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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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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안병찬'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8.11.18
    ‘시이오(CEO)’ 유아독존 시대
  2. 2008.10.28
    '버럭 유인촌 논쟁'의 뿌리를 뽑자면 (1)
  3. 2008.09.17
    37년 후배 기자와 영화관에 간 이유 (2)
  4. 2008.09.11
    '베트남 며느리'를 위한 하노이 대사의 편지 (37)
  5. 2008.09.08
    전설 속의 여인, '마담 빈'을 만나다 (6)

 

 


‘시이오(CEO)’ 유아독존 시대


시이오는 정글의 법칙을 다스리는 제왕으로 행세


미국 제도가 지구촌에 뿌린 씨앗 중에 이른바 '시이오(CEO)'라는 용어가 있다. 시이오(CEO)는 주술이 걸려있는 용어다. 어느 해인가, 영한사전 1989년 판을 보니 시이오를 경영최고책임자(Chief Executive Officer)로 등재해 놓았다. 이로 미루어 보아 시이오라는 말이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체제가 고개를 든 이후인 1980년대 중후반이라고 짐작한다. 현재 한컴사전은 그 뜻을 ‘최고경영자(最高經營者)’로 조금 바꾸어서 싣고 있다.


시이오 지상주의가 기승을 떠는 풍조다. 절대자의 권위를 확보한 시이오는 정글의 법칙을 다스리는 제왕으로 행세한다. 10년 전에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는 주간 경제동향지(‘시이오 인포메이션:CEO Information’)는 시이오의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위기 시에 더욱 빛나는 시이오의 역할’을 다음과 같은 단어로 풀었다.


“최고위(Chief)= 기업과 운명을 같이 하고 책임을 지는 마지막 보루.


경영진(Executive)=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

 

임원(Officer)= 개인이 아닌 사회적 기관(기업)의 중핵기구.


위기에 처한 국내기업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안목과 능력을 갖춘 유능한 시이오 몫임.”


‘시이오 인포메이션’은 2001년에는 ‘전환기 시이오의 역할과 경쟁력’(2001년 5월 16일자)에서 시이오를 다음과 같이 재정의 했다.


“기업 내의 최고위직 임원으로서 기업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에 대한 실질적이고도 최종적인 의사결정권과 책임을 가지는 자를 말함. 이 같은 맥락에서 국가의 대통령이나 대학 총장, 병원장 등도 시이오라 할 수 있음.”


풍미하는 스타 시이오


바야흐로 시이오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핵심어로 한국을 풍미하게 되었다. 시이오는 응축, 유연, 공유, 모험, 특이, 지식, 기본의 7대 미덕을 체질화했다고 자처하고, 오직 저만이 타성을 깨고 변화를 주도한다고 장담하면서 유아독존의 존재로 무한경쟁의 정글을 누빈다.


정당의 대선 주자들은 다투어 가며 자신을 시이오형 지도자라고 내세운다. 한편, 과거의 대통령을 두고 주식회사 대한민국 시이오라고 칭송한 글이 나온다. ‘시이오 총리론’ ‘주식회사 ○○남도 시이오’ 따위 정치 구호가 줄지어 등장한다.


현직 대통령은 내놓고 ‘시이오 대통령’임을 자처한다. 뿐인가. 대통령도, 대학총장도, 병원장도, 식자도, 문화인도 거품이 낀 시이오의 훈장과 벼슬을 열망하는 풍경이다. 시이오는 유아독존의 주술을 걸고 ‘스타 시이오’는 무한경쟁의 신화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무기에 그늘이 지듯이 시이오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엘지경제연구원 김영건 선임연구원은 ‘슈퍼 시이오(CEO)의 그늘’이라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시이오에 의존하는 조직은 전략을 실행할 만한 역량을 갖춘 우수한 인력과 리더의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


바로 ‘슈퍼 시이오 왕국’의 함정을 가리킨 경고이다. 그의 해설에 따르면 미국은 2차 대전이 끝난 후 30여 년 동안 ‘경영자 자본주의’ 시대를 거쳤고, 1980년대 이후 밀려든 불황을 배경으로 세를 얻은 ‘주주 자본주의’시대를 겪었다. 이때 시이오는 입지가 좁아졌다가 최근 다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한겨레 2008년 6월 3일자 참조)


시이오는 태생적으로 독재자


유아독존의 1인 전횡은 시이오의 지도력이 갖는 가장 큰 위험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시이오는 태생적으로 독재자다.


미국 광고회사의 회장을 15년간 역임한 바트 커밍스는 ‘광고계의 자비심 많은 독재자들’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처럼 호령하는 자리에 있는 50여 명의 경영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리더로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가 독재자라는 사실을 아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의 말이 곧 법이요 그래야만 한다.”


커밍스는 ‘자비심 많은 독재자’가 되더라도 아무것도 안 되는 것보다 낫다고 역설한다.


“자비심 많은 독재자는 상황을 평가하고 결정을 내릴 때 공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비스러운 독재자가 되려면 상당한 희생이 요구된다. 자비스러운 독재자가 되는 일은 결코 좋지만은 않다. 그러나 전혀 안 되는 것보다는 낫다.”


금융위기는 미국이 초래했지만 세계적인 위기다. 이 절대 위기에 시이오라는 ‘본질적인 독재자’, ‘자비스러운 독재자’ 들이 어떤 방법과 수단으로 위기를 관리할까, 한 배에 타고 있으니 불안하고 울적하다. (뉴시스 11. 17)


안병 ann-bc@hanmail.net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


 

나에게 반하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안병찬 (환경재단도요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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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럭 유인촌 논쟁’의 뿌리를 뽑자면


 

 

 


ⓒ뉴시스 조수정기자

유인촌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감사장에서의 언행으로 파문을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막말을 한 것으로 일어난 후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국민과 언론인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언짢게 한 점에 사과한다.”는 말도 했다. 현직 장관으로서 스스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버럭 유인촌’이라는 말을 들을 지경이 되었으니 그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비판이 일어날 만 하다.


이른바 ‘버럭 유인촌 파문’에서 우리는 고질적인 두 가지 병폐를 보게 된다.


하나는 정쟁이다. ‘버럭 유인촌 사태’를 촉발한 것은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발언이라고 한다. 그가 “장관, 차관, 공공기관 낙하산 대기자들은 이명박 휘하이자 졸개들”운운한 것으로 유 장관은 심기가 몹시 상했다는 말이다. 돌이켜 보면 노무현 정권 때는 한나라당 쪽이 막말을 했다. 어떤 한나라당 의원이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렇게 한국의 정쟁은 대를 이어 꼬리를 무는 공중전처럼 빙빙 돌아간다.


두 번째는 언론이 두 쪽으로 갈라져서 벌이는 파당 싸움이다.


유 장관이 ‘부적절한 막말’을 사과한 것을 두고 도하 언론은 예상한 대로 두 쪽으로 논조가 갈라졌다. 한 쪽은 ‘유인촌 막말’을 몰아붙이고, 또 한 쪽은 ‘유인촌 막말’을 살살 다룬다.


꼬리물기식으로 싸움을 못하게 만드는 장치는 없을까.


우선 지난 20년간 답습해온 국회 국정감사제도의 판을 근본적으로 갈아엎어보자. ‘연중 상시감사체제’로 바꾸면 국정감사장의 파당적인 호통 개그와 막말 쇼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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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30 19:53 address edit/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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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 바람에 ‘님’ 보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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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웬 일이니?


아침 댓바람에 전화가 왔다. 베트남을 다녀와서 전설적인 베트콩의 파리회담 수석대표 ‘마담 빈’과 대담한 기사를 한국일보에 싣고 난 뒤다.

전화한 사람은 ‘시사IN’ 기자 고재열. 친애하는 고재열은 고집은 가슴 속에 두어두고 수줍은 체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친구다. 평소에는 제대로 안부신고를 안한다. 텔레비전의 지식 경연에서 장원을 하여 2천만 원을 타 살림에 보태 쓴 것은 두뇌 순발력이 뛰어남을 보여준다.
나는 물었다.


-니가 웬 일이니?
-저, 영화 ‘님은 먼 곳에’ 모시고 가서 보려고요?
-뭐야, 무슨 꿍꿍이속이 있지, 너?
-절대 아니구요, 베트남 영화라 ‘주간님’ 생각이 나서 그래요.


지금도 원(原) ‘시사저널’에서 함께 일한 후배들은 고재열처럼 나를 그때의 호칭대로 ‘주간님’으로 부른다. ‘시사IN’을 세운 후배들도 그렇다. 트래킹 코스로 제주올레를 연 전 편집국장 서명숙이 그렇고, 텔레비전 앵커를 천직으로 타고난 백지연이 그렇고, 광화문의 10만 촛불을 이끈 사회자 최광기가 그렇다.

그건 그렇다 치고 벌건 대낮에 한 여름 밤의 꿈을 함께 꿀 여자도 아닌 남자 후배 고재열이 ‘님은 먼 곳에’를 같이 보자니 재미도 없고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베트남을 소재로 한 영화이니 나와 같이 보자고 신청하는 마음씨가 가상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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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님은 먼 곳에’의 포스터를 처음 보고 문득 베트남에 향수를 느낀 것은 사실이다.


전형적인 베트남의 열대림 어구. 물이 괴인 논이 있고 그 양편으로 키 큰 야자수의 열대림이 시작된다. 열대림 사이로 틔어있는 푸른 하늘로 수많은 헬리콥터 편대가 멀리서 점점이 나타나더니 차츰 커지면서 이윽고 머리위로 굉음을 울리며 지나간다.


그 먼 곳 베트남의 논두렁 위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수애의 뒷모습. 왼손에 검은 가방 하나를 든 그녀가 오른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하늘 멀리 날아오는 UH-1휴이 헬리콥터 편대를 쳐다본다. 수애의 검은 치마가 헬기의 바람에 날린다. 그 순간이 한 폭의 정(靜) 사진에 고정되었다.

“1971년 베트남. 당신을 찾아 그곳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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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그 해에 나는 남부 베트남 수도 사이공에 특파원으로 갔다. 그리고  베트남 농촌과 정글과 상록의 키 큰 나무 타머린드, 파월 한국군과 연예인 위문공연단, 맥브이(미군지원사령부)와 C-레이션 그리고 투도 환락가를 보았다.


‘인터뷰이(interviewee)’가 되다


약속한 시간에 고재열이 인사동 집필실에 도착했다.
짐작한 대로 고재열은 책상 앞에 나를 앉히더니 우선 사진을 몇 장 찍는다. 
그리고 저는 인터뷰 하는 기자(인터뷰어)가 되고 나는 인터뷰 당하는 사람(인터뷰이)으로 만든다. 그는 한국일보의 미스코리아 후보 문화교류행사에 합류해서 ‘마담 빈’을 만난 사정을 이것저것 물으며 수첩에 기록 한다.


그리고 저는 인터뷰 하는 기자(인터뷰어)가 되고 나는 인터뷰 당하는 사람(인터뷰이)으로 만든다. 그는 한국일보의 미스코리아 후보 문화교류행사에 합류해서 ‘마담 빈’을 만난 사정을 이것저것 물으며 수첩에 기록 한다.


미국의 시각에서 본 월남전이 아닌, 한국의 시각에서 본 월남전을 그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이번엔 어떤 영화를 또 그려낼까. 무수히 날아오는 헬기를 바라보며 등지고 서있는 저 여자의 사연이 무엇일지, (어떤 브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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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1973년. 베트남 주재 특파원 시절에 사용한 정글화, 한국일보 사기와 완장, 정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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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파우치(1971년-1973년, 1975년, 1989년.)


무더운 날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인사동에서 종로3가에 있는 피키디리 극장까지 갔다. 내가 기자시절에 자주 관람하던 피카디리는 단성사, 중앙극장 등과 함께 몇 안 되는 일류 개봉관이었다. 영국 감독 데이빗 린의 ‘콰이강의 다리’도 피카디리 극장에서 보았다. 지금은 이름을 프리머스 피카디리로 바꾼 8관 1682석의 복합 극장이다.
고재열이 자진해서 영화 관람권과 음료수를 샀다.

전쟁드라마 ‘님은 먼 곳에’ 상영시간은 2시간 6분, 장내에 불이 켜지자 고재열이 대뜸 묻는다.

“감상이 어땠어요?”


리얼리티의 두 측면

“이국적 현실감(리얼리티)이 떨어진다.”

처음부터 ‘님은 먼 곳에’는 ‘왕의 남자’의 스타감독 이준익의 작품이라 기대를 모은다고 선전했다.
총제작비 100억 원을 투입한 베트남 전쟁드라마라고 하지만 베트남에서 살아본 나한테는 풍경과 사람의 현실감(리얼리티)이 영 아니다. 태국에서 현지 촬영을 한 탓이다.

태국의 산하와 베트남의 산하는 일본과 한국의 산하만치 다르다. 사람도 그렇다. 같은 동북아시아 사람이지만 중국 배우가 일본 사람 분장을 하면 너무 안 어울린다. 같은 동남아시아 사람이만 태국 사람과 베트남 사람은 아주 다르다. 망고 과일 맛도 다르다. 베트남 것이 더 달고 향기롭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한국 사람이 등장하는 부분은 더러 리얼리티가 있다. 예를 들면 연예인 위문 공연단의 풍속도다.

1971년에 한 여자가 남편을 만나기 위해 공연단에 끼어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으로 한국군 부대를 찾아 간다는 설정이나, 예쁘고 청순하고 착한 여자가 써니라는 새 이름으로 총성과 화염이 가득한 전쟁의 한 복판에 뛰어든다는 설정에서 일관된 논리를 찾기는 힘들다. 베트남 전쟁을 요즘의 코드로 극화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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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베트남 1975년 4월(위). (아래) 안케 전투 638고지 1973년. 


한국군 사단본부의 연예인 파티
 

1972년경으로 기억한다. 중부지역에 주둔한 한국군 사단 기지에 종군하여 내빈 막사에서 하룻밤 숙박한 일이 있다. 밤이 되자 사단장은 파티를 열었다. 아마 특파원 두 명을 접대한다면서 그 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부
사단장과 참모들도 합석한 자리에 같이 간 타사 특파원 한 명과 함께 초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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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한국군을 겨냥한 북한의 심리전 전단 2매. (2000년 호찌민시 소장자 것을 복사함)
                

아주 유명한 여자가수 일행이 위문공연을 하며 각 부대를 순회하다가 같은
내빈 막사에 머물고 있었다. 파티장에 불려 나온 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사단 고위층 이 사람 저 사람과 춤도 추어야 했다. 주흥에 겨워 자리가 다소 어지러워 졌을 때다. 반주를 하던 밴드의 악장이 초조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다급하게 애소한다.  

“저기요, 특파원님. 저 여가수 아무개가 제 아냅니다. 정말입니다. 좀 보호해 주세요. 특파원님이 보호해 주세요.”
나는 연예인 공연단의 부부를 구하고 싶었다. 손뼉 쳐서 좌중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쳐서 찬물을 뿌렸다.

“여러분. 아무개 가수가 밴드 마스터 부인이래요! 밴드마스터 부인이래요!”



베트콩과 미군의 초상


‘’님은 먼 곳에‘는 베트콩과 미군을 반공 시대와는 다른 오늘의 눈으로 바라본다. 


“사랑한다고 말 할걸 그랬지…망설이다가 님은 먼 곳에…”를 부르는 아내 수애를 보고 애잔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정말로 남편 엄태웅을 사랑해서 수애가 월남까지 갔을 까요, 하고 당위성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색소폰을 부는 양아치 정만이는 베트콩에게 잡혀 지하 땅굴에 잡혔다가 나온 후에는 홀연히 사람이 달라진다. 그는 베트콩의 저항전쟁의 소이를 깨달으며 당시대의 굴레를 벗어난다.

‘님은 먼 곳에’에 투영되는 미군의 초상은 부정적이다. 욕정과 탐욕을 드러낸다. 수애는 실종한 엄태웅의 소재를 찾아내기 위해서 미군 유력자와 담판하며 대가로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 그런 인상을 받는다. 이 영화는 베트콩과 미군을 대비하여 근래의 관점으로 베트남전을 재조명했다고 여긴다.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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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황의홍 2008.09.18 00:0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이사장님 오늘 뵙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 입니다.
    내가 하고있는 일들의 방향성이 맞고, 부족한 점도 깨닫게 된 시간 이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서 할일 들이 너무 많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잘 수립해야 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언론인권센터와 미지별 블로그 링크 걸어 놓고 갑니다.

    새내기 블로거에게 팁하나 말씀 드리면
    처음엔 어색하시 겠지만 댓글에 대한 답글은 반드시 달아서 독자와 소통을 하시면 블로그에 쓰시는 글이 많이 유연해 지리라 생각됩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눈물이 많다.
중국과 프랑스와 미국과 싸워서 이겨낸 강건한 민족이라 눈물이 없을 것 같은데, 아니다. 눈물을 철철 흘린다.
베트남 며느리의 가족상봉을 보여주는 텔레비전 프로를 보면 헤어진 아픔에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상봉한 기쁨에 목이 메에 운다.
'베트남전 마지막 종군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나도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퍽퍽해진다.


그렇게 정이 많은 민족성은 우리와 똑 같다.
“우리 후손을 낳는 베트남 새댁들”,
하노이 주재 대사의 이 말에서 베트남 며느리의 존재를 실감한다.
‘베트남 며느리’들을 챙겨달라며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장에게 편지를 보냈던 주하노이 임홍재 대사가
추석을 맞아 이번에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의 편지와 이메일이 ‘이방인 며느리’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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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며느리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 <황금신부>




'베트남 며느리'를 위해 하노이 임홍재 대사가 보낸 편지


김훈이 본 ‘연변 며느리’


16년 전, 내가 ‘원(原)시사저널’ 제작을 책임지고 있을 적 일이다. ‘칼의 노래’의 작가로 이름을 드날리는 후배 김훈은 그때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내가 기사를 주문하면 그는 몸을 날려 현장을 뛰었다. 


연변의 조선족 처녀들이 각박한 한국 농촌으로 처음 시집을 온 1992년. 추석 무렵에 김훈은 제1대 연변 새댁 15명이 신접살림을 차린 경상북도, 강원도, 전라도를 누벼서 기사를 써냈다. 그 중에 경북 문경으로 시집온 한 연변 새댁의 얘기가 실감 났다. 그 새댁은 화장을 지울 때 한국산 화장지로 얼굴을 문지르면서, 자신이 한국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고 한다.


“세상에 이토록 부드럽고 포근한 종이가 있을까. 그것이 새댁의 첫 놀라움이다.”나는 연변새댁이 느끼는 ‘부드럽고 포근한 화장지’를 집어낸 김훈의 기자적 후각이 각별하다고 여겼다.


추석날 보름달은 가장 부푼 달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한 많은 며느리들은 그 둥근 달을 쳐다보고 울었더라고 한다. 그래도 연변새댁은 우리 동포니까 달보고 서럽게 우는 일이 덜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노이 대사가 본 ‘베트남 며느리’


금년 7월 하노이 주재 한국대사관을 예방한 미스코리아 후보들에게 임홍재 대사가 이런 말을 했다.


“베트남 며느리들은 우리 후손을 낳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불행을 겪는 일부 사례가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은 따뜻한 마음으로 베트남 새댁들을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베트남이 한국과 유사한 점은 많다. 사람이름이 세 자고 최대명절이 설(떼트)이다. 새해에 용돈을 주고, 쌀을 주식으로 삼고, 젓가락을 쓰고 고추 마늘 음식을 먹는다. 한자를 기반으로 하는 유교 문화권이다. 며느리들이 눈물 많은 것도 같다. 한국에 사는 베트남 사람 7만 2천명 가운데 베트남 며느리는 3만 명이다.


그런 베트남 며느리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임 대사는 작년 10월에 한국에 있는 지방자치단체장 앞으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일제히 발송했다.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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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황금신부>의 주인공도 눈물이 많았다.




존경하는 시장 군수 구청장님께


베트남은 우리와 역사 및 문화상의 유사성으로 동남아 국가 중에서 한국과 가장 우호적인 국가입니다. 그러나 최근 몇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어 이렇게 각 지방자치단체장님께 부탁의 말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한국인이 베트남 여성과 국제결혼을 한 것과 관련한 문제입니다. 2006년 초 베트남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의 인신모욕적인 현수막과 이들을 상품화하는 집단 맞선이 문제가 된 이후, 얼마 전에는 한국인 남편의 폭행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한 베트남 여성의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 남자와 결혼한 후 관할 지역에 이주해온 베트남 여성들을 보다 더 따뜻한 마음으로 보호해 주시고 불법적인 현수막은 지속적으로 단속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부디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어 이국의 젊은 며느리들을 보호하여 사후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혹 베트남을 방문하실 기회가 되시면 정성을 다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주베트남대한민국대사관 대사 올림


이 편지를 받자 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안덕수 강화군수, 이형구 의왕시장 등 13명이 차례로 답신을 보냈다. 그 밖에 많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이메일로 응답했다. 모두 대사의 제언에 공감하면서 자기 자치단체의 현황과 대책을 알렸다. 그중 강화군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존경하는 임홍재 대사님께

우리군은 베트남 여성을 비롯한 외국인 결혼 이민자 가족이 116세대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군은 이민자 가정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확대하여 2007년 5월에 결혼 이민자시원센터를 발족하여 한국어 교육과 한국문화 익히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우리군의 농촌 총각과 결혼하여 따뜻한 가정을 이루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행정적인 지원을 다할 것입니다.   
따뜻한 관심과 배려에 감사드리며 지속적인 협조와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강화군수 안덕수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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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베트남 며느리도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시어머니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28년 전 안병찬이 본 ‘도시 며느리 감’


1986년 어느 날, 강원도 어느 마을 어귀에는 농촌청년의 비명이 담긴 현수막 한 폭이 내걸려 있었다.


“농민도 사람이다. 장가 좀 가자!”


1980년대 초부터 도농 짝짓기 합동맞선사업을 해온 한국가족문제연구원 신혜영 원장은 문제의 현수막 구호는 농촌 청년, 영농후계자들이 삶의 현실을 부르짖는 소리라고 말했다. 신부 감이 달리는 일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 무렵 일본 농촌에도 같은 고민이 있었다. 야마카다켄(山形縣)의 두 부락은 신부 감이 4대1로 모자라 고민하다가 노총각들을 필리핀의 소도시에 보내서 집단 맞선을 보는 방법을 썼다. 그 결과 16쌍의 국제신혼부부가 탄생했다.


한국가족문제연구원은 매달 2주일에 한 번 일요일 낮에 서울 을지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농촌총각과 도시처녀의 짝짓기 모임을 열었다. 마침 10월 상달이어서 농촌의 총각후보들은 가기들이 거두어들인 밤, 깨, 콩, 고추, 인삼, 약초, 사과 따위 농산품을 들고 나와서 처녀들에게 소개하며 짝짓기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사회가 젊은 여성의 이농으로 인해 농촌 청년의 결혼난이라는 위기에 직면한 것은 1980년대 초부터였다. 한 농업교육학과 교수가 농촌 청년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보고자 생활 조건이 좋은 농민 후계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았더니, 응답한 청년의 63%가 배우자를 찾고 있으나 상대를 구하지 못한다고 했다.


‘오히려 신랑 부족’ 미국 서부시대 


혼인은 가족과 가정이라는 사회 기초 단위의 출발점이다. 결혼은 남녀 당사자의 성적, 심리적, 경제적 결합을 뜻하며 종족 보존의 기능을 가진다.  남녀 인구비례에 불균형이 일어날 때 사회가 위기를 느끼는 것은 자명하다.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신랑감이 부족해 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다. 미국영화에 ‘텍사스의 풍운아’(원제 Going South)가 그 때를 소재로 삼았다. 남북전쟁 직후에 미국은 이색적인 법을 제정한다. 내전으로 말미암아 남자는 줄어든 대신 신부 감과 여자가 남아돌자 당국은 “사형선고를 받은 자라 할지라도 살인범만 아니라면 부동산을 소유한 신부 감이 보증을 설 경우 사면할 수 있다”는 특례법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처형당하기 직전에 극적으로 살아난 서부 사나이가 결혼도 하고 금도 캐서 남쪽 멕시코로 탈출한다는 것이 영화 줄거리다.


며느리 부족했던 원나라
 


고려 말에 80년간 존속한 결혼도감은 신부감이 부족한 원나라의 요구에 부응하기위한 관아였다. 원제는 1274년 고려에 매빙사(媒聘使)와 비단을 보내 자기네 강군인 만자군(蠻子軍) 병사의 혼인을 위해 남편 없는 여자 140명을 선발해 달라고 촉구했다. 고려 조정은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민간의 독녀(獨女), 역적의 처, 파계승의 딸을 찾아내어 요구한 수를 채워 원에 보냈으며 국내에는 원성이 드높아 곡성은 천지를 진동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공녀(貢女) 제도는 근절되지 않다가 공민왕 때에 그 막을 내렸다.

남녀의 혼인은 이처럼 중요하다. 특례법을 만들기도 하고 공녀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앞으로는 그들이 어느 나라 출신이든, 어느 민족이든, 우리 며느리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노이 대사의 이메일


필자가 하노이 임 대사에게 다음과 같이 이메일을 한 것은 9월 9일 오전 10시 50분이다.


“베트남 며느리는 우리의 자식들을 낳아 주는 존재라고 대사님이 말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칼럼을 쓰고자 합니다. 근간의 서신이나 현지 기업의 지원내용, 대사님의 소회 등을 생각나는 대로 바로 알려주시면 많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베트남에서 좋은 추석을 보내십시오.”


하루가 지나 9월 10일 저녁 7시 46분에 임 대사의 회신이 왔다.


“즐거운 추석되시기 바랍니다.


국내 매체에 베트남 신부 이야기만 나오면 열심히 봅니다. 우리나라 언론, 사회단체, 대학교, 지자체 등에서 베트남 신부들이 우리 사회에 순조롭게 적응해 가도록 돕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 기쁩니다. 딸 시집보낸 부모 마음입니다.


참고 자료 두서없이 별첨과 같이 마련해서 보냅니다. 참고가 되시기를 바라습니다.”


그의 이메일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국제결혼 한국이주 베트남 신부 관련 사항(최근 자료)


ㅇ 하노이시 여성부 주석 응웬 민 하, 4월 14일-4월 20일 간 한국여성인권단체 초청으로 “한국국제결혼여성의 문제점” 이라는 주제로 개최하는 세미나에 참석.


ㅇ 부산 남구 종합사회복지관 다문화 가족 지원센터 초청, 베트남 이주여성의 친정부모 2명이 딸이 살고 있는 한국방문. 사위와 사돈과의 상견례장 마련(KBS “러브인 아시아” 촬영).


ㅇ ‘바르게 살기 운동’ 충청북도협의회 주최, 다문화 가정 친정 부모 초청행사로 12가정 24명이 9월 22일-9월 27일 간 방한 예정(베트남 기자 동행 예정).


ㅇ GM 대우 하노이 지점 주관, 베트남 신부 친정 방문 프로그램(내년 구정
   계기 우선 10쌍 추진).


ㅇ 베트남 신부 출국 전 한국 관련 교육(한민족복지재단 베트남지부 주관,
   9월 8일 실시).


ㅇ 결혼 비자 발급 현황(괄호 안은 호치민)
   -2006년도 8,526건(6,860건)
   -2007년도 7,956건(6,001건)
   -2008년도 6월말 : 3,617건(2,400건)


ㅇ 결혼 이민자 총 체류자수(2008년 6월말)  : 29,163명


ㅇ 2008년 1월-8월말까지 딸 방문  부모 수 : 약 2,5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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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ohoman 2008.09.11 13:28 address edit/delete reply

    좋은 포스트 잘 읽었습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56 신고 address edit/delete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아직 서툽니다.

    • BlogIcon propeciaPagvobiatot 2012.12.01 18:23 address edit/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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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슈링스따 2008.09.11 13:41 address edit/delete reply

    방송에서 국제결혼을 비하하는 발언을 아무 생각없이 툭툭 내뱉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상당히 불쾌하더군요. 특히 우리나라 보다 후진국이라고 볼 수 있는 나라의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에 특히 심합니다. 미국,영국,프랑스와 같은 서양의 선진국의 여성과의 결혼은 '있어 보이는'결혼이고 동남아나 중국계의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없어보이는' 결혼처럼 다루어 지더군요. 국제결혼에도 등급이 있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미수다를 종종 보는데 예전 케냐출신의 한 교수분이 단순히 얼굴색이 검다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찾늗데 있어서 차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 얼굴이 다 붉어졌습니다. 미국이나 일부 유럽에 퍼져있는 백인우월주의 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도 외국인들을 피부색깔에 따라 차별하고 있다는 것을 종종 느끼곤 합니다.
    저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모두가 차별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성숙한 한국인이 되도록 많이 노력해야겠습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59 신고 address edit/delete

      평등한 세상. 사해동포주의에 동감합니다.

    • 2008.12.30 12:07 address edit/delete

      무척 공감가는 덧글이네요!

      특히나 서양우월주의적인 시각이 내포된 예가요.
      이런 부분에서 우리들이 많이 반성하고 또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_^

    • 낙향하는선비 2008.12.30 19:18 address edit/delete

      공감합니다.....미국인들의 우월주의 사상을 욕하면서 결국엔 우리네들도 다를바 없는 모습들을 볼때 남 욕 할때가 아니란 생각을 합니다.

  4. 와졉 2008.09.11 14:02 address edit/delete reply

    개인적으로 임홍재 대사님을 참 존경합니다.
    전에 이란에 계실 때 부터 대한민국을 위해 위험한 환경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부터 대사님의 나라사랑을 실감했고 베트남 대사직을 맡은뒤에도 우리나라의 대외관계에 힘쓰시는 모습을 보며 참 외교관의 면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8:00 신고 address edit/delete

      임 대사에게 이메일 한 번 하세요.

  5. 2008.09.11 14:52 address edit/delete reply

    <베트남 며느리들은 우리의 후손을 낳아주는 존재>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지 않나요?
    마치 자손생산을 위한 도구라는 의미처럼 들리는데.. 이미 자신도 모르게 은연 중 차별의 의미도 담겨있는 듯 들리기도 하고.
    그 말보다는,
    <베트남 며느리들은 장가가기 힘든 농촌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시집와서 함께 고생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는 고마운 분들> 뭐 이런 식으로 표현했더라면 좀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임홍재 대사님의 말씀(글)을 듣고 딱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속담에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했는데 같은 말이라도 조심스럽고 신중한 표현을 쓰는 게 오해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겨집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8:02 신고 address edit/delete

      표현 문제을 제기하신 정신을 높이 삽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면 우리의 자손을 낳아준다는 표현을 한국 며느리에게 써도 맞기는 맞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6. 구양봉 2008.09.11 15:12 address edit/delete reply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공무원이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됐는데, 임대사님처럼 자기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분을 뵈니 마음이 참 따뜻해집니다.
    아래에 폴님 말씀처럼 '후손을 낳아주는 존재' 라는 표현은 저도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말을 하신분의 다른 행동으로 미루어 보면 나쁜의도가 아니라는 믿음이 생기니 큰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랜만에 훈훈한 기사를 접하니 기분이 참 좋네요. 좋은기사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8:04 신고 address edit/delete

      임 대사가 기뻐하겠습니다. 일 전에 그 분이 블로그를 찾지 못했으니 다시 알려달라고 이메일로 연락이 와서 블로그 주소와 독설닷컴을 알려 주었지요. 훈훈한 기사라니 고마운 말씀.

    • BlogIcon propeciaPagvobiatot 2012.11.25 09:39 address edit/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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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과객 2008.09.11 15:20 address edit/delete reply

    폴님말씀 공감
    신랑은 신랑인데,
    왜 신부는 며느리라고 쓰나요? 어느 관점인건지...
    며느리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종속 관계가 썩 맘에 들지 않는군요
    한가정을 이루는 기본 단위 '부부'가 성립되기 위한 국제결혼인거지
    대한민국 국민을 번성시키는 대상으로서 국제결혼은 아니지 않습니까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8:06 신고 address edit/delete

      폴님과 과객님의 관점을 곰씹으며 공부하지요.

    • 보엠 2008.12.28 18:31 address edit/delete

      항상 글쓴이는 완벽할 수 없지요.
      단지그 분이 말하는 깊은 속내를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것이 자기가 하지 못하는 것 보다 용기 있는 행동이라
      여겨집니다. 임대사님을 알지는 못 하지만 맘이 무척
      따뜻한 분 인것 같습니다.

  8. 나두총각 2008.09.11 15:28 address edit/delete reply

    딸 시집보낸 부모마음...이라는 표현이 짠~ 합니다.

  9. 사모아 2008.09.11 16:44 address edit/delete reply

    임홍재 대사님은 정말 훌륭한 외교관이십니다. 마치 해결사 같아서 어려운 문제가 있는 나라에만 가시게 되네요. 이라크, 이란, 그리고 베트남. 이란에서 뵐 때 정말 훌륭한 외교관이신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8:07 신고 address edit/delete

      임 대사님. 사모아 님의 고마운 말씀을 들어보시오.

  10. BlogIcon 커서 2008.09.12 21:03 address edit/delete reply

    김훈님의 화장지 부분 기억납니다. 그거 저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재밌다 했더니 김훈님 기사였군요. 그리고 그게 벌써 16년전 이야기군요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55 신고 address edit/delete

      왕년에 시사저널 독자셨군요. 반갑습니다.

  11. 최고가되자 2008.12.28 20:08 address edit/delete reply

    그래도 미안하지만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 여자들의 결혼을 싫어 합니다. 그냥 시집 오는 것이 아니고 야심을 가지고 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싫어하는데 억지로 시키면 폭팔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요..그래서 근 몇년 사이에 다문화로 몰아가는 언론에 대해 불만을 품고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품고 화살을 보냅니다. 그 화살이 올해 들어서 상당히 거칠어진 것이 사실이고 이제는 조직화 되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대로 나가다간 사회에 또 하나의 갈등 세력을 만드는 것이되고..안만들어도 되는 것을 굳이 만들어 조각내는 것이 되네요...

  12. 구대영 2008.12.28 20:29 address edit/delete reply

    이런 역할 상대국의 배려와 국가위신을 위한 노력의 자세가 진정한 외교관의 역활이 아니겠나 생각한다

  13. 장서진 2008.12.28 20:51 address edit/delete reply

    암만 동남아인들이 불쌍하다 뭐하다 해도 안되는건 안되는게 있습니다. 그걸 구분해서 일을 해야지. 그런거 저런거 구분 못하고 인정에만 억메이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지요. 위에 어떤분의 동남아 신부와 불체자들에 대해서 우리국민의 불만이 거칠어 진거 사실입니다. 참다가 이제 폭발해 가는 거지요.

  14. 홍진아 2008.12.28 23:17 address edit/delete reply

    12월달까지 하노이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유학생이에요
    임대사님을 뵌적이 있었는데 정말 너무 좋으신 분이었어요
    한인들의 문제에도 관심가져주시고 게다가 베트남과 한국양국의 관계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주신 분이었죠

    실제 베트남 여성과 한국남성으로 이루어진 다문화가정의 문제점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는 이때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갔으면 좋겠습니다..오랫만에 제2의 고향 베트남 소식이 들려와 좋습니다.

  15. 불나방 2008.12.28 23:24 address edit/delete reply

    참 멋진 대사관이십니다.전 캐나다에 일년정도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요.오히려 그곳에선 인종차별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요.물론 아닌척 하면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대놓고 하진 않는것 같습니다.우리 나라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 특히 잘사는 나라에선 인종차별 받기 싫어하면서 왜 우리보다 조금이라도 못사는 나라 사람들에 대해선 차별을 그러도 하는지 모르겠어요.부끄럽습니다.제가 느끼는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인종차별 하는 사람들도 흔지 않다는 겁니다..모두가 동등한 사람들이라는거...이젠 의식이 깨일때가 아닐까요? 좋은 글 많은 생각하고 갑니다.감사합니다.

  16. dhksl 2008.12.30 16:20 address edit/delete reply

    국민은 동남아 근로자건 동남아 신부건 수입하는거 싫어하는데 언론만 혼자서 날뛰는 듯하는 느낌을 받는건 나만 그럴까? 아무튼 값싼 인력을 3D 없종에 종사시키고자 한건데 이제는 불체자들도 힘든일 안하려고 하고 한국인이 받는 액수 다 받으려고 하고 더 이상 동남아근로자 필요가 없을 듯하다. 더군다나 힘든일 안하고 범죄 조직을 만들어서 편하게 돈벌려고 하고..

  17. dhksl 2008.12.30 16:23 address edit/delete reply

    불체자들이 한국인은 인정이 많다는것을 알고 그것을 잘 이용해간다. 하지만 그럴 수록 점점더 이제는 이들에 대한 불만과 거부감이 증폭되어 간다. 언젠가는 한번 한국인들이 크게 들고 일어날것 같다.

  18. semsaram 2008.12.30 16:58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녕하십니까? 저는 베트남 여인과 결혼하여 살고있는 사람입니다.
    처와 시장을 보러 가거나 외출을 할때면 주변에서의 관심과 호기심이 저를 당혹케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나 요즘은 국제 결혼이 보편화되어 많은 격려의 말을 듣곤합니다. 제가 당부드리고 싶은 애기는 국제결혼을 하며는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에서의 이질감을 많이 느끼곤합니다.때로는 결혼을 잘했구나하는 생각도들고 후회도 되고,국제결혼을 하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당부드립니다.위와 같은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하실 것 같으신 분들은 국제결혼은 다시 한번 생각에 생각을 하여 신중한 결정을 하여 여러분의 미래에 어느방향이 도움이 되는가를 결정하시기를.....결혼정보업체의 사탕발림에만 현혹되지 마십시요.ex)시부모를 모시고,도망을 가지 않고,남편과 시집 식구들에게 헌신한다....등등. 국제결혼을하시고자 하시는 분들은 주위에 국제결혼 가정이나 국제결혼가정 지원센타 등에서 충분한 상담등을 하여서 여러분이 문제점을 파악하고 난 뒤 결정을 하여주십시요

  19. 조재용 2008.12.30 20:07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진짜 한국인으로 창피해서 이렇게 써 봅니다.그렇게 자격이 없으면 결혼하지 마세요.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든 말을 가르치든지 아니면 베트남 말을 배우던지 이런 노력없이 그냥 때리기나 하고 화나내고 할려면 진짜로 그냥 보내주세요. 한국인 창피하게 만들지 말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결혼을 못한것 아닙니까. 능력이 부족하면 마음이라도 착해서 부인을 사랑할줄 알아야지요. 야만인 같이 화나내고 욕이나하고 그런데 누가 같이 살려고 합니까. 그리고 왜그리 술은 많이 마십니까.
    그러니까 장가을 못가서 외국에서 장가 갈려고 하겠지만 능력과 노력을 하지 않을려면 절대 결혼 하지 마세요. 당신들이 있어 정말 한국인이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합니다. 진짜 베트남에 와 보세요. 한국인이 얼마나 나쁜사람으로 인식을 하고 있는지요. 이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 하여야만 한다고 생각 합니다. 대만 같은 경우에는 정부에서 나이 차이가 너무나면 결혼 허가을 받을수가 없습니다. 괜히 능력도 없는사람이 나이 어린 신부 맞을려고 절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로 한국을 위한다면 말입니다. 그냥 혼자 열심히 사시기 바랍니다.
    정신병자 이런 사람 하고 모르게 결혼시키는 일이 없도록 진짜 부탁 드립니다. 정부에세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시기 부탁 드립니다.

  20. 2008.12.30 21:51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1. 모든것의한울 2008.12.31 07:48 address edit/delete reply

    다른 나라에 와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인데, 저런 분들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마담 빈 "진짜 美人은 능력 가진 창조적 여성"



'마담 빈', 베트남전 종군기자였던 내게 그녀는 전설이었다.
'파리 평화회담의 전설'의 대담이 얼마 전 극적으로 이뤄졌다.
단아하지만 결연했던 그녀를 서방언론은 '신비의 대상'으로 보았다.
부주석·교육장관을 10년씩 역임한 그녀는 베트남 최고위급 여성이다.
미스코리아 행사에서 우연히 그녀를 보았다.
긴급 인터뷰를 부탁해 만날 수 있었다.



지난 7월2일 오후 베트남의 호찌민시에서 열린 미스코리아 후보들의 한복 패션쇼 모습.‘ 한국-베트남 문화교류 한복 패션쇼’는 호찌민과 하노이에서 각 한차례씩 열려 베트남 정·관·재계 인사들로부터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을 자아냈다.

사진 = 하노이(베트남) 김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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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응웬 티 빈(Nguyen Thi Binh)
(오른) 안병찬 前한국일보 ‘사이공의 최후' 특파원· 現언론 인권센터 이사장


하노이는 중국과 1000년을 싸운 뒤, 항불 전쟁 9년과 항미 전쟁 20년을 버텨내고 프랑스와 미국을 이긴 용감무쌍한 도시다. 호찌민의 영묘가 있는 이 위대한 도시는 여전히 콧대가 높다.
지금 이 도시는 실리경제를 추구하랴, 드높은 혁명의 자존심을 견지하랴, 두 마리 토끼를 좇으며 파천황의 대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22년 전에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이래 경제개방의 길을 일로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 특파원으로서 사이공의 패망을 현장 취재했던 필자가 논설위원으로 14년 만에 호찌민시(옛 사이공)를 찾아간 것은 1989년. 그때 내쳐 수도 하노이를 가보고 어느새 또 다시 19년이 흘러 이번에는 한국일보가 주회한 ‘한국-베트남 문화교류 한복패션쇼’를 참관하고 호찌민시에 있는 한국총영사관과 통일궁 현장에서 ‘특파원 역사특강’을 하기 위해 동행했다.



■ 아오자이 입고 한복 행진 바라 본 응웬 티 빈

호찌민과 하노이에서 2007 미스코리아 두 명과 2008 미스코리아 후보 51명은 저마다 한복을 갈아입고 도합 200가지 색깔의 눈부신 조화를 연출하니 그대로 한류의 물결이 되어 흘렀다.

이 순간 20대 초반 신세대인 이들은 ‘미스코리아 상업주의’라는 눈총을 거리낄 것 없이,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한 왕년의 적도(敵都)와 친선하고 모국에 기여하는 한국적인 문화아이콘이었다.

태극기와 베트남 국기인 황성적기(黃星赤旗)를 게양한 하노이대우호텔은 혁명 수도에서 여전히 최고 최대의 호텔이다. 한국이 베트남에 투자하는 국가들 순위에서 첫 자리를 차지해온 저간의 정황을 일깨우는 15층 호텔.

그런데 지난 16일 밤 한복패션 문화행사가 열린 그랜드볼룸 주빈 석에서 뜻밖에‘전설의 여성’을 만났다. 밤색 아오자이에 흰 바지를 입고 나온 그녀는 한복 행진을 열심히 바라보면서 “아름답다”를 연발했다.

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 출신으로 혁명1세대 중 최고의 여성으로 꼽히는 응웬 티 빈(Nguyen Thi Binh). 그녀는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 측 수석대표로 파리평화회담에 참석하면서 서방 미디어에 의해 ‘마담 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40대 초ㆍ중반의 5년간 파리에서 외교활동을 펴면서 마담 빈은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서방 사진기자 레그 랭커스터는 베트남 여성의 쪽머리를 한, 단아하고 단호하며 품위 있고 결연한 그녀의 갸름한 동양미인형 얼굴들을 포착했다.

그녀가 파리평화회담 석상에서 연설하고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의 핵감축운동(CND) 집회에서 연설할 때면 세계 언론은 난리법석을 쳤다. 1970년대 초 필자 역시 사이공 주재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멀리 파리에 나타나는 마담 빈을 신비한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통일베트남의 교육부장관과 부주석을 각각 10년 씩 역임한 마담 빈은 퇴임 후 베트남아동기금 총재, 베트남평화발전기금 총재, 세계고엽제피해자총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갑자기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듯한 마담 빈의 생각을 직접 듣고 싶었다.

오늘의 이념과 관심을 투영하여 끊임없이 해석해내는 작업이 역사라면 ‘마담 빈’과의 만남을 통해서 시대의 순환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철저한 혁명가 출신의 마담 빈이 과연 ‘여성미의 과시’를 이벤트로 삼는 미스 선발대회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 궁금했다.

1927년 생. 금년 생일이 지나 만 82세. 단아하고 결연하던 얼굴은 둥그스름한 보살 할머니 얼굴로 바뀌었다. 그러나 정신은 명석했다. 빈 총재는 뜻밖에도 한국인 양자인 홍선(하노이 허머스앤선개발 대표)씨를 통역으로 대동했다. 호찌민국립대 법대를 졸업한 홍선씨는 유창한 동시통역실력으로 인터뷰를 무리 없이 연결했다.



■ “여성 최고의 미는 여성다움이다”

(안) 여성 최고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빈) 여성의 외형적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여성다움, 아름다운 전통적 여성상, 현모양처의 여성상 뿐 아니라 능력을 가진 창조적 여성상이 필요하다.

(안) 빈 총재는 항불 및 항미 전쟁에 평생을 투신했는데 현재 상황의 여성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보는가.

(빈) 전쟁 당시에는 여성의 역할이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기본적으로 여성스러움은 간직해야 한다.

(안) 여성 혁명 1세대의 최선봉으로 보아도 되는가.

(빈) 항불 및 항미 전에 앞장선 세대지만 최전열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투신한 비밀동지가 여럿 있다. 나는 여성으로 항전에 앞장선 세대의 하나일 뿐이다. 1945년 8월 혁명이 일어났을 때 열여덟 살이었다. 나는 항불 전쟁이 끝나자마자 항미 전쟁에 뛰어들어 30여 년 간 쉬지 않고 항쟁했다. 그리고 나라를 새롭게 세워 발전시키는데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다.

(안) 빈 총재가 베트남임시혁명정부 대표로 파리평화협정에 참가하고 1973년 1월 휴전이 성립했을 적에 나는 한국일보 특파원으로 남부 수도 사이공에 있으면서 휴전을 맞아 취재한 경험이 있다.

(빈) 그랬는가.

(안) 오늘 공연을 본 느낌은.

(빈) 일단 여성들이 많이 아름답다. 한국전통의상이 아름답고 화장이 아름답다.

(안) 아오자이는 어떤 의상인가.

(빈) 아오자이는 긴 옷이라는 뜻으로 민족 전통의상이다. 노동을 할 때 입는 옷은 아오바이라고 한다. 항전 시기에는 주로 아오바이를 입었다. 아오자이는 편한 옷이 아니다.

(안) 이틀 전에 미스 유니버스대회를 나짱에서 개최했는데 어떤 생각을 했나.

(빈) 직접 가보지 않았지만 그 같은 행사를 개최한 것은 좋은 일이다. 미를 뽐내며 여러 국가를 알리는 문화 활동의 일환으로 본다. 베트남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도 되고. 이런 행사를 개최하기는 쉽지 않다.

(안) 여성미의 산업화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

(빈) 여성은 미인대회에만 나가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일도 하고 경제활동에도 많은 역할이 있다. 모든 부분에서 활동하고 있다.

(안) 당신은 어떤 활동에 주력했나.

(빈) 인생을 살면서 문화 활동을 생활의 일부로 삼았다.

(안) 혁명 1세대로서 신세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귀하는 교육자로서 10년 간 통일베트남의 교육부 장관을 지내지 않았나.

(빈) 우리 세대보다 신세대는 발전했다. 우리 세대는 애국심과 조직사랑의 단체의식이 강하다. 그 당시 세대의 책임 때문이었다. 지금 세대의 문제는 전(前) 세대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전 세대의 의무로 지금도 교육문제에 노력을 들이고 있다.

(안) 지금 하는 일은 무엇인가.

(빈) 베트남아동기금 총재로 사회적으로 불우한 아동을 지원하고 따로 고엽제 피해자를 돕는 일도 한다. 평화발전재단 이사장으로서 정치활동을 한다.

(안) 한국인 젊은이를 양자로 삼은 이유가 있는가.

(빈) 우리는 2000년에 처음 만났고 2004년 한국방문을 계기로 양자를 삼게 되었다. 홍선은 귀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안) 한국 드라마를 보는 가.

(빈) 젊은이들이 많이 본다. 나 말인가. 나는‘주몽’을 보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12일 오후 베트남의 호찌민시에서 열린 미스코리아 후보들의 한복 패션쇼 모습.‘ 한국-베트남 문화교류 한복 패션쇼’는 호찌민과 하노이에서 각 한차례씩 열려 베트남 정·관·재계 인사들로부터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을 자아냈다. 김주성기자



* 항불·항미에 앞장선 베트남 여성 혁명1세대 응웬 티 빈은 누구

응웬 티 빈(Nguyen Thi Binh) 그녀는 통일 이후 베트남의 성장 과정을 외교부장관, 교육부장관, 공산당대외위원장(외교부장관을 지도하는 자리), 부주석의 자격으로 직접 주도해 온 인물이기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실리추구 노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여성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여성만의 풍부한 감성뿐만 아니라 강단 있고 단호한 결단력이 요구 된다"고 말했다. 미인선발대회에 대해서는 굳이 양성평등주의의 비판적 시각을 갖지 않고 여성의 미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는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중부지방 꽝남 성 출신인 빈 총재는 젊은 시절에 사이공에서 교사가 되어 수학을 가르쳤다. 프랑스어는 어려서 천주교계 미션스쿨에서 배웠다. 파리협상 수석대표로 활동할 때 유창한 불어를 구사하여 서방 외교관들이 감탄한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홍선씨는 빈 총재의 2004년 5월 방한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했는데 후에 빈 총재가 유일한 양아들로 삼겠다고 해서 모자의 인연을 맺게 됐다고 전한다. 그녀는 현재 하노이 시내의 자택에서 장남, 며느리와 함께 검소하게 생활하고 있다.

국가 연금이 나오고 아들이 베트남 최대손해보험회사 부사장이므로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공병대 고위 장교로 근무한 그녀의 남편은 10여 년 전에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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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바실리카 2008.09.02 12:25 address edit/delete reply

    블로거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이 공간을 통해 기자생활 46년을 회고하고 르포르타쥬 저널리스의 산실이 되길 소망합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39 신고 address edit/delete

      바실리카 공화국 황의홍 대통령님, 훈수 많이 해 주에요.

  2. BlogIcon 커서 2008.09.06 20:20 address edit/delete reply

    안기자님(이렇게 불러드리는게 좋겠죠) 부고기사 잘봤습니다. 소설의 한 장면을 본 느낌입니다. ^^ 이 인터뷰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39 신고 address edit/delete

      문론이지요. 안 기자가 듣기 좋습니다. 부고기사가 소설같다니 즐겁구요.

  3. DJ파리체 2008.09.07 10:17 address edit/delete reply

    안기자님의 글을 보면서 항상, 서사와 서정과 현장이 어떻게 연동할 수 있는지 배웁니다. 건강하게 더욱 빛나는 활동 부탁드립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33 신고 address edit/delete

      서사와 서정과 현장의 연동. 너무 좋은 제목이네요. 고맙습니다. 댓글이 늦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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