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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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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04건

  1. 2017.04.19
    (12) [호찌민 통신-'피아노 건반 위의 인문학 강좌' 주은영 교수]
  2. 2017.04.19
    (9) [호찌민 통신-김종각 발행인 베트남관]
  3. 2017.04.18
    (7 ) [호찌민 통신-홍종윤 교수의 베트남관, 최신세대관]
  4. 2017.04.17
    (6) [호찌민 통신-윤석민 교수의 베트남관, 최신세대 관]
  5. 2017.04.17
    (8) [호찌민 통신-김영희 교수의 베트남관, 최신세대관]
  6. 2017.04.16
    (13) [호찌민 통신-사이공 중앙우체국 앞 갑자기 목메다]
  7. 2017.04.16
    (16) [호찌민 통신-80년대와 2000년대의 베트남, 조교 최순욱]
  8. 2017.04.15
    (15) [호찌민 통신-권현우 베트남문학 석사, 능변의 국어 표현]
  9. 2017.04.15
    (10) [호찌민 통신-최신청년 그대들을 평한다]
  10. 2017.04.15
    (2) [호찌민 통신-특강 목표 '베트남 자주정신과 기록문학']

 

 

[주은영 교수]

 

 

'피아노 건반 위의 인문학 강좌'

 

 

음악으로

 

역사의 흥망성쇠를

 

이야기 하자

 

 

 

 

"언론정보학과 학생들 만남은

기쁘고 특별한 일"

 

안녕하세요. 저는 호찌민 국립음대 대학원에서 피아노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주은영입니다. 서울 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학생들을 베트남 호치민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 인연은 저로서는 매우 기쁘고 특별한 일입니다. 2007년에 호치민에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10년 남짓 살아오면서, 이곳에서 교수직을 수행하며 연주가로써 활동할 수 있는 것을 매우 감사하게 여기고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사회와 자연을 인식하는

 

하나의 힘

 

저는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들에 예술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연주에 투영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럼 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예술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삶의 모든 경험과 독서, 여행, 콘서트, 작품 전시회, 박물관 관람 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 이 모든 정보가 우리 뇌의 전두엽에 저장되어 있다가 어떤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서 재편성되어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연주가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음악은 인문학의 한 분야입니다. 음악은 우리가 사는 사회와 자연을 인식해 가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인간의 정신을 입은 음악의 힘은 인간 본성과 떨어져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음악으로 하여금 역사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게 해야 합니다.

 

바흐

 

17세기 엄격한 종교 훈계

 

바로크 음악  

 

바흐의 음악을 배우고 연주하려면 17세기 유럽 사회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바로크 음악 기간에 사람들의 욕망과 자유는 교회의 엄격한 훈계 아래 있었습니다. 하루의 일과는 미사의 벨 소리를 듣는 것 에서부터 시작하여 헌신과 기도로 순환합니다.

음악의 선율과 리듬은 미학적 정감의 이론 하에 구별되어 관리를 받았습니다. 바흐의 음악을 들어보십시오.

 

[피아노 연주]

바흐 파르티타 1번 프렐류드

 

 

모차르트

 

왕궁과 귀족의 살롱음악

 

우아하고 화려하게

 

18 세기에 이르러서 음악은 엄격한 교회의 훈련을 벗어나 서서히 왕궁과 귀족의 살롱으로 옮겨갑니다. 왕족과 귀족이 우아하고 화려하게 차려 입고 이야기를 나누는 연회의 분위기와 환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시대에는 인간의 사고와 이성의 해방이 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귀족층의 살롱 음악은 그리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으면서 극도로 정제되고 세련된 품위를 보여줘야 합니다. 모차르트 음악을 들어보십시오.

 

[피아노 연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k414

 

 

강력하고 단순한 메시지

 

음악의 대중혁명 이끈 베토벤

 

클래식 정점에 도달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면 드디어 베토벤의 시대가 오고 클래식 음악의 정점에 도달합니다. 유럽 사회는 혁명의 도가니에 빠집니다. 베토벤은 귀족과 왕궁의 살롱에서 시녀 노릇을 하던 음악을 대중 앞으로 끌어내립니다. 그런 음악은 강하고 단순한 매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귀족과 달리 하루 종일 노동과 과업에 지친 일반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합니다.

먼지를 털고 가장 깨끗한 옷을 꺼내 입고 지친 몸을 이끌고 나와서 들을 수 있도록 영혼의 빵이 될 수 있는 매시지들 담아야 합니다.

여러분과 베토벤의 위대한 정신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는 육체와 삶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신이 그에게 주문한 음악적 소명을 완성하리라 결심하고 강한 심리적인 압박에 자기를 내던졌습니다.

 

[피아노 연주]

베토벤의 운명 제1악장 도입부, 열정 소나타 부분, 월광 소나타 부분

 

비엔나의 슈베르트

 

끊임없이 방랑하는 자연의 소리

 

나뭇잎 소리, 새들의 노래, 시냇물 흐르는 소리

 

이제 비엔나에 슈베르트가 등장하면서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이 흘러갑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사상과 감정들을 자유롭게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떤 것에, 누구에게 속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충실하게 됩니다.

베토벤이 평생을 위대한 혁명가로 살았을 때, 슈베르트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지만 또 다른 위대함이 존재합니다. 그의 음악은 천재적으로 조절된 음악적 순수성, 인간성 그리고 겸허함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자연의 소리에 끊임없이 방랑하는, 나뭇잎의 속삭이는 소리, 새들의 노래 소리,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 또 갑자기 대조적으로 폭풍의 위세가 울리기도 합 니다.

[피아노 연주]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k960, B-flat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특별한 해후

 

죽음 앞둔

 

침상의 피아노 연주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존경하고 숭상했습니다. 베토벤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슈베르트는 용기를 내어 베토벤을 만나러 갔습니다. 이 때 베토벤은 57살 슈베르트는 30의 나이었습니다.

그가 베토벤이 누워있는 방에 들어서자, 베토벤은 슈베르트에게 그의 음악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슈베르트는 그의 작품을 피아노로 연주했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을 듣고 있던 베토벤은 당신의 음악은 위대합니다. 우리가 진작 만났었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며 감탄합니다.

슈베르트는 위대한 음악가가 죽어간다고 생각하니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방을 뛰쳐나갑니다. 베토벤은 1827년 사망합니다. 그런데 베토벤 사후 1년 만에 슈베르트도 31일 살의 나이로 짧은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들은 생전에 이렇게 안타깝게 해후를 했지만, 죽어서는 비엔나 중앙묘지에 나란히 묻혀 있습니다.

 

 

조국 폴란드에 대한 사랑 넘친

 

쇼팽

 

전쟁에 휩싸인 처절한 낭만

 

할 이야기가 너무 많군요. 이제 또 다른 낭만 작곡가 쇼팽의 작품을 들어보겠습니다. 그의 음악에는 위험에 처해있는 조국 폴란드에 대한 사랑이 넘칩니다. 이렇게 19세기 낭만은 전쟁에 휩싸인 처절한 낭만입니다.

 

[피아노 연주]

쇼팽 발라드 1, 즉흥 환상곡

 

 

민족 고유한 특징

 

차이코프스키

 

국민악파의 선구

 

그리고 음악에서 자신의 민족의 고유한 특징을 살려내는 민족주의 음악이 등장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이가 대표합니다. 또한 러시아의 국민 악파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이 있습니다. 동양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색채감이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선보인 림스키 코르샤코프, 음악을 풍자와 대화의 차원으로 이끄는 천재 무솔그스키 그리고 음악이 마치 화학의 원소처럼 영롱하게 화합하는 보로딘의 음악들이 그것입니다.

 

[피아노 연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부분

 

 

20세기 전쟁과 상실

 

어떤 것도 얽매이지 않는

 

무조 음악

 

20세기에 이르러 전쟁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심리적인 분열을 일으키며, 선악이 모호해지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조성 체계가 무너지며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조 음악이 등장합니다. 비엔나 현대 12음기법 작곡가 베르크의 작품을 들어보십시오.

 

[피아노 연주]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 부분

 

 

베트남 클래식 음악환경은

 

 

이제 음악을 통한 인문학 이야기는 마치기로 하고, 베트남 클래식 음악 환경에 대해 조금 언급하겠습니다. 제가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를 돌이켜 보면, 내가 이곳에서 무슨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호찌민 음악원과 수시로 열리는 국제적인 교류 음악회를 보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음악 교육 인프라는 본래 경제 성장과 맞물려 발전하는 경향 때문에 베트남의 클래식 음악은 그 저변이 크게 확대되지는 못했어도, 해를 거듭해 갈수록 괄목할만한 발전을 해가고 있다.

베트남 출신의 가장 대표적인 세계적 연주가는 피아니스트 당타이손이 있습니다. 그는 베트남이 전쟁의 상흔이 아직 가시지 않은 1980년 제10회 폴란드 쇼팽국제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불과 몇 해 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한국인 처음으로 우승한 그 콩쿠르입니다.

베트남에는 대표적인 음악교육기관으로 하노이, 호찌민, 후에 세곳에 국립음악원이 있습니다. 음악원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콘서바토리(음악학교) 형태입니다. 베트남은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자국의 전통 음악의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특히 전통악기들과 가락의 근원이 한국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호치민 국립 음대측은 한국과의 국악교류를 다각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주은영]

현 호치민 국립음대 대학원 정교수, 하노이 예술대학 초빙교수

모스크바 그네신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학위,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립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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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보는 시각]

 

 

 한-베 미래 발전 이끌어 갈 

 

 

깨달음 

 

 

'황금의 결합'  

 

 

 

 

  

[질문] :

 

종각 대표는 호찌민에 정착하여 10년이 됐지요.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언론인 안병찬

 

 

 

[답변-김종각  베한타임스 발행인]  :

 

 

나는 과거 역사 문제를 얘기하기 보다는 미래 지향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베트남은 한국의 발전 경험을 아는 것이 필요하고 한국은 베트남의 신 성장 동력을 빌리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양국은 서로 필요함을 채우면서 미래 발전을 이끌어가는 황금 결합을 기해야한다고 믿습니다.

 

 

상대방 사회 가치 발전에

 

희생적 자세도

 

 

문제는 서로 이해가 부족하고 너무 단기적으로 이익을 좇는데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해의 일치를 보자면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상대방 사회의 가치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할 희생적 자세도 요구됩니다. 더 큰 미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서 지금은 지원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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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홍종윤 교수의

베트남관·최신세대관

 

 

질문 :

이번 취재학습단의 지도 교수 겸 운영 총책으로서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에 대한 인상, 그리고 제자들의  학습태도에 관한 평가를 간단히 알려 주시면 고맙겠어요. ^^                               안병찬

답신 :

베트남에 인상을 물어보신 카톡 메시지를 제가 놓쳤었네요. 송구합니다.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에 대한 인상은 아래와 같습니다.

 

"외유내강 항전역사, 

그것을 이끈 지도자들"

 

우선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들에게 받은 인상은 한마디로 외유내강입니다.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외세 항전의 역사와 그것을 이끈 지도자들,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국민들에 대한 자긍심/자부심이 모든 베트남 사람들의 사고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고한 역사의식

전쟁을 기록하고 기억하되"

 

그러한 강고한 역사의식에 기반하여, 전쟁을 기록하고 기억하되, 한국을 포함한 전쟁 당사자국들과도 실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지향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베트남 국민들이 겉으로 보기에 대부분 친절하고 순수하고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으며,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경직성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언론정보학과 청춘들

상당히, 어떨 때는 너무도 진지하다"

 

학생들의 학습태도는 서울대생들이 일반적으로 그러하지만 상당히, 어떨 때는 너무도, 진지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때로는 생기가 없게 비춰질 수 도 있는데, 막상 겪어보면 실제로는 자기 맡은 일들을 꼼꼼하고 성실하게 수행하는 학생들이 대분분이라서, 저는 과도한 진지함을 그냥 서울대생들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앞뒤를 재지않고 그냥 좌충우돌 부딪쳐보는 것도 좀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물론 가끔은 앞뒤 재지않고 그냥

좌충우돌 부딪쳐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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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장

윤석민 교수 

 

[베트남관(觀)

   

민족정신, 자존감, 리더십,

 

조직력, 용기, 인내심, 생명력

 

지닌 사람들

  

호찌민 전쟁증적박물관의 윤석민 언론정보연구소장

 

윤석민 소장교수님.
이번 교습단의 단장의 입장에서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에 대한 인상과 그대의 제자인 최신세대를 바라본 견해를 가단히 피력해 주시면  고맙겠어요.                                                       안병찬



윤석민 교수

네ᆢ

 

1. 베트남하늘, 땅,  산과 물, 풀과 나무들

 

 하늘, 땅,  산과 물, 풀과 나무들, ᆢ 이  모든 것이 본래 하늘과 땅, 산과 물,  풀과 나무들의 본 모습이 이러하겠거니 싶게 눈 가는 모든 곳이 비옥한 푸르름으로 가득한 나라.
고엽제, 네이팜, 수만톤의 tnt도 파괴할수 없었던 강인한 생명력이 붉은 피처럼 흐르는 나라.

 

2. 베트남 국민ㅡ민족정신, 자존감, 리더

십, 조직력, 용기, 인내심, 생명력을 지닌

사람들 

 

베트남의 눈부시게 푸르고 풍요로운 자연이 만들어낸 밝고 고우며 다정다감하고 나눌 줄 아는 선한 성품, 그리고 지혜와 의지가 엿보이는 깊은 눈매와 뚜럿한 이목구비 등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사람들.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제국 열강의 침략에 굴하지 않는 민족정신, 자존감, 리더십, 조직력, 용기, 인내심, 생명력을 지닌 사람들.
공동체를 이루어 더불어 살며 아이들과 노인들을 최선을 다해 부양하고 후세 교육에 애쓰며 옷차림을 갖추고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는 예의범절을 지닌 사람들

 

 

[최신세대관(觀)]

 

 앳되고 순수하

 

탈권위적인 인성을

 

보유한 존재들 

 

혼자 자라 오랜 기간 입시경쟁에 짓눌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소통능력 내지 사회성이 약하지만, 학업능력으로 치면 과거 어는 세대보다 우수한 글로벌  엘리트로 성장 가능한 아이들.
앳되고 순수하고 탈권위적인 인성을 보유한 존재들.

때로 미숙하고 철이 없지만 건강하고 활기차며 꾸밈이 없는 사랑스런 아이들.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 능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실천하고, 이기적 행복추구를 넘어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진정한 열리트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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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영희 언론사 교수의

베트남관 최신세대관

 

호찌민 중앙우체국 앞 김영희 교수와 기념 촬영(사진=언론정보학과 )

발신 : 김영희 교수님.

언론사학자로서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현장에 임한 젊은 후세대 제자들이 어떤 장점을 보였는지. 그들에게 아쉬운점은 무엇인지, 들려 주시면 나의 인물 소묘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수신 : 선생님 안녕하세요. 답신 메일로 보냈습니다.^^

[김영희 교수의 메일]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을 보라"

통일에 대한

정신력의 승리

몇 년 전 하노이와 그 근교도시를 여행하며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베트남의 저력을 발견하고, 발전 가능성이 큰 나라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 필리핀을 여행했을 때, 베트남 사회와 국민 생활 모습과 많이 비교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번 2017년 4월 <‘사이공 최후의 새벽’ 안병찬 특파원과 동행하는 호찌민 통일현장 취재학습단> 일원으로 호치민을 방문하면서, 특히 전쟁증적박물관과 구찌땅굴을 돌아보며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베트남 국민들은 강력한 무기들을 엄청난 물량으로 퍼부었던 세계 최강국가 미국과의 전쟁을 허술해 보이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무기와 수단으로 대적해, 결국 승리했다.

그것은 베트남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정신력의 승리일 것이다. 그런 정신력을 가진 국민과 국가라면 오랜 기간 전쟁으로 파괴된 사회를 복구하고, 성장하려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은 극복해갈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개발의 과실 특정 계층에

편중될 가능성

다만 중국의 예와 비슷하게 공산주의체제에 자본주의 경제제도가 섞여 있어, 개발과정의 과실이 특정 계층에 편중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전쟁이 끝나고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나, 정신적으로 해이해지면서 만연하는 부정과 부패를 어떻게 줄이느냐가 큰 과제일 것이다.

"취재학습단의 청춘과 활기 " 

윤석민 교수의 열정이

만들어 낸 작품

해외 학습단은 서울대학교에 언론정보학과가 설립된 이래 처음 보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이 학습단은 미래뉴스센터를 지휘하는 윤석민 교수의 의지와 열정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윤석민 교수는 미래뉴스실습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현장을 발로 뛰고, 사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열정적인 진정한 언론인들로 성장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언론정보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그런 언론인으로 키우고 싶어 80평생 현장주의 언론을 실천하고 있는 원로 언론인 안병찬 선생님을 모시고 베트남 통일의 취재 현장을 보고, 느끼게 한 것이다.

함께 다니며, 함께 보고,

베트남 음식 먹으며, 대화 나누고

학생들은 호치민시에 도착한 첫날부터 카메라와 필기도구를 들고 다니며 견학한 곳곳을 기록으로 남기느라 분주했다. 미래뉴스실습 과목이 3월초 개강하고 한 달 남짓 지난 시간이라 처음에는 서로 잘 모르던 학생들이 함께 다니며, 함께 보고, 베트남 음식 먹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점점 서로 더 많이 애기하며 웃고, 표정이 밝아지고 있었다.

호치민 방문 둘째 날, 1975년 4월 29일 사이공 함락 하루 전날 통행금지로 아무도 다니지 않는 빈 거리를 달려 우체국에서 마지막 취재기사를 송고한 안병찬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학생들은 현장 취재의 긴박한 상황을 공감하고 있었다.

 텅빈 거리, 공포의 순간

방문단의 일원이 되어 안병찬 선생님으로부터 지난 시절의 언론활동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 역시 텅 빈 거리, 그 공포의 순간에도 기지를 발휘해 마지막 기사를 송고한 안병찬 선생님의 직업정신이 실감으로 느껴졌다.

여행자 거리 낭만 속으로

둘째 날 늦은 시간 일정이 끝난 후, 학생들은 모두 여행자거리에 내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해외 취재현장을 직접 돌아보며 그들은 정말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이번 해외 학습단에 큰 의미를 갖지 않고 함께 온 학생들도 있었던 것 같다. 더위에 쉽게 지친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학생들은 서로 더 가까워졌고, 현장의 의미에 대해 많은 것을 체험한 소중한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김영희 (미디어 역사연구, 언론학과 교수, 전 언론정보연구소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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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지난

 

사이공 중앙우체국

 

갑자기 목메다

 

 

 

 

 

 

42년 전.

1975년 4월 29일 항복전야, 오전 9시 30분. 사이공 중앙우체국 기계실.

 

 

사이공 최악의 날 428

 

텔렉스 호출번호케이2244 한국일보 서울(K2244 HKILBO SEOUL)이 열리자  기사가 텔레스로 토닥토닥 전송된다 .

 

사이공 최악의 날 428…….”

……

……

……

……

 

32분의 송고가 끝나는 순간, 돌연 탁 탁 탁 탁하고 급한 타자 음이 울렸다.

 

 

본사 최후 교신

 

- 누구냐, 미스터 안 그곳에 있느냐?

 

영문으로 찍혀 나온다. 외신부장이 나를 찾는 소리다. 본사 텔레타이프 앞에 앉아 있을 조순환 부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책상 앞에서 대면하는 듯한 근접감이 들었다. 아득한 거리였으나 둘이 호젓하게 마주앉은 기분이다.

 

- 필름은 엘에스티가 떠나는 장면과 대사관 스케치 중심입니다.

  태극기 내리는 필름은 아직 못 보내고 있습니다. 대사관은 어제 태극기를 내렸으니 기사를 보충해 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에게 안부 잘 전해 주세요. 내일이 어머니 환갑인데 전보가 되면 축전을 치겠고 안 되면 텔렉스로 축전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니 환갑 4월 30일

 

- 당신 모친의 환갑행사에는 내가 직접 가보겠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위험한 일은 절대 삼가시오. 즉시 안전하게 사이공을 탈출하기 바랍니다.

- 고맙습니다. 국장 이하 외신부원에게 안부 전합니다. 오후 텔렉스가 여의치 않으면 아침에 다시 해보겠습니다.

-

 

안녕히. 안녕히.

 

조심하시오. 조심하시오.

- 안녕히.

- 안녕히.

 

다시 본사가 멀고 멀어졌다.

이 텔렉스가 사이공에서의 마지막 교신이었다.

 

 

텅빈 거리, 오직 나홀로 달리다

 

 

카메라와 가방을 메고 개미 한 마리 없는 텅 빈 케네디 광장을 나 홀로 뛰었다. 사이공 가톨릭 대성당의 뾰족 지붕이 우체국 건너편에 솟아 있다. 그 앞에 외롭게 서 있는 성모 마리아상은 희게 빛났으나 차가웠다.

마리아 상 왼편에 키 큰 가로수 녹지대가 드넓게 펼쳐진다. 독립궁의 정문과 본관에도 경비병 그림자가 없다.

사진을 찍어야지. 이것이 사이공의 마지막 장면이 될지 모른다.”

 

 

4월 29일 오전 10시 3분

 

 

광장 한가운데로 뛰어가 마리아상을 바라봤다. 마리아의 어깨 너머 사이공 우체국 시계탑.

시계는 오전 103, 저 시간이 나의 사이공 취재를 증명해 줄 것이다.

촬영을 마쳤다. 나홀로 인적이 완전히 끊어진 텅빈 거리를 또 달렸다.

 

 

그로부터 42년

 

 

42년이 지나, 한 밤에 중앙우체국 앞에 가서 언론정보학과 젊은이들 앞에서 그날 송고하던 상황을 전하던 중, 갑자기 목이 메어 말문이 막힌 이유가 무엇인까.

 

4월 30일이 어머니 회갑이어서 어머니가 그리운 감정이 내 마음 밖으로 넘쳐 나왔는지 모른다.

나이가 들면 쓸모 없는 감성이 증가한다 하니 그 탓인지 모른다.

언론정보학과 최신세대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당시 정황을 그려 나가가다 감정이입이 됐는지 모른다.

 

아직도 왜 목이 메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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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과거와 현재를

보도로 연결하다

 

 

 

 


[최순욱 조교의 탐방 소회]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최순욱입니다.

탐방 소회를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80년대와 2000년대의

베트남

 

‘80년대와 2000년대가 뒤섞여 있구나.’ 버스에서 바라본 호치민의 첫 인상이다. 멀리 보이는 상업지구의 빌딩은 서울의 여느 빌딩처럼 높고 화려했지만 버스에서 길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더위 때문인지 문을 활짝 열어놓은 가정집의 외양과 내부는 영락없이 80년대 서울 변두리쯤을 연상하게 했다.

 

더욱 압축된 경제성장

 겪고 있구나

 

이는 베트남이 우리나라가 겪었던 것 보다 더욱 압축된 경제성장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터. 벤탄시장에서 이 생각은 거의 확신에 가까워졌다. 그다지 경제력이 좋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도 하나같이 최신형 휴대폰을 갖고 있었다. 전혀 일이 없어 보이는 행색 초라한 짐꾼마저 아이패드를 펼쳐들고 다른 짐꾼과 한가로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여기에 첫 번째 날에 방문한 호치민의 고급 빌라까지 고려하면 과격할 정도로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엄청난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승리의 역사와 현재의 성장

 발전에 자신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사회에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 국영통신사나 배한타임스, 한국 영사관, 증적박물관, 구찌땅굴 등에서 들은 이런저런 설명에는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이 과거 승리의 역사와 현재의 성장과 발전에 자신감을 갖고 만사를 대한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뉴스로 이어질

탐방 목적

 

금번 베트남 탐방은 학생들에게 이런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의 분위기를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옛날 우체국 앞에서 안병찬 선생님이 보이신 눈물을 학생들이 베트남의 현재와 과연 연결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탐방 일정은 호치민이라는 지리적 공간의 과거와 현재를 보도, 뉴스로 이어보자는 본래의 목적에 충분히 부응했다고 생각한다.

 

최순욱 조교 

 

정보기술 전문 기자 거쳐

 

최순욱 조교는 그 듬직한 체구달리 매우 부드러운 사람이다. 처음에는 여자처럼 낯을 가렸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지자 매우 상냥한 성품을 들어냈다. 말소리도 부드럽다.

윤석민 언로정보연구소장은 "최 조교는 겉보기와 달리 아주 상냥하고 착한 성품을 타고 났다" 말한적이 있다.

 

최순욱 조교는 언론정보연구소 공식 조교(서울대 직원 신분)로 언론정보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여,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정보기술(IT) 전문 신문사인 <전자신문> 기자, <매일경제(MBN)> 기자 생활을 한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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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가 '짜노' 권현우 

 

 

국어와 베트남어

 

 

유창한 능변  

 

 

[결혼사진=호찌민 사진관에서]

 

해설가 권현우. '짜노'는 차를 권하는 베트남 다도.3일 내내 취재학습단을 안내하며 유창한 해설을 도맡아준 권형우 베트남어문학 석사.

그는 정확한 한국어 실력과 능변의 베트남어를 구사하며 해설 실력을 발휘했다. 나는 그에게 해설의 길이를 30% 줄이면 더 좋질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귀국한 그날 그가 먼저 카톡 문자를 보내왔다.

 

짜노의 문자 : 201748일 새벽 이시 22

안병찬 선생님. 청년 안병찬 특파원의 마지막 탈출로를 따라 걸으, 만약 나라면 과연 마지막 기사 송고를 할 수 있었을까, 탈출을 위해 한 시라도 빨리 미대사관으로 달려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을 하면 선생님의 뒤를 따라 걸었습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 건강하시구요, 또 뵙겠습니다.

권현우 드림

나의 답신 : 48일 오후 420

권현우 석사의 국어 표현과 구연 서술의 능력이 뛰어났어요. 귀하가 한국군의 원죄를 참회하는 구수정 학파의 제자라는 것도 확인했소. 구수정 특강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어요. 음식도 잘고르고.

또 봅시다.^^

 

짜노의 문자 : 48일 오후 757

에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보다 더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그때 말씀하신 30%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겠습니다.평안한 주말 되십시오.^^ (음식도 구수정 샘의 리스트를 제가 활용한 것이랍니다. ㅎㅎ)

제가 베트남에 올 때 두 가지 목표가 있었는데 하나는 베트남 관련 평화 활동을 이어가는 것, 또 하나는 베트남 문학 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맙에서 일을 한 지 3년차 정도 되었을 때 베트남 문학 석사 진학을 추진하기로 마음먹었고 자문을 구할 수 있는 한국인을 알아보던 중 호찌민시에서 번역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김주영 씨, 제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많이 쫓아다녔지요.^^

 

 

베트남에 온 계기

 

인권 활동-김주영 발견-

 

베트남어문 유학-구수정 만남  

 

 

권현우 팀장은 맥놀이라는 청년 인권 모임에서 활동을 하다가 시민단체 나와우리에서 주최한 한베평화캠프에 참가하여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와 깊게 만나게 되었고 나와우리에서 1년간 반 상근으로 일했다.

갈수록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베트남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져 2010년부터는 호찌민시에 살게 되었다. 그는 나와우리 한베평화캠프 참가로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구수정 박사가를 만나 전쟁증적박물관에서 설명을 들었다.

그는 "20108월 어느 날, 구수정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서 사회적기업의 틀로 한베평화 운동을 이어가고 싶다며 동참을 권유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하게 되어 지금까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설명했다. 

 

구찌 땅굴을 해설하는 권현우(사진=언론정보학과)

 

짜노는 베트남어 문학석사과정

권현우는 금년 34살로 베트남 생활 7년차.그는 베트남 문학 석사 진학을 추진하기로 마음먹었고 자문을 구할 수 있는 한국인을 알아보던 중 호찌민시에서 번역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김주영 씨,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저회는 성격이나 관심사 등 여러모로 통하는 점이 많았고 금새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많이 쫓아다녔지요.^^"

권현우 씨가 호찌민 국가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베트남어문학과에서 쓰고 있는 석사 논문 주제는 베트남과 한국의 리얼리즘 소설에 나타난 인간 문제 : 또호아이의 소설 세 남자과 황순원의 소설 카인의 후예를 중심으로이다

 

아내는 베트남어 문학박사과정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졸업생인 아내 김주영 씨는 호찌민 국가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베트남어문학과에서 박사 논문 주제 문화 교류와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본 문학 번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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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을 평한다

 

 

최신청년들아

 

 

총영사관 회의실에서 (사진=언론정보학과) 

 

 

지향과 총결 

 

 

이번 현장 취재학습('미래실습 1' 과목 현장지도)이 지향(志向)한 바는,

베트남과 대한민국의 역사적 경험을 비교하고, 베트남의 자주 정신을 탐구하며, 취재 경험을 습득하는 것이었다.  

 

취재학습의 총결방법은,

 ① 수강생 20명이 학습하며 취재한 내용을 기록문학(記錄文 學)적으로 집대성(集大成)하여 발간한다.

 ② 수강생 20명이 포착한 비디오 및 카메라의 영상들로 르포르타주(reportage)적 작품을 제작하여 발표한다.

이 두 가지였다.

 

 

거침없는 동선

 

 

러나 몇 가지 조건의 제한으로 이 강도 높은 현장 취재학습단에 참가하는 최신세대 청년들과 소통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숨 쉴 사이 없이 이동하는 가운데 틈틈이 질문을 던져 알아보니  동유럽 루마니아까지 건너 가서 수학한 학생도 있고, 서남아시 아 방글라데시까지 나가서 반 년 간 봉사활동을 한 학생도 있어, 최신 세대 청년들의 동선이 매우 활발한 것을 알았다.

 

호찌민의 거리거리는 질주하는 오토바이의 물결로 초행은 길을 건너기 두려워한다. 그런데 우리 언론정보학과 청년들은 남녀 구분 없이 벤탄 중앙시장을 둘러싼 6중 교차로의 혼돈과 소용돌이를 뚫고 제길 드나들 듯 한다.

 

외국인 배낭여행자 거리도 삼삼오오 조를 짜서 찾아가 밤늦도록 젊음을 구가한다. 그들이 길을 잃을까, 사고를 입지 않을 까, 하는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자유자재였다.

  

 

기록문학’을 심는다면

 

 

이런 거침없는 활동성에 '기록문학'적인 사고를 심는다면 그들은 사고하고 인문하고 철학하는 큰길을 열 것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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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안병찬 특강 목표

 

베트남 자주정신 그리고

 

기록문학(記錄文學)

 

 

베트남 자주정신을 보자.(사진=언론정보학과)

 

 

 

베트남 자주정신과

 

기록문학(記錄文學)에 관한

 

학습 재 10건

 

 

이번 취재학습단의 젊은 수강생들에게 내가 보여주고 가르치고자

한 바는 두가지 였다. 그하나는 베트남의 빛나는 자주정신이다. 또 하나는 기록문학을 쓰고 기록문학 처럼 사고하는 것이다. 그 전범이 되는 첫번째 책으로 나는 이태의 기록문학서 <남부군>을 강조했다.

 

통일 베트남에서 배운다

 

베트남은 4·30 항미전승과 5·7 항불전승의 정신을 근간으로 삼아 정경분리의 이름 아래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배울 점은 불퇴전의 자주정신이다.

특히 우리는 베트남의 통일운동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한국과 베트남의 분단과 통일의 조건은 다른 점도 있고 동일한 점도 있다. 베트남은 대륙 중국에 1000년 간 맞서며 독립을 지켜냈고 유럽 강대국 프랑스에는 100년을 저항한 끝에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더구나 세계 최강국가인 미국을 상대해서는 20년 전쟁을 벌여서 끝내 패퇴시켰다.

그 강인한 저력으로 베트남은 스스로 통일을 왕성했다. 특히 베트남은 미국과는 종속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눈높이로 현실적인 전략을 구사한다.

많은 한국인들은 베트남의 자존을 보지 못하고 오직 경제적인 잣대 하나로 베트남을 평가하려든다. 최근 베트남 달랏대학에서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유태현 전 베트남 대사는 내가 관여하는 주간 베트남 교민신문(베한타임스)에 이런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우리가 베트남에 우월감을 가질 근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베트남 국민은 물질적인 풍요보다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여 국가와 개인의 최고 가치인 독립과 자유를 국가 이념으로 설정한 품위 있는 국민입니다." 바로 내가 하고 싶던 말이다.

 

 

[수강생에게 제공한 학습 자료 10건 ]

 

1. 편성표(編成表)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특설(特設)

사이공 최후의 새벽 안병찬 특파원과 동행하는

호찌민 통일현장 취재학습단>

 

2. 기록문학과 르포르타주에 관하여

<기록문학記錄文學과 르포르타주(프랑스어: reportage)>의 행동주의 휴머니즘 서술 방법-안병찬 르포르타주 <사이공 최후 표정 컬러로 찍어라>(<사이공 최후의 새벽> 개작) 소개

 

3.구수정 한겨레 전문위원의

<베트남전 종전 30돌 대형특집-보응웬잡 장군 인터뷰>

200553일 한겨레21

 

. [나의 사망기사]

→ □ 표제 : 눈사람(雪人) 되다

커뮤니케이션북스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의 탐험-안병찬(2008)의 머리말

 

5.안병찬 칼럼 [아시아의 안광(眼光)]

<탈오리엔탈리즘이 필요한 이유-

아시아적 가치, 통일 베트남에서 배운다>

 

6.[미제국을 보는 관점]

<미국 '제로섬(Zero Sum)' 시대 갔다,

이제는 중국 '윈윈' 시대>(내일신문 2017-02-13 11:08:21 게재)

 

7.언론 명문 열전 안병찬<현장에 산다베트남 패망의 기록, ‘뇌우 속의 포화)

중앙일보 J플러스-시사(입력 2016.06.08 08:24) 담당 홍병기 에디터

 

8.안병찬의 [호찌민 통신]

<이순흥 회장의 노마(老馬) 메르세데스-벤츠차

빵꾸 수난기와 환골탈퇴 대수리 과정

 

9.신간 <딸깍' 열어주다-멋진 스승들>

성우제 지음 (도서출판 강, 2016817일 출간)

[안병찬 선생님 편

 

 

10.안병찬의 <우리는 왜 통일열차를 탔는가>

2010-35년 시공 넘어 동반 취재 12

20124-베트남 통일 37주년에

시사IN커버스토리

 

호찌민 전쟁증적박물관-한 장의 사진 <사이공의 즉결처형>의 게이트키핑 연구 논문 설명(사진=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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