교할 만한 위대한 아이디어의 과학자라고 최고의 경칭을 붙였다.

 

아인슈타인 등가원리

 

아인슈타인의 경우 추리와 연역의 보조수단으로 쓰는 사고실험으로서 엘리베이터 실험이라는 것을 했었다. 균일한 중력장에서 외계와 완전히 차단된 상자 속의 관측자는 지상의 관측자와 똑같은 역학 현상을 관측한다고 하여 그것을 등가원리(等價原理)라고 하였다.

그런데 스티븐 호킹은 사고만 하는 천재일 따름인가. 그는 상상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상상은 직관적이며 감정 요소가 들어 있어 사고 작용과는 다르다. 스티븐 호킹은 상상력과 사고 작용을 통일시켜 상상력으로 사고하라고 말하고 있다.

 

김포공항 도착한 날

 

그렇게 사고하고 상상하는 우주론자 스티븐 호킹 교수가 김포공항 귀빈실 출구에 모습을 나타낸 날은 199098일 밤이었다. 그는 사고하고 상상하는 힘 말고 행동하는 힘도 보여줬다. 그의 전신은 그의 명령을 거역하고 있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오직 손가락 끝뿐이었다. 손가락 끝 하나로 그는 혼자서 걸어가고(휠체어 조종), 스스로 목소리를 냈다(컴퓨터언어합성기 조종). 여간 강인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이윽고 신라호텔 20층 객실에 도착한 호킹은 먼저 필체어로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본 후에 창가로 가서 정지하더니 제3한강교 쪽 서울의 야경을 한동안 꼼짝 않고 내려다본다(외로워 보였다). 이윽고 언어합성기를 조종하여 이렇게 한마디한다. “베리 나이스!”

 

잔디밭 즉석 인터뷰

 

한국 방문 이틀째인 일요일에 호텔 정원에서 내가 진행하는 <시사저널 인터뷰>에 응한 그는 질문 받은 11개 문항에 대해 일일이 답했다. 한낮의 더위에 땀을 흘리면서도 그는 꿋꿋한 정신력으로 자기의 다듬은 언어들을 차근차근 만들어냈다.

질문 사람들은 과학자를 고지식하고 깐깐한 샌님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킵돈 교수와 성인용 잡지인 펜트하우스1년 치 정기구독권을 걸고 내기를 한 호킹 교수는 근엄한 교수님이란 인상을 풍기지 않는다. 당신은 스스로 괴짜라고 생각 하는가? 

호킹박사 : 과학자들 가운데 더러는 괴짜도 있을 것이고 상대하기에 깐깐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주 정상적인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다. 글쎄, 만약에 내가 괴짜라고 한다면 아마 나 스스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테지만.

 질문 : 그렇다면 자신의 성격이 우주를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호킹박사 : 나는 사물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찾아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나는 하나도 다르지 않다.

 

바그너를 좋아해

 

질문 : 교수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즐겨 듣는다는데 특히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오디오 세트는 무엇인가?

호킹박사 : 바그너의 작품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음악의 아름다움과 힘을 충분히 감상하고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바그너의 작품은니벨룽겐의 반지. 나는 여러 메이커의 부속으로 조립된 스테레오 세트를 가지고 있다.

 질문 : 교수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자녀들에게 무동을 태워준다거나 공놀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세 자녀의 아버지로서 애정을 표시하는 무슨 특별한 방법을 개발했는가.

호킹박사 : 내 아이들은 내게 크나큰 의미가 있다. 비록 내가 다른 아버지들처럼 그애들과 놀아주지 못하지만 내가 애들과 놀 수 있는 게임은 많이 있다.

 

무경계우주론이란?

 

질문 : 당신은 1983년부터 무경계우주론을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이론의 개념을 설명해 줄 수 있는가?

호킹박사 : 물리학의 법칙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 이래 우주가 어떻게 변하는지 이야기해 준다. 일반적으로 우주의 상태는 우주가 그 경계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알면 결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간과 공간의 크기가 유한하고 경계가 없다면, 물리학의 법칙은 우주의 상태를 유일하게 결정해 줄 것이다.

질문 : 오늘은 호킹 교수가 한국에서 처음 맞는 아침이다.

호킹박사 : 지금까지 내가 본 한국에 나는 친근감을 갖는다. (3시간 뒤 그는 비원을 관광하면서 한국과 일본이 판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데 감탄한다.)

질문 :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의 아이디어를 첫 부인에게서 도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가?

호킹박사 : 나는 시공의 만곡으로 중력장의 성격을 기술한 업적은 아인슈타인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부인은 좀 막연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을 테지만 그런 아이디어가 그리 많이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인슈타인에 못미쳐

 

질문 : 프랑스의 우주물리학자인 위베르 리브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오직 아이디어의 영역 속에서 사는 과학자상을 대표한다. 그리고 오늘에는 스티븐 호킹이 그러한 과학자상을 대표하며, 오직 스티븐 호킹만이 아인슈타인에 비견된다.” 이런 평가에 대해 만족하는가?

호킹박사 : 나는 내가 감정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 보통 인간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인슈타인 역시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영웅을 원한다. 그리하여 아인슈타인에게서 신화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나한테서도 그런 신화를 만들어내려고 애쓴다. 그렇지만 나는 아인슈타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질문 : 생일에 관한 질문을 하겠다. 교수의 생일은 18일이다. 같은 날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태어났다. (이때 호킹 박사는 키보드를 눌러 즉석에서 아니다하고 부인했다.) 그리고 갈릴레오의 사망일이 뉴턴의 생일과 같다고 들었다. 맞는가? 이는 매우 운명적으로 들리는데. (이때 그는 또 한 번 아니다의 키보드를 눌렀다.)

 

뉴턴보다 300년 늦은 생일 

 

호킹박사 : 나는 갈릴레오가 태어난 것과 같은 날짜에 태어나지 않고, 그가 죽은 것과 같은 날짜에 태어났다. 또 뉴턴은 갈릴레오가 죽은 그해에 태어난 것이지 생일 날짜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뉴턴보다 약 300살 젊다고 말할 수 있다.

질문 : 바로잡아 주어 감사하다. 교수는 우주에 다른 지적(知的)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그들이 이티(ET)나 브이(V) 같은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외계인과 모습이 비슷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호킹박사 : 나는 우리와 가까운 데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주의 다른 어느 곳에 아마도 지적 존재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더라도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모습과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가 행하는 것보다 훨씬 상상력이 크다고 생각한다.

질문 : 긴 시간 감사하다. 한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바란다.

호킹박사 : 땡큐!

 

[시사IN 2018년 3월 기고문 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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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시사IN 제공

 

편집국 괴담

 

 

나는 〈한국일보〉와 〈시사저널〉에서 개성 있는 후배들을 여럿 만났다한국일보 수습기자 후배인 김훈 작가는 그 가운데 유별난  한 사람이다. 설사 그가 현란한 명문으로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써서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큰 작가가 되었더라도 나는 일선기자 김훈의 모습을 더 친근하게 여긴다.

 

몸 날려 현장 돌진

 

그는 〈한국일보〉 수습기자 29기 출신으로 13기인 나보다 12년 후배다. 내가 사이공 현장에서 승패를 다툴 때 그는 사회부에서  초년 경찰기자로 뛰고 있었다. 그는 나를 두고 이런 대목을 쓴 적이 있다.

“내가 1973년 말 언론사에 갓 입사한 수습기자였을 때, 안병찬 선배는 산전수전의 현장을 갈고 다니던 고참이었다. 그는 철저한 현장주의 기자였고, 엄혹한 트레이너였다. 우리는 그를 따랐고 두려워했으며 부러워했다.

김훈은 청개구리처럼 사표도 안 내고 느닷없이 집에 들어앉기를 여러 번 하였다. 그렇지만 내가 그를 〈시사저널〉 편집위원으로 발탁하자 그는 결코 잔꾀를 부리거나 핑계를 대는 일 없이 즉각 몸을 날려 일선현장으로 뛰었다.

김훈 기자는 원 〈시사저널〉 편집국에 몇 가지 괴담을 남겼다. 그는 스스로 완전한 ‘컴맹’을 고집하고 연필로만 글을 썼다. 연필로 원고를 쓰면 지우개로 고치고 또 고쳐 명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사를 쓰고 나면 그의 책상 주변은 온통 지우개똥 투성이가 된다.

 

돗자리 깔고 누워 편집국 근무

 

한 번은 내가 편집국 안을 순찰하는데 김훈 사회부장이 책상 밑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목침까지 베고 벌렁 드러누워서 담배를 피고 있다. 아크릴 바닥은 그가 털어낸 담뱃재로 곰보자국투성이다.

내가 편집국 기강 문란이니 당장 돗자리를 걷어치우지 못할까, 하고 엄포를 놓아도 “허리가 아파 앉아서는 일을 못 합니다”하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두 손을 든 것은 편집국장인 내 쪽이었다.

나는 후임 편집국장인 김훈이 연필로 400자 원고지에 꾹꾹 눌러 쓴 환송사를 잊지 못한다. 1996년 내가 원 〈시사저널〉을 떠나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어 환송회가 열린 자리였다. 그는 연필  원고를 들고 일어서더니 읽어 내려갔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환송사

 

“……오랫동안 저희들의 기자의 선배이자 생업의 선배이신 안 선배님과 함께, 안 선배님 밑에서 지지고 볶고 또 볶고 끌탕에 끌탕을 거듭하며 살아왔던 세월은 언제나 저와 저의 동료들을 눈물겹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끌탕 속에서도 기자의 자세와 정신으로 다시 주변을 가다듬고 일어나서 〈시사저널〉을 떠받치고 나온 세월들에 대해 저희들은 안 선배님과 함께 자부심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김훈 국장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내가 강조하는 저널리즘의 현장주의와 기사 작성에 있어서의 리얼리즘 정신에 그가 동의하고 그것을 직업의 지표로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초 파동

 

그는 저널리즘의 토양을 거쳐 소설가가 되었다고 자인한다. 이른바 '마초 발언’ 때문에 그가 원 〈시사저널〉 편집국장직을 내던지고 원점으로 돌아갔을 때, 그는 백의종군하며 망설임 없이 이른바  '사쓰마와리(察廻)'(경찰기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한겨레〉 소속으로 한동안 '사쓰마와리'로 뛴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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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학 산공 2017.11.05 05:09 address edit/delete reply

    현장 주의자, 안깡 님, 후배들에게 훌륭한 자세를 보여 주었습니다.




 

 

 

나의 추적자 ‘고재열’

 

원(原) 〈시사저널〉시절부터 〈시사IN〉시절에 걸쳐 나를 추적하며 먹잇감으로 취재하거나 부려먹은 젊은 기자 한 명이 있다. 그 추적자는 정치·문화기자 고재열이다.

그는 고집은 가슴속에 감추고 겉은 수줍은 체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는 친구다. 또 예민한 시각으로 세상을 쏘아보는 친구다.

20032월 어느 날, 〈시사저널〉 편집고문실로 문화부 기자 고재열이 올라왔다. 당시 나는 경원대학교에서 언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사저널〉 고문을 겸직하고 있었다.

 

인터넷 성감대 

 

뛰어난 인터넷 전문기자인 고재열은 인터넷 문화의 ‘성감대’를 주제로 특집을 기획하고 내 글을 받아 싣겠다고 한다. 기자 출신의 언론학자로서 50․60세대를 대표하여 인터넷을 서핑한 후에 그 순행기(巡行記)를 써달라고 강력 하게 주문한다. 그의 강청에 마지못해 내가 써낸 인터넷 관전평은 『만화경, 혹은 감각의 제국』이라는 제목을 달고 고재열의 특집을 뒷받침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042월 어느 날, 고재열이 다시 내 방에 나타났다. 그달에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대박을 내고 있을 때다. 내가 6·25전쟁으로 아버지와 영영 생이별한 분단가족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태극기 휘날리며’의 영화평을 써달라고 주문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태극기 휘날리며’는 6·25전쟁 전후의 서울 공간을 실감나게 되살려놓고 있었다. 초여름의 햇볕 아래 전차가 다니는 서울의 거리 정경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슬픈 공간이었다. 그는 나의 영화평에 『가슴 파고든 그 여름 서울 풍경』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는 명민했다. 2007년 〈시사IN〉 초기에 경영이 매우 어려워 세 끼니 밥 먹을 임금도 받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그는 한국방송(KBS)의 생방송 ‘퀴즈 대한민국’에 나가더니 장원을 해서 상금 2,000만원을 획득하여 화제를 뿌렸다. 그 돈으로 그는 배곺은 처자를 공양하는 데 썼다고 우스개로 말했다.

 

세력가 독설닷컴

 

고재열 기자는 ‘몽골기병’(내가 원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붙인 별칭)의 한 명으로 〈시사IN〉 창간에 가담했다. 고재열은 부업으로 소셜뉴스를 개척하여 강력한 블로그 ‘독설닷컴’의 운영자가 되었다. 당시 추종자 257,000명을 이끄는 막강의 ‘트위터독설’도  겸영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 인터넷 세계에 몇 안 되는 최강자였다.

 

'since1962.tistory.com' 내력

 

그는 나에게 블로그 'since1962.tistory.com'를 작명하고 구축해 주었다. 1962년부터 〈한국일보〉에서 기자직을 개시했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그덕에 나는 일찌감치 블로그의 선진으로 행세를 할 수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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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울리는

이육사와 안숙의 절명시

 

‘강철의 무지개’처럼

시퍼런 ‘칼날’을 밟고 서다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선 시절 서울대학교 언론학부에 출강할 때의 일화이다. 나는 강의 첫 머리에 수강생 중 한 사람을 불러내 시(詩)를 낭송하도록 한다. 이육사의 절명시(絶命詩) ‘광야(曠野)’가 그 하나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하여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신세대 피 끓게 하는 저항의 노래들

 

젊은이들에게 이 시를 읽은 소감을 물으면 입을 모아 “피가 끓는다”고 대답한다.

이육사의 이 웅혼(雄渾)한 시는 우주의 탄생과 가난한 현재의 삶과 초인을 목 놓아 부를 천고의 미래를 담아냈으니 감동하지 않을 신세대는 없다. 일제의 감옥을 17번이나 드나든 민족저항시인 이육사.

‘강철로 된 무지개’를 노래한 그의 시 ‘절정(絶頂)’ 또한 절창(絶唱)이다.

‘강철로 된 무지개’를 노래한 그의 시 ‘절정(絶頂)’ 또한 절창(絶唱)이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는 유교적 선비정신으로 직설적인 저항시를 노래했다는 평을 듣는다.

이와 함께 역시 조선 선비정신으로 순절(殉節) 보국한 위당 안숙(安潚)의 애국 ‘절명시(絶命詩)’를 낭송토록 한다.

  오호라! 사람의 태어남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는데

  그 죽음이

  진실로 마땅히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을 수  있다면  

  그 죽음은

  도리어 사는 것보다 현명한 것이니

  이는 서슬이 시퍼런 칼날을 밟고서도

  자신의 목숨을

  돌아보지 않았던 이유인 것이다

 

위 구절은 대한제국 말 충절의 선비 위당(韋堂) 안숙(安潚)이 지은 절명시의 서두로서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는 위당의 묘비명으로 새겨졌다.

 

하늘을 찌르는 격문(檄文)

 

위당은 왜적이 대한제국을 침탈한 1910년 경술국치에 통분하여 자결 보국한 나의 할아버지이다. 젊은이들은 이 절명시 역시 비장하면서도 추상같은 기개가 하늘을 찌르는 격문이어서 가슴을 울린다고 말한다.

그런데 유독 사회학과 남학생 한명이 반기를 들었다. 운동권에 속한 그는 “양반계급은 지배계급이자 기득권세력이다”라고 흑백논리를 폈다. 그 학생은 선비와 양반을 구분하지 않고 날을 세운 것이었다.

양반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 국왕을 중심으로 동쪽에 문반(文班)이 서고 서쪽에 무반(武班) 서서 두 반열을 만든 데서 비롯했다. 지배계급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문관 관료를 총칭하는 사대부(士大夫)라는 명칭도 붙었다. 양반은 배타적인 특권을 향유했으며 군역(軍役)을 면제받고 노비를 마음대로 부리며 기득권을 누렸다.

그렇지만 선비는 유교이념을 구현하는 인격체이자 신분계층으로서 양반과 엄격히 구분한다. ‘선비정신’이라는 말은 명분과 의리를 대쪽처럼 밝히고 대의를 세워 덕치를 실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시종무관장과 대신(大臣)을 역임한 충정공 민영환(閔泳煥)은 1905년(광무 9년)에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죽음을 고하노라(警告大韓二千萬同胞遺書)”하는 절명시를 쓰고 자결했으니 역시 만고의 의인이거늘, 한 젊은 사회학도의 좁은 시야는 그만큼 여물지 못했다.

마침 <조선의 지식계보학>(옥당)이 나왔다. 저자인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최연식 교수(동아시아고전연구소 소장 겸임)는 정치 동학적 시각으로 역사에 접근하여 ‘지식권력의 시대’를 풀어낸다. 그는 조선의 역사는 권력 암투의 역사로서 국가가 힘의 논리에 따라 지식인을 공인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조선의 지식인 15명을 문묘에 종사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그 일이 조선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고 있어 흥미롭다.

<조선의 지식계보학>을 보고 절명시들을 다시 꺼내 읽는다.

목숨을 걸고 애국하는 것은 의(義)로운 일이다.

정정당당한 애국은 자존과 자주를 수호하는 존엄한 가치로 일

컬어진다.

 

[20015. 03. 05 아시아엔 발행 '안병찬 코멘터리' 원고 부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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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18 유족을 위로하는 문제인 대통령

문화일보 2017년 5월 18일자 1면 보도

 

 

 

문제인 대통령 개혁

 

왜 미국을 준거로 삼는가

 

 

한국에 사는 일부 방송 토론자와 일부 지식인에게 묻는다.

문제인 대통령의 개혁 행보를 말하면서 걸핏하면 미국의 사례를 준거로 삼아 인용하고 비유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지난 5월 14일 일요일 오후 어느 종편 방송에 토론자로 나온 모 정치 평론가도 미국의 오바마를 어들여 비교하면서 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한복이 아닌 양장을 한 모습을 가리켜 '영부인 상을 깨는 행보' 운운 하며 미국의 미셀 오바마를 끌어다 대는 토론자도 있다. 심지어 미국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였던 밥 돌까지 비교 대상으로 등장하는 판이다.

이땅의 지식인과 권력자와 기득권 세력 가운데 많은 사람이, 걸핏하면 미국의 온갖 사례를 모범으로 꼽으며 한국 사례와 비유하기를 습관화 하고 있다.

극복하고 바로잡아야 할 행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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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범 2017.08.21 01:13 address edit/delete reply

    안 선생님! '문제인 -> 문재인' 오타가 있어 말씀드립니다.




 

[2017430일 통일베트남 42주년에 붙여]

 

 

베트남 어머니

 

고통을 조각하는 미국인

 

 

 

주인공은 미국인 조각가 짐 기온이다. 그는 베트남통일전쟁의 영웅인 한 어머니의 초상을 제작하고 있었다. 꽝남성 꽝히엔 마을에 사는 늙은 베트남 어머니 응웬 티 녓은 통일전쟁에서 남편과 아들 4형제를 잃었다. 

 

 

 

남편과 4남 바친 녓 어머니

 

짐 기온은 1969년 베트남의 더러운 전쟁에 참전했는데 4년 전 베트남을 다시 찾아 각지를 여행하면서 베트남전쟁의 고통과 베트남사람의 상처를 피부로 느꼈다. 그는 중부도시 다낭에서 우연하게 호앙 띠 킴 즁이라는 이름의 베트남 여자경찰관을 만나 응웬 티 녓의 이야기를 들었다. 1966년 한 해에만 녓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 둘을 전쟁에서 잃었다. 그녀는 흘릴 눈물도 말라버린 인고 속에 민족해방군이 이동할 비밀 터널 공사 여섯 개를 파는 작업에 참가했다. 그러다가 적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두 눈을 잃어 장님이 되었다.

 

     

자비로운 두 눈가진 동상

 

 

 

 

이 이야기를 들은 기온은 가슴이 저미어 녓 어머니의 동상을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기온은 그녀와 모자의 인연을 맺고 집에 살면서 동상 제작 작업에 착수했다. 용감하고 자비로운 두 눈을 가진 동상을 만들 참이었다.

기온은 녓 어머니가 가르쳐 준 것은 베트남인의 고결한 성품과 관용이라고 말하고 있다.                                                            

 

<베트남 국영 영자지 <베트남 뉴스> 일요판

 베트남의 고통을 조각하는 미국 퇴역군인’>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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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트남에 가나

 

 

 

나의 주변에는 베트남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베사모’(베트남을 사랑하는 모임)를 만들어 매년 하노이와 호찌민시를 친선 방문합니다.

 

 

한 줌의 재

 

 

어떤 사람은 베트남의 분단시대와 통일시대에 걸쳐 반세기를 살면서 맺은 인연으로 호찌민으로 이름을 바꾼 사이공에 뼈를 묻습니다. 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라이따이한)의 보호자를 자임하여 빠빠 으로 불리던 정주섭 씨는 연전에 30여년을 산 호찌민에서 죽어 한 줌의 재가 되었습니다.

 

 

혼이 씌어

 

 

베트남의 혼이 씌듯 땅에 이끌린 한국인 제2세대도 있습니다. 호찌민 국가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구수정 박사는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베트남 사람들의 고통을 밝혀내고 한베평화재단을 만들어 뜻있는 운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내가 상임고문으로 한 때 고락을 함께한 <베트남교민신문> 대표인 40대의 김종각 변호사도 한국인 제2세대입니다. 그는 2005년에 국제건설계약관리 변호사로 호찌민에 첫발을 들여 놓았다가 이 땅의 마력에 빠져 정주하게 됩니다. 지금은 국영 베트남통신사와 협업하여 신문 이름을 <베한타임스>로 바꾸어 발행하고 있습니다.

 

 

강렬할 태양 패연(沛然)한 소나기

 

 

나는 사이공의 강렬할 태양과 패연(沛然)한 열대성 소나기의 혼이 씌인 사람입니다. 풍토는 베트남이 온전히 자기 혼자의 힘으로 항불전쟁에서 항미전쟁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통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민족적 저력을 상징하는 듯합니다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자주적인 힘으로 최후의 승리를 쟁취한 약소민족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언론인 안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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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30일 통일베트남 42주년에 붙여]

 

 

베트남

 

 

어머니의  

 

 

 

 

위대한 인고(忍苦)

 

수도 하노이 리 쭈우엉 끼엣 거리 36번지의 베트남여성박물관. 2층 전시실의 한 벽면을 늙은 어머니들의 초상이 채우고 있다. 현판은 이렇게 기록한다.

 

베트남의 통일전쟁은 어머니들이 침묵으로 인고(忍苦)한 희생이 없었다면 성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들의 아들과 남편은 모두 조국을 위해 죽었다.

 

 

 

영웅적 어머니명예칭호

 

 

 

1994924일 베트남국회 상임위원회는 통일 전쟁에서 2명 이상의 자식이 생명을 잃은 경우, 외아들이나 무남독녀가 생명을 잃은 경우, 남편과 자식이 생명을 잃은 경우, 그리고 자기 목숨을 잃은 경우 어머니를 기려서 베트남의 영웅적 어머니라는 명예칭호를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기록에 따르면 200812월까지 모두 5만 명의 어머니가 베트남의 영웅적인 어머니칭호를 받았다.

 

 

 

자식 10손자 2명 바친

 

 

어머니

 

 

'민족해방군의 영웅'

 

 

가장 특별한 예는 10명의 자식과 2명의 손자를 바친 꽝남성의 어머니 응웬 티 투이다. 이어 8명의 자식을 바친 호찌민시의 어머니 판 티 뉴와 응웬 티 란의 이름이 따른다. 이들에게는 베트남의 영웅적인 어머니의 칭호와 함께 베트남민족해방군의 영웅의 칭호가 주어졌다. 국가는 이 어머니들을 보훈대상으로 결정하고 연금과 주거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알린다.

그런 영웅 어머니들은 모두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다. 어머니의 힘은 인간의 원천적인 가치라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2013년 '어머니의 힘' 축약하여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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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30일 통일베트남 42주년에 붙여]

 

 

베트남

 

 

그 불굴의 자주정신

 

 

탈오리엔탈리즘의 안광(眼光)

 

 

 

    하노이 전쟁박물관에서.

 

 

 

 

지난 4월 초에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특설(特設)-‘사이공 의 새벽’ 안병찬 특파원과 동행하는 호찌민 통일현장 취재 단』이라는 제목의 실습교육을 편성, 주관했다. 이 교육의 기획자언론정보연구소장 윤석민 교수(언론정보학과)였.

 

 

 

 

우리 최신세대와

 

'베트남의 빛나는 자주정신'

 

 

교육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째로 우리 최신세대에게 보여 주고 가르치고자 한 바는 '베트남의 빛나는 자주정신'이였다. 둘째는 '기록문학'의 표현력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밝히고 싶은 것은 이번 교육이 최신세대에게 상당한 교육효과를 올렸다는 점이다.

오늘도 내 머리 속에서는 한국 비무장지대 장단(長湍) 역 터에 있는, 북으로 달리려다 멈춰버린 녹슨 증기기관차와 베트남의 통일급행열차가 교차하고 있다.

 

"저희들에게

평화가 왔어요"

 

트남 미래세대의 통일기념일 행진(호찌민시 설치화)

 

 

 

그러므로 해마다 4·30 남부해방기념일(사실상의 통일기념일)에 맞추어 베트남을 방문할 때 마다, 그 땅과 그 민족은 나의 심장을 고동치게 만든다.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아시아 사람으로서의 독립적 관점을 확고히 다지도록 만든 존재이다.

금년에 베트남은 그 불굴의 자주정신과 자주독립역량으로 통일을 달성한 이래 42주년을 맞았고, 한반도(조선반도)는 외세의 힘으로 광복한 후 72주년을 맞았다.

 

 

 

'아시아적 가치'

 

 

베트남이야 말로 아시아의 안광(眼光)으로 빛을 내는 나라라는 생각이다. 베트남은 세상을 직시하며 불퇴전의 결의와 불굴의 자주정신으로, 온전히 자기 홀몸의 의지와 역량으로 3대 초강대국 침략세력을 연거푸 몰아내고 해방과 독립과 통일을 쟁취한 존재이다.

5년 전 2012년 9월 19일에 한국기자협회의 초청을 받아 '한국-베트남 기자 콘퍼런스'에서 특강을 한일이 있다. 베트남 측은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베트남기자협회장이자 공산당 기관지 '인민' 편집국장인 뚜언후을 단장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언론인 등 12명이었다. 한국 측 참가자는 「한겨레신문」 권태선 편집인, 「한국일보」 이계성 논설위원, 연합뉴스 김선한 국장, KBS 정필모 해설위원 등이었다.

그날 특강에서 나는 분단시기인 1971년 주월특파원 시절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37년 동안 기록해온 사진자료 130장을 파워포인트에 담아서 보여주며, 베트남 보도의 편년사를 설명해나갔다. 그 때 특별히 강조한 것은 바로 '아시아적 가치'였는데,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아시아적 가치'가 뭐냐고 질문했다.

답변은 "아시아 사람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가치"였다. 그것은 아시아의 안광(眼光)으로 세상을 직시해야한다는 뜻이 된다. 아시아적 가치란 '탈오리엔탈리즘'의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호찌민시 인민위원회와 호찌민 동상

 

 

 

 

통일 베트남에서

 

배운다

 

 

우리는 베트남의 통일운동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베트남이 보여준 불퇴전의 자주정신은 5·7 항불전승과 4·30 항미전승의 정신이  근간이다.

한국과 베트남의 분단과 통일의 조건은 다른 점도 있고 동일한 점도 있다. 베트남은 자존망대(自尊妄大) 한 중국 대륙에 1000년 간 맞서며 독립을 지켜냈고, 유럽 제1강대국 프랑스에는 100년의 저항투쟁 끝에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더구나 세계 초강국가인 미국을 상대해서도 20년 전쟁을 벌여 끝내 승리했다.

그 강인한 저력으로 베트남은 스스로 해방과 통일을 완성했다. 그야말로 세상에 없는 자주정신의 화신(化身) 이다. 지금 베트남은 방약무인(傍若無人)으로 못할 짓이 없는 것처럼 제 근육을 과시하는 초강대국 미국에 종속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눈높이로 현실적인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베트남통신사(TTXVN) 역사자료관. 

 

항불, 항미 전쟁에 종군하여 순직한 250명의 초상 앞에서.

 

 

 

많은 한국인들은 베트남의 자존을 보지 못하고 오직 경제적인 잣대 하나로 베트남을 평가하려든다. 최근 베트남 달랏대학에서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유태현 전 베트남 대사는 내가 관여하던 주간 베트남 「교민신문」(현 「베한타임스」)에 이런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우리가 베트남에 우월감을 가질 근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베트남 국민은 물질적인 풍요보다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여 국가와 개인의 최고 가치인 독립과 자유를 국가 이념으로 설정한 품위 있는 국민입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이번에 호찌민이 초행인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장 윤석민 교수는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을 시적인 언어로 인상적으로 기술했다.

 

 

 

베트남-

 

하늘,땅, 산과 물, 풀과 나무들

 

강인한 생명력이

 

붉은 피로 흐르는 나라

 

 

하늘, 땅,  산과 물, 풀과 나무들, ᆢ 이  모든 것이 본래 하늘과 땅, 산과 물,  풀과 나무들의 본 모습이 이러하겠거니 싶게 눈 가는 모든 곳이 비옥한 푸르름으로 가득한 나라. 고엽제, 네이팜, 수만 톤의 tnt도 파괴할 수 없었던 강인한 생명력이 붉은 피처럼 흐르는 나라.

 

 

 

베트남 국민ㅡ

 

민족정신, 자존감, 리더십,

 

조직력, 용기, 인내심,

 

생명력을 지닌 사람들 

 

 

베트남의 눈부시게 푸르고 풍요로운 자연이 만들어낸 밝고 고우며 다정다감하고 나눌 줄 아는 선한 성품, 그리고 지혜와 의지가 엿보이는 깊은 눈매와 뚜렷한 이목구비 등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사람들.중국 프랑스 미국 등 제국 열강의 침략에 굴하지 않는 민족정신, 자존감, 리더십, 조직력, 용기, 인내심, 생명력을 지닌 사람들.공동체를 이루어 더불어 살며 아이들과 노인들을 최선을 다해 부양하고 후세 교육에 애쓰며 옷차림을 갖추고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는 예의범절을 지닌 사람들.                   [윤석민]

 

 

사진=베트남 통일 4.30 해방기념일의 밤.

호찌민시 동코이 거리를 메운

오토바이 축제인파(2012년 4월 30일 안병찬 찍음)

 

 

 

미국주의와 서구주의

 

 

이때에 즈음하여 나는 한국 사회에 뿌리를 깊이 내린 두 가지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한국 정치·사회·문화의 주류세력이 선도하는 '미국주의'와 '서구주의'의 문제이다. 이 주류세력을 구성하는 것은 권력자와 기득권세력과 지식인 집단이다. 이들 가운데 어지간히 많은 수는 미국주의와 서구주의를 동화(同化)하여 마치

"우리 것은 아니고 미국과 서양 것이 최고다"하고 믿는 모습이다.

그들은 오리엔탈리즘에 젖어있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문명을 주변화하는 서양 중심관이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위압하고 지배하고 재구성하는 서양문명의 관점이고 책략이다.

두 번째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우리는 아시아인이면서 동양인이다. 그런데 흔히 중국문화와 동양문화를 혼동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문화권을 동화한 것이 아니라 범동양문화권에 귀속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한다. 베트남 또한 우리와 이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범동양문화권에 소속한 국가이다.

베트남 자주정신을 직시하며 '아시아의 안광(眼光)'을 우리의 사회문화적 테제로 설정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17년 4·30 전야에

언론인 안병찬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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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강신표 2017.04.28 22:54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병찬 기자의 기백은 내가 1960년대 처음 만났을 때 받은 그 열기 그대로 "여기 지금" 읽은 글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산전수전 속에서 더욱 원숙해진 지혜로움은 새로운 세대에게 많은것을 전하고 있다. 지난 글들을 다시 읽고, 또 많은것을 일깨워 주었소. 감사합니다.




 

고우영 화백

 

파리 만유기(漫遊記) 

 

 

 

지치고 병든 몸이지만

특파원의 신경질이

무서워서 쉬지도 못한다.

 

지겨운 파리를 떠난다.

그날 아침에도

비는 촉촉이 내렸다.

 

 

[주] 승용차 옆 은 한국일보 안병찬 특파원

승용차 안은 전직 한국일보 기자 그 아내

 

파리의 다리밑

 

사랑은 흐르고

 

그 옛날 즐거웠던

 

추억이 흘러간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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