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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공감보수'란 이름의 달력

‘공감보수(共感保守)’란 이름의 달력

색다른 2009년 달력 하나가 철 빠르게 나왔다. 제작자들은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 언론인권센터의 후원의 밤에 협찬하려고 10월 9일 한글날에 맞추어 달력 발행을 서둘렀다.

‘공감보수(共感保守) 2009년’이라고 표제를 붙인 달력이다.

“보수(保守)는 죽었다. 보수 만세!”

국정감사장은 예상한 대로 여야와 좌우의 국회의원들이 일제히 악다구니쟁이가 되어 물고 뜯는 판이다. 진보를 자임하던 정권이 유권자의 통렬한 일격을 받아 몰락한지 10개월. 그 실패한 진보세력과 교체하여 등장한 보수 세력 너마저도 이미 싹수가 틀렸다고 많은 유권자가 한탄하고 또 분개하는 시점이다.

이럴 때 하필이면 ‘공감보수’라니, 격문처럼 보이기도 해서 제작의도가 궁금했다.

나는 문득 34년 전에 중국대륙을 뒤흔든 ‘이일철(李一哲) 대자보’의 마지막 한 구절을 생각했다. 그 대자보는 4인방이 주도하는 문혁파(文革派)가 오직‘좌(左)! 좌! 좌!’ ‘최(最)! 최! 최!’를 다투면서 마오쩌둥의 혁명 천재성을 하늘 높이 떠받들어 올리며 극좌노선을 선동하는 작태를 보인다고 맹공하는 2만자의 대자보였다. 그 대자보는 ‘진정한 혁명정신’을 상실한 봉건적 파시스트 전제정치를 조롱하고 사회주의 민주와 법제를 옹호하면서 다음 열 글자로 끝맺고 있다. “현명은 죽었다(革命死了! 革命萬歲!).”

‘공감보수’의 달력을 만든 것은 청장년 세대 사람들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신동진(언론인권센터 영상미디어위원장)과 그의 부인 채선미(1919디자인 대표), 그리고 신 감독의 후배로 자유직업인 최석규와 박장우 네 사람이다.

알고 보니 이들은 ‘진정한 보수(리얼 라이트)’의 부재에 경종을 울리고 참다운 보수의 전범을 제시하자는 데 착안했다. 이들은 현재 한국에서 보수를 자칭하는 세력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진정한 보수’가 어떤 것인지 돌아보고 배워야 하다는 정치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결국, 공감보수의 달력을 만든 이들의 심정을 ‘이일철 대자보’에 빗대보자면 다음 처럼 반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터이다.

“보수(保守)는 죽었다! ‘공감보수(共感保守)’ 만세!”

우리들의‘진정한 보수들’

‘공감보수’달력은 진정한 보수의 지도자 열두 명을 뽑아 일 년 열두 달에 나누어 싣고 있다. 열두 명은 모두 항일과 건국에 헌신한 애국지사들이다.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1월 : 가인 김병로‘법을 지키다.’

2월 : 단제 신채호 ‘역사를 지키다.’

3월 : 유일한‘자본주의 윤리를 지키다.’

4월 : 성제 이시영‘지도층의 본분을 지키다.’

5월 : 심산 김창숙‘선비정신을 지키다.’

6월 : 백범 김구‘민족을 지키다.’

7월 : 일성 이준‘한국 혼을 지키다.’

8월 : 윤희순‘부녀자의 도를 지키다.’

9월 : 문파 최준‘부자의 도리를 지키다.’

10월 : 안중근‘평화를 지키다.’

11월 : 채응언‘나라를 지키다.’

12월 : 매헌 윤봉길‘독립정신을 지키다.’

제작을 주도한 신동진 감독은 ‘참 보수’를 통해 밝고 희망찬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의 의중은 이렇다.

“지난 8월 ‘광복절’과 ‘건국절’ 논란이 일던 때였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정신은 이미 구한말에 잉태돼, 일제강점시대에 독립운동을 거치면서 숙성해왔고, 그 결과 1948년 정부수립으로 이어졌다는 입장에서 볼 때, ‘건국의 주역’을 1948년 8월15일 이후 정권주도세력에 한정지으며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려는 단절적 역사관은 위험해보였습니다. 참 보수(Real Right)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활 속에서 늘 마주치면서 단순히 숫자로만 읽혀지던 달력을 새로운 매체, 콘텐트로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감보수(共感保守) 2009’달력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공감보수 2009’달력이 우리사회 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불리주’ 기풍의 진작과 독립운동정신의 계승 그리고 참 보수 정신의 고양에 기여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저는‘보수’의 본질적 특성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보수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시장경제체제를 신봉하고 이를 사회운영의 골간정신으로 삼고 솔선수범 하는 사람들, 그리고 '개인보다는 국가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규정한다면, 저는 지금 우리사회에서 제기되는 대부분의 사회적 어젠더들은 모두 보수주의자들이 해결할 문제들의 영역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저는 그런 의미의 보수 즉 제가 얘기하는 참 보수주의자’라 해도 되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같은 경보는 진보 세력도 역시 새겨 들어야 마땅하다.
'공감보수의 달력'을 만든 네 사람, 한국 사회에서 간단없이 충돌하는 보수와 혁신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대안적인 메시지를 제시하려고 시도한 새로운 실험정신을 주시한다.

[뉴시스 안병찬 칼럼: 2008-10-20 13:19:41]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