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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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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베트남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9.17
    37년 후배 기자와 영화관에 간 이유 (2)
  2. 2008.09.08
    전설 속의 여인, '마담 빈'을 만나다 (6)


 

독설 바람에 ‘님’ 보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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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웬 일이니?


아침 댓바람에 전화가 왔다. 베트남을 다녀와서 전설적인 베트콩의 파리회담 수석대표 ‘마담 빈’과 대담한 기사를 한국일보에 싣고 난 뒤다.

전화한 사람은 ‘시사IN’ 기자 고재열. 친애하는 고재열은 고집은 가슴 속에 두어두고 수줍은 체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친구다. 평소에는 제대로 안부신고를 안한다. 텔레비전의 지식 경연에서 장원을 하여 2천만 원을 타 살림에 보태 쓴 것은 두뇌 순발력이 뛰어남을 보여준다.
나는 물었다.


-니가 웬 일이니?
-저, 영화 ‘님은 먼 곳에’ 모시고 가서 보려고요?
-뭐야, 무슨 꿍꿍이속이 있지, 너?
-절대 아니구요, 베트남 영화라 ‘주간님’ 생각이 나서 그래요.


지금도 원(原) ‘시사저널’에서 함께 일한 후배들은 고재열처럼 나를 그때의 호칭대로 ‘주간님’으로 부른다. ‘시사IN’을 세운 후배들도 그렇다. 트래킹 코스로 제주올레를 연 전 편집국장 서명숙이 그렇고, 텔레비전 앵커를 천직으로 타고난 백지연이 그렇고, 광화문의 10만 촛불을 이끈 사회자 최광기가 그렇다.

그건 그렇다 치고 벌건 대낮에 한 여름 밤의 꿈을 함께 꿀 여자도 아닌 남자 후배 고재열이 ‘님은 먼 곳에’를 같이 보자니 재미도 없고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베트남을 소재로 한 영화이니 나와 같이 보자고 신청하는 마음씨가 가상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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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님은 먼 곳에’의 포스터를 처음 보고 문득 베트남에 향수를 느낀 것은 사실이다.


전형적인 베트남의 열대림 어구. 물이 괴인 논이 있고 그 양편으로 키 큰 야자수의 열대림이 시작된다. 열대림 사이로 틔어있는 푸른 하늘로 수많은 헬리콥터 편대가 멀리서 점점이 나타나더니 차츰 커지면서 이윽고 머리위로 굉음을 울리며 지나간다.


그 먼 곳 베트남의 논두렁 위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수애의 뒷모습. 왼손에 검은 가방 하나를 든 그녀가 오른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하늘 멀리 날아오는 UH-1휴이 헬리콥터 편대를 쳐다본다. 수애의 검은 치마가 헬기의 바람에 날린다. 그 순간이 한 폭의 정(靜) 사진에 고정되었다.

“1971년 베트남. 당신을 찾아 그곳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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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그 해에 나는 남부 베트남 수도 사이공에 특파원으로 갔다. 그리고  베트남 농촌과 정글과 상록의 키 큰 나무 타머린드, 파월 한국군과 연예인 위문공연단, 맥브이(미군지원사령부)와 C-레이션 그리고 투도 환락가를 보았다.


‘인터뷰이(interviewee)’가 되다


약속한 시간에 고재열이 인사동 집필실에 도착했다.
짐작한 대로 고재열은 책상 앞에 나를 앉히더니 우선 사진을 몇 장 찍는다. 
그리고 저는 인터뷰 하는 기자(인터뷰어)가 되고 나는 인터뷰 당하는 사람(인터뷰이)으로 만든다. 그는 한국일보의 미스코리아 후보 문화교류행사에 합류해서 ‘마담 빈’을 만난 사정을 이것저것 물으며 수첩에 기록 한다.


그리고 저는 인터뷰 하는 기자(인터뷰어)가 되고 나는 인터뷰 당하는 사람(인터뷰이)으로 만든다. 그는 한국일보의 미스코리아 후보 문화교류행사에 합류해서 ‘마담 빈’을 만난 사정을 이것저것 물으며 수첩에 기록 한다.


미국의 시각에서 본 월남전이 아닌, 한국의 시각에서 본 월남전을 그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이번엔 어떤 영화를 또 그려낼까. 무수히 날아오는 헬기를 바라보며 등지고 서있는 저 여자의 사연이 무엇일지, (어떤 브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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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1973년. 베트남 주재 특파원 시절에 사용한 정글화, 한국일보 사기와 완장, 정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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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파우치(1971년-1973년, 1975년, 1989년.)


무더운 날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인사동에서 종로3가에 있는 피키디리 극장까지 갔다. 내가 기자시절에 자주 관람하던 피카디리는 단성사, 중앙극장 등과 함께 몇 안 되는 일류 개봉관이었다. 영국 감독 데이빗 린의 ‘콰이강의 다리’도 피카디리 극장에서 보았다. 지금은 이름을 프리머스 피카디리로 바꾼 8관 1682석의 복합 극장이다.
고재열이 자진해서 영화 관람권과 음료수를 샀다.

전쟁드라마 ‘님은 먼 곳에’ 상영시간은 2시간 6분, 장내에 불이 켜지자 고재열이 대뜸 묻는다.

“감상이 어땠어요?”


리얼리티의 두 측면

“이국적 현실감(리얼리티)이 떨어진다.”

처음부터 ‘님은 먼 곳에’는 ‘왕의 남자’의 스타감독 이준익의 작품이라 기대를 모은다고 선전했다.
총제작비 100억 원을 투입한 베트남 전쟁드라마라고 하지만 베트남에서 살아본 나한테는 풍경과 사람의 현실감(리얼리티)이 영 아니다. 태국에서 현지 촬영을 한 탓이다.

태국의 산하와 베트남의 산하는 일본과 한국의 산하만치 다르다. 사람도 그렇다. 같은 동북아시아 사람이지만 중국 배우가 일본 사람 분장을 하면 너무 안 어울린다. 같은 동남아시아 사람이만 태국 사람과 베트남 사람은 아주 다르다. 망고 과일 맛도 다르다. 베트남 것이 더 달고 향기롭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한국 사람이 등장하는 부분은 더러 리얼리티가 있다. 예를 들면 연예인 위문 공연단의 풍속도다.

1971년에 한 여자가 남편을 만나기 위해 공연단에 끼어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으로 한국군 부대를 찾아 간다는 설정이나, 예쁘고 청순하고 착한 여자가 써니라는 새 이름으로 총성과 화염이 가득한 전쟁의 한 복판에 뛰어든다는 설정에서 일관된 논리를 찾기는 힘들다. 베트남 전쟁을 요즘의 코드로 극화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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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베트남 1975년 4월(위). (아래) 안케 전투 638고지 1973년. 


한국군 사단본부의 연예인 파티
 

1972년경으로 기억한다. 중부지역에 주둔한 한국군 사단 기지에 종군하여 내빈 막사에서 하룻밤 숙박한 일이 있다. 밤이 되자 사단장은 파티를 열었다. 아마 특파원 두 명을 접대한다면서 그 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부
사단장과 참모들도 합석한 자리에 같이 간 타사 특파원 한 명과 함께 초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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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한국군을 겨냥한 북한의 심리전 전단 2매. (2000년 호찌민시 소장자 것을 복사함)
                

아주 유명한 여자가수 일행이 위문공연을 하며 각 부대를 순회하다가 같은
내빈 막사에 머물고 있었다. 파티장에 불려 나온 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사단 고위층 이 사람 저 사람과 춤도 추어야 했다. 주흥에 겨워 자리가 다소 어지러워 졌을 때다. 반주를 하던 밴드의 악장이 초조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다급하게 애소한다.  

“저기요, 특파원님. 저 여가수 아무개가 제 아냅니다. 정말입니다. 좀 보호해 주세요. 특파원님이 보호해 주세요.”
나는 연예인 공연단의 부부를 구하고 싶었다. 손뼉 쳐서 좌중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쳐서 찬물을 뿌렸다.

“여러분. 아무개 가수가 밴드 마스터 부인이래요! 밴드마스터 부인이래요!”



베트콩과 미군의 초상


‘’님은 먼 곳에‘는 베트콩과 미군을 반공 시대와는 다른 오늘의 눈으로 바라본다. 


“사랑한다고 말 할걸 그랬지…망설이다가 님은 먼 곳에…”를 부르는 아내 수애를 보고 애잔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정말로 남편 엄태웅을 사랑해서 수애가 월남까지 갔을 까요, 하고 당위성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색소폰을 부는 양아치 정만이는 베트콩에게 잡혀 지하 땅굴에 잡혔다가 나온 후에는 홀연히 사람이 달라진다. 그는 베트콩의 저항전쟁의 소이를 깨달으며 당시대의 굴레를 벗어난다.

‘님은 먼 곳에’에 투영되는 미군의 초상은 부정적이다. 욕정과 탐욕을 드러낸다. 수애는 실종한 엄태웅의 소재를 찾아내기 위해서 미군 유력자와 담판하며 대가로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 그런 인상을 받는다. 이 영화는 베트콩과 미군을 대비하여 근래의 관점으로 베트남전을 재조명했다고 여긴다.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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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황의홍 2008.09.18 00:0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이사장님 오늘 뵙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 입니다.
    내가 하고있는 일들의 방향성이 맞고, 부족한 점도 깨닫게 된 시간 이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서 할일 들이 너무 많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잘 수립해야 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언론인권센터와 미지별 블로그 링크 걸어 놓고 갑니다.

    새내기 블로거에게 팁하나 말씀 드리면
    처음엔 어색하시 겠지만 댓글에 대한 답글은 반드시 달아서 독자와 소통을 하시면 블로그에 쓰시는 글이 많이 유연해 지리라 생각됩니다...




마담 빈 "진짜 美人은 능력 가진 창조적 여성"



'마담 빈', 베트남전 종군기자였던 내게 그녀는 전설이었다.
'파리 평화회담의 전설'의 대담이 얼마 전 극적으로 이뤄졌다.
단아하지만 결연했던 그녀를 서방언론은 '신비의 대상'으로 보았다.
부주석·교육장관을 10년씩 역임한 그녀는 베트남 최고위급 여성이다.
미스코리아 행사에서 우연히 그녀를 보았다.
긴급 인터뷰를 부탁해 만날 수 있었다.



지난 7월2일 오후 베트남의 호찌민시에서 열린 미스코리아 후보들의 한복 패션쇼 모습.‘ 한국-베트남 문화교류 한복 패션쇼’는 호찌민과 하노이에서 각 한차례씩 열려 베트남 정·관·재계 인사들로부터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을 자아냈다.

사진 = 하노이(베트남) 김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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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응웬 티 빈(Nguyen Thi Binh)
(오른) 안병찬 前한국일보 ‘사이공의 최후' 특파원· 現언론 인권센터 이사장


하노이는 중국과 1000년을 싸운 뒤, 항불 전쟁 9년과 항미 전쟁 20년을 버텨내고 프랑스와 미국을 이긴 용감무쌍한 도시다. 호찌민의 영묘가 있는 이 위대한 도시는 여전히 콧대가 높다.
지금 이 도시는 실리경제를 추구하랴, 드높은 혁명의 자존심을 견지하랴, 두 마리 토끼를 좇으며 파천황의 대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22년 전에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이래 경제개방의 길을 일로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 특파원으로서 사이공의 패망을 현장 취재했던 필자가 논설위원으로 14년 만에 호찌민시(옛 사이공)를 찾아간 것은 1989년. 그때 내쳐 수도 하노이를 가보고 어느새 또 다시 19년이 흘러 이번에는 한국일보가 주회한 ‘한국-베트남 문화교류 한복패션쇼’를 참관하고 호찌민시에 있는 한국총영사관과 통일궁 현장에서 ‘특파원 역사특강’을 하기 위해 동행했다.



■ 아오자이 입고 한복 행진 바라 본 응웬 티 빈

호찌민과 하노이에서 2007 미스코리아 두 명과 2008 미스코리아 후보 51명은 저마다 한복을 갈아입고 도합 200가지 색깔의 눈부신 조화를 연출하니 그대로 한류의 물결이 되어 흘렀다.

이 순간 20대 초반 신세대인 이들은 ‘미스코리아 상업주의’라는 눈총을 거리낄 것 없이,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한 왕년의 적도(敵都)와 친선하고 모국에 기여하는 한국적인 문화아이콘이었다.

태극기와 베트남 국기인 황성적기(黃星赤旗)를 게양한 하노이대우호텔은 혁명 수도에서 여전히 최고 최대의 호텔이다. 한국이 베트남에 투자하는 국가들 순위에서 첫 자리를 차지해온 저간의 정황을 일깨우는 15층 호텔.

그런데 지난 16일 밤 한복패션 문화행사가 열린 그랜드볼룸 주빈 석에서 뜻밖에‘전설의 여성’을 만났다. 밤색 아오자이에 흰 바지를 입고 나온 그녀는 한복 행진을 열심히 바라보면서 “아름답다”를 연발했다.

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 출신으로 혁명1세대 중 최고의 여성으로 꼽히는 응웬 티 빈(Nguyen Thi Binh). 그녀는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 측 수석대표로 파리평화회담에 참석하면서 서방 미디어에 의해 ‘마담 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40대 초ㆍ중반의 5년간 파리에서 외교활동을 펴면서 마담 빈은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서방 사진기자 레그 랭커스터는 베트남 여성의 쪽머리를 한, 단아하고 단호하며 품위 있고 결연한 그녀의 갸름한 동양미인형 얼굴들을 포착했다.

그녀가 파리평화회담 석상에서 연설하고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의 핵감축운동(CND) 집회에서 연설할 때면 세계 언론은 난리법석을 쳤다. 1970년대 초 필자 역시 사이공 주재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멀리 파리에 나타나는 마담 빈을 신비한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통일베트남의 교육부장관과 부주석을 각각 10년 씩 역임한 마담 빈은 퇴임 후 베트남아동기금 총재, 베트남평화발전기금 총재, 세계고엽제피해자총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갑자기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듯한 마담 빈의 생각을 직접 듣고 싶었다.

오늘의 이념과 관심을 투영하여 끊임없이 해석해내는 작업이 역사라면 ‘마담 빈’과의 만남을 통해서 시대의 순환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철저한 혁명가 출신의 마담 빈이 과연 ‘여성미의 과시’를 이벤트로 삼는 미스 선발대회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 궁금했다.

1927년 생. 금년 생일이 지나 만 82세. 단아하고 결연하던 얼굴은 둥그스름한 보살 할머니 얼굴로 바뀌었다. 그러나 정신은 명석했다. 빈 총재는 뜻밖에도 한국인 양자인 홍선(하노이 허머스앤선개발 대표)씨를 통역으로 대동했다. 호찌민국립대 법대를 졸업한 홍선씨는 유창한 동시통역실력으로 인터뷰를 무리 없이 연결했다.



■ “여성 최고의 미는 여성다움이다”

(안) 여성 최고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빈) 여성의 외형적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여성다움, 아름다운 전통적 여성상, 현모양처의 여성상 뿐 아니라 능력을 가진 창조적 여성상이 필요하다.

(안) 빈 총재는 항불 및 항미 전쟁에 평생을 투신했는데 현재 상황의 여성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보는가.

(빈) 전쟁 당시에는 여성의 역할이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기본적으로 여성스러움은 간직해야 한다.

(안) 여성 혁명 1세대의 최선봉으로 보아도 되는가.

(빈) 항불 및 항미 전에 앞장선 세대지만 최전열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투신한 비밀동지가 여럿 있다. 나는 여성으로 항전에 앞장선 세대의 하나일 뿐이다. 1945년 8월 혁명이 일어났을 때 열여덟 살이었다. 나는 항불 전쟁이 끝나자마자 항미 전쟁에 뛰어들어 30여 년 간 쉬지 않고 항쟁했다. 그리고 나라를 새롭게 세워 발전시키는데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다.

(안) 빈 총재가 베트남임시혁명정부 대표로 파리평화협정에 참가하고 1973년 1월 휴전이 성립했을 적에 나는 한국일보 특파원으로 남부 수도 사이공에 있으면서 휴전을 맞아 취재한 경험이 있다.

(빈) 그랬는가.

(안) 오늘 공연을 본 느낌은.

(빈) 일단 여성들이 많이 아름답다. 한국전통의상이 아름답고 화장이 아름답다.

(안) 아오자이는 어떤 의상인가.

(빈) 아오자이는 긴 옷이라는 뜻으로 민족 전통의상이다. 노동을 할 때 입는 옷은 아오바이라고 한다. 항전 시기에는 주로 아오바이를 입었다. 아오자이는 편한 옷이 아니다.

(안) 이틀 전에 미스 유니버스대회를 나짱에서 개최했는데 어떤 생각을 했나.

(빈) 직접 가보지 않았지만 그 같은 행사를 개최한 것은 좋은 일이다. 미를 뽐내며 여러 국가를 알리는 문화 활동의 일환으로 본다. 베트남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도 되고. 이런 행사를 개최하기는 쉽지 않다.

(안) 여성미의 산업화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

(빈) 여성은 미인대회에만 나가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일도 하고 경제활동에도 많은 역할이 있다. 모든 부분에서 활동하고 있다.

(안) 당신은 어떤 활동에 주력했나.

(빈) 인생을 살면서 문화 활동을 생활의 일부로 삼았다.

(안) 혁명 1세대로서 신세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귀하는 교육자로서 10년 간 통일베트남의 교육부 장관을 지내지 않았나.

(빈) 우리 세대보다 신세대는 발전했다. 우리 세대는 애국심과 조직사랑의 단체의식이 강하다. 그 당시 세대의 책임 때문이었다. 지금 세대의 문제는 전(前) 세대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전 세대의 의무로 지금도 교육문제에 노력을 들이고 있다.

(안) 지금 하는 일은 무엇인가.

(빈) 베트남아동기금 총재로 사회적으로 불우한 아동을 지원하고 따로 고엽제 피해자를 돕는 일도 한다. 평화발전재단 이사장으로서 정치활동을 한다.

(안) 한국인 젊은이를 양자로 삼은 이유가 있는가.

(빈) 우리는 2000년에 처음 만났고 2004년 한국방문을 계기로 양자를 삼게 되었다. 홍선은 귀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안) 한국 드라마를 보는 가.

(빈) 젊은이들이 많이 본다. 나 말인가. 나는‘주몽’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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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베트남의 호찌민시에서 열린 미스코리아 후보들의 한복 패션쇼 모습.‘ 한국-베트남 문화교류 한복 패션쇼’는 호찌민과 하노이에서 각 한차례씩 열려 베트남 정·관·재계 인사들로부터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을 자아냈다. 김주성기자



* 항불·항미에 앞장선 베트남 여성 혁명1세대 응웬 티 빈은 누구

응웬 티 빈(Nguyen Thi Binh) 그녀는 통일 이후 베트남의 성장 과정을 외교부장관, 교육부장관, 공산당대외위원장(외교부장관을 지도하는 자리), 부주석의 자격으로 직접 주도해 온 인물이기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실리추구 노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여성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여성만의 풍부한 감성뿐만 아니라 강단 있고 단호한 결단력이 요구 된다"고 말했다. 미인선발대회에 대해서는 굳이 양성평등주의의 비판적 시각을 갖지 않고 여성의 미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는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중부지방 꽝남 성 출신인 빈 총재는 젊은 시절에 사이공에서 교사가 되어 수학을 가르쳤다. 프랑스어는 어려서 천주교계 미션스쿨에서 배웠다. 파리협상 수석대표로 활동할 때 유창한 불어를 구사하여 서방 외교관들이 감탄한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홍선씨는 빈 총재의 2004년 5월 방한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했는데 후에 빈 총재가 유일한 양아들로 삼겠다고 해서 모자의 인연을 맺게 됐다고 전한다. 그녀는 현재 하노이 시내의 자택에서 장남, 며느리와 함께 검소하게 생활하고 있다.

국가 연금이 나오고 아들이 베트남 최대손해보험회사 부사장이므로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공병대 고위 장교로 근무한 그녀의 남편은 10여 년 전에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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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바실리카 2008.09.02 12:25 address edit/delete reply

    블로거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이 공간을 통해 기자생활 46년을 회고하고 르포르타쥬 저널리스의 산실이 되길 소망합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39 신고 address edit/delete

      바실리카 공화국 황의홍 대통령님, 훈수 많이 해 주에요.

  2. BlogIcon 커서 2008.09.06 20:20 address edit/delete reply

    안기자님(이렇게 불러드리는게 좋겠죠) 부고기사 잘봤습니다. 소설의 한 장면을 본 느낌입니다. ^^ 이 인터뷰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39 신고 address edit/delete

      문론이지요. 안 기자가 듣기 좋습니다. 부고기사가 소설같다니 즐겁구요.

  3. DJ파리체 2008.09.07 10:17 address edit/delete reply

    안기자님의 글을 보면서 항상, 서사와 서정과 현장이 어떻게 연동할 수 있는지 배웁니다. 건강하게 더욱 빛나는 활동 부탁드립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33 신고 address edit/delete

      서사와 서정과 현장의 연동. 너무 좋은 제목이네요. 고맙습니다. 댓글이 늦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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