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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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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04건

  1. 2017.04.15
    (11) (사진 소묘) [호찌민 통신-태양의 도시 수놓은 푸른세대]
  2. 2017.04.15
    (14) [호찌민 통신- "베트남 진출 고려할만 " 김종각 대표]
  3. 2017.04.15
    (17) [호찌민 통신-'끝없는 질문과 필기'- 김영희 교수]
  4. 2017.04.15
    (5) [호찌민 통신-'최신세대의 큰오빠' 홍종윤 교수]
  5. 2017.04.14
    (3)[호찌민 통신-결단성 일벌레 윤석민 교수]
  6. 2017.04.12
    (4) [호찌민 통신-최신청년 오효정과 인증 한 방]
  7. 2017.04.12
    (1) [호찌민 통신-'출발' 우리는 왜 호찌민에 가는가] (1)
  8. 2017.03.09
    45년 전 마르코 방장이 보낸 육필 제1신
  9. 2016.10.15
    가을 창 (1)
  10. 2016.10.15
    메아리 30년-농부와 형사와 나 (2)

 

[호찌민 통신]

 

 

태양의 도시 호찌민 수놓다

 

 

언론정보학과 푸른세대

 

 

 

 

사진 소묘=서울대 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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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속의 강론

 

 

베트남 진출 문제 

 

 

 잘 생각해 봐 달라 

 

 

 

 

김종각 베한타임스 대표에게 문의했다.

 

"몇 살에 고시 합격하셨소?"

"한국나이 35살요."

그는 만학의 노력파이다.

 

 

호찌민 일정 마지막 날인 4월 7일 오후, 김종각 대표는 학습단의 버스 안에서 수강생들에게 마음에 두었던 말을 전했다.

 

 

똑똑한 현장 지원자 

 

발행인 김종각의 제안 

 

 

베트남 신문사들은 온라인 미디어로 변신을 하고 싶지만 컨텐츠 부족으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 언론사의 고민도 마찬가지라 본다이렇게 변화로 인해 어수선한 때 새로운 기회의 공간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창조적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이해와 융합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도전에 필수

 

복수전공

 

 

요즘 복수전공이 거의 필수라고 들었는데 이러한 도전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라 이해한다.

특히 베트남의 잠재력에는 미디어 분야도 포함되어 있으니 이 기회를 잘 생각해 봐 달라

 

그는 수강생들에게 베트남 진출도 검토해 볼만하다는 뜻을 담았다. 그는 강인한 사람,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의 경력이 말해준다.

 

 

복잡한 그 경력

 

 

삼육대학 신학 학사, 삼육신학대학원 신학석사,한양대학교 법학대학 법학학사,사법연수원 32기 수료,연세대학 건축공학대학원 건축공학 박사과정 이수,건설클레임 전문 변호사.

베한타임즈 대표, 법무법인 집현 대표변호사(서울).

애드윈파트너스 컨설팅 펌 대표(베트남).

 

 

김종각과의 통신

 

 

귀국한 날 김종각 대표의 노고를 치하했다.

"김종각 대표의 역할이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최신세대 앞에서 어느때 보다 빛났어요. 수고 많았소. "

언론인 안병찬

 

 

 

"서울 잘 도착하셨습니까. 이번 일정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 박사님의 열정에 항상 경의를 표합니다."

김종각 배

 

  

 

내가 교민신문을

 

지원한 사연

 

 

'베한타임스'의 전신은 '베트남 교민신문사'인데, 나는 김종각 대표의 간절한 청을 받아들여 2011818 일 동지 상임고문역을 맡았다.

 

나는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아내 이정자 대표와 함께 호찌민에 출장하여 신문사 앞 호텔에 숙박하면서 신문의 편집과 지면설계(레이아웃, 교열과 교정에 이르기까지 제작과정 전반을 두고 열심히 경험지원을 했다. 그렇게 3년간 출장하면서 드는 여행비도 후배에게 광고를 수주하여 충당한바 있다.

  언론인 안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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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역사학자의 내습

 

'끝없는 질문과 필기'

 

조곤 조곤 탈탈 김영희 교수

 

 

비좁은 객석, 인터뷰 서막

기나긴 인터뷰는 호찌민 행 아시아나항공(OZ 732)의 비좁은 일반석에서 서막이 올랐다. 우리는 나란히 객석을 배정받았다. 인터뷰 담당자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영희 교수(언론정보연구소 책임연구원)로 전공이 미디어역사 연구이다.

심층 인터뷰 대상자인 나는 김 교수의 끊임없는 질문에 일일이 상세히 응답해 나갔다. 그이 질문은 끝이 없었다.
5시간 비행 중 4시간이 걸린 면담, 마침내 옆 자리에 앉은 손님이 골을 내고서야 잠정 중단했다.

 

거꾸로 매달아, 조곤 조곤 터는 기법

인터뷰 기술은 전형적인 공식이 없지만, 본질을 입체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공간이 가장 중요하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의 통일취재실습학습단을 이끌고 호찌민으로 가는 길이므로 최상의 공간이다.  

내게 인터뷰 진행은 익숙한 분야이다. 즐겨 사용하는 것은 공격적 방법, 탈탈 먼지털이 하는 방법이다. 김영희 교수는 언론역사학자이므로 조곤 조곤 부드럽게, 내 두 다리를 잡고 거꾸로 매달아 주머니 재산을 차근 차근 털어낼 태세이다.   

 

시도 때도 없는 3박 4일

김 교수는 호찌민에서도 인터뷰를 시도 때도 없이 진행 했다.

아시안 호텔 로비에서, 전쟁증적 박물관과 구찌딸굴 가는 버스안에서, 안병찬 특파원 탈출 경로를 걷는 노상에서, 사람들이 북적대는 벤탄시장 찻집에서.

김 교수는 인터뷰를 3박 4일 동안(항공기 내 포함) 계속했다.

 

[김 교수와 나눈 문자] 

안병찬 : 

나와 작업할 일은 주제가 무어지요? 알려주시면 고맙겠어요.

김 교수 :

아직 본격 착수하지 못했는데 현재 생각으로는 <현장주의 언론인 안병찬>() 이런 제목을 붙였어요.

내용은 여행 중 간단히 말씀드린 것처럼 선생님의 언론활동에서 특히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들을 중심으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가능한 대로 선생님의 활동을 보여주는 기사, 칼럼, 사진 등의 자료를 많이 활용해 그 자체로 사료적 가치가 있으면서 흥미 있게 읽힐 수 있도록 구성하려고 합니다.

준비하면서 선생님께 많이 묻고 자료도 구하고 싶습니다!

 

안병찬 :

하나 걱정은 대화가 자화자찬이 될 때가 없어야 한다는 문제. 더 진지하고 꾸밈없는 설명을 드려야  텐데 참. 이 작업은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어떤 사업에 속하나요?

 

김 교수 :

이 저술 작업은 베트남 방문과 마찬가지로 네이버가 지원하'미래뉴스센터' 사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윤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현장주의 언론인의 한 모델로 선생님을 보여주는 것이 의미 있겠다고 판단하시고, 마침 미디어 역사연구자인 제가 있으니 그 작업이 어떻겠는지 문의하시면서 구체화되었어요.

7월이후 본격 시작할 예정입니다.

선생님 말씀해주신 내용에 당시 상황과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하겠습니다. 상찬으로만 흐르지 않도록 저도 경계하겠습니다.

 

안병찬 : 잘 알겠소이다.

 

[귀국 당일 카톡 교환]

안병찬 : 2017년 4월 8일 토요일 오후 6시 47분

김영희 박사 교수와 동행하여 피로를 몰랐어요. 김영희 역사

학자의 외유내강한 열정때문이오. 앞으로 전개할 동행작업을

기대합니다.                                      언론인 안병찬

 

 김영희 교수 : 오후 9시 12분

선생님! 저도 열정적인 참 언론인 모습을 보여주시는 선생님

을 가까이서 뵙고, 말씀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선생

님을 주제로 책을 쓰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부족하지

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김영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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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세대의 큰오빠'

 

1인3역 돈주머니

 

홍종윤 교

 

 

 

 

수줍음 타는 샌님 교수 

 

2월 7일에 호찌민 현장학습단 운영을 결정하자, 나는 틈틈이 편성표를  구성해나갔다. 모든 작업은 주로 국제전화를 연결하여 진행했다. 현장감이 나고 다채롭고 흥미 끄는 교육과정을 짜는 것은 잔손이 수없이 많이 드는 일이다.

 

나는 편성작업을 하면서 언론정보학과 총책인 홍종윤 교수와 수시로 통화하면서 목소리로 친해졌다. 편성표를 완성한 것은  3월 17일.  

홍종윤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3월 21일 오전 출발준비 특강을 하러 언론정보학과를 찾아갔을 때이다. 홍 교수는 첫 인상이 샌님형으로 다소 수줍음을 탄다고 여겼다. 이번 학습단은 그가 맡고 있는  강의 '미래뉴스실습 1'과 직결되어있어 그는 담당 교수,  여행 총무, 자금책, 강의진행의 1인4역을 맡아 다소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반전

 

 

2박 3일의 통일현장 취재학습단이 호찌민으로 향하면서 그의 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홍 교수는 같은 학과(언론정보학과) 출신이고 본교 학위를 취득한 담당 교수이므로 수강생들을 통솔하는데 최적의 인물이다.

 

그는 배낭을 메고 앞 허리춤에 현금 전대를 찬 완전무장 차 림으로 1인 다역을 계속 수행하니 영락없는 최신세대 수강생들의 큰오빠 받형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운동(사회인 야구팀 감독)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였다. 딱 버러진 가슴에 똑바른 자세로 모든 학생과 모든 과정을 이끌었다. 가장 일찍 일어나고 맨 나중에 취침하면서. 

 

 

홍종윤 교수 뒤태(사진=언론정보학과)

 

 

 

[귀국한 날 나눈 문자]

 

발신 : 2017년 4월 8일 토요일, 오후 5시 44분

 

 친애하는 최신세대의 큰오빠(빅브라더)홍종윤

 교수.

 홍 교수의 일인삼역이 뛰어났어요. 보기와 달리 단단한 체력도 볼만했어요. 이번 학습단의 지도교수 다웠음을 확인 합니다.

언론인 안병찬

 

 

홍 교수 회신 : 오후 6시 44분

 

 안병찬 선생님.

 잘 들어가셨는지요.

 정말 이번 취재학습단 행사의 기획부터 꼼꼼한 세부 진행까지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차적으로 학생들을 위한 행사였지만, 선생님의 20대 청 년 못 지않은 열정에 저 또한 많은 것을 느낀 여정이었습니다.

 글로만 읽고 짐작했던 선생님의 역사적 경험을 호치민의 거리 곳곳을 걸으면서 새롭게 되새겨 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도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조만간 발표행사 자리를 마련하셔 선생님을 다시 한 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홍종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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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뿔도 단김에 뺀"

 

명민한 일벌레

 

윤석민 언론정보연구소장

 

가 젊은 윤석민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원 시사저널의 제

작을 총괄하고 있던  25년 전이다. 어느 대학교의 교수 선발

정에 면접관으로 참석하여 윤 교수를 낙점하는데 동의했고,

때 이래 우리는 동학의 오랜 인연을 맺어왔.

 

2017년 2월 어느 날 , 지금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장으로 언론정보학과 주력인 윤석민 교수가 연세대학교 김희진 교수와 함께 인사동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 오래간만에 돌연히 방문했다.

윤 교수는 언론정보학과 수강생 20명이 현장 취재학습을 호찌민에서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줄 수 있겠느냐, 하고 의사를 물어왔다. 나는 언제든지 연락만하라고 긍정하는 답변을 주었다.

그러자, 윤 교수는 즉시 행동성을 발휘했다. 이튼 날, 우리 속담 대로 쇠(소)뿔은 단숨에 빼겠다는 기세로 김영희 교수(책임연구원) 및 홍종윤 교수(선임연구원)를 동반하여 우리 사무실로 진격해 왔다. 그의 특청에 나는 언론정보학과 수강생들 최신세대를 위해서 '경험 지원'을 하겠다고 흔쾌히 결정했다.

 

 호찌민에서 꽉 채운 3일간의 강행군을 끝내고 귀국한 4월 8일 토요일, 오후 4시 51분에 나는 윤석민 교수에게 일정을 마무리하는 문자를 보냈다.

『친밀한 윤석민 연구소장 교수.

그대의 명민함과 실행력이 이번 학습여행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오. 현장 지휘능력도 뛰어났어요. 그대가 내게 감사하듯이 나도 그대에게 감사하오.

동학 언론인 안병찬

 

5시 2분에 답장이 왔다.

『선생님 무슨요.

금번 탐사 학습 여행은 90퍼센트가 선생님의 기획 연출이자 성과물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 가지로 고단하셨을 텐테 혹시 몸살 등 후유증이 없으실지 염려스럽습니다.

아무쪼록 편안한 주말 보내시기 바라며 일간 학생 발표 행사가 구체화 되는대로 다시 연락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석민 배』

 

윤석민 연구소장은 결단성을 발휘하는 명민한 일벌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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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30일 통일베트남 42주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특설

‘사이공 최후의 새벽’ 안병찬 특파원과

동행하는

호찌민 통일현장 취재학습단

 

 

 

인증 한 방

 

 

최신청년 오효정과

 

 

사진=언론정보학과 이창곤

 

사진=언론정보학과 이창곤

 

 

그리고 오효정 인증 한 장

 

 

 

증 사진 한장이 카톡으로 들어왔다. 4월 10일 월요일 오후 6

 

시 5분. 발신자는 언론정보학과 오효정 양이다.

 

지난 4월 6일 밤 호찌민 중앙우체국 앞에서 오효정 양이 인증

 

한 장을 제안하여 함께 찍은 사진을 붙여왔다.

 

이순간 옛날 세대와 최신청년 푸른 세대가 한 줄기 강물로 이

 

진다.

 

그와 교환한 카톡 대화. 

 

 

 

 

최신청년 오효정 양 :

 

기자님 안녕하세요 ^^ 서울대 언론정보 오효정입니다!

 

기자님과 찍은 사진 보내드려요! 한국와서 정리해볼수록 기자님

 

과 함께 한 베트남 여행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습니다!

 

감사드립니다^_^ 좋은 저녁시간 보내셔요!

 

 

안병찬 기자 :

 

최신세대 오효정 양은 이번 동행 가운데,

 

The most unforgettable character I've ever met! 

 

<기자로 산다는 것>의 서문도 읽었다니 시야의 지평이 넓은 청

 

라고 짐작하오. 4월 중 시간 만들어서 친구 몇 명과 인사동 우

 

사무실로 나오세요. 맛있는 인사동 밥 살테니.

 

내 티스토리 블로그에 간단한 학습단 여행기를 올릴 예정인데 이

 

사진을 써도 될지? 내 블로그는 내글의 저장고로서 파급하지 않

 

아요.^^

 

 

 

 

최신청년 오효정 양 :

 

넵 물론 쓰셔도 좋습니다! 영광입니다^^

 

인사동 찾아뵐 때 미리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

 

루 보내셔요, 기자님 😄😄😄

 

 

 

안병찬 기자 :

 

즉각 답신. 행동력도 있어보임.

 

 

 

최신청년 오효정 양 :

 

(하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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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찌민 통신-'출발']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출발'

 

[우리는 왜 호찌민에 가는가]

 

 

 

 

 

 

 

 

윤석민 교수의 기습방문과

 

'호찌민 통일현장 취재학습단'

 

편성

 

 

2017년 2월 어느날 돌연히,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장으로 언론정보학과

 

주력윤석민 교수가

 

영희 책임연구원 및  홍종윤 선임연구원을

 

인사동 우리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의 특청에 나는 언론정보학과 최신세대를

 

위해서 '경험 지원'을 하겠다고 흔쾌히 승락했다.

 

'경험 지원'은 내가 만든 용어로서 후학을 위해

 

나의 견문과 자료 등 모든 것을 기꺼이

 

후원한다는 뜻을 담았다.

 

나는 베트남 호찌민 시(사이공)의  적관계망을

 

가동하여 정성을 들여서 다음과 같은 일정을

 

성했다. 2개월 동안 틈틈히 작업을 진행한 결

 

과물이었다.

 

 

 

 

[편성표]

 

 

    [2017년 4월 30일 통일베트남 42주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특설(特設)

 

‘사이공 최후의 새벽’ 안병찬 특파원

 

과 동행하는

 

호찌민 통일현장

 

취재학습단

 

 

 

[취재학습단 구성] 총원 26명

 

 

1. 총괄 기획 및 주관 :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장 윤석민 교수(언론정보

 

학과)

 

◇ 자료수집-책임연구원 김영희 박사

 

◇ 총무-선임연구원 홍종윤 박사 

 

◇ 미래뉴스실습I 현장 지도-홍종윤 박사

 

 

2. 참가학생 :

 

언론정보학과 3, 4학년 20명 (미래뉴스실습I 수강생)

 

학생인솔-언론정보연구소 최순욱 조교

 

 

3. 본 현장 교육의 지향(志向) :

 

베트남과 대한민국의 역사적 경험을 비교하고, 베트

 

남의 자주 정신을 탐구하며, 취재 경험을 습득함

 

 

4. 본 현장 교육의 총결 :

 

① 수강생 20명이 학습하며 취재한 내용을 기록문학

 

(記錄文 學)적으로 집대성(集大成)하여 발간함

 

② 수강생 20명이 포착한 비디오 및 카메라의 영상

 

들로 르포 르타주(reportage)적 작품을 제작하여 발

 

표함

 

 

[호찌민 현지 후원]

 

◇ 베한타임스 : 김종각 발행인(현지 법률법인 대표

 

호사)

 

(베한타임스의 전신은 베트남 교민신문사로 언론인

 

안병찬(Ph.D.)은 2011년 8월 18 일 동지 상임고문역

 

을 위촉받아 3년간 경험지원을 한 바 있음)

 

△ 교민 제1세대 동반 : 이순흥 전 한인원로회장(사

 

이공 최후의 교민)

 

△ 취재 : 한국일보 정민승 특파원(한국 언론 첫 호

 

찌민주재특파원 ․ 2월1일 부임)

 

 

[준비 특강] 장소 : 서울대학교 IBK커뮤니케이션

 

(64동)  303호

 

 

(1강) 2017년 3월 21일 오전 9시

 

□ 베트남 취재 44년 언론인 안병찬 특강(전 한국일

 

보 '사이공의 최후' 특파원) :

 

내가 경험한 베트남 통일결전과 통합과정-한

 

반도 통일문제 의 성찰과 새로운 도전에 비추어』

 

(Great Spring 1975 Victory at the Scene and

 

Vietnam’s Integration Process)』

 

 

기록문학 및 르포르타주(reportage) 작성론

 

파워포인트-기록사진 180장의 편년사(編年史) 90

 

                 

 

 

(2강) 2017년 4월 4일 오전 11시

 

□ 구수정 베트남 박사 특강 :

 

(제목) 『3,578km 추모와 기념 사이-베트남의 전쟁

 

기억과 한국

 

 

의 전쟁 기념』

 

파워포인트 90분, 질문응답 30분 

 

(구수정 : 베트남 호찌민국가대학 석사 및 박사, 한

 

겨레신문 전문위원 및 베트남 사회적기업 ‘아맙’ 운

 

영자 역임, 현 한베평화재단 상무이사)

 

 

□ 출발과 도착

 

서울인천국제공항 집합

 

2017년 4월 5일 오전 5시 30분(변경) 아시아나항공

 

L 카운터 앞 오전 7시 20분 아시아나 베트남 호찌민

 

행(OZ 731 편) 이륙-오전 11시 05분 호찌민 떤선녓

 

국제공항 도착(시차 2시간)

 

 

□ 호찌민 숙박

 

아시안호텔 호찌민(HCM)

 

148-150 Dong Khoi St., District 1, HCM

   

 

    

     [호찌민 일정(2박 3일)]

 

         (해설 및 안내 : 한베평화재단 베트남지사

    

                               권현우 아카이브팀장  :  

         

         호찌민 국가대학 인문사회과학대학 베트남문학 석사)

 

 

[제1일 4월 5일]

 

1. 떤선녓 국제공항-아시안호텔 도착

 

2. 주호찌민 대한민국 총영사관 부속 호찌민시한국

 

국제학교 방문(김원균 교장선생님 인사)

 

3. 베한타임스(전 한국교민신문) 김종각 발행인 면담

 

및 견학

 

4. 주은영 교수(호찌민 음악대학원 교수·비엔나 음악원

 

석사, 모스크바 그네신아카데미 박사)의 ‘피아노 연주를

 

통한 인문학 강좌’      

 

  5. 한국인의 도시 부미흥의 베트남 식당 저녁회식

   

  베트남 후식 쩨(che) 시식      

 

 

[제2일 4월 6일 흥브엉 공휴일]

 

1. 오전 8시 ‘전쟁증적(證跡)박물관(WAR REMNANTS

 

MUSIUM)’ 관람

 

2. 오전-오후 ‘구찌(Cu Thi)땅굴’ 참관(호찌민 북

 

쪽 70km)

 

3. 저녁 관광 

 

‘안병찬 특파원의 탈출 동선’을 따라서,

 

 사이공 중심부 안 특파원의 최후 사무실이 있던

 

 응웬웨빌딩-인민위원회-오페라극장-노틀담성당-중

 

 앙우체국 -통일궁(전독립궁)-타머린드 상록큰키나

 

 무공원-전한국 대사관-이민국-다이아몬드프라자

 

  (한국 포스코 건축)-전미국 대사관 등

 

 

[제3일 4월 7일]

 

1. 베트남국영통신(VNA=TTXVN) 호찌민지사 및 인

 

쇄소 탐방

 

2. 총영사관(전 한국대사관) 박노완 총영사 면담

 

국기게양대 답사(사이공 마지막 태극기 하강식 취재현장)  

 

 (인솔 : 한베타임스 김종각 발행인)

 

3. 통일궁(사이공 시절 대통령궁) 관람

  

 벤탄 중앙시장 선물보기 및 데탐 여행자거리 관광

 

 (인솔 : 이순흥 회장)

 

4. 자유시간-열대과인 망고 및 야자(코코넛 열매) 새참

 

5. 떤썬녓 국제공항 이동

 

 

□ 귀국

 

8일 오전 00시 10분(변경) 아시아나항공 편(OZ

 

736) 떤선 녓 국제공항 이륙-4월 8일 오전 6시 45

 

분 서울인천국제공 항 도착

 

 

[첨부] 시사IN 표완수 발행인이 기자 취재 수첩 전달  

 

[비고] 일정은 사정에 따라 조정할 수 있음

 

 

 

편성(編成)

 

언론인 안병찬

 

2017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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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12 11:37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중계]

 

45년 전 마르코 방장이 보낸  

 

肉筆편지 세통  

 

안병찬

 

2017년 3월 8일 안깡 안병찬이

마크코 방장(타이거 김, 김승웅=swkim4311@naver.com )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친애하는 mon camarade Tigre Kim,

 

피차 나이 들어 추억을 논함은 불필요한 일이겠으나,

45년 전 귀공이 내게 써 보낸 육필 서신 3신을 타자해 나가니

우리들의 청춘이 주마등(走馬燈)이라.

서신과 똑같이, 글자 들이기, 줄갈기, 한자, 외국어까지

모두 원문 그대로 타자했으니 그리 아시오.

 

카톡으로 서신 사진 3장을 발송하겠소.

편지는 복사하여 따로 전달하리다.

 

謝謝. 안병찬"

 

​       

 

1975년 4월 29일 '사이공 최후'를 목격, 탈출직전(左)과 탈출 후 

괌行 미군수송선에 올라  뭔가를 못마땅히 꼬나 보는 '안깡' - 사진:구글轉 

載/캡션:방장

안병찬​ 소개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언론학 박사/경원대 행정대학원장, '시사저널' 발행·편집인, 한국일보 논설위원,

  파리특파원, 駐越특파원 역임(견습13기)/저서: "사이공 최후의 새벽" 등 10여권>

      .........................      .

 

 

[제1신]

 

1972년 4월 6일

한국일보 외신부 김승웅 기자가

사이공의 안병찬 특파원에게 쓴 육필 편지.

(텔렉스용 두루마리 용지에 씀. 주월한국군사령부 파우치 편에 전달함)

          ​

 

 

"자욱한 煙속에서 신음하는 勇士들의 

 

애절한 사연들을 엮고 싶지 않

 

습니까?"

 

 

김승웅​

     - 외신부 시절

 

 

편지 본문

 

의 그 wire室에 앉아 다시 글월 드립니다.

밤새껏 越南戰 戰況 파악에 곤욕을 치뤘습니다.

Moscow측 입김이 점차 뚜렷해 질 꺼 라는 確證을 얻기 위해

그리고 이런 確證을 뒷받침할 근거를 wire에서 찾아내기 위해 평소보다 2·3培 나 힘든 夜勤을 치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Labor for nothing으로 끝났다는 사실도 알려 드립니다.

DMZ 以南에 越盟軍 Mig機가 출현했다는 越南軍 여단장의 발언,

쾅트리省의 孤立을 「모처럼」 알리는 TASS 통신 보도,

DMZ 以南 지역에 5일 밤을 기해 급격히 중단된 越盟軍 포격…등은

제 나름의 Viewpoint를 Back up 해 주긴 했습니다만

결코 編輯陣에 반영되진 못했습니다.

불타는 越南,

광분하는 「챠리」 , 越盟軍.

초조한 G.I.

××털이 타는 「꽁·까이」

열을 짓는 6萬餘의 難民.

安定감이라고는 어느 것 하나에도 찾아 볼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wire를 통해서도 그쪽의 자욱한 초연을 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랄병 난 半島입니다. 저주 받는 나랍니다.

電送사진이나 外誌를 통해 나타나는 怯에 질린 視線을 sexy한 것으로 느꼈다는,

그리고 越南特派員 시절의 유일한 산 경험(전쟁에 대한)으로 체득했다는

曺澤東 부장의 「곡조 슬픈」 얘기는 좀 「나이브」 한데가 있습니다.

安兄!

戰塵 속을 달리고 싶은 충동을 안 느끼십니까!

자욱한 砲煙속에서 신음하는 勇士들의 애절한 사연들을 엮고 싶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리고 누굴 위해 죽어가고 있느냐고 自問하는 戰士들의 이마를 짚어주며,

폐허화된 省都 한 구석에 웅크린 負傷兵을 부축해 주며,

저들의 마지만 Message를 전하는 porter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

戰爭美學! 바로 그겁니다.

따분하고 나사바퀴 노릇 밖에 못되는 日常에 왈칵 짜증을 느낄 때

순간적으로 傭兵이라도 지원하고 싶은 강력한 욕구를 맛봅니다.

담뱃불을 紙幣로 부치는 傭兵들의 脫拜金理論이 부럽습니다.

          ×                ×

 

제가 흥분했나 봅니다.

잠이 모자란 탓인 듯합니다.

아예, 위험한 곳을 自請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海賊처럼 용감한 安兄이, 그렇잖아도 불쑥불쑥 치미는 戰場에의 유혹을 이기느라 곤욕을 치루지나 않을지 염려 됩니다.

크린트 이스트우드 스타일로, 屍體室을 누비던 왕년의 血氣로, 戰地를 설치지나 않을지 두렵습니다.

누굴 위해서,

뭣 땜에 위험한 곳을 갑니까?

新聞을 위해서? 大한국일보의 記者像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記者에게 熱誠이나 사명감을 강조하는 「노털들」의 얘기나 주장은

밀려나는 퇴물들의 단말마입니다. 단말마 치고도 저속한 級에 속합니다.

科學化, 組織化, 劃一化에 대한 열등의식의 발롭니다.

「직업인으로서의 言論人」, 「技術人으로서의 言論人」像울 수립하기 위해서도,

自財를 헐어가며 志士風의 묘미에 젖었던 그리고 그결과 「가난한 言論人」의 「이미지」를 이땅에 부식시킨

無責任했던 노털선배들을 타도하기 위해서도,

이를 이용해서 抵賃金 大量고용에 의해 企業의 利를 노리는

惡德社主 겸 사이비 언론인들을 지탄하기 위해서도 「영리한 動物」로 바뀌셔야 합니다.

生活人으로서 대우 받고

職業人으로서 장래를 보장받는 Homo economicus를 지행해야 합니다.

社主는 날 고용하려고, 나는 보수와 내 나름의 利用(Make use of HANKOOK ILBO)을 위해서,

그리고 兩者간의 妥協(契約)에 의해 나는 근무해 줄 뿐입니다.

F. Bacon의 「洞窟의 偶像」이 생각납니다.

우린 너무 어리석었고 순진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노털」들의 단말마에 귀 젖게 돼버렸고

무의식 속에 그래야 한다」式의 同化를 맛보게 된 것입니다.

          ×                ×

 

지난번에 부쳐주신 글월과 애기 선물, 정말 고마웠습니다.

아내의 기꺼움은 무엇보다 저를 행복에 젖게 했습니다.

제가 게으른 소치로 제 때 제 때 답장 못 드리는 한이 있더라도

安兄의 편지를 받고 싶어 죽겠습니다.

安兄의 答信 중에 제게 보내는 편지가 빠져있을 때

흡사 저는 배반당한 듯한 서글픔을 맛 본 답니다.

표현이 지나쳤나요? 용서 바랍니다.

72. 4. 6

 

외신부 구석 Wire Delta에서

Tiger 拜  

 

사진=타이거 김의 제1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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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소묘]

 

가을 창

 

사진 촬영=yee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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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02 06:07 address edit/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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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40+사진들

 

메아리 30

 

농부와 형사와 나

 

 

 

간에 전직 수사 형사인 이노성 씨(현 한국일반행정사협회 연수원 강사)가 오래간 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상안미리에 사는 농부 심순수 씨 네가 손수 재배한 블루베리 한 상자를 나에게 보내드리려 하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전갈이다. 이틀 후 블루베리 한 상자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상표는 무농약 친환경 과일 평창불루베리’, 주소는 대화면 금당계곡로 1191-1, 대표 이름은 심상익이다.

형사 이노성 씨와 대화고추 농부 심순수 씨, 그리고 언론인인 필자가 삼각의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데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사진=블루베리 과수원에서 찍은 농부 심순수 씨(78) 일가. 앞줄 왼쪽부터 손자 문섭과 손녀 유진. 뒷줄 왼쪽부터 심순수 씨부인 홍천란 씨, 심순수 씨, 며느리 및 아들 심상익 씨.

 

 

 

논설위원, 차령산맥 눈 속을 가다

 

내 눈에는 30년 전인 1987년의 정월 초이튿날 설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날 오대산 일대에는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이던 나는 강원도의 그 깊은 눈길을 헤치며 평창군 대화면 상안미리3구 두메산골에 사는 대화고추 농부 심순수 씨를 찾아가고 있었다. 마침 새해 연휴여서 아내를 동반했다. 정강이까지 빠지는 눈길이었으나, 쏟아져 내리는 눈이 멀리 차령산맥 일대를 뽀얗게 가려 아늑하고 포근한 눈세계를 만들었다.

30년 전 내가 눈 속을 뚫고 찾아 갔을 때 심신수 씨 아들 상익은 13살이었다. 블루벨리는 북미 토착 열매로 진달래 목에 속하는데, 이제는 대화 산골 농가에서도 재배하게 되었다. 지금 40대 중반이 된 심상익 씨는 5년 전부터 불루베리를 직접 재배하고 있다. 본래 이 고장 대화는 고추의 산지로 대화 고추는 지금도 알아주는 특산품이다.

당초에 내가 대화농부 심순수 씨를 손수 취재하게 된 동기는 작은 사회면 기사에 있었다.

 

발단이 된 표주박기사

 

19861225일 크리스마스 날 한국일보 사회면 표주박란에 짤막한 사건기사가 한 토막 실렸다. ‘4백만 원어치 사기당하고 밭 천 평 팔아 빚 청산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표주박

서울 서초경찰서는 24일 가난한 농부를 속여 고추 2,047근을 가로챈 김 모 씨(42, , 사기 등 전과 3, 서울 마포구 동교동 113)를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의하면 김 씨는 지난 929일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시장에 고추를 팔러 나온 이 동네 심순수 씨(46, 농업)에 접근, “고추 값을 후하게 줄 테니 이 동네 고추를 모아 서울에 내다 팔자고 제의, 조 모씨 명의로 5백만 원이 입금된 가짜 예금통장을 건네준 뒤, 심 씨와 함께 고추를 싣고 서울로 올라 왔다는 것. 김 씨는 심 씨를 농협영등포지점으로 데리고 가 예금청구서를 써 놓았으니 방송이 나오면 통장을 갖고 창구로 가서 돈을 찾으라고 말한 뒤 사라진 후 고추를 모래내시장에 대다 팔아 450만원을 가로챈 혐의다.”

 

논설위원으로 고정칼럼 메아리를 집필하던 필자는 이 표주박 기사를 읽고 현장취재를 하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곧장 서초경찰서를 찾아가 담당자인 수사과 이노성 형사를 만나면서 현장 취재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필자는 메아리 3연작으로 대화고추와 첫눈’(198716일자)-‘대화고추와 형사’(18일자)-‘메밀꽃 통곡하다’(124일자)를 집필하게 된다.

다음은 본고 초두에 언급한 것처럼 1987년 정초에 눈길을 뚫고 강원도 산간으로 심순수 씨를 찾아 가 만나는 내용을 담은 첫 번째 메아리이다.

 

대화고추와 첫눈’-첫 번째 메아리

 

1987년 초하룻날 자정께부터 서울에 내린 눈은 초이튿날 아침부터 비로 바뀌고 비에 녹은 눈이 빙판을 만들었다. 필자는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서 정초 연휴를 틈타 아내를 동반하고 소형 엑셀 승용차를 운전하여 대화농부 심순수 씨 네를 찾아 나섰다. 서울은 눈비가 내렸지만 강원도 태백산맥에는 소담한 눈송이가 펑펑 쏟아졌다.

해발 1,563 미터의 오대산에서 분기한 차령산맥 옷자락에 들어 있는 산간 부락들에는 한 자를 넘는 눈이 폭신하게 쌓이고, 그 위에 다시 눈이 내려덮였다. 높고 험한 산이 연봉을 이루었으나 소리 없이 펑펑 쏟아지는 눈발이 보얗게 가리어 그 설경이 그지없이 아늑하다.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상안미리3구는 갈미봉 밑에 있는 해발 600미터의 산간 부락이다. 그런데 내가 몰던 엑셀 승용차는 대화 면소재지에 이르러 빙판에 미끄러지면서 한 바퀴 회전하더니 돌 축대를 정면으로 하고 들이받았다. 나는 아내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오른 손으로 제어하다가 승용차가 충돌하는 순간 운전석에서 몸이 튀어 올라 두피가 벗겨지는 상처를 입었다.

하는 수 없이 전면이 망가진 승용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당시 대화면에는 택시가 12대 있었는데 그 중 한 대를 잡고 운전사에게 부탁하여 상안미리 농부 심순수 씨 집을 찾아 나섰다. 강원도 택시는 바퀴에 체인을 칭칭 감고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평창강 상류의 안미천에 걸린 콘크리트 다리를 건넜다. 그곳에서 반 마장쯤 더 나가면 심순수 씨 농가가 있다지만 강원도 택시는 더 이상 산간 눈길을 전진하지 못한다.

우리 부부는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서 언덕을 넘었다. 산허리를 돌아 동구에 이르자 개울가에서 눈발 속에 빨래하는 아낙네를 만났다. 그에게 물어서 마침내 심순수 씨 네가 두 번째 농가라는 것을 알았다.

가난한 농부 심순수 씨는 산비탈에서 1년 내내 땀 흘리며 지은 대화고추를 서울사기에 걸려 몽땅 잃은 사람이어서 대화면 일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심순수 씨의 농가는 옥수수 대로 담을 쳐 놓았는데 헛간은 텅 비어있었다. 그는 어두운 방바닥에 13살의 아들과 16살의 딸과 함께 쭈구려 앉아서 늦은 점심으로 꽁보리밥을 들고 있었다. 반찬은 무청시래기 한 가지였다. 부인은 답답한 마음을 달래러 아랫마을 조카 집에 가고 없었다.

심순수 씨는 정초에 내리는 이 함박눈이 상서롭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었다. 84일 만에 범인이 잡혀 경찰이 2047근 중 1200근을 장물로 압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그는 서초동에 사는 정찬오 교감선생님 사모님인 조명운을 사칭한 40대 서울여자의 말에 걸려들어 대화고추 한 트럭분을 사기 당한 처지였다. 자기가 수확한 것 뿐 아니라 처분을 위임받은 이웃들의 몫까지 합쳐 모두 2047근을 몽땅 잃어버렸다. 그 것은 100근 짜리 부대 20여개로 4톤 복서 트럭 한 차분량이다. 그리하여 심순수 씨는 남의 집 고추 값 397만원을 변상하느라고 전 재산인 조상답 1000평을 농협에 저당 잡힌 후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었다.” (한국일보 메아리, 198716일자)

 

대화고추와 형사’-두 번째 메아리

 

순박한 농부를 개미에 비유한다면 닳아빠진 서울사람은 베짱이가 될 것이다. 대화농부 심순수 씨의 처지는 눈 속에 버려진 한 마리 개미의 신세와 같았다. 개미가 1년 내내 경작한 대화고추를 서울 베짱이가 교활한 속임수로 몽땅 훔쳐간 것이었다.

그런데 심순수 씨는 정초에 내리는 함박눈이 상서롭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었다.

심순수 씨가 서초동 삼익아파트에 사는 정찬오 교감님 사모님 조명운을 자칭한 40대 서울여자에게 홀려 이웃 농가들의 고추를 모 2047근을 모은 것은 추석이 지나고 두 번째로 대화장이 선 날이었다.

그리하여 그가 교감 사모님을 쫓아 4톤짜리 고추 트럭을 타고 생전 처음 서울에 도착한 것이 이튿날(929). 교감 사모님은 심순수 씨 손에 조명운이름의 농협온라인통장(예금액은 전무했다)을 쥐어주고 길성여관에서 하룻밤을 재웠다. 여자가 농협영등포지점에 심순수 씨를 버리고 대화고추 한 트럭분과 함께 자취를 감춘 것은 그 다음날 낮.

서울 서초경찰서 이노성 형사는 그날 당직 근무 중이었다. 이노성 형사가 교활한 서울 베짱이를 기어이 잡아보리라고 결심한 것은 단순히 형사 근성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초동 밤길을 정신없이 헤매다 서초경찰서에 이끌려온 강원도 산골농부를 보자 농촌출신인 그는 가슴이 저렸다. 그는 평창군 하면 한국 제일의 오지이며, 벽지라고 생각했다. 농부 심순수 씨 부부가 다 같이 마흔 여섯 해를 살면서 서울구경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 그곳은 벽촌이었다.

어떻게 가슴이 아팠던지 관할서로 이첩하지 못했습니다. 내 손으로 기어코 잡아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산골농부 모습이 매일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노성 형사의 수시동기에 과장이 없다는 점은 관할책임이 없는 사건을 그가 스스로 떠맡은 것만 봐도 납득이 간다.

이노성 형사는 서울의 경동시장, 모래내시장, 서부역 일대의 고추판매상을 돌며 묻고 또 물었다. 마침내 이 형사는 경동시장의 어느 고추도매상에게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흡사한 여자가 북가좌동에 산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러나 북가좌동의 고추아줌마 김 여사는 동교동으로 이사하고 없었다.

동교동 동사무소로 가서 세대별로 주민등록카드를 확인해 나가던 이 형사는 마침내 용의자인 김 여사의 얼굴을 찾아냈다. 이노성 형사의 연락을 받고 서울에 온 심순수 씨는 김 여사’(46)의 사진을 확인하자 아이구하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노성 형사가 주소지를 여덟 번 지킨 끝에 김 여사를 잡은 것은 1223일 밤, 사건이 난지 84일 만이었다. 3남매의 학비와 1000만 원의 빚에 쪼들린 김 여사는 대화고추 장날을 노려 베짱이의 속임수를 부렸다고 한다. 범인을 잡고 장물로 압류한 분량은 2047근 중 1200근이었다.

 

서초서에 빗발친 전화세례

 

서초경찰서와 담당 이노성 형사는 한국일보의 메아리 대화고추와 형사를 읽은 독자들과 시민들에게서 빗발치는 전화의 세례를 받았다.

광화문에 산다는 신사는 오늘 아침 한국일보를 보니 통쾌한 마음을 금할 길 없더라고 했다. 서초동에 산다는 주부는 이노성 형사의 목소리를 한 번 들어봤으면 좋겠다. 3시간에 걸쳐 다이얼을 돌렸는데 계속 통화중이지만 하나도 짜증이 안 났다고 했다.

서초경찰서 관내 디스코 클럽 경영자는 이노성 형사가 그동안 고생을 하셨으니 실컷 드실 만큼 고기를 준비하겠다. 꼭 나와 달라고 청했다. 동대문구 상봉동에 산다는 학생은 세상에 그런 형사가 있었나. 한국일보에서 조작한 것이 아닌가,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 전화가 100통이 넘었다.” (한국일보 메아리, 198718일자)

 

책상을 치니 하며 죽더라

 

그러나, 서초경찰서 이노성 형사의 인간적인 봉사가 빛을 발할 때, 공안 정국의 일대 시국사건이 발생한다.

114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과대표 박종철 군(1964년 생)이 고문사를 당한 것이다. 박종철 군은 113일 자정께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로 불법 연행되어 혹독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으로 목숨을 잃었다.

116, 당시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기자회견을 통해 저 악명 높은 궤변으로 책상을치니 갑자기하며 죽더라하고 공식 발표했다. 쇼크사가 고문사로 확인된 것은 사망 검진의사인 중앙대병원 내과 오연상 전문의 덕이었다. 그는 청년은 이미 숨져 있었는데 복부 팽만이 심했고, 폐에서는 수포 음이 들렸다고 언론에 밝혔다. 그 해 6월 항쟁이 일어났고 대통령 직선제가 성취되었다.

 

메밀꽃 통곡한다’-세 번째 메아리

 

극도로 대조되는 두 가지 경찰상이다. 젊은 대학생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고두 벌 주검’(부검)이 되어 한 줌의 재로 변해 임진강에 뿌려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허무를 느낄 뿐이다. 가혹행위를 일삼는 경찰 탓으로 사람들은 공분(公憤)을 넘어 허무를 느낄 따름이다.

그 젊은 대학생이 대공분실 취조실에서 변사한 사실을 치안본부가 처음 발표한 것은 115일이다. 수사관이 주먹으로 책상을하고 치자 대학생은소리와 함께 쓰러졌다는 것이 그때 치안본부가 밝힌 거짓진상이었다.

같은 날 강원도 평창군 대화농협 사무실은 온기가 감돌았다. 농부 심순수 씨는 마을 유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농협 강원도 지회장이 춘천에서 먼 길을 찾아와 윤근환 농협 회장의 이름으로 심순수 씨에게 불우농민 돕기 성금 1백만 원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그 현장에 나가 지켜본 작가 최기인 씨(새농민 잡지 기획역) 인정의 메밀꽃이라는 표현을 썼다. 강원도 평창군은 작가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이다. 바로 대화면 북쪽에 메밀꽃 필 무렵의 현장인 봉편면이 있다. 장돌림인 허생원 일행이 봉편장을 거치고 한 여름 달밤에 나귀를 몰고 하얗게 메밀꽃이 핀 산길을 따라 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 여름 밤의 메밀꽃 대신 한 자가 넘게 눈이 쌓인 한겨울에 대화 산간마을에서 절망에 빠져 있던 농부를 구출한 것은 형사 한 사람의 인간적 봉사, 그리고 젊은 형사반장의 이해심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치안본부 취조실에서 고문으로 죽은 젊은 대학생의 입관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아버지는 몇 십번이나 땅을 치며 통곡하고 어머니는 까무러쳤다. 대학생의 주검이 장의차에 실려 백제화장장으로 옮겨져 한줌의 재가 되고 강물에 뿌려진 날은 116일이다.

그날 서울지검 동부지청 231호 김병환 검사는 농부 심순수 씨가 변제받는 방법을 찾기 위해 대화 고추사건 관련자를 한자리에 불렀다. 참석자는 사기피의 자인 김 여사, 장물취득자인 고추 판매상 김 씨, 피해자인 농부 심순수 씨 내외, 담당형사 이노성 순경이었다. 이 자리에서 장물취득자인 김 씨는 남은 고추 1200 근과 현금 100만 원을 농부 심순수 씨에게 변제하고, 피의자 김 여사는 외상 미수금 300만 원을 받아 고추상 김 씨에게 주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젊은 검사도 체류비와 차비를 농부 심순수 씨에게 내주며 위로했고, 고추를 일부분 되찾은 심순수 씨는 근당 1600 원 씩에 팔아 190만 원을 건졌다.

우리는 할 바를 다하는 형사의 봉사에서 하얗게 만개하는 메밀꽃 같은 인정의 꽃을 본다. 반대로 고문을 일삼는 대공수사단 남영분실 형사의 몸에서 사신(死神)의 냄새를 맡는다.

당신들은 서초경찰서와 이노성 형사에게 빗발치듯 전화의 세례를 보낸 시민에게 무엇이라고 말 할 텐가. '인정의 메밀꽃'을 꽃피운 형사가 부끄러워 통곡하지 않겠는가.

하얗게 핀 메밀꽃이 온통 통곡을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한국일보 메아리, 1987120일자)

 

사진=평찬블루베리를 상자에 담는 부인 홍천란 씨

 

이듬해 198811일과 설날에 필자는 이노성 형사와 농부 심순수 씨 부인 홍천란 여사의 안부전화를 받았다. 1989년 정초에도 두 사람은 새해 인사 전화를 걸어왔다. 정초마다 필자가 생각난다고 말하니 언제고 또 안부 전화가 올 것이다. 이노성 형사는 19991월에 경사로 승진했고, 퇴임한 후 행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심순수 씨 아들 심상익 씨는 2010년에 블루베리 800그루를 심고 시설재배(비닐하우스)를 하여 1년에 1톤을 생산한다. 짧은 기간 작업하여 얻는 소득이 2000만원 정도이니 사간 농가로는 괜찮은 사업이라고 말한다.

심순수 씨의 주소인 대화면 상안미리3구는 새도로명 대화면 미달길 153으로 바뀌었다.

  

언론인 안병찬(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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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하 2016.10.31 14:15 address edit/delete reply

    강민창 차 를 96년 내 동생이 교통사고 냈지요 동생차가 강민창 차를 박았죠
    강민창이 추석때 고향 안동 올때 문경에서 ㅠㅠ
    ᆢ 작년 내동생은 사는게 힘들어 목을메고 저하늘 로 떠났습니다 ᆢ
    강민창 치안본부장 이름 들으니 내동생의 슬픈 일이 생각납니다ㅠ

  2. 오늘도 누군가를 위하여 2017.03.29 07:43 address edit/delete reply

    멋진 메아리 감동입니다
    행정사로서도 낮은곳에 많은 희망을 나눠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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