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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최초 인터뷰 최초 인터뷰 스티븐 호킹 박사 언론인 안병찬 Ph.D ․ 원 『시사저널』 발행인 호킹 박사 초청 휠체어를 탄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와 인터뷰한 것은 1990년 9월이다. 원 『시사저널』창간인의 한 사람으로서 제작 책임을 맡고 있던 때였다. 나는 까다로운 호킹 박사 인터뷰를 손수 맡을 수밖에 없었다. 호킹 박사를 『시사저널』 표지 기사로 올리자고 우겨서 급기야 『시사저널』초청으로 그를 한국 땅에 오도록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그가 투숙한 신라호텔 잔디밭에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나는 즉석에서 영문 질문지를 만들어 호킹박사와 대면했다. 호킹박사와의 인터뷰는 특례라고 하겠다. 역경을 극복하고 언어합성기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그의 의지는 특별한 것이.. 더보기
편집국 괴담 사진=시사IN 제공 편집국 괴담 나는 〈한국일보〉와 〈시사저널〉에서 개성 있는 후배들을 여럿 만났다. 한국일보 수습기자 후배인 김훈 작가는 그 가운데 유별난 한 사람이다. 설사 그가 현란한 명문으로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써서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큰 작가가 되었더라도 나는 일선기자 김훈의 모습을 더 친근하게 여긴다. 몸 날려 현장 돌진 그는 〈한국일보〉 수습기자 29기 출신으로 13기인 나보다 12년 후배다. 내가 사이공 현장에서 승패를 다툴 때 그는 사회부에서 초년 경찰기자로 뛰고 있었다. 그는 나를 두고 이런 대목을 쓴 적이 있다. “내가 1973년 말 언론사에 갓 입사한 수습기자였을 때, 안병찬 선배는 산전수전의 현장을 갈고 다니던 고참이었다. 그는 철저한 현장주의 기자였고, 엄혹한 트레이.. 더보기
나의 추적자 ‘고재열’ 나의 추적자 ‘고재열’ 원(原) 〈시사저널〉시절부터 〈시사IN〉시절에 걸쳐 나를 추적하며 먹잇감으로 취재하거나 부려먹은 젊은 기자 한 명이 있다. 그 추적자는 정치·문화기자 고재열이다. 그는 고집은 가슴속에 감추고 겉은 수줍은 체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는 친구다. 또 예민한 시각으로 세상을 쏘아보는 친구다. 2003년 2월 어느 날, 〈시사저널〉 편집고문실로 문화부 기자 고재열이 올라왔다. 당시 나는 경원대학교에서 언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사저널〉 고문을 겸직하고 있었다. 인터넷 성감대로 뛰어난 인터넷 전문기자인 고재열은 인터넷 문화의 ‘성감대’를 주제로 특집을 기획하고 내 글을 받아 싣겠다고 한다. 기자 출신의 언론학자로서 50․60세대를 대표하여 인터넷을 서핑한 후에 그 순행기(巡行記)를 써달라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