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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 ③ 김좌진 국민의례와 중화 쇼비니즘 병찬 답사기] ③ 김좌진 국민의례와 중화 쇼비니즘 □ 김좌진장군 옛 거주지 분향소-태극기와 오성홍기가 걸려있다. 애국가 봉창과 국기맹세 백야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가 근래에 복원한 장군의 옛 거주지는 중국 무단장(牧丹江)시에서 머지않은 곳 하이린(海林) 시 산자진의 농촌에 있다. 관훈클럽 문화탐사 일행이 도착하자 기념사업회의 담당이사는 설치한 마이크로 추모의례를 진행한다. 김좌진 장군의 흉상 앞에 분향소를 만들고 태극기와 오성홍기를 높이 게양했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하는 구령에 따라 “우리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나온다. 이어 애국가 봉창, 묵념, 남녀 대표 분향, 전원 분향의 순서로 이어간다. 나는 이 절차가 너무 ‘국가주의적’이라는 생.. 더보기
[답사기] ② 조선옷과 고무신의 두 여전사 [안병찬 답사기] ② 조선옷과 고무신의 두 여전사 중국 애국주의 선양의 ‘팔녀군상’ □ 치마저고리, 고무신 차림을 한 안복순 무단장 시의 명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동남부 무단장(牧丹江) 시. 동북항일연군 5군 1사 부녀단 소속 여성전사 여덟 명을 새긴 전신조각상 ‘팔녀군조(八女群雕)’가 강변의 장빈(江濱)공원에 우뚝 서있다. 높이 13m, 길이 8.8m.의 화강암 조각작품은 육중하고 장엄하다. 여덟 명 전사 가운데 치마저고리를 입고 고무신을 신은 조선족 안순복(安順福)과 이봉선(李鳳善)이 있다. 안순복은 부녀단 피복창 창장이고 이봉선은 부녀단 전사로 기록되어있다. 앞서 뤼순(여순)과 하얼빈에서 안중근에 감동한 관훈클럽 문화답사 일행 가운데 여럿이 안순복의 이름을 보자 “야, 여기 또 순흥 안씨가 있.. 더보기
[답사기] ① ‘중국인이 보는 안중근 의거’ ‘중국인이 보는 안중근 의거’ 거사 100주년, 현장을 가다 □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 응징하는 순간(하얼빈 안중근기념관 소형조각) 서명훈 선생의 집대성 올해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안중근 의거의 행적을 찾아가는 관훈클럽 해외 문화유적 답사여행에 합류해 안 의사의 모습을 새롭게 보았다. ‘대한국인 안중근’이 하얼빈 역두에서 조선침략의 원흉이며 동양 평화를 파괴한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후 러시아어로 “코리아 우라!(대한국 만세!)”를 삼창하고 러시아 헌병에 체포된 날은 1909년 10월 26일. 우리일행은 하필 ‘경술국치일’을 사흘 앞둔 8월 26일에 중국의 여순감옥과 여순법원을 찾았다. 일행이 하얼빈으로 옳긴 것은 8월 27일 저녁. 소피텔 호텔에서 열린 세미나는 열기로 달아올랐다.. 더보기
DJ의 '언론' 휘필_ “언로의 열림과 막힘에 흥망이 걸려 있노라” DJ의 '언론' 휘필 “언로의 열림과 막힘에 흥망이 걸려 있노라” (言路開塞 興亡所係)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야시절에 특별하게 ‘언로(言路)’를 강조했다. 1994년 여름 어느 날 DJ는 서울 힐튼호텔 중식당에서 나에게 점심을 사면서 붓으로 휘날려 쓴 휘필(揮筆) 한 폭을 주었다. 김대중 휘필 한 폭 “언로의 열림과 막힘에 흥망이 걸려 있노라”라는 뜻을 담은 ‘言路開塞 興亡所係’의 여덟 자. ‘위 안병찬 주간 동령부인 혜존’에 이어서 쓴 달필이었다. (규격=45㎝×60㎝)DJ는 영국에서 ‘정치적 유배생활’ 1년을 보낸 후 귀국하여 그해 1월에 아시아·태평양문화재단의 조직을 완료하고 있었다. 시사저널 편집책임자로 있던 나는 그보다 1년 전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DJ에게 정치부장을 특파.. 더보기
공적서 알립니다 내용에서 보듯이 ‘공적서’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자료는 제3자가 어떤 계기에 안병찬 본인을 추천하는 글로서 작성 한 것입니다. 사실의 근거인 각주 및 증빙서류는 안 병찬 본인이 제공한 것임을 알립니다. 공 적 서 ‘르포르타주’ 저널리즘의 역할 모델 언론인 안병찬은 두 줄기 저널리즘을 일관하여 실천해왔으며, 현재도 언론의 자유와 책임의 균형을 위해 일로 매진하고 있는 최고(最古)의 현역 기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추구한 저널리즘의 한 줄기는 현장에 바탕을 둔 저널리즘의 전문적인 실천이며, 또 한 줄기는 정치언론학 박사로서 언론현장을 이론에 묶는 경험주의적 저널리즘 이론의 추구입니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만나는 모순과 통합의 길이라고 말하는 보도 리얼리즘의 길에서 언론인 안병찬의 활동력이 이룩한.. 더보기
이력서 안 병 찬 (충북 진천생, 1937)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 ‘언론인권’(격월간) 발행인 정치언론학 박사,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 방송위원회 보도교양심의위원장 뉴시스 · 내일신문 칼럼니스트 YTN시청자심의위원장 사단법인 한국비디오저널리스트협회 회장 서울대학교 총동창회보 논설위원 한국언론학회 회원 △ 학력 1999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정치언론학 전공(정치언론학 박사) 1975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 신문학 전공(문학 석사) 1960 한국해양대학 항해학과 졸업(이학사) 1976.9-1977.9 홍콩대학교 어언연습소 중문고급과정(2년) 수료 1977.10-12 홍콩 중문대학교 신아중국어문연습소 이수 △ 논문 1999 ‘신문 발행인의 게이트키핑 특성에 관한 연구-한국일보 창간인 장기영의 .. 더보기
독설닷컴 고재열 기자가 올린 글 어느 70대 노 기자의 자기 부고기사 글쓴이: 독설닷컴 고재열 기자 08.09.06 21:45 여기 어느 노 기자가 쓴 자기 부고 기사를 한 편 올립니다. 물론 이 기사는 가상 기사입니다. 그는 살아있는 기자입니다. 이 부고 기사를 읽으며 자신의 죽음마저 기록해 보겠다는 그 불굴의 ‘기록 정신’을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부고 기사를 쓰신 분은 안병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입니다. 그 전에는 경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셨고 그 전에는 주간과 고문으로 일하셨고 (이때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안주간님’으로 부릅니다) 그 전에는 한국일보 기자로 일하셨습니다. 우리 업계에서는 ‘베트남전 최후 종군기자’로 유명합니다. 학교에서 은퇴하신 뒤에서 스스로를 ‘르포르타주 저널리스.. 더보기
노무현의 진운, 그리고 '최후 일격' 사진=뉴시스노무현의 진운(進運), 그리고 ‘최후 일격’  누벨바그의 총결로노무현 전대통령은 진운(進運)을 타고 홀연히 등장한 인물이었다.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되어 최고 권력을 장악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8개월이었다. 주류가 깨어나 보매 비주류 노무현에게 한판으로 보기 좋게 전복당한 꼴이었다. 그의 저돌적 승리는 머리에 쥐가 나서 두뇌회전이 안 되는 완매한 한국 주류에 가해진 최후의 일격같이 보였다. 그렇게 출현한 노무현은 별종이 아니었다. 한국 토양을 관통하는 수맥을 타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사이에 돌연히 출현한 ‘신종’이었다. 비주류 노무현의 승리와 성취는 한국 사회가 생성한 역동적인 ‘누벨바그(새 물결)’의 총결(總結)이었다... 더보기
남부해방일 '바므이땅트' 남부해방일 ‘바므이땅트’ ▲ 통일의 햇살 나는 해마다 4월 말일이 다가오면 열병을 앓는다. 1975년 바므이탕뜨(4월 30일), 북 베트남 해방군이 남부 베트남(베트남공화국)을 전복시키고 베트남의 통일을 달성하던 그날까지 38일 동안, 사이공 현장에서 보고 겪은 수많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4월 말이 되면 어김없이 호찌민 시로 이름이 바뀐 사이공을 찾아간다. 그곳에 가서 중천을 향해 떠올라 통일의 대지에 내리 꽂히는 강렬한 햇살을 다시 본다. 언제 봐도 사이공의 눈부신 태양은 베트남 통일의 유장(悠長)한 역사를 느끼게 만든다. 나는 1975년에 남베트남의 멸망과 베트남 통일의 현장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기록한 ‘사이공 최후의 새벽’(1975년 판)을 낸바있다. 베트.. 더보기
'3.1혁명' 일으킨 어느 386 세대 ‘3·1 혁명’일으킨 어느 386 세대봄샘 추위 속에 서울의 도화동 언덕길을 지나다보니 도로수 목련화들이 꽃망울을 환하게 열었다. 남가일몽처럼, 꽃잎은 때 되면 덧없이 지겠지.3월 신춘의 달은 3·1 운동 기념일로 시작하여 독립만세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울려오는 애국의 달이다.▽ 북아일랜드 전사의 3·1 저항북아일랜드 공화군(IRA)의 전사인 보비샌즈가 거사한 날도 하필 3월 1일이다. 그는 1981년 그날, 벨파스트의 메이즈 교도소에서 ‘북아일랜드 독립’의 이름으로 저 유명한 세계 최장의 66일 단식투쟁을 개시했다.신문사 편집국 외신부에서 보비샌즈가 66일간 단 한 모금의 물조차 거부하며 ‘기나 긴 자살’의 저항을 계속하는 것을 하루하루 속보로 알리면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