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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송가

 

미인 송가



지난 여름의 일이다.
한국일보 대외협력실 담당 기자가 미스코리아 후보들의 베트남 일정을 들고 와서 자문을 구했을 때, 나는 사이공 패망 즉 통일 결전의 순간에 한국일보가 남긴 저널리즘의 역사 기록을 문화이벤트의 의미 있는 소재로 삼아보라고 권고했다.

이 의견을 받아드린 한국일보 대외협력실은 바로 후보들을 상대로 ‘베트남 특파원 특강’을 해달라고 청하면서, 급히 ‘문화교류’로 사업 방향을 수정했다고 알려왔다. 나는 33년 전의 기록을 개작 증보해서 통일 30주년을 기해 출판한 ‘사이공 최후의 표정 컬러로 찍어라’(2005년 판)에 일일이 서명을 한 후 후보 51명에게 돌렸다.

미스코리아 후보들을 위한 문화 인프라

 

평균 나이 20세를 막 지난 미스코리아 후보들은 발랄한 특질을 갖춘 신세대다. 나는 이 젊은이들에게 사이공의 패망-베트남의 통일-한국과 베트남의 수교-한국의 통일전망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현재진행을 알리려고 시도했다. 호찌민시 한국총영사관 마당 옛 자리에 그대로 세워진 태극기 게양대 앞에서 후보들에게 강조한 말은 역사 순환의 이치였다.


그들에게 나는 ‘미인’의 조건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을 말했다. 중국이 실용주의 개방정책을 전개하자 ‘중국식 미인송가’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중국인들은 4대 경국지색을 꼽아서 춘추전국시대의 서시는 침어(물고기가 창피해서 잠수한다), 삼국시대의 초선은 폐월(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에 숨는다), 당나라의 양귀비는 수화(꽃이 그 미모를 부러워한다), 한나라의 왕소군은 낙안(날아가던 기러기가 바라보다 떨어진다)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고전적 남성 중심적 미인관이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도 다르지 않다.
개방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1989년 3월. 통일 사회주의 베트남의 호찌민시 체육관에서 217명의 후보를 놓고 '미스 아오자이'를 뽑았다.  그 해에 호찌민시를 14년 만에 처음으로 방문한 나는 댄싱클럽에서 푸른색 아오자이를 입고 디스코를 추는 20세의 미용사 '미스 아오자이'를 우연히 만나 사진을 찍어 보도한 일이 있다.


패러다임의 대 전환   

  나는 젊은 미스코리아 후보들에게 외모와 몸매만을 중시하는 미모경쟁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대중문화를 판매하는 스타시스템의 폐해를 지적한 것이다.

한국일보 운영본부도 미스코리아 선발의 패러다임을 뒤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가슴-허리-엉덩이의 치수를 재고 몸매에 치중하는 종래의 방식은 낡은데다가 페미니즘의 역풍을 받는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운영본부는 베트남 나짱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2008’에서 주최 측인 미국 엔비시(NBC) 방송이 미국의 저녁 프라임타임에 맞추어 생방송을 하려고 아침 8시에 쇼를 시작한 것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부동산 회사와 텔레비전 제국을 소유하고 복싱이벤트의 흥행을 오래 맡아온 미국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는 대중문화 산업의 수익창출에 집착하는 스타시스템 수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한국일보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계속하겠다면 문화콘텐츠와 문화브랜드의 하부구조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최 측도 이점을 검토하고 환경친화적인 사업과 문화지향적인 사업을 창출하려고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인문적 소양을 강화하여
 

나는 후보들의 생각을 짚어보기 위해서 간단한 개방식 질문지를 만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새악하는 것, 자기가 속한 신세대의 장단점, 베트남 여행에서 발견한 두 가지를 묻는 것이었다.     

첫 질문에는 행복한 마음, 자유로운 삶, 미소, 생명, 사랑, 정, 부모, 모성 등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특히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이라고 이타적인 진술을 한 후보가 두 명 있었다.

  두 번째 물음에서는 신세대의 장점으로 도전, 분명한 맺고 끊음, 자신감, 자기주장, 톡톡 튀는 신선함, 적극적 표현, 당당 솔직 등을 열거했다. 단점으로 든 것은 배려의 마음 부족, 자기중심적, 신중하지 못한 성급함, 인내 부족, 예의 없음, 뉴스 문맹 등이다. 신세대는 나를 높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발전하기 때문에 내가 가진 젊음에는 단점이 없다고 단언한 후보도 3명이 나와 치솟는 신세대의 자만을 들어냈다. 
 
  끝으로 베트남에서의 신발견에 관한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대다수 후보들이 베트남 사람들의 친절과 미소, 베트남과 한국과의 유사성 정도를 언급하고 베트남을 경제적으로 낮추어 보는 시선을 들어냈다.  

  나는 후보들이 인문적 소양을 강화하여 지덕을 겸하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문화적인프라로 발돋음하여 대중문화시대의 소비가 아니라 대중 문화시대의 생산에 기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