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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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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베트남'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17.04.30
    베트남 어머니 고통을 조각하는 미국인
  2. 2017.04.30
    왜 베트남에 가가
  3. 2017.04.29
    통일베트남 42주년-어머니의 힘
  4. 2017.04.28
    베트남 2017년 4·30 전야에 (1)
  5. 2017.04.19
    (12) [호찌민 통신-'피아노 건반 위의 인문학 강좌' 주은영 교수]
  6. 2017.04.19
    (9) [호찌민 통신-김종각 발행인 베트남관]
  7. 2017.04.18
    (7 ) [호찌민 통신-홍종윤 교수의 베트남관, 최신세대관]
  8. 2017.04.17
    (6) [호찌민 통신-윤석민 교수의 베트남관, 최신세대 관]
  9. 2017.04.17
    (8) [호찌민 통신-김영희 교수의 베트남관, 최신세대관]
  10. 2017.04.16
    (13) [호찌민 통신-사이공 중앙우체국 앞 갑자기 목메다]

 

[2017430일 통일베트남 42주년에 붙여]

 

 

베트남 어머니

 

고통을 조각하는 미국인

 

 

 

주인공은 미국인 조각가 짐 기온이다. 그는 베트남통일전쟁의 영웅인 한 어머니의 초상을 제작하고 있었다. 꽝남성 꽝히엔 마을에 사는 늙은 베트남 어머니 응웬 티 녓은 통일전쟁에서 남편과 아들 4형제를 잃었다. 

 

 

 

남편과 4남 바친 녓 어머니

 

짐 기온은 1969년 베트남의 더러운 전쟁에 참전했는데 4년 전 베트남을 다시 찾아 각지를 여행하면서 베트남전쟁의 고통과 베트남사람의 상처를 피부로 느꼈다. 그는 중부도시 다낭에서 우연하게 호앙 띠 킴 즁이라는 이름의 베트남 여자경찰관을 만나 응웬 티 녓의 이야기를 들었다. 1966년 한 해에만 녓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 둘을 전쟁에서 잃었다. 그녀는 흘릴 눈물도 말라버린 인고 속에 민족해방군이 이동할 비밀 터널 공사 여섯 개를 파는 작업에 참가했다. 그러다가 적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두 눈을 잃어 장님이 되었다.

 

     

자비로운 두 눈가진 동상

 

 

 

 

이 이야기를 들은 기온은 가슴이 저미어 녓 어머니의 동상을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기온은 그녀와 모자의 인연을 맺고 집에 살면서 동상 제작 작업에 착수했다. 용감하고 자비로운 두 눈을 가진 동상을 만들 참이었다.

기온은 녓 어머니가 가르쳐 준 것은 베트남인의 고결한 성품과 관용이라고 말하고 있다.                                                            

 

<베트남 국영 영자지 <베트남 뉴스> 일요판

 베트남의 고통을 조각하는 미국 퇴역군인’>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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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트남에 가나

 

 

 

나의 주변에는 베트남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베사모’(베트남을 사랑하는 모임)를 만들어 매년 하노이와 호찌민시를 친선 방문합니다.

 

 

한 줌의 재

 

 

어떤 사람은 베트남의 분단시대와 통일시대에 걸쳐 반세기를 살면서 맺은 인연으로 호찌민으로 이름을 바꾼 사이공에 뼈를 묻습니다. 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라이따이한)의 보호자를 자임하여 빠빠 으로 불리던 정주섭 씨는 연전에 30여년을 산 호찌민에서 죽어 한 줌의 재가 되었습니다.

 

 

혼이 씌어

 

 

베트남의 혼이 씌듯 땅에 이끌린 한국인 제2세대도 있습니다. 호찌민 국가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구수정 박사는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베트남 사람들의 고통을 밝혀내고 한베평화재단을 만들어 뜻있는 운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내가 상임고문으로 한 때 고락을 함께한 <베트남교민신문> 대표인 40대의 김종각 변호사도 한국인 제2세대입니다. 그는 2005년에 국제건설계약관리 변호사로 호찌민에 첫발을 들여 놓았다가 이 땅의 마력에 빠져 정주하게 됩니다. 지금은 국영 베트남통신사와 협업하여 신문 이름을 <베한타임스>로 바꾸어 발행하고 있습니다.

 

 

강렬할 태양 패연(沛然)한 소나기

 

 

나는 사이공의 강렬할 태양과 패연(沛然)한 열대성 소나기의 혼이 씌인 사람입니다. 풍토는 베트남이 온전히 자기 혼자의 힘으로 항불전쟁에서 항미전쟁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통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민족적 저력을 상징하는 듯합니다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자주적인 힘으로 최후의 승리를 쟁취한 약소민족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언론인 안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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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30일 통일베트남 42주년에 붙여]

 

 

베트남

 

 

어머니의  

 

 

 

 

위대한 인고(忍苦)

 

수도 하노이 리 쭈우엉 끼엣 거리 36번지의 베트남여성박물관. 2층 전시실의 한 벽면을 늙은 어머니들의 초상이 채우고 있다. 현판은 이렇게 기록한다.

 

베트남의 통일전쟁은 어머니들이 침묵으로 인고(忍苦)한 희생이 없었다면 성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들의 아들과 남편은 모두 조국을 위해 죽었다.

 

 

 

영웅적 어머니명예칭호

 

 

 

1994924일 베트남국회 상임위원회는 통일 전쟁에서 2명 이상의 자식이 생명을 잃은 경우, 외아들이나 무남독녀가 생명을 잃은 경우, 남편과 자식이 생명을 잃은 경우, 그리고 자기 목숨을 잃은 경우 어머니를 기려서 베트남의 영웅적 어머니라는 명예칭호를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기록에 따르면 200812월까지 모두 5만 명의 어머니가 베트남의 영웅적인 어머니칭호를 받았다.

 

 

 

자식 10손자 2명 바친

 

 

어머니

 

 

'민족해방군의 영웅'

 

 

가장 특별한 예는 10명의 자식과 2명의 손자를 바친 꽝남성의 어머니 응웬 티 투이다. 이어 8명의 자식을 바친 호찌민시의 어머니 판 티 뉴와 응웬 티 란의 이름이 따른다. 이들에게는 베트남의 영웅적인 어머니의 칭호와 함께 베트남민족해방군의 영웅의 칭호가 주어졌다. 국가는 이 어머니들을 보훈대상으로 결정하고 연금과 주거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알린다.

그런 영웅 어머니들은 모두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다. 어머니의 힘은 인간의 원천적인 가치라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2013년 '어머니의 힘' 축약하여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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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30일 통일베트남 42주년에 붙여]

 

 

베트남

 

 

그 불굴의 자주정신

 

 

탈오리엔탈리즘의 안광(眼光)

 

 

 

    하노이 전쟁박물관에서.

 

 

 

 

지난 4월 초에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특설(特設)-‘사이공 의 새벽’ 안병찬 특파원과 동행하는 호찌민 통일현장 취재 단』이라는 제목의 실습교육을 편성, 주관했다. 이 교육의 기획자언론정보연구소장 윤석민 교수(언론정보학과)였.

 

 

 

 

우리 최신세대와

 

'베트남의 빛나는 자주정신'

 

 

교육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째로 우리 최신세대에게 보여 주고 가르치고자 한 바는 '베트남의 빛나는 자주정신'이였다. 둘째는 '기록문학'의 표현력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밝히고 싶은 것은 이번 교육이 최신세대에게 상당한 교육효과를 올렸다는 점이다.

오늘도 내 머리 속에서는 한국 비무장지대 장단(長湍) 역 터에 있는, 북으로 달리려다 멈춰버린 녹슨 증기기관차와 베트남의 통일급행열차가 교차하고 있다.

 

"저희들에게

평화가 왔어요"

 

트남 미래세대의 통일기념일 행진(호찌민시 설치화)

 

 

 

그러므로 해마다 4·30 남부해방기념일(사실상의 통일기념일)에 맞추어 베트남을 방문할 때 마다, 그 땅과 그 민족은 나의 심장을 고동치게 만든다.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아시아 사람으로서의 독립적 관점을 확고히 다지도록 만든 존재이다.

금년에 베트남은 그 불굴의 자주정신과 자주독립역량으로 통일을 달성한 이래 42주년을 맞았고, 한반도(조선반도)는 외세의 힘으로 광복한 후 72주년을 맞았다.

 

 

 

'아시아적 가치'

 

 

베트남이야 말로 아시아의 안광(眼光)으로 빛을 내는 나라라는 생각이다. 베트남은 세상을 직시하며 불퇴전의 결의와 불굴의 자주정신으로, 온전히 자기 홀몸의 의지와 역량으로 3대 초강대국 침략세력을 연거푸 몰아내고 해방과 독립과 통일을 쟁취한 존재이다.

5년 전 2012년 9월 19일에 한국기자협회의 초청을 받아 '한국-베트남 기자 콘퍼런스'에서 특강을 한일이 있다. 베트남 측은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베트남기자협회장이자 공산당 기관지 '인민' 편집국장인 뚜언후을 단장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언론인 등 12명이었다. 한국 측 참가자는 「한겨레신문」 권태선 편집인, 「한국일보」 이계성 논설위원, 연합뉴스 김선한 국장, KBS 정필모 해설위원 등이었다.

그날 특강에서 나는 분단시기인 1971년 주월특파원 시절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37년 동안 기록해온 사진자료 130장을 파워포인트에 담아서 보여주며, 베트남 보도의 편년사를 설명해나갔다. 그 때 특별히 강조한 것은 바로 '아시아적 가치'였는데,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아시아적 가치'가 뭐냐고 질문했다.

답변은 "아시아 사람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가치"였다. 그것은 아시아의 안광(眼光)으로 세상을 직시해야한다는 뜻이 된다. 아시아적 가치란 '탈오리엔탈리즘'의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호찌민시 인민위원회와 호찌민 동상

 

 

 

 

통일 베트남에서

 

배운다

 

 

우리는 베트남의 통일운동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베트남이 보여준 불퇴전의 자주정신은 5·7 항불전승과 4·30 항미전승의 정신이  근간이다.

한국과 베트남의 분단과 통일의 조건은 다른 점도 있고 동일한 점도 있다. 베트남은 자존망대(自尊妄大) 한 중국 대륙에 1000년 간 맞서며 독립을 지켜냈고, 유럽 제1강대국 프랑스에는 100년의 저항투쟁 끝에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더구나 세계 초강국가인 미국을 상대해서도 20년 전쟁을 벌여 끝내 승리했다.

그 강인한 저력으로 베트남은 스스로 해방과 통일을 완성했다. 그야말로 세상에 없는 자주정신의 화신(化身) 이다. 지금 베트남은 방약무인(傍若無人)으로 못할 짓이 없는 것처럼 제 근육을 과시하는 초강대국 미국에 종속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눈높이로 현실적인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베트남통신사(TTXVN) 역사자료관. 

 

항불, 항미 전쟁에 종군하여 순직한 250명의 초상 앞에서.

 

 

 

많은 한국인들은 베트남의 자존을 보지 못하고 오직 경제적인 잣대 하나로 베트남을 평가하려든다. 최근 베트남 달랏대학에서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유태현 전 베트남 대사는 내가 관여하던 주간 베트남 「교민신문」(현 「베한타임스」)에 이런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우리가 베트남에 우월감을 가질 근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베트남 국민은 물질적인 풍요보다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여 국가와 개인의 최고 가치인 독립과 자유를 국가 이념으로 설정한 품위 있는 국민입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이번에 호찌민이 초행인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장 윤석민 교수는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을 시적인 언어로 인상적으로 기술했다.

 

 

 

베트남-

 

하늘,땅, 산과 물, 풀과 나무들

 

강인한 생명력이

 

붉은 피로 흐르는 나라

 

 

하늘, 땅,  산과 물, 풀과 나무들, ᆢ 이  모든 것이 본래 하늘과 땅, 산과 물,  풀과 나무들의 본 모습이 이러하겠거니 싶게 눈 가는 모든 곳이 비옥한 푸르름으로 가득한 나라. 고엽제, 네이팜, 수만 톤의 tnt도 파괴할 수 없었던 강인한 생명력이 붉은 피처럼 흐르는 나라.

 

 

 

베트남 국민ㅡ

 

민족정신, 자존감, 리더십,

 

조직력, 용기, 인내심,

 

생명력을 지닌 사람들 

 

 

베트남의 눈부시게 푸르고 풍요로운 자연이 만들어낸 밝고 고우며 다정다감하고 나눌 줄 아는 선한 성품, 그리고 지혜와 의지가 엿보이는 깊은 눈매와 뚜렷한 이목구비 등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사람들.중국 프랑스 미국 등 제국 열강의 침략에 굴하지 않는 민족정신, 자존감, 리더십, 조직력, 용기, 인내심, 생명력을 지닌 사람들.공동체를 이루어 더불어 살며 아이들과 노인들을 최선을 다해 부양하고 후세 교육에 애쓰며 옷차림을 갖추고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는 예의범절을 지닌 사람들.                   [윤석민]

 

 

사진=베트남 통일 4.30 해방기념일의 밤.

호찌민시 동코이 거리를 메운

오토바이 축제인파(2012년 4월 30일 안병찬 찍음)

 

 

 

미국주의와 서구주의

 

 

이때에 즈음하여 나는 한국 사회에 뿌리를 깊이 내린 두 가지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한국 정치·사회·문화의 주류세력이 선도하는 '미국주의'와 '서구주의'의 문제이다. 이 주류세력을 구성하는 것은 권력자와 기득권세력과 지식인 집단이다. 이들 가운데 어지간히 많은 수는 미국주의와 서구주의를 동화(同化)하여 마치

"우리 것은 아니고 미국과 서양 것이 최고다"하고 믿는 모습이다.

그들은 오리엔탈리즘에 젖어있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문명을 주변화하는 서양 중심관이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위압하고 지배하고 재구성하는 서양문명의 관점이고 책략이다.

두 번째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우리는 아시아인이면서 동양인이다. 그런데 흔히 중국문화와 동양문화를 혼동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문화권을 동화한 것이 아니라 범동양문화권에 귀속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한다. 베트남 또한 우리와 이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범동양문화권에 소속한 국가이다.

베트남 자주정신을 직시하며 '아시아의 안광(眼光)'을 우리의 사회문화적 테제로 설정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17년 4·30 전야에

언론인 안병찬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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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강신표 2017.04.28 22:54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병찬 기자의 기백은 내가 1960년대 처음 만났을 때 받은 그 열기 그대로 "여기 지금" 읽은 글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산전수전 속에서 더욱 원숙해진 지혜로움은 새로운 세대에게 많은것을 전하고 있다. 지난 글들을 다시 읽고, 또 많은것을 일깨워 주었소. 감사합니다.




 

 

[주은영 교수]

 

 

'피아노 건반 위의 인문학 강좌'

 

 

음악으로

 

역사의 흥망성쇠를

 

이야기 하자

 

 

 

 

"언론정보학과 학생들 만남은

기쁘고 특별한 일"

 

안녕하세요. 저는 호찌민 국립음대 대학원에서 피아노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주은영입니다. 서울 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학생들을 베트남 호치민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 인연은 저로서는 매우 기쁘고 특별한 일입니다. 2007년에 호치민에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10년 남짓 살아오면서, 이곳에서 교수직을 수행하며 연주가로써 활동할 수 있는 것을 매우 감사하게 여기고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사회와 자연을 인식하는

 

하나의 힘

 

저는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들에 예술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연주에 투영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럼 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예술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삶의 모든 경험과 독서, 여행, 콘서트, 작품 전시회, 박물관 관람 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 이 모든 정보가 우리 뇌의 전두엽에 저장되어 있다가 어떤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서 재편성되어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연주가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음악은 인문학의 한 분야입니다. 음악은 우리가 사는 사회와 자연을 인식해 가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인간의 정신을 입은 음악의 힘은 인간 본성과 떨어져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음악으로 하여금 역사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게 해야 합니다.

 

바흐

 

17세기 엄격한 종교 훈계

 

바로크 음악  

 

바흐의 음악을 배우고 연주하려면 17세기 유럽 사회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바로크 음악 기간에 사람들의 욕망과 자유는 교회의 엄격한 훈계 아래 있었습니다. 하루의 일과는 미사의 벨 소리를 듣는 것 에서부터 시작하여 헌신과 기도로 순환합니다.

음악의 선율과 리듬은 미학적 정감의 이론 하에 구별되어 관리를 받았습니다. 바흐의 음악을 들어보십시오.

 

[피아노 연주]

바흐 파르티타 1번 프렐류드

 

 

모차르트

 

왕궁과 귀족의 살롱음악

 

우아하고 화려하게

 

18 세기에 이르러서 음악은 엄격한 교회의 훈련을 벗어나 서서히 왕궁과 귀족의 살롱으로 옮겨갑니다. 왕족과 귀족이 우아하고 화려하게 차려 입고 이야기를 나누는 연회의 분위기와 환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시대에는 인간의 사고와 이성의 해방이 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귀족층의 살롱 음악은 그리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으면서 극도로 정제되고 세련된 품위를 보여줘야 합니다. 모차르트 음악을 들어보십시오.

 

[피아노 연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k414

 

 

강력하고 단순한 메시지

 

음악의 대중혁명 이끈 베토벤

 

클래식 정점에 도달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면 드디어 베토벤의 시대가 오고 클래식 음악의 정점에 도달합니다. 유럽 사회는 혁명의 도가니에 빠집니다. 베토벤은 귀족과 왕궁의 살롱에서 시녀 노릇을 하던 음악을 대중 앞으로 끌어내립니다. 그런 음악은 강하고 단순한 매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귀족과 달리 하루 종일 노동과 과업에 지친 일반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합니다.

먼지를 털고 가장 깨끗한 옷을 꺼내 입고 지친 몸을 이끌고 나와서 들을 수 있도록 영혼의 빵이 될 수 있는 매시지들 담아야 합니다.

여러분과 베토벤의 위대한 정신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는 육체와 삶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신이 그에게 주문한 음악적 소명을 완성하리라 결심하고 강한 심리적인 압박에 자기를 내던졌습니다.

 

[피아노 연주]

베토벤의 운명 제1악장 도입부, 열정 소나타 부분, 월광 소나타 부분

 

비엔나의 슈베르트

 

끊임없이 방랑하는 자연의 소리

 

나뭇잎 소리, 새들의 노래, 시냇물 흐르는 소리

 

이제 비엔나에 슈베르트가 등장하면서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이 흘러갑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사상과 감정들을 자유롭게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떤 것에, 누구에게 속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충실하게 됩니다.

베토벤이 평생을 위대한 혁명가로 살았을 때, 슈베르트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지만 또 다른 위대함이 존재합니다. 그의 음악은 천재적으로 조절된 음악적 순수성, 인간성 그리고 겸허함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자연의 소리에 끊임없이 방랑하는, 나뭇잎의 속삭이는 소리, 새들의 노래 소리,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 또 갑자기 대조적으로 폭풍의 위세가 울리기도 합 니다.

[피아노 연주]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k960, B-flat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특별한 해후

 

죽음 앞둔

 

침상의 피아노 연주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존경하고 숭상했습니다. 베토벤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슈베르트는 용기를 내어 베토벤을 만나러 갔습니다. 이 때 베토벤은 57살 슈베르트는 30의 나이었습니다.

그가 베토벤이 누워있는 방에 들어서자, 베토벤은 슈베르트에게 그의 음악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슈베르트는 그의 작품을 피아노로 연주했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을 듣고 있던 베토벤은 당신의 음악은 위대합니다. 우리가 진작 만났었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며 감탄합니다.

슈베르트는 위대한 음악가가 죽어간다고 생각하니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방을 뛰쳐나갑니다. 베토벤은 1827년 사망합니다. 그런데 베토벤 사후 1년 만에 슈베르트도 31일 살의 나이로 짧은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들은 생전에 이렇게 안타깝게 해후를 했지만, 죽어서는 비엔나 중앙묘지에 나란히 묻혀 있습니다.

 

 

조국 폴란드에 대한 사랑 넘친

 

쇼팽

 

전쟁에 휩싸인 처절한 낭만

 

할 이야기가 너무 많군요. 이제 또 다른 낭만 작곡가 쇼팽의 작품을 들어보겠습니다. 그의 음악에는 위험에 처해있는 조국 폴란드에 대한 사랑이 넘칩니다. 이렇게 19세기 낭만은 전쟁에 휩싸인 처절한 낭만입니다.

 

[피아노 연주]

쇼팽 발라드 1, 즉흥 환상곡

 

 

민족 고유한 특징

 

차이코프스키

 

국민악파의 선구

 

그리고 음악에서 자신의 민족의 고유한 특징을 살려내는 민족주의 음악이 등장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이가 대표합니다. 또한 러시아의 국민 악파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이 있습니다. 동양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색채감이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선보인 림스키 코르샤코프, 음악을 풍자와 대화의 차원으로 이끄는 천재 무솔그스키 그리고 음악이 마치 화학의 원소처럼 영롱하게 화합하는 보로딘의 음악들이 그것입니다.

 

[피아노 연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부분

 

 

20세기 전쟁과 상실

 

어떤 것도 얽매이지 않는

 

무조 음악

 

20세기에 이르러 전쟁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심리적인 분열을 일으키며, 선악이 모호해지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조성 체계가 무너지며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조 음악이 등장합니다. 비엔나 현대 12음기법 작곡가 베르크의 작품을 들어보십시오.

 

[피아노 연주]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 부분

 

 

베트남 클래식 음악환경은

 

 

이제 음악을 통한 인문학 이야기는 마치기로 하고, 베트남 클래식 음악 환경에 대해 조금 언급하겠습니다. 제가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를 돌이켜 보면, 내가 이곳에서 무슨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호찌민 음악원과 수시로 열리는 국제적인 교류 음악회를 보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음악 교육 인프라는 본래 경제 성장과 맞물려 발전하는 경향 때문에 베트남의 클래식 음악은 그 저변이 크게 확대되지는 못했어도, 해를 거듭해 갈수록 괄목할만한 발전을 해가고 있다.

베트남 출신의 가장 대표적인 세계적 연주가는 피아니스트 당타이손이 있습니다. 그는 베트남이 전쟁의 상흔이 아직 가시지 않은 1980년 제10회 폴란드 쇼팽국제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불과 몇 해 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한국인 처음으로 우승한 그 콩쿠르입니다.

베트남에는 대표적인 음악교육기관으로 하노이, 호찌민, 후에 세곳에 국립음악원이 있습니다. 음악원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콘서바토리(음악학교) 형태입니다. 베트남은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자국의 전통 음악의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특히 전통악기들과 가락의 근원이 한국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호치민 국립 음대측은 한국과의 국악교류를 다각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주은영]

현 호치민 국립음대 대학원 정교수, 하노이 예술대학 초빙교수

모스크바 그네신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학위,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립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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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보는 시각]

 

 

 한-베 미래 발전 이끌어 갈 

 

 

깨달음 

 

 

'황금의 결합'  

 

 

 

 

  

[질문] :

 

종각 대표는 호찌민에 정착하여 10년이 됐지요.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언론인 안병찬

 

 

 

[답변-김종각  베한타임스 발행인]  :

 

 

나는 과거 역사 문제를 얘기하기 보다는 미래 지향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베트남은 한국의 발전 경험을 아는 것이 필요하고 한국은 베트남의 신 성장 동력을 빌리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양국은 서로 필요함을 채우면서 미래 발전을 이끌어가는 황금 결합을 기해야한다고 믿습니다.

 

 

상대방 사회 가치 발전에

 

희생적 자세도

 

 

문제는 서로 이해가 부족하고 너무 단기적으로 이익을 좇는데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해의 일치를 보자면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상대방 사회의 가치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할 희생적 자세도 요구됩니다. 더 큰 미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서 지금은 지원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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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홍종윤 교수의

베트남관·최신세대관

 

 

질문 :

이번 취재학습단의 지도 교수 겸 운영 총책으로서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에 대한 인상, 그리고 제자들의  학습태도에 관한 평가를 간단히 알려 주시면 고맙겠어요. ^^                               안병찬

답신 :

베트남에 인상을 물어보신 카톡 메시지를 제가 놓쳤었네요. 송구합니다.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에 대한 인상은 아래와 같습니다.

 

"외유내강 항전역사, 

그것을 이끈 지도자들"

 

우선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들에게 받은 인상은 한마디로 외유내강입니다.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외세 항전의 역사와 그것을 이끈 지도자들,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국민들에 대한 자긍심/자부심이 모든 베트남 사람들의 사고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고한 역사의식

전쟁을 기록하고 기억하되"

 

그러한 강고한 역사의식에 기반하여, 전쟁을 기록하고 기억하되, 한국을 포함한 전쟁 당사자국들과도 실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지향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베트남 국민들이 겉으로 보기에 대부분 친절하고 순수하고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으며,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경직성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언론정보학과 청춘들

상당히, 어떨 때는 너무도 진지하다"

 

학생들의 학습태도는 서울대생들이 일반적으로 그러하지만 상당히, 어떨 때는 너무도, 진지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때로는 생기가 없게 비춰질 수 도 있는데, 막상 겪어보면 실제로는 자기 맡은 일들을 꼼꼼하고 성실하게 수행하는 학생들이 대분분이라서, 저는 과도한 진지함을 그냥 서울대생들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앞뒤를 재지않고 그냥 좌충우돌 부딪쳐보는 것도 좀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물론 가끔은 앞뒤 재지않고 그냥

좌충우돌 부딪쳐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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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장

윤석민 교수 

 

[베트남관(觀)

   

민족정신, 자존감, 리더십,

 

조직력, 용기, 인내심, 생명력

 

지닌 사람들

  

호찌민 전쟁증적박물관의 윤석민 언론정보연구소장

 

윤석민 소장교수님.
이번 교습단의 단장의 입장에서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에 대한 인상과 그대의 제자인 최신세대를 바라본 견해를 가단히 피력해 주시면  고맙겠어요.                                                       안병찬



윤석민 교수

네ᆢ

 

1. 베트남하늘, 땅,  산과 물, 풀과 나무들

 

 하늘, 땅,  산과 물, 풀과 나무들, ᆢ 이  모든 것이 본래 하늘과 땅, 산과 물,  풀과 나무들의 본 모습이 이러하겠거니 싶게 눈 가는 모든 곳이 비옥한 푸르름으로 가득한 나라.
고엽제, 네이팜, 수만톤의 tnt도 파괴할수 없었던 강인한 생명력이 붉은 피처럼 흐르는 나라.

 

2. 베트남 국민ㅡ민족정신, 자존감, 리더

십, 조직력, 용기, 인내심, 생명력을 지닌

사람들 

 

베트남의 눈부시게 푸르고 풍요로운 자연이 만들어낸 밝고 고우며 다정다감하고 나눌 줄 아는 선한 성품, 그리고 지혜와 의지가 엿보이는 깊은 눈매와 뚜럿한 이목구비 등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사람들.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제국 열강의 침략에 굴하지 않는 민족정신, 자존감, 리더십, 조직력, 용기, 인내심, 생명력을 지닌 사람들.
공동체를 이루어 더불어 살며 아이들과 노인들을 최선을 다해 부양하고 후세 교육에 애쓰며 옷차림을 갖추고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는 예의범절을 지닌 사람들

 

 

[최신세대관(觀)]

 

 앳되고 순수하

 

탈권위적인 인성을

 

보유한 존재들 

 

혼자 자라 오랜 기간 입시경쟁에 짓눌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소통능력 내지 사회성이 약하지만, 학업능력으로 치면 과거 어는 세대보다 우수한 글로벌  엘리트로 성장 가능한 아이들.
앳되고 순수하고 탈권위적인 인성을 보유한 존재들.

때로 미숙하고 철이 없지만 건강하고 활기차며 꾸밈이 없는 사랑스런 아이들.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 능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실천하고, 이기적 행복추구를 넘어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진정한 열리트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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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영희 언론사 교수의

베트남관 최신세대관

 

호찌민 중앙우체국 앞 김영희 교수와 기념 촬영(사진=언론정보학과 )

발신 : 김영희 교수님.

언론사학자로서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현장에 임한 젊은 후세대 제자들이 어떤 장점을 보였는지. 그들에게 아쉬운점은 무엇인지, 들려 주시면 나의 인물 소묘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수신 : 선생님 안녕하세요. 답신 메일로 보냈습니다.^^

[김영희 교수의 메일]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을 보라"

통일에 대한

정신력의 승리

몇 년 전 하노이와 그 근교도시를 여행하며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베트남의 저력을 발견하고, 발전 가능성이 큰 나라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 필리핀을 여행했을 때, 베트남 사회와 국민 생활 모습과 많이 비교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번 2017년 4월 <‘사이공 최후의 새벽’ 안병찬 특파원과 동행하는 호찌민 통일현장 취재학습단> 일원으로 호치민을 방문하면서, 특히 전쟁증적박물관과 구찌땅굴을 돌아보며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베트남 국민들은 강력한 무기들을 엄청난 물량으로 퍼부었던 세계 최강국가 미국과의 전쟁을 허술해 보이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무기와 수단으로 대적해, 결국 승리했다.

그것은 베트남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정신력의 승리일 것이다. 그런 정신력을 가진 국민과 국가라면 오랜 기간 전쟁으로 파괴된 사회를 복구하고, 성장하려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은 극복해갈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개발의 과실 특정 계층에

편중될 가능성

다만 중국의 예와 비슷하게 공산주의체제에 자본주의 경제제도가 섞여 있어, 개발과정의 과실이 특정 계층에 편중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전쟁이 끝나고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나, 정신적으로 해이해지면서 만연하는 부정과 부패를 어떻게 줄이느냐가 큰 과제일 것이다.

"취재학습단의 청춘과 활기 " 

윤석민 교수의 열정이

만들어 낸 작품

해외 학습단은 서울대학교에 언론정보학과가 설립된 이래 처음 보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이 학습단은 미래뉴스센터를 지휘하는 윤석민 교수의 의지와 열정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윤석민 교수는 미래뉴스실습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현장을 발로 뛰고, 사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열정적인 진정한 언론인들로 성장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언론정보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그런 언론인으로 키우고 싶어 80평생 현장주의 언론을 실천하고 있는 원로 언론인 안병찬 선생님을 모시고 베트남 통일의 취재 현장을 보고, 느끼게 한 것이다.

함께 다니며, 함께 보고,

베트남 음식 먹으며, 대화 나누고

학생들은 호치민시에 도착한 첫날부터 카메라와 필기도구를 들고 다니며 견학한 곳곳을 기록으로 남기느라 분주했다. 미래뉴스실습 과목이 3월초 개강하고 한 달 남짓 지난 시간이라 처음에는 서로 잘 모르던 학생들이 함께 다니며, 함께 보고, 베트남 음식 먹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점점 서로 더 많이 애기하며 웃고, 표정이 밝아지고 있었다.

호치민 방문 둘째 날, 1975년 4월 29일 사이공 함락 하루 전날 통행금지로 아무도 다니지 않는 빈 거리를 달려 우체국에서 마지막 취재기사를 송고한 안병찬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학생들은 현장 취재의 긴박한 상황을 공감하고 있었다.

 텅빈 거리, 공포의 순간

방문단의 일원이 되어 안병찬 선생님으로부터 지난 시절의 언론활동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 역시 텅 빈 거리, 그 공포의 순간에도 기지를 발휘해 마지막 기사를 송고한 안병찬 선생님의 직업정신이 실감으로 느껴졌다.

여행자 거리 낭만 속으로

둘째 날 늦은 시간 일정이 끝난 후, 학생들은 모두 여행자거리에 내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해외 취재현장을 직접 돌아보며 그들은 정말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이번 해외 학습단에 큰 의미를 갖지 않고 함께 온 학생들도 있었던 것 같다. 더위에 쉽게 지친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학생들은 서로 더 가까워졌고, 현장의 의미에 대해 많은 것을 체험한 소중한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김영희 (미디어 역사연구, 언론학과 교수, 전 언론정보연구소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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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지난

 

사이공 중앙우체국

 

갑자기 목메다

 

 

 

 

 

 

42년 전.

1975년 4월 29일 항복전야, 오전 9시 30분. 사이공 중앙우체국 기계실.

 

 

사이공 최악의 날 428

 

텔렉스 호출번호케이2244 한국일보 서울(K2244 HKILBO SEOUL)이 열리자  기사가 텔레스로 토닥토닥 전송된다 .

 

사이공 최악의 날 428…….”

……

……

……

……

 

32분의 송고가 끝나는 순간, 돌연 탁 탁 탁 탁하고 급한 타자 음이 울렸다.

 

 

본사 최후 교신

 

- 누구냐, 미스터 안 그곳에 있느냐?

 

영문으로 찍혀 나온다. 외신부장이 나를 찾는 소리다. 본사 텔레타이프 앞에 앉아 있을 조순환 부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책상 앞에서 대면하는 듯한 근접감이 들었다. 아득한 거리였으나 둘이 호젓하게 마주앉은 기분이다.

 

- 필름은 엘에스티가 떠나는 장면과 대사관 스케치 중심입니다.

  태극기 내리는 필름은 아직 못 보내고 있습니다. 대사관은 어제 태극기를 내렸으니 기사를 보충해 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에게 안부 잘 전해 주세요. 내일이 어머니 환갑인데 전보가 되면 축전을 치겠고 안 되면 텔렉스로 축전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니 환갑 4월 30일

 

- 당신 모친의 환갑행사에는 내가 직접 가보겠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위험한 일은 절대 삼가시오. 즉시 안전하게 사이공을 탈출하기 바랍니다.

- 고맙습니다. 국장 이하 외신부원에게 안부 전합니다. 오후 텔렉스가 여의치 않으면 아침에 다시 해보겠습니다.

-

 

안녕히. 안녕히.

 

조심하시오. 조심하시오.

- 안녕히.

- 안녕히.

 

다시 본사가 멀고 멀어졌다.

이 텔렉스가 사이공에서의 마지막 교신이었다.

 

 

텅빈 거리, 오직 나홀로 달리다

 

 

카메라와 가방을 메고 개미 한 마리 없는 텅 빈 케네디 광장을 나 홀로 뛰었다. 사이공 가톨릭 대성당의 뾰족 지붕이 우체국 건너편에 솟아 있다. 그 앞에 외롭게 서 있는 성모 마리아상은 희게 빛났으나 차가웠다.

마리아 상 왼편에 키 큰 가로수 녹지대가 드넓게 펼쳐진다. 독립궁의 정문과 본관에도 경비병 그림자가 없다.

사진을 찍어야지. 이것이 사이공의 마지막 장면이 될지 모른다.”

 

 

4월 29일 오전 10시 3분

 

 

광장 한가운데로 뛰어가 마리아상을 바라봤다. 마리아의 어깨 너머 사이공 우체국 시계탑.

시계는 오전 103, 저 시간이 나의 사이공 취재를 증명해 줄 것이다.

촬영을 마쳤다. 나홀로 인적이 완전히 끊어진 텅빈 거리를 또 달렸다.

 

 

그로부터 42년

 

 

42년이 지나, 한 밤에 중앙우체국 앞에 가서 언론정보학과 젊은이들 앞에서 그날 송고하던 상황을 전하던 중, 갑자기 목이 메어 말문이 막힌 이유가 무엇인까.

 

4월 30일이 어머니 회갑이어서 어머니가 그리운 감정이 내 마음 밖으로 넘쳐 나왔는지 모른다.

나이가 들면 쓸모 없는 감성이 증가한다 하니 그 탓인지 모른다.

언론정보학과 최신세대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당시 정황을 그려 나가가다 감정이입이 됐는지 모른다.

 

아직도 왜 목이 메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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