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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장 떼고 '블로거와의 대화'에 참가했건만


 




독설닷컴이 주최한 
'블로거와의 대화' 프로젝트에
계급장을 떼고 참가했다.

그 소회를 적어본다.


 

산들바람이 산들 불어왔다


대화가 끝난 이튿날 인사동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여성 목소리인데 허스키여서 아줌마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젊은 블로거 한유나(Aquarius 물병자리)이다. 대학생인 그녀가 나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구나, 생각했다. 젊은이가 기자 46년차의 나를 만나고 싶어 하니 반가운 일이다. 산들바람이 산들 불어온 느낌.
우리는 10월이 가기 전에 인사동에서 점심을 하며 대화를 갖자고 했다.


한유나가 블로그에 올린 글은 내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내 경험에 관심을 표하고 있다. “기자생활 46년으로 정말 엄청난 내공을 소유했다” 쓴 대목만으로도 그렇게 짐작한다.


이번 모임의 준비가 미흡했던 점이 아쉬웠다고 한 블로거 한유나의 지적은 맞다. 그녀가 “그래도 안병찬 블로거님이 독설님 대신 독설을 마구 날려주셔서 재미있었다”고 한 줄 언급한 것이 고맙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다들 남자였다.
최문순 아저씨와도 살짝 얘기를 했었는데, 남자와 여자의 인터넷사용 특성 때문인 것 같다.
남자는 목적지향적이고 여자는 관계지향적이라는 어떤 블로거의 말이 '블로거와의 대화 홍일점 사태'를 빚어냈다고 본다.


대부분 참가자들의 입장(?) 차이가 별로 없었다는 것도 문제다. 뭐 진보-보수 얘기 하기는 싫지만, 대부분 진보적인 입장이랄까. 그러다 보니 대화라기보다는 그냥 순순(?)한 질의응답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건 소통포럼에서도 느꼈던 거다.

우리 사회의 많은 세미나 및 포럼이 그렇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대화를 위한 것이 아닌, 그냥 자기 생각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행위일 뿐이다. 뭐 격하게 말하자면 끼리끼리 쉽게쉽게 이야기 한다고 그럴까. 요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참석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도 안병찬 블로거님이 독설님 대신 독설을 마구 날려주셔서 재미있었다. 후후. 나 완전 구경꾼. 꿀 먹은 벙어리 @.@”


진짜 산들바람은 남자였다


그런데 진짜 산들바람은 남자였다. 블로거 최희윤, 그는 나를 과찬했다.


“안병찬 이사장님은 정말 간담회 내내 돋보이셨다.
언론계에서 46년간 일하시면서 정말 이것저것 다 겪은 분이셨던 거 같은데
역시 후배에게 따끔한 지적들을 잊지 않아주셨다.
그리고 내가 새겨들어야할 부분도 많았고.
다만 내가 그때 몸이 조금 덜 고 되서 사고를 할 수 있었다면
언론계의 큰 어른과 나의 언론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는 것도 참으로 유익할 뻔 했는데,
(하나 같이 아쉬울 뿐이다 ㅋㅋ)
특히 마지막에 안병찬 이사장님이
'최 의원, 내내 질문한 것들, 나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야 허허'
이런 말을 들었을 땐 머리가 쭈뼛 서기도 했다.
언론계에서 46년 동안 일하시고도 아직까지 본질적인 문제에서 괴로워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참 많은 생각의 여지를 남기게 하는 부분이었다.
(소설가 김훈님이 ‘시사IN’ 기자들을 향해 날렸던 말도 생각난다.)”

 

부산에서 올라와 대화에 참가했던 거다란 님은 나와의 논쟁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정치인으로 있다가 언론인으로 가면 민주주의의 문제지만 언론인으로 살다가 정치권력으로 이동하면 민주주의의 문제는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 나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나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나 둘 다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본다. 내 눈에는 거다란 님이 문제의 한 끝에 시선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렇게 썼다.


“옆 자리에 앉았던 안 기자님과 재밌는 논쟁을 했습니다. 안 기자님이 최 의원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mbc에서 민주당으로 간 최 의원이 kbs나 ytn으로 간 관제사장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얘기였습니다. 질문이 돌아가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그 부분에 대해 블로거 간에도 반론이 오간다면서 제 의견을 말했습니다.

‘언론에서 정치로 간 건 소신의 문제이지만 정치에서 언론으로 간 건 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최 의원의 행동과 이명박 정권 하의 관제사장들의 행동을 동일선상에서 비판하면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행태의 위험성을 간과하게 됩니다.’

안 기자님도 지지 않았습니다. 신문사를 팔아먹고 정치권에 들어간 사람도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것도 생각해봐야할 문제였습니다. 만약 최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언론사를 장악하려는 정권을 위해 mbc의 인맥과 모든 정보를 제공하면 그것도 지나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현재의 관제사장들보단 덜하겠지만 비판받을 여지는 있는 행동입니다.” 


계급장 떼고 붙었으나


그날 나는 최문순 의원에게 여러 가지 공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자리를 주관한 독설닷컴 고재열 기자는 내가 젊은 블로거들과 어울려 “계급장을 떼고 붙는다”고 소개했다. 그의 예고에 충실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했다.

나는 최문순 의원이 mbc사장으로 있을 때 처했던 상황과 행적을 지적하면서, 역사가 대상을 인식하는 문제와 함께 ‘저널리즘’의 본질을 논했다. 역사 인식에서 '실증주의' 대 '현재주의'의 문제는 관조적인 사실기록자와 능동적인 역사현실 수용자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 논쟁은 ‘고담준론’으로 치부되어 중단해야했다.


대상을 인식하는 문제는 역사적이다


야구소년 박상익은 “최문순 의원, 현 정부 방송탄압은 미증유의 사태라고 소신을 밝혔다”고 최문순 의원의 주장만을 인용했다.

그는 ‘색달랐던 정치인과 블로거의 대화’라고 썼는데 그의 기사는 색다르다고 볼 수 없다. 색다르게 쓰려고 했다면 나와 최 의원의 ‘진지하면서도 우호적인 공방’을 언급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를 통해서 좀 더 예민하게 다루며 논쟁을 벌이고자 했는데 몇몇 블로거들이 이 부분을 ‘노친(비켜간)’ 점이 유감스럽다. 


이 모임은 ‘독설닷컴’이 기획한 것이다. 블로거 몽구(몽구넷)와 블로거 박형준(창천항로)을 합친 이른바 ‘몽박 브라더스’가 촬영과 사회를 맡았다. 촛불집회 이후에 ‘몽박 브라더스’는 정부의 언론장악 문제에 집중해 왔다.
애초에 독설닷컴은 나의 참가신청을 쌍수로 환영했다.
그래서 이렇게 선전했다.


“오늘 참가자 중에 가장 관심을 모으는 사람은 블로그 <안병찬의 기자질 46년>의 주인공 안병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입니다. 안 이사장님은 순수하게 블로거 자격으로 대화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요즘 블로그와 더불어 다시 현장 기자로 회춘하고 계시는 안 이사장님의 맹활약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안 이사장님이 기대를 모으는 것은 오늘 대화에서 ‘공격수’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보수적인 성향의 안 이사장님이 젊은 블로거들과 어떤 승부를 펼칠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독설닷컴을 향한 제언

여기서 독설닷컴은 나를 보수적인 성향이라고 단정했다. 이 부분은 맞지 않다. 나는 대미관이나 남북문제를 포함하여 어떤 분야는 매우 진보적으로 생각한다. 사람을 잡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인간적인 아주 인간적인 정치노선을 갈구한다. 그러니까 독설닷컴이 나를 향해 한마디로 보수적인 성향이라고 언급하니 다소 듣기에 거북하다. 물이 썩지 않으려면 중단 없이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다만 파당적으로 개혁하자고 부르짖는 것은 반대한다.

독설닷컴은 나에게 엄기영 mbc 사장과 관련한 질문을 던진 후 단편적으로 인용했다는 느낌도 준다.


독설닷컴은 ‘
유능제강, 엄기영의 부드러운 선전포고라는 제목을 달고 이렇게 썼다.


“최문순 의원과 두 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정부의 무도한 방송장악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YTN KBS MBC,
이 세 곳의 수장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최 의원은 MBC 엄기영 사장에 대해서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부담이 될 것 같아 일부러 연락을 안 하고 있다. 전해 듣기로, 무척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잘 해나갈 것으로 믿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엄 사장에 대해서는 패널로 참석했던 안병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이 말을 보탰습니다.
안 이사장은 엄 사장과 1980년대 초중반 파리 특파원을 함께 하면서 서로 알게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안 이사장은 “며칠 전 엄기영 사장을 만났다. 이번 사태에 임하는 의지에 대해 엄 사장은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했다. 부드러운 것이 오히려 굳센 것을 제압할 수 있다는 중국 병서 ‘삼략’(三略)의 한 구절인데, 그와 어울리는 방식인 것 같다. 정치권력은 언제나 언론을 장악하려고 한다. 이로부터 독립을 지키는 것은 힘들지만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능제강’...
엄기영 사장은 과연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길 수 있을까요?
끝없이 파고드는 정치권력의 간섭과
곧 밀려올 민영화의 쓰나미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나는 독설닷컴 고재열 기자를 만나면 내가 최문순 의원과 벌인 저널리즘의 문제와 역사인식의 문제를 당신이 논평해 주기 바랐다고 넌지시 말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