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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37년 후배 기자와 영화관에 간 이유


 

독설 바람에 ‘님’ 보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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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웬 일이니?


아침 댓바람에 전화가 왔다. 베트남을 다녀와서 전설적인 베트콩의 파리회담 수석대표 ‘마담 빈’과 대담한 기사를 한국일보에 싣고 난 뒤다.

전화한 사람은 ‘시사IN’ 기자 고재열. 친애하는 고재열은 고집은 가슴 속에 두어두고 수줍은 체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친구다. 평소에는 제대로 안부신고를 안한다. 텔레비전의 지식 경연에서 장원을 하여 2천만 원을 타 살림에 보태 쓴 것은 두뇌 순발력이 뛰어남을 보여준다.
나는 물었다.


-니가 웬 일이니?
-저, 영화 ‘님은 먼 곳에’ 모시고 가서 보려고요?
-뭐야, 무슨 꿍꿍이속이 있지, 너?
-절대 아니구요, 베트남 영화라 ‘주간님’ 생각이 나서 그래요.


지금도 원(原) ‘시사저널’에서 함께 일한 후배들은 고재열처럼 나를 그때의 호칭대로 ‘주간님’으로 부른다. ‘시사IN’을 세운 후배들도 그렇다. 트래킹 코스로 제주올레를 연 전 편집국장 서명숙이 그렇고, 텔레비전 앵커를 천직으로 타고난 백지연이 그렇고, 광화문의 10만 촛불을 이끈 사회자 최광기가 그렇다.

그건 그렇다 치고 벌건 대낮에 한 여름 밤의 꿈을 함께 꿀 여자도 아닌 남자 후배 고재열이 ‘님은 먼 곳에’를 같이 보자니 재미도 없고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베트남을 소재로 한 영화이니 나와 같이 보자고 신청하는 마음씨가 가상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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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님은 먼 곳에’의 포스터를 처음 보고 문득 베트남에 향수를 느낀 것은 사실이다.


전형적인 베트남의 열대림 어구. 물이 괴인 논이 있고 그 양편으로 키 큰 야자수의 열대림이 시작된다. 열대림 사이로 틔어있는 푸른 하늘로 수많은 헬리콥터 편대가 멀리서 점점이 나타나더니 차츰 커지면서 이윽고 머리위로 굉음을 울리며 지나간다.


그 먼 곳 베트남의 논두렁 위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수애의 뒷모습. 왼손에 검은 가방 하나를 든 그녀가 오른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하늘 멀리 날아오는 UH-1휴이 헬리콥터 편대를 쳐다본다. 수애의 검은 치마가 헬기의 바람에 날린다. 그 순간이 한 폭의 정(靜) 사진에 고정되었다.

“1971년 베트남. 당신을 찾아 그곳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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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그 해에 나는 남부 베트남 수도 사이공에 특파원으로 갔다. 그리고  베트남 농촌과 정글과 상록의 키 큰 나무 타머린드, 파월 한국군과 연예인 위문공연단, 맥브이(미군지원사령부)와 C-레이션 그리고 투도 환락가를 보았다.


‘인터뷰이(interviewee)’가 되다


약속한 시간에 고재열이 인사동 집필실에 도착했다.
짐작한 대로 고재열은 책상 앞에 나를 앉히더니 우선 사진을 몇 장 찍는다. 
그리고 저는 인터뷰 하는 기자(인터뷰어)가 되고 나는 인터뷰 당하는 사람(인터뷰이)으로 만든다. 그는 한국일보의 미스코리아 후보 문화교류행사에 합류해서 ‘마담 빈’을 만난 사정을 이것저것 물으며 수첩에 기록 한다.


그리고 저는 인터뷰 하는 기자(인터뷰어)가 되고 나는 인터뷰 당하는 사람(인터뷰이)으로 만든다. 그는 한국일보의 미스코리아 후보 문화교류행사에 합류해서 ‘마담 빈’을 만난 사정을 이것저것 물으며 수첩에 기록 한다.


미국의 시각에서 본 월남전이 아닌, 한국의 시각에서 본 월남전을 그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이번엔 어떤 영화를 또 그려낼까. 무수히 날아오는 헬기를 바라보며 등지고 서있는 저 여자의 사연이 무엇일지, (어떤 브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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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1973년. 베트남 주재 특파원 시절에 사용한 정글화, 한국일보 사기와 완장, 정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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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파우치(1971년-1973년, 1975년, 1989년.)


무더운 날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인사동에서 종로3가에 있는 피키디리 극장까지 갔다. 내가 기자시절에 자주 관람하던 피카디리는 단성사, 중앙극장 등과 함께 몇 안 되는 일류 개봉관이었다. 영국 감독 데이빗 린의 ‘콰이강의 다리’도 피카디리 극장에서 보았다. 지금은 이름을 프리머스 피카디리로 바꾼 8관 1682석의 복합 극장이다.
고재열이 자진해서 영화 관람권과 음료수를 샀다.

전쟁드라마 ‘님은 먼 곳에’ 상영시간은 2시간 6분, 장내에 불이 켜지자 고재열이 대뜸 묻는다.

“감상이 어땠어요?”


리얼리티의 두 측면

“이국적 현실감(리얼리티)이 떨어진다.”

처음부터 ‘님은 먼 곳에’는 ‘왕의 남자’의 스타감독 이준익의 작품이라 기대를 모은다고 선전했다.
총제작비 100억 원을 투입한 베트남 전쟁드라마라고 하지만 베트남에서 살아본 나한테는 풍경과 사람의 현실감(리얼리티)이 영 아니다. 태국에서 현지 촬영을 한 탓이다.

태국의 산하와 베트남의 산하는 일본과 한국의 산하만치 다르다. 사람도 그렇다. 같은 동북아시아 사람이지만 중국 배우가 일본 사람 분장을 하면 너무 안 어울린다. 같은 동남아시아 사람이만 태국 사람과 베트남 사람은 아주 다르다. 망고 과일 맛도 다르다. 베트남 것이 더 달고 향기롭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한국 사람이 등장하는 부분은 더러 리얼리티가 있다. 예를 들면 연예인 위문 공연단의 풍속도다.

1971년에 한 여자가 남편을 만나기 위해 공연단에 끼어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으로 한국군 부대를 찾아 간다는 설정이나, 예쁘고 청순하고 착한 여자가 써니라는 새 이름으로 총성과 화염이 가득한 전쟁의 한 복판에 뛰어든다는 설정에서 일관된 논리를 찾기는 힘들다. 베트남 전쟁을 요즘의 코드로 극화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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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베트남 1975년 4월(위). (아래) 안케 전투 638고지 1973년. 


한국군 사단본부의 연예인 파티
 

1972년경으로 기억한다. 중부지역에 주둔한 한국군 사단 기지에 종군하여 내빈 막사에서 하룻밤 숙박한 일이 있다. 밤이 되자 사단장은 파티를 열었다. 아마 특파원 두 명을 접대한다면서 그 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부
사단장과 참모들도 합석한 자리에 같이 간 타사 특파원 한 명과 함께 초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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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한국군을 겨냥한 북한의 심리전 전단 2매. (2000년 호찌민시 소장자 것을 복사함)
                

아주 유명한 여자가수 일행이 위문공연을 하며 각 부대를 순회하다가 같은
내빈 막사에 머물고 있었다. 파티장에 불려 나온 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사단 고위층 이 사람 저 사람과 춤도 추어야 했다. 주흥에 겨워 자리가 다소 어지러워 졌을 때다. 반주를 하던 밴드의 악장이 초조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다급하게 애소한다.  

“저기요, 특파원님. 저 여가수 아무개가 제 아냅니다. 정말입니다. 좀 보호해 주세요. 특파원님이 보호해 주세요.”
나는 연예인 공연단의 부부를 구하고 싶었다. 손뼉 쳐서 좌중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쳐서 찬물을 뿌렸다.

“여러분. 아무개 가수가 밴드 마스터 부인이래요! 밴드마스터 부인이래요!”



베트콩과 미군의 초상


‘’님은 먼 곳에‘는 베트콩과 미군을 반공 시대와는 다른 오늘의 눈으로 바라본다. 


“사랑한다고 말 할걸 그랬지…망설이다가 님은 먼 곳에…”를 부르는 아내 수애를 보고 애잔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정말로 남편 엄태웅을 사랑해서 수애가 월남까지 갔을 까요, 하고 당위성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색소폰을 부는 양아치 정만이는 베트콩에게 잡혀 지하 땅굴에 잡혔다가 나온 후에는 홀연히 사람이 달라진다. 그는 베트콩의 저항전쟁의 소이를 깨달으며 당시대의 굴레를 벗어난다.

‘님은 먼 곳에’에 투영되는 미군의 초상은 부정적이다. 욕정과 탐욕을 드러낸다. 수애는 실종한 엄태웅의 소재를 찾아내기 위해서 미군 유력자와 담판하며 대가로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 그런 인상을 받는다. 이 영화는 베트콩과 미군을 대비하여 근래의 관점으로 베트남전을 재조명했다고 여긴다.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