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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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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베트남'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17.04.12
    (1) [호찌민 통신-'출발' 우리는 왜 호찌민에 가는가] (1)
  2. 2016.09.16
    베트남 항공 409편 객석 풍경
  3. 2015.08.29
    코리아티임스 인터뷰 중계
  4. 2015.08.29
    한국일보- 베트남 통일 40주년 특집 제4신 중계
  5. 2009.05.03
    남부해방일 '바므이땅트'
  6. 2008.09.17
    37년 후배 기자와 영화관에 간 이유 (2)
  7. 2008.09.11
    '베트남 며느리'를 위한 하노이 대사의 편지 (37)
  8. 2008.09.08
    전설 속의 여인, '마담 빈'을 만나다 (6)

 

(1) [호찌민 통신-'출발']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출발'

 

[우리는 왜 호찌민에 가는가]

 

 

 

 

 

 

 

 

윤석민 교수의 기습방문과

 

'호찌민 통일현장 취재학습단'

 

편성

 

 

2017년 2월 어느날 돌연히,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장으로 언론정보학과

 

주력윤석민 교수가

 

영희 책임연구원 및  홍종윤 선임연구원을

 

인사동 우리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의 특청에 나는 언론정보학과 최신세대를

 

위해서 '경험 지원'을 하겠다고 흔쾌히 승락했다.

 

'경험 지원'은 내가 만든 용어로서 후학을 위해

 

나의 견문과 자료 등 모든 것을 기꺼이

 

후원한다는 뜻을 담았다.

 

나는 베트남 호찌민 시(사이공)의  적관계망을

 

가동하여 정성을 들여서 다음과 같은 일정을

 

성했다. 2개월 동안 틈틈히 작업을 진행한 결

 

과물이었다.

 

 

 

 

[편성표]

 

 

    [2017년 4월 30일 통일베트남 42주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특설(特設)

 

‘사이공 최후의 새벽’ 안병찬 특파원

 

과 동행하는

 

호찌민 통일현장

 

취재학습단

 

 

 

[취재학습단 구성] 총원 26명

 

 

1. 총괄 기획 및 주관 :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장 윤석민 교수(언론정보

 

학과)

 

◇ 자료수집-책임연구원 김영희 박사

 

◇ 총무-선임연구원 홍종윤 박사 

 

◇ 미래뉴스실습I 현장 지도-홍종윤 박사

 

 

2. 참가학생 :

 

언론정보학과 3, 4학년 20명 (미래뉴스실습I 수강생)

 

학생인솔-언론정보연구소 최순욱 조교

 

 

3. 본 현장 교육의 지향(志向) :

 

베트남과 대한민국의 역사적 경험을 비교하고, 베트

 

남의 자주 정신을 탐구하며, 취재 경험을 습득함

 

 

4. 본 현장 교육의 총결 :

 

① 수강생 20명이 학습하며 취재한 내용을 기록문학

 

(記錄文 學)적으로 집대성(集大成)하여 발간함

 

② 수강생 20명이 포착한 비디오 및 카메라의 영상

 

들로 르포 르타주(reportage)적 작품을 제작하여 발

 

표함

 

 

[호찌민 현지 후원]

 

◇ 베한타임스 : 김종각 발행인(현지 법률법인 대표

 

호사)

 

(베한타임스의 전신은 베트남 교민신문사로 언론인

 

안병찬(Ph.D.)은 2011년 8월 18 일 동지 상임고문역

 

을 위촉받아 3년간 경험지원을 한 바 있음)

 

△ 교민 제1세대 동반 : 이순흥 전 한인원로회장(사

 

이공 최후의 교민)

 

△ 취재 : 한국일보 정민승 특파원(한국 언론 첫 호

 

찌민주재특파원 ․ 2월1일 부임)

 

 

[준비 특강] 장소 : 서울대학교 IBK커뮤니케이션

 

(64동)  303호

 

 

(1강) 2017년 3월 21일 오전 9시

 

□ 베트남 취재 44년 언론인 안병찬 특강(전 한국일

 

보 '사이공의 최후' 특파원) :

 

내가 경험한 베트남 통일결전과 통합과정-한

 

반도 통일문제 의 성찰과 새로운 도전에 비추어』

 

(Great Spring 1975 Victory at the Scene and

 

Vietnam’s Integration Process)』

 

 

기록문학 및 르포르타주(reportage) 작성론

 

파워포인트-기록사진 180장의 편년사(編年史) 90

 

                 

 

 

(2강) 2017년 4월 4일 오전 11시

 

□ 구수정 베트남 박사 특강 :

 

(제목) 『3,578km 추모와 기념 사이-베트남의 전쟁

 

기억과 한국

 

 

의 전쟁 기념』

 

파워포인트 90분, 질문응답 30분 

 

(구수정 : 베트남 호찌민국가대학 석사 및 박사, 한

 

겨레신문 전문위원 및 베트남 사회적기업 ‘아맙’ 운

 

영자 역임, 현 한베평화재단 상무이사)

 

 

□ 출발과 도착

 

서울인천국제공항 집합

 

2017년 4월 5일 오전 5시 30분(변경) 아시아나항공

 

L 카운터 앞 오전 7시 20분 아시아나 베트남 호찌민

 

행(OZ 731 편) 이륙-오전 11시 05분 호찌민 떤선녓

 

국제공항 도착(시차 2시간)

 

 

□ 호찌민 숙박

 

아시안호텔 호찌민(HCM)

 

148-150 Dong Khoi St., District 1, HCM

   

 

    

     [호찌민 일정(2박 3일)]

 

         (해설 및 안내 : 한베평화재단 베트남지사

    

                               권현우 아카이브팀장  :  

         

         호찌민 국가대학 인문사회과학대학 베트남문학 석사)

 

 

[제1일 4월 5일]

 

1. 떤선녓 국제공항-아시안호텔 도착

 

2. 주호찌민 대한민국 총영사관 부속 호찌민시한국

 

국제학교 방문(김원균 교장선생님 인사)

 

3. 베한타임스(전 한국교민신문) 김종각 발행인 면담

 

및 견학

 

4. 주은영 교수(호찌민 음악대학원 교수·비엔나 음악원

 

석사, 모스크바 그네신아카데미 박사)의 ‘피아노 연주를

 

통한 인문학 강좌’      

 

  5. 한국인의 도시 부미흥의 베트남 식당 저녁회식

   

  베트남 후식 쩨(che) 시식      

 

 

[제2일 4월 6일 흥브엉 공휴일]

 

1. 오전 8시 ‘전쟁증적(證跡)박물관(WAR REMNANTS

 

MUSIUM)’ 관람

 

2. 오전-오후 ‘구찌(Cu Thi)땅굴’ 참관(호찌민 북

 

쪽 70km)

 

3. 저녁 관광 

 

‘안병찬 특파원의 탈출 동선’을 따라서,

 

 사이공 중심부 안 특파원의 최후 사무실이 있던

 

 응웬웨빌딩-인민위원회-오페라극장-노틀담성당-중

 

 앙우체국 -통일궁(전독립궁)-타머린드 상록큰키나

 

 무공원-전한국 대사관-이민국-다이아몬드프라자

 

  (한국 포스코 건축)-전미국 대사관 등

 

 

[제3일 4월 7일]

 

1. 베트남국영통신(VNA=TTXVN) 호찌민지사 및 인

 

쇄소 탐방

 

2. 총영사관(전 한국대사관) 박노완 총영사 면담

 

국기게양대 답사(사이공 마지막 태극기 하강식 취재현장)  

 

 (인솔 : 한베타임스 김종각 발행인)

 

3. 통일궁(사이공 시절 대통령궁) 관람

  

 벤탄 중앙시장 선물보기 및 데탐 여행자거리 관광

 

 (인솔 : 이순흥 회장)

 

4. 자유시간-열대과인 망고 및 야자(코코넛 열매) 새참

 

5. 떤썬녓 국제공항 이동

 

 

□ 귀국

 

8일 오전 00시 10분(변경) 아시아나항공 편(OZ

 

736) 떤선 녓 국제공항 이륙-4월 8일 오전 6시 45

 

분 서울인천국제공 항 도착

 

 

[첨부] 시사IN 표완수 발행인이 기자 취재 수첩 전달  

 

[비고] 일정은 사정에 따라 조정할 수 있음

 

 

 

편성(編成)

 

언론인 안병찬

 

2017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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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12 11:37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베트남항공 409

 

다문화 객석 풍경

 

사진=프로덕션 더라이브 전형태 피디, 인천 발 호찌민 행 기내에서

 

트남항공사는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고향을 방문하는 베트남 출신의 엄마들을 배려하여 일반석 맨 앞줄에 앉힙니다. 그래서 앞쪽은 어린 아기들이 칭얼대고 보채는 소리로 비행하는 동안 5시간 내내 소란스럽습니다.

한국에 시집와서 한국의 아들딸을 낳은 젊은 엄마들, 그들은 객석에 앉아 쉬지도 못하고 일어나서 아기들을 달래면서도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말 오래간 만에 친정을 방문하여 부모에게 외손을 안겨준다는 마음에 힘 든 줄 모르고 행복하다는 표정입니다. 그런 젊은 엄마들의 큰 힘과 아름다운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이는 한국 다문화가정의 밝은 일면입니다. 순혈주의가 강한 한국도 세계화의 물결 속에 다문화가족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족이라는 용어는 2003년 건강가정시민연대가 혼혈아나 국제결혼가정 등 차별적 용어와 대체하자고 권장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안병찬

기분좋은 QX통신 제공(QX통신 제2972014225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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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 2015-05-06 18:30

 

Ex-Hankook Ilbo

 

reporter

 

 

still remembers

 

Vietnam War

 

By Kang Seung-woo

 

 

Ann Byong-chan poses at a Vietnamese news agency during his visit to Vietnam on April 28./ Courtesy of SisaIN

 

Ann Byong-chan, a former reporter of the Hankook Ilbo ― a sister paper of The Korea Times ―

is nicknamed the "ultimate correspondent" as he witnessed the final chaotic days of Saigon

40 years ago.He reported news of the Vietnam War, staying in Saigon, now known as Ho Chi Minh City,

for 38 days from March 23 to April 30, 1975."After reporting on the war at the scene, I have studied how Vietnam's

unification period unfolded. At the same time, I am jealous of the unified country,

given that we are still divided," Ann said in an interview with The Korea Times.Although Ann, 77, now looks back fondly on his experience there, his time in Vietnam

began completely out of the blue.While at the paper's office in Seoul on March 21, 1975, he received a phone call

from Chang Key-young, the late founder of the Hankook Ilbo."He told me to get ready to leave for Vietnam immediately," said Ann, who covered

foreign news at that time.Ann received an entry visa the very next day from the Vietnamese Embassy

in Korea and got on a plane bound for the Southeast Asian country on March 23.One week later, the Hankook Ilbo sent another correspondent to support Ann,

but he returned home on April 25.Ann attributed his achievements in Vietnam to his wife, also a Hankook Ilbo reporter

who strongly supported him during his unexpected dispatch to the battlefield."She thought that I ought to go there as a journalist to report exclusive news," said Ann.He admitted that his stay there was filled with dread."I trembled with fear, but I could overcome that because of my professional instinct

to find a scoop," he said.However, the native of Jincheon, North Chungcheong Province said that he suffered

some risky moments during his stay."When I arrived there, Da Nang, a major base for the South Vietnamese

and United States Air Force, was about to fall to the communist forces," he said."I felt as if I would soon be standing under heavy fire because the North Vietnamese Army

continued to advance southwards."Psychologically, it felt dangerous and I was frightened each morning. But I decided

to face down the situation."Ann, now serving as the honorary chairman of the Center for Media Responsibility

and Human Rights, still visits Vietnam every year in April to commemorate the end of the war.He also flew there last month for the 40th anniversary of the fall of Saigon.Ann added that Korea, still split into South and North, needs to learn

the independent spirit of Vietnam's efforts toward reunification."Vietnam gained independence from China after 1,000 years, and then fought

the European powerhouse France. In addition, it won a 20-year war against

the United States," he said."With such power, Vietnam itself achieved reunification."Ann added that he is paying attention to the country's diplomatic strategy

with the two major powers, the U.S. and China."Vietnam uses an equal strategy with the U.S., not a dependent one," he said."Many Koreans look on Vietnam just based on its economic standards, but I think

they fail to see the nation's true self."

ksw@korea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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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제4신]

 

빈푹성의 VRG 동화 MDF 공장.

베트남경제 동력 된 한국기업

80만명 고용

FDI 40% 육박

맏형 삼성전자, 최근 하노이에 휴대폰 기지 구축

동화기업 성공신화, 亞 목질자재업계 1위 확고히 다져

비공식 비용 커 투자 유의를… 고용 늘리는 업종에만 세제 혜택

세계는/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베트남 옌퐁공단의 삼성전자 휴대폰 공장.

디엠투이 공단에 입주한 한국업체 동성 비나.

남부 중심 호찌민을 추격한다

베트남의 혁명수도 하노이는 경제 중심도시인 남부 호찌민시의 활달한 분위기가 무안할 만치 활기에 차있다. 근엄하기만 했던 이 북부 도읍이 경제 수도도 겸하고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노이의 의중은 호찌민과 최고층 건물을 놓고 벌인 경쟁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 현대건설이 2010년 호찌민 제1군 지역에 올린 68층 빌딩(비텍스코 파이낸셜 타워)은 높이 262m로 당시 베트남 최고층이었다. 그런데 하노이는 정도(定都) 1,0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한국 경남기업으로 하여금 347m의 최고층 빌딩인 하노이랜드마크72를 2011년에 준공토록 해 스스로 키를 더 높였다.

경남기업의 하노이랜드마크72는 1조2,000억원(미화 10억5,000만 달러)을 투입한 대형 사업이었으나,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회장에게는 이른바 ‘마천루의 저주’를 불렀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실패한 사업이 되고 말았다.

최근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이 하노이 북부에 최대 규모의 휴대전화 해외기지를 구축하면서, 한국기업의 투자 중심도 호찌민에서 하노이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삼성은 전세계에 판매하는 휴대전화의 40%를 하노이 북부의 두 공장에서 생산하여 작년에 미화 236억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이는 베트남 수출의 17.5%를 차지한다.

‘사회주의 지향 국가관리 시장경제’ 노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 관리가 있는, 시장경제.”

베트남은 이렇게 자국의 경제쇄신정책을 규정한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중국특색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베트남은 정치적으로 공산당 1당제 안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고 법치국가로서 대외관계를 확대하여 외자를 유치하는데 주력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삼성 베트남법인의 고문역을 맡고 있는 팜 띤 번 전 한국주재베트남 대사는 “베트남 경제쇄신정책인 도이머이의 성격은 중국 개혁·개방정책과 기본적으로 비슷하며 중국과 10년 시차를 두고 따라가고 있다”고 말한다. 팜 띤 번 대사는 일찍이 평양에서 세 차례 외교관으로 근무했고 서울에서 공사와 대사를 역임했다. 그의 3남은 현재 평양주재 대사로 봉직하고 있다.

하노이 정부의 경제전략 목표는 2020년에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에 도달하는 것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1,300달러인데, 경제중심 도시 호찌민은 이미 3,600달러에 달하고 혁명 수도 하노이는 2,700달러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도 올해 제1분기 국내총생산(GDP)성장률(추정치)은 전년동기 대비 6.03%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97%포인트 신장해, 1분기 기준으로 2009년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동화기업, 고무농장 속 아시아 제일

베트남의 경제가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면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성공 신화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목재 전문 동화기업(대표 김홍진)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동화는 국영기업인 베트남고무그룹(VRG)과 51대 49의 지분투자로 합작사 ‘VRG 동화 MDF’를 설립하고, 호찌민 동부에 접한 빈푹성의 38만㎡(약 11만6,000평) 부지에 중밀도섬유합판(MDFㆍ톱밥과 접착제를 섞어 열과 압력으로 가공한 목재) 공장을 2012년 8월 가동하기 시작했다. 투자금은 1,500억원이다. 그리고 가동 불과 2 년여 만인 지난해 영업이익율이 30%에 달하는 알짜 공장이 된 것이다.

동화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VGR과 합작이다. VRG는 베트남이 통일하던 해인 1975년에 설립한 국영회사로 연 매출이 1조원에 달한다. 베트남의 국가적 자원인 고무나무를 조림하고 고무를 가공하여 수출하는 전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고무그룹은 전국 고무나무 조림지의 44%인 25만㏊의 농장(서울 넓이의 4배 규모)을 보유하고 있다. 빈푹성은 고무나무 자원이 풍부하고 베트남의 경제 수도로 불리는 호찌민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VRG동화의 연간 생산능력은 30만㎥로 아시아 목질자재 업계 1위의 자리를 확고히 다졌다. 동화는 1986년 국내 최초로 MDF 공장을 세우고 2000년에 대성목재를 인수해 사업을 확충했으며 현재 베트남을 비롯하여 호주, 뉴질랜드, 말레이지아에 공장을 세워 생산기반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시련이 없지 않았다. 2013년 여름, 동화그룹에 비상이 걸린 것.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성장 동력이 돼야 할 핵심 계열사인 해외 사업장이 적자를 낸 것이 문제였다. 승명호 동화그룹 회장은 2013년 봄부터 매달 비행기에 올라 1년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냈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호주의 공장을 돌며 전략 회의를 주재했다. 그 결과 2014년 동화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562억원의 수익을 올리며 흑자로 돌아섰다. 그 중 VRG동화는 그 해 영업이익이 192억원에 달했다.

디엠투이 산업공단의 판 만 꾸엉 회장(오른 편)이 공단 부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성협력업체의 디엠투이 산업공단

삼성전자가 제2공장을 세운 곳은 하노이에서 정북방 60㎞ 지점에 있는 타이응우옌성의 옌빈공장이다. 이 공장의 가동에 맞춰 인근 송꽁읍은 디엠투이 산업공단을 개발해 삼성 제2공장의 한국 협력업체가 줄줄이 입주하고 있다.

산업공단 판 만 꾸엉 회장은 공단을 안내하며 삼성 협력업체들이 입주한 현황을 설명했다. 현재 공단과 계약을 체결해 입주한 삼성 협력업체로 몰드를 제작하는 제이케이 비나, 휴대전화 틀을 생산하는 주광정밀 비나, 금속 원자재를 공급하는 동양알루텍 비나, 부픔을 생산하는 서휘비나 및 동성 비나 등이 있으며 공장을 건축 중인 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업체를 모두 합치면 67곳이나 된다.

이 공단은 입지나 세 감면 등 여러 면에서 양호한 투자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우선 이 공단이 속한 타이응우옌성 지역은 인구가 114만명에 9개 대학교와 11개 단과대학, 9개 기술센터가 존재해 풍부한 인력을 공급해준다. 최저임금은 월 250만동(약 12만6,000원)이며, 비숙련 근로자는 월 300만동(15만원)~400만(20만원)동, 기술자는 700만동(35만2,000원)~1,000만동(50만3,000원) 수준이다.

또 하노이에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데다 인근에 타이응우옌 역이 있고, 노이바이 국제공항은 40㎞, 다푹항은 20㎞, 제3번국도 2㎞ 내에 위치해 뛰어난 입지조건을 자랑한다.

여기에 임대기간이 50년에 달하면서도 땅값은 ㎡ 당 87만동(한화 4만3,150원)에 불과하다. 공단에 입주하는 하이테크기업은 15년간 법인세가 1초기 4년 면제, 이후 9년간 50%가 감면되며, 일반기업은 초기 2년 면제 이후 4년간 50%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뿐만 아니라 공자에 필요한 장비 기계 운송장비 건설자재의 경우는 수입세 및 부과세가 면제된다.

베트남의 외국노동자 관리정책

베트남은 중국에 비해 낮은 임금과 더 많은 혜택을 외국투자기업에 제공한다. 하지만 베트남에 투자할 때 주의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우선 베트남 투자 관련법은 하이테크산업을 비롯하여 고용을 증대할 수 있는 업종에게만 세제혜택을 부여한다. 안희완 베트남경제연구소장은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세제상의 우대를 향유하는 것을 보고 베트남의 투자환경이 모두 좋다고 잘못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경고한다. 투자 분야에 따라 환경은 크게 달라진다는 말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이미 3,400여 곳에 달해 전체 외국인직접투자액(FDI)의 36.2%를 점하고 현지인 80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기업은 베트남에서 가장 유력한 경제동력이 되었으나 많은 기업이 눈에 안 보이는 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선 베트남에 있는 외자기업들은 베트남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제한하는 정책을 쓰는 바람에 본국에서 숙련 인력을 데려오거나 타국의 숙련 인력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게다가 비공식 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돼 경영에 어려움이 크다. 주 베트남 한국대사는 올 1월 베트남 노동부장관에게 한국기업이 필요로 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노동허가서를 발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기업협회와 유럽상공인회 등도 같은 요청을 하고 있으나 아직 해결될 기미가 없는 실정이다.

현지 기업들은 이 같은 어려움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베트남 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안병찬·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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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해방일 ‘바므이땅트’


▲ 통일의 햇살

나는 해마다 4월 말일이 다가오면 열병을 앓는다.

1975년 바므이탕뜨(4월 30일), 북 베트남 해방군이 남부 베트남(베트남공화국)을 전복시키고 베트남의 통일을 달성하던 그날까지 38일 동안, 사이공 현장에서 보고 겪은 수많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4월 말이 되면 어김없이 호찌민 시로 이름이 바뀐 사이공을 찾아간다. 그곳에 가서 중천을 향해 떠올라 통일의 대지에 내리 꽂히는 강렬한 햇살을 다시 본다. 언제 봐도 사이공의 눈부신 태양은 베트남 통일의 유장(悠長)한 역사를 느끼게 만든다.

나는 1975년에 남베트남의 멸망과 베트남 통일의 현장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기록한 ‘사이공 최후의 새벽’(1975년 판)을 낸바있다. 베트남 통일 30주년이 되던 2005년에는 증보판 ‘사이공 최후의 표정 컬러로 찍어라’에 베트남 통일의 현장에 추가하여 통일 후 베트남의 여러 변화를 담아낸바 있다.

오늘의 베트남은 바므이탕뜨를 ‘남부해방일’ 혹은 ‘남부전복일’로 부른다. 바므이탕뜨는 완전한 자주독립과 통일의 날이고 항미전쟁 완승의 날이다.

▲ 가장 어려운 결정

베트남은 ‘4·30 항미전승’에 앞서 1954년에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 원정군을 무조건 항복시켜 ‘5·7 항불전승’을 이루었다. 베트남이 항불전쟁과 항미전쟁을 차례로 치르며 통일을 달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117년이다. 그래서 지압 장군은 “4·30 항미전승은 5·7 항불전승에서 움텄다”고 말한다.

디엔비엔푸 승전의 전략가 보응웬지압 장군이 쓴 회고록은 ‘대엔비엔푸-역사와의 동반’이다. 하노이 떼지오이 출판사가 낸 2004년 영문판의 번역자는 미국 여류 작가 래디 보튼이다. 그녀는 ‘세계를 바꾼 결정’이라고 제목을 단 기고문(베트남타임스 2009년 4월 25일자)에서 베트남군은 당초에 디엔비엔푸 총공격 일을 1954년 1월 말로 잡았다가 왜 3월 13일로 연기했는지, 여러 추적 조사 자료를 제시해서 밝히고 있다.

▲ 수정 전략 ‘확고한 공격, 확고한 전진’

래디 보튼은 베트남군이 3박 2일의 ‘신속한 타격, 신속한 승리’를 전략으로 짰다고 한다. 그런데 기습타격 예정일을 11일 남겨놓고 호찌민 대통령은 “승리를 확신할 때만 싸우라. 승리가 확실치 않으면 싸우지 말라”고 명령한다.

지압 장군은 중국 수석 군사고문관인 웨이궈칭(韋國淸· 중국공산당 정치국상임위 부주석 역임)과 상의하고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들과 힘든 토론을 거쳐 1월 26일에 기습의 선봉대인 제308 ‘강철사단’을 라오스 국경 쪽으로 철수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새로운 전략은 ‘신속한 타격, 신속한 승리’에서 ‘확고한 공격, 확고한 전진’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3월 13일 오후 5시를 기해 개시된 ‘확고한 공격, 확고한 전진’의 디엔비엔푸 공략전은 55일 간 밤낮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5월 7일 프랑스 원정군 사령관 나바르 장군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끝난다.

최근 중국의 일부 학자는 디엔비엔푸 전략 변경의 ‘가장 힘든 결정’을 내린 것은 지압 장군이 아니고 중국이라고 주장하고 나왔지만, 래디 버튼은 북경이 타전한 지시 전문을 근거로 ‘확고한 공격과 확고한 전진’을 새 전략으로 채택하는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은 지압 장군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 전후 세대의 항변

올해는 ‘베트남을 사랑하는 모임(베사모)’과 일행이 되어 사이공에 갔다. 베사모의 총무를 맡은 부산외국어대학교 배양수 교수와의 인연에 묶인 것이다. 1988년 베트남이 개방 정책을 채택한 직후에 배양수는 호찌민을 정찰하는 젊은 상사원으로, 나는 14년 만에 호찌민을 다시 찾은 특파원으로 가서 만났다.

근간에 호찌민 시에서는 ‘나의 귀신아내’라는 연극이 500회 이상 공연하여 대박을 터뜨렸다. 희곡을 쓴 무명의 작가는 모 일간신문사 기자인 30대 초반의 쩐반홍이다. 극의 줄거리는 반전이 있다.

베트남 군인이 여의사와 재혼했는데 전처 자식들이 죽은 엄마 귀신에게 시달리다 죽는다. 군인 남편이 잠복해서 감시하다가 전처 귀신을 쏘았는데, 진상을 알고 보니 후처가 전처 귀신 역을 하면서 전처 자식을 학대했다는 얘기다.

이 대본을 쓴 쩐반홍은 1975년 4월 30일 이후에 역사적 투쟁담을 귀 따갑게 들으며 성장해왔으나 이제는 새로운 욕구, 다시 해석하고 싶은 욕구가 가슴에 가득하다고 고백한다.

“이런 회의가 든다. 1975년 이전에 아버지 세대는 우리의 영웅이었다. 그런데 그 때의 영웅이 지금도 여전히 영웅이다. 이것은 진저리가 나고 싫증이 나는 일이다.”

그는 이 사회에서 귀 막고 눈 막고 입 막고 살고 있고 과거의 가치 속에 살고 있다고 여긴다.

“우리는 통일 이후 11년 간 ‘배급시대’에 살았다.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 뱀파이어 번역작가 된 혁명시인의 딸

베트남 애국시인인 반레의 딸 레틴투이(26세)의 변모도 돌연변이처럼 비친다. 식품가공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베스트셀러 번역 작가가 되어 큰돈을 벌고 있다.

레틴투이는 미국의 여성작가 스테프니 메이어가 뱀파이어와 소녀의 사랑이야기를 쓴 ‘황혼’ ‘초승달’ ‘일식’ ‘여명’의 4부작 시리즈를 차례로 번역해서 출간했는데, ‘황혼’ 만 13판을 찍었다. 혁명시인의 딸이 미국의 뱀파이어 통속물을 전문적으로 번역하여 돈을 벌다니 대 변화 아닌가.

지금 베트남은 4·30 항미전승과 5·7 항불전승의 기세를 저력으로 삼아 정경분리의 이름아래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속에서 전후 세대는 혼란을 느끼고 반역하며 신자본주의체제로 말미암아 통속화하고 있다.



'베사모' 사진 파노라마


KBS 수요기획
"아버지의 추억 - 베트남전 종전 34주년을 기억하며"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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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 바람에 ‘님’ 보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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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웬 일이니?


아침 댓바람에 전화가 왔다. 베트남을 다녀와서 전설적인 베트콩의 파리회담 수석대표 ‘마담 빈’과 대담한 기사를 한국일보에 싣고 난 뒤다.

전화한 사람은 ‘시사IN’ 기자 고재열. 친애하는 고재열은 고집은 가슴 속에 두어두고 수줍은 체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친구다. 평소에는 제대로 안부신고를 안한다. 텔레비전의 지식 경연에서 장원을 하여 2천만 원을 타 살림에 보태 쓴 것은 두뇌 순발력이 뛰어남을 보여준다.
나는 물었다.


-니가 웬 일이니?
-저, 영화 ‘님은 먼 곳에’ 모시고 가서 보려고요?
-뭐야, 무슨 꿍꿍이속이 있지, 너?
-절대 아니구요, 베트남 영화라 ‘주간님’ 생각이 나서 그래요.


지금도 원(原) ‘시사저널’에서 함께 일한 후배들은 고재열처럼 나를 그때의 호칭대로 ‘주간님’으로 부른다. ‘시사IN’을 세운 후배들도 그렇다. 트래킹 코스로 제주올레를 연 전 편집국장 서명숙이 그렇고, 텔레비전 앵커를 천직으로 타고난 백지연이 그렇고, 광화문의 10만 촛불을 이끈 사회자 최광기가 그렇다.

그건 그렇다 치고 벌건 대낮에 한 여름 밤의 꿈을 함께 꿀 여자도 아닌 남자 후배 고재열이 ‘님은 먼 곳에’를 같이 보자니 재미도 없고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베트남을 소재로 한 영화이니 나와 같이 보자고 신청하는 마음씨가 가상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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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님은 먼 곳에’의 포스터를 처음 보고 문득 베트남에 향수를 느낀 것은 사실이다.


전형적인 베트남의 열대림 어구. 물이 괴인 논이 있고 그 양편으로 키 큰 야자수의 열대림이 시작된다. 열대림 사이로 틔어있는 푸른 하늘로 수많은 헬리콥터 편대가 멀리서 점점이 나타나더니 차츰 커지면서 이윽고 머리위로 굉음을 울리며 지나간다.


그 먼 곳 베트남의 논두렁 위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수애의 뒷모습. 왼손에 검은 가방 하나를 든 그녀가 오른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하늘 멀리 날아오는 UH-1휴이 헬리콥터 편대를 쳐다본다. 수애의 검은 치마가 헬기의 바람에 날린다. 그 순간이 한 폭의 정(靜) 사진에 고정되었다.

“1971년 베트남. 당신을 찾아 그곳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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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그 해에 나는 남부 베트남 수도 사이공에 특파원으로 갔다. 그리고  베트남 농촌과 정글과 상록의 키 큰 나무 타머린드, 파월 한국군과 연예인 위문공연단, 맥브이(미군지원사령부)와 C-레이션 그리고 투도 환락가를 보았다.


‘인터뷰이(interviewee)’가 되다


약속한 시간에 고재열이 인사동 집필실에 도착했다.
짐작한 대로 고재열은 책상 앞에 나를 앉히더니 우선 사진을 몇 장 찍는다. 
그리고 저는 인터뷰 하는 기자(인터뷰어)가 되고 나는 인터뷰 당하는 사람(인터뷰이)으로 만든다. 그는 한국일보의 미스코리아 후보 문화교류행사에 합류해서 ‘마담 빈’을 만난 사정을 이것저것 물으며 수첩에 기록 한다.


그리고 저는 인터뷰 하는 기자(인터뷰어)가 되고 나는 인터뷰 당하는 사람(인터뷰이)으로 만든다. 그는 한국일보의 미스코리아 후보 문화교류행사에 합류해서 ‘마담 빈’을 만난 사정을 이것저것 물으며 수첩에 기록 한다.


미국의 시각에서 본 월남전이 아닌, 한국의 시각에서 본 월남전을 그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이번엔 어떤 영화를 또 그려낼까. 무수히 날아오는 헬기를 바라보며 등지고 서있는 저 여자의 사연이 무엇일지, (어떤 브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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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1973년. 베트남 주재 특파원 시절에 사용한 정글화, 한국일보 사기와 완장, 정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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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파우치(1971년-1973년, 1975년, 1989년.)


무더운 날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인사동에서 종로3가에 있는 피키디리 극장까지 갔다. 내가 기자시절에 자주 관람하던 피카디리는 단성사, 중앙극장 등과 함께 몇 안 되는 일류 개봉관이었다. 영국 감독 데이빗 린의 ‘콰이강의 다리’도 피카디리 극장에서 보았다. 지금은 이름을 프리머스 피카디리로 바꾼 8관 1682석의 복합 극장이다.
고재열이 자진해서 영화 관람권과 음료수를 샀다.

전쟁드라마 ‘님은 먼 곳에’ 상영시간은 2시간 6분, 장내에 불이 켜지자 고재열이 대뜸 묻는다.

“감상이 어땠어요?”


리얼리티의 두 측면

“이국적 현실감(리얼리티)이 떨어진다.”

처음부터 ‘님은 먼 곳에’는 ‘왕의 남자’의 스타감독 이준익의 작품이라 기대를 모은다고 선전했다.
총제작비 100억 원을 투입한 베트남 전쟁드라마라고 하지만 베트남에서 살아본 나한테는 풍경과 사람의 현실감(리얼리티)이 영 아니다. 태국에서 현지 촬영을 한 탓이다.

태국의 산하와 베트남의 산하는 일본과 한국의 산하만치 다르다. 사람도 그렇다. 같은 동북아시아 사람이지만 중국 배우가 일본 사람 분장을 하면 너무 안 어울린다. 같은 동남아시아 사람이만 태국 사람과 베트남 사람은 아주 다르다. 망고 과일 맛도 다르다. 베트남 것이 더 달고 향기롭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한국 사람이 등장하는 부분은 더러 리얼리티가 있다. 예를 들면 연예인 위문 공연단의 풍속도다.

1971년에 한 여자가 남편을 만나기 위해 공연단에 끼어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으로 한국군 부대를 찾아 간다는 설정이나, 예쁘고 청순하고 착한 여자가 써니라는 새 이름으로 총성과 화염이 가득한 전쟁의 한 복판에 뛰어든다는 설정에서 일관된 논리를 찾기는 힘들다. 베트남 전쟁을 요즘의 코드로 극화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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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베트남 1975년 4월(위). (아래) 안케 전투 638고지 1973년. 


한국군 사단본부의 연예인 파티
 

1972년경으로 기억한다. 중부지역에 주둔한 한국군 사단 기지에 종군하여 내빈 막사에서 하룻밤 숙박한 일이 있다. 밤이 되자 사단장은 파티를 열었다. 아마 특파원 두 명을 접대한다면서 그 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부
사단장과 참모들도 합석한 자리에 같이 간 타사 특파원 한 명과 함께 초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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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한국군을 겨냥한 북한의 심리전 전단 2매. (2000년 호찌민시 소장자 것을 복사함)
                

아주 유명한 여자가수 일행이 위문공연을 하며 각 부대를 순회하다가 같은
내빈 막사에 머물고 있었다. 파티장에 불려 나온 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사단 고위층 이 사람 저 사람과 춤도 추어야 했다. 주흥에 겨워 자리가 다소 어지러워 졌을 때다. 반주를 하던 밴드의 악장이 초조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다급하게 애소한다.  

“저기요, 특파원님. 저 여가수 아무개가 제 아냅니다. 정말입니다. 좀 보호해 주세요. 특파원님이 보호해 주세요.”
나는 연예인 공연단의 부부를 구하고 싶었다. 손뼉 쳐서 좌중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쳐서 찬물을 뿌렸다.

“여러분. 아무개 가수가 밴드 마스터 부인이래요! 밴드마스터 부인이래요!”



베트콩과 미군의 초상


‘’님은 먼 곳에‘는 베트콩과 미군을 반공 시대와는 다른 오늘의 눈으로 바라본다. 


“사랑한다고 말 할걸 그랬지…망설이다가 님은 먼 곳에…”를 부르는 아내 수애를 보고 애잔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정말로 남편 엄태웅을 사랑해서 수애가 월남까지 갔을 까요, 하고 당위성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색소폰을 부는 양아치 정만이는 베트콩에게 잡혀 지하 땅굴에 잡혔다가 나온 후에는 홀연히 사람이 달라진다. 그는 베트콩의 저항전쟁의 소이를 깨달으며 당시대의 굴레를 벗어난다.

‘님은 먼 곳에’에 투영되는 미군의 초상은 부정적이다. 욕정과 탐욕을 드러낸다. 수애는 실종한 엄태웅의 소재를 찾아내기 위해서 미군 유력자와 담판하며 대가로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 그런 인상을 받는다. 이 영화는 베트콩과 미군을 대비하여 근래의 관점으로 베트남전을 재조명했다고 여긴다.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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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황의홍 2008.09.18 00:0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이사장님 오늘 뵙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 입니다.
    내가 하고있는 일들의 방향성이 맞고, 부족한 점도 깨닫게 된 시간 이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서 할일 들이 너무 많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잘 수립해야 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언론인권센터와 미지별 블로그 링크 걸어 놓고 갑니다.

    새내기 블로거에게 팁하나 말씀 드리면
    처음엔 어색하시 겠지만 댓글에 대한 답글은 반드시 달아서 독자와 소통을 하시면 블로그에 쓰시는 글이 많이 유연해 지리라 생각됩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눈물이 많다.
중국과 프랑스와 미국과 싸워서 이겨낸 강건한 민족이라 눈물이 없을 것 같은데, 아니다. 눈물을 철철 흘린다.
베트남 며느리의 가족상봉을 보여주는 텔레비전 프로를 보면 헤어진 아픔에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상봉한 기쁨에 목이 메에 운다.
'베트남전 마지막 종군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나도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퍽퍽해진다.


그렇게 정이 많은 민족성은 우리와 똑 같다.
“우리 후손을 낳는 베트남 새댁들”,
하노이 주재 대사의 이 말에서 베트남 며느리의 존재를 실감한다.
‘베트남 며느리’들을 챙겨달라며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장에게 편지를 보냈던 주하노이 임홍재 대사가
추석을 맞아 이번에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의 편지와 이메일이 ‘이방인 며느리’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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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며느리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 <황금신부>




'베트남 며느리'를 위해 하노이 임홍재 대사가 보낸 편지


김훈이 본 ‘연변 며느리’


16년 전, 내가 ‘원(原)시사저널’ 제작을 책임지고 있을 적 일이다. ‘칼의 노래’의 작가로 이름을 드날리는 후배 김훈은 그때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내가 기사를 주문하면 그는 몸을 날려 현장을 뛰었다. 


연변의 조선족 처녀들이 각박한 한국 농촌으로 처음 시집을 온 1992년. 추석 무렵에 김훈은 제1대 연변 새댁 15명이 신접살림을 차린 경상북도, 강원도, 전라도를 누벼서 기사를 써냈다. 그 중에 경북 문경으로 시집온 한 연변 새댁의 얘기가 실감 났다. 그 새댁은 화장을 지울 때 한국산 화장지로 얼굴을 문지르면서, 자신이 한국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고 한다.


“세상에 이토록 부드럽고 포근한 종이가 있을까. 그것이 새댁의 첫 놀라움이다.”나는 연변새댁이 느끼는 ‘부드럽고 포근한 화장지’를 집어낸 김훈의 기자적 후각이 각별하다고 여겼다.


추석날 보름달은 가장 부푼 달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한 많은 며느리들은 그 둥근 달을 쳐다보고 울었더라고 한다. 그래도 연변새댁은 우리 동포니까 달보고 서럽게 우는 일이 덜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노이 대사가 본 ‘베트남 며느리’


금년 7월 하노이 주재 한국대사관을 예방한 미스코리아 후보들에게 임홍재 대사가 이런 말을 했다.


“베트남 며느리들은 우리 후손을 낳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불행을 겪는 일부 사례가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은 따뜻한 마음으로 베트남 새댁들을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베트남이 한국과 유사한 점은 많다. 사람이름이 세 자고 최대명절이 설(떼트)이다. 새해에 용돈을 주고, 쌀을 주식으로 삼고, 젓가락을 쓰고 고추 마늘 음식을 먹는다. 한자를 기반으로 하는 유교 문화권이다. 며느리들이 눈물 많은 것도 같다. 한국에 사는 베트남 사람 7만 2천명 가운데 베트남 며느리는 3만 명이다.


그런 베트남 며느리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임 대사는 작년 10월에 한국에 있는 지방자치단체장 앞으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일제히 발송했다.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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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황금신부>의 주인공도 눈물이 많았다.




존경하는 시장 군수 구청장님께


베트남은 우리와 역사 및 문화상의 유사성으로 동남아 국가 중에서 한국과 가장 우호적인 국가입니다. 그러나 최근 몇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어 이렇게 각 지방자치단체장님께 부탁의 말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한국인이 베트남 여성과 국제결혼을 한 것과 관련한 문제입니다. 2006년 초 베트남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의 인신모욕적인 현수막과 이들을 상품화하는 집단 맞선이 문제가 된 이후, 얼마 전에는 한국인 남편의 폭행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한 베트남 여성의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 남자와 결혼한 후 관할 지역에 이주해온 베트남 여성들을 보다 더 따뜻한 마음으로 보호해 주시고 불법적인 현수막은 지속적으로 단속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부디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어 이국의 젊은 며느리들을 보호하여 사후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혹 베트남을 방문하실 기회가 되시면 정성을 다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주베트남대한민국대사관 대사 올림


이 편지를 받자 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안덕수 강화군수, 이형구 의왕시장 등 13명이 차례로 답신을 보냈다. 그 밖에 많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이메일로 응답했다. 모두 대사의 제언에 공감하면서 자기 자치단체의 현황과 대책을 알렸다. 그중 강화군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존경하는 임홍재 대사님께

우리군은 베트남 여성을 비롯한 외국인 결혼 이민자 가족이 116세대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군은 이민자 가정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확대하여 2007년 5월에 결혼 이민자시원센터를 발족하여 한국어 교육과 한국문화 익히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우리군의 농촌 총각과 결혼하여 따뜻한 가정을 이루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행정적인 지원을 다할 것입니다.   
따뜻한 관심과 배려에 감사드리며 지속적인 협조와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강화군수 안덕수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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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베트남 며느리도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시어머니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28년 전 안병찬이 본 ‘도시 며느리 감’


1986년 어느 날, 강원도 어느 마을 어귀에는 농촌청년의 비명이 담긴 현수막 한 폭이 내걸려 있었다.


“농민도 사람이다. 장가 좀 가자!”


1980년대 초부터 도농 짝짓기 합동맞선사업을 해온 한국가족문제연구원 신혜영 원장은 문제의 현수막 구호는 농촌 청년, 영농후계자들이 삶의 현실을 부르짖는 소리라고 말했다. 신부 감이 달리는 일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 무렵 일본 농촌에도 같은 고민이 있었다. 야마카다켄(山形縣)의 두 부락은 신부 감이 4대1로 모자라 고민하다가 노총각들을 필리핀의 소도시에 보내서 집단 맞선을 보는 방법을 썼다. 그 결과 16쌍의 국제신혼부부가 탄생했다.


한국가족문제연구원은 매달 2주일에 한 번 일요일 낮에 서울 을지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농촌총각과 도시처녀의 짝짓기 모임을 열었다. 마침 10월 상달이어서 농촌의 총각후보들은 가기들이 거두어들인 밤, 깨, 콩, 고추, 인삼, 약초, 사과 따위 농산품을 들고 나와서 처녀들에게 소개하며 짝짓기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사회가 젊은 여성의 이농으로 인해 농촌 청년의 결혼난이라는 위기에 직면한 것은 1980년대 초부터였다. 한 농업교육학과 교수가 농촌 청년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보고자 생활 조건이 좋은 농민 후계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았더니, 응답한 청년의 63%가 배우자를 찾고 있으나 상대를 구하지 못한다고 했다.


‘오히려 신랑 부족’ 미국 서부시대 


혼인은 가족과 가정이라는 사회 기초 단위의 출발점이다. 결혼은 남녀 당사자의 성적, 심리적, 경제적 결합을 뜻하며 종족 보존의 기능을 가진다.  남녀 인구비례에 불균형이 일어날 때 사회가 위기를 느끼는 것은 자명하다.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신랑감이 부족해 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다. 미국영화에 ‘텍사스의 풍운아’(원제 Going South)가 그 때를 소재로 삼았다. 남북전쟁 직후에 미국은 이색적인 법을 제정한다. 내전으로 말미암아 남자는 줄어든 대신 신부 감과 여자가 남아돌자 당국은 “사형선고를 받은 자라 할지라도 살인범만 아니라면 부동산을 소유한 신부 감이 보증을 설 경우 사면할 수 있다”는 특례법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처형당하기 직전에 극적으로 살아난 서부 사나이가 결혼도 하고 금도 캐서 남쪽 멕시코로 탈출한다는 것이 영화 줄거리다.


며느리 부족했던 원나라
 


고려 말에 80년간 존속한 결혼도감은 신부감이 부족한 원나라의 요구에 부응하기위한 관아였다. 원제는 1274년 고려에 매빙사(媒聘使)와 비단을 보내 자기네 강군인 만자군(蠻子軍) 병사의 혼인을 위해 남편 없는 여자 140명을 선발해 달라고 촉구했다. 고려 조정은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민간의 독녀(獨女), 역적의 처, 파계승의 딸을 찾아내어 요구한 수를 채워 원에 보냈으며 국내에는 원성이 드높아 곡성은 천지를 진동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공녀(貢女) 제도는 근절되지 않다가 공민왕 때에 그 막을 내렸다.

남녀의 혼인은 이처럼 중요하다. 특례법을 만들기도 하고 공녀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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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그들이 어느 나라 출신이든, 어느 민족이든, 우리 며느리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노이 대사의 이메일


필자가 하노이 임 대사에게 다음과 같이 이메일을 한 것은 9월 9일 오전 10시 50분이다.


“베트남 며느리는 우리의 자식들을 낳아 주는 존재라고 대사님이 말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칼럼을 쓰고자 합니다. 근간의 서신이나 현지 기업의 지원내용, 대사님의 소회 등을 생각나는 대로 바로 알려주시면 많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베트남에서 좋은 추석을 보내십시오.”


하루가 지나 9월 10일 저녁 7시 46분에 임 대사의 회신이 왔다.


“즐거운 추석되시기 바랍니다.


국내 매체에 베트남 신부 이야기만 나오면 열심히 봅니다. 우리나라 언론, 사회단체, 대학교, 지자체 등에서 베트남 신부들이 우리 사회에 순조롭게 적응해 가도록 돕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 기쁩니다. 딸 시집보낸 부모 마음입니다.


참고 자료 두서없이 별첨과 같이 마련해서 보냅니다. 참고가 되시기를 바라습니다.”


그의 이메일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국제결혼 한국이주 베트남 신부 관련 사항(최근 자료)


ㅇ 하노이시 여성부 주석 응웬 민 하, 4월 14일-4월 20일 간 한국여성인권단체 초청으로 “한국국제결혼여성의 문제점” 이라는 주제로 개최하는 세미나에 참석.


ㅇ 부산 남구 종합사회복지관 다문화 가족 지원센터 초청, 베트남 이주여성의 친정부모 2명이 딸이 살고 있는 한국방문. 사위와 사돈과의 상견례장 마련(KBS “러브인 아시아” 촬영).


ㅇ ‘바르게 살기 운동’ 충청북도협의회 주최, 다문화 가정 친정 부모 초청행사로 12가정 24명이 9월 22일-9월 27일 간 방한 예정(베트남 기자 동행 예정).


ㅇ GM 대우 하노이 지점 주관, 베트남 신부 친정 방문 프로그램(내년 구정
   계기 우선 10쌍 추진).


ㅇ 베트남 신부 출국 전 한국 관련 교육(한민족복지재단 베트남지부 주관,
   9월 8일 실시).


ㅇ 결혼 비자 발급 현황(괄호 안은 호치민)
   -2006년도 8,526건(6,860건)
   -2007년도 7,956건(6,001건)
   -2008년도 6월말 : 3,617건(2,400건)


ㅇ 결혼 이민자 총 체류자수(2008년 6월말)  : 29,163명


ㅇ 2008년 1월-8월말까지 딸 방문  부모 수 : 약 2,5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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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ohoman 2008.09.11 13:28 address edit/delete reply

    좋은 포스트 잘 읽었습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56 신고 address edit/delete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아직 서툽니다.

    • BlogIcon propeciaPagvobiatot 2012.12.01 18:23 address edit/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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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슈링스따 2008.09.11 13:41 address edit/delete reply

    방송에서 국제결혼을 비하하는 발언을 아무 생각없이 툭툭 내뱉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상당히 불쾌하더군요. 특히 우리나라 보다 후진국이라고 볼 수 있는 나라의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에 특히 심합니다. 미국,영국,프랑스와 같은 서양의 선진국의 여성과의 결혼은 '있어 보이는'결혼이고 동남아나 중국계의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없어보이는' 결혼처럼 다루어 지더군요. 국제결혼에도 등급이 있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미수다를 종종 보는데 예전 케냐출신의 한 교수분이 단순히 얼굴색이 검다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찾늗데 있어서 차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 얼굴이 다 붉어졌습니다. 미국이나 일부 유럽에 퍼져있는 백인우월주의 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도 외국인들을 피부색깔에 따라 차별하고 있다는 것을 종종 느끼곤 합니다.
    저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모두가 차별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성숙한 한국인이 되도록 많이 노력해야겠습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59 신고 address edit/delete

      평등한 세상. 사해동포주의에 동감합니다.

    • 2008.12.30 12:07 address edit/delete

      무척 공감가는 덧글이네요!

      특히나 서양우월주의적인 시각이 내포된 예가요.
      이런 부분에서 우리들이 많이 반성하고 또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_^

    • 낙향하는선비 2008.12.30 19:18 address edit/delete

      공감합니다.....미국인들의 우월주의 사상을 욕하면서 결국엔 우리네들도 다를바 없는 모습들을 볼때 남 욕 할때가 아니란 생각을 합니다.

  4. 와졉 2008.09.11 14:02 address edit/delete reply

    개인적으로 임홍재 대사님을 참 존경합니다.
    전에 이란에 계실 때 부터 대한민국을 위해 위험한 환경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부터 대사님의 나라사랑을 실감했고 베트남 대사직을 맡은뒤에도 우리나라의 대외관계에 힘쓰시는 모습을 보며 참 외교관의 면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8:00 신고 address edit/delete

      임 대사에게 이메일 한 번 하세요.

  5. 2008.09.11 14:52 address edit/delete reply

    <베트남 며느리들은 우리의 후손을 낳아주는 존재>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지 않나요?
    마치 자손생산을 위한 도구라는 의미처럼 들리는데.. 이미 자신도 모르게 은연 중 차별의 의미도 담겨있는 듯 들리기도 하고.
    그 말보다는,
    <베트남 며느리들은 장가가기 힘든 농촌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시집와서 함께 고생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는 고마운 분들> 뭐 이런 식으로 표현했더라면 좀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임홍재 대사님의 말씀(글)을 듣고 딱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속담에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했는데 같은 말이라도 조심스럽고 신중한 표현을 쓰는 게 오해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겨집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8:02 신고 address edit/delete

      표현 문제을 제기하신 정신을 높이 삽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면 우리의 자손을 낳아준다는 표현을 한국 며느리에게 써도 맞기는 맞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6. 구양봉 2008.09.11 15:12 address edit/delete reply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공무원이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됐는데, 임대사님처럼 자기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분을 뵈니 마음이 참 따뜻해집니다.
    아래에 폴님 말씀처럼 '후손을 낳아주는 존재' 라는 표현은 저도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말을 하신분의 다른 행동으로 미루어 보면 나쁜의도가 아니라는 믿음이 생기니 큰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랜만에 훈훈한 기사를 접하니 기분이 참 좋네요. 좋은기사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8:04 신고 address edit/delete

      임 대사가 기뻐하겠습니다. 일 전에 그 분이 블로그를 찾지 못했으니 다시 알려달라고 이메일로 연락이 와서 블로그 주소와 독설닷컴을 알려 주었지요. 훈훈한 기사라니 고마운 말씀.

    • BlogIcon propeciaPagvobiatot 2012.11.25 09:39 address edit/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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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과객 2008.09.11 15:20 address edit/delete reply

    폴님말씀 공감
    신랑은 신랑인데,
    왜 신부는 며느리라고 쓰나요? 어느 관점인건지...
    며느리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종속 관계가 썩 맘에 들지 않는군요
    한가정을 이루는 기본 단위 '부부'가 성립되기 위한 국제결혼인거지
    대한민국 국민을 번성시키는 대상으로서 국제결혼은 아니지 않습니까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8:06 신고 address edit/delete

      폴님과 과객님의 관점을 곰씹으며 공부하지요.

    • 보엠 2008.12.28 18:31 address edit/delete

      항상 글쓴이는 완벽할 수 없지요.
      단지그 분이 말하는 깊은 속내를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것이 자기가 하지 못하는 것 보다 용기 있는 행동이라
      여겨집니다. 임대사님을 알지는 못 하지만 맘이 무척
      따뜻한 분 인것 같습니다.

  8. 나두총각 2008.09.11 15:28 address edit/delete reply

    딸 시집보낸 부모마음...이라는 표현이 짠~ 합니다.

  9. 사모아 2008.09.11 16:44 address edit/delete reply

    임홍재 대사님은 정말 훌륭한 외교관이십니다. 마치 해결사 같아서 어려운 문제가 있는 나라에만 가시게 되네요. 이라크, 이란, 그리고 베트남. 이란에서 뵐 때 정말 훌륭한 외교관이신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8:07 신고 address edit/delete

      임 대사님. 사모아 님의 고마운 말씀을 들어보시오.

  10. BlogIcon 커서 2008.09.12 21:03 address edit/delete reply

    김훈님의 화장지 부분 기억납니다. 그거 저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재밌다 했더니 김훈님 기사였군요. 그리고 그게 벌써 16년전 이야기군요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55 신고 address edit/delete

      왕년에 시사저널 독자셨군요. 반갑습니다.

  11. 최고가되자 2008.12.28 20:08 address edit/delete reply

    그래도 미안하지만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 여자들의 결혼을 싫어 합니다. 그냥 시집 오는 것이 아니고 야심을 가지고 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싫어하는데 억지로 시키면 폭팔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요..그래서 근 몇년 사이에 다문화로 몰아가는 언론에 대해 불만을 품고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품고 화살을 보냅니다. 그 화살이 올해 들어서 상당히 거칠어진 것이 사실이고 이제는 조직화 되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대로 나가다간 사회에 또 하나의 갈등 세력을 만드는 것이되고..안만들어도 되는 것을 굳이 만들어 조각내는 것이 되네요...

  12. 구대영 2008.12.28 20:29 address edit/delete reply

    이런 역할 상대국의 배려와 국가위신을 위한 노력의 자세가 진정한 외교관의 역활이 아니겠나 생각한다

  13. 장서진 2008.12.28 20:51 address edit/delete reply

    암만 동남아인들이 불쌍하다 뭐하다 해도 안되는건 안되는게 있습니다. 그걸 구분해서 일을 해야지. 그런거 저런거 구분 못하고 인정에만 억메이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지요. 위에 어떤분의 동남아 신부와 불체자들에 대해서 우리국민의 불만이 거칠어 진거 사실입니다. 참다가 이제 폭발해 가는 거지요.

  14. 홍진아 2008.12.28 23:17 address edit/delete reply

    12월달까지 하노이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유학생이에요
    임대사님을 뵌적이 있었는데 정말 너무 좋으신 분이었어요
    한인들의 문제에도 관심가져주시고 게다가 베트남과 한국양국의 관계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주신 분이었죠

    실제 베트남 여성과 한국남성으로 이루어진 다문화가정의 문제점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는 이때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갔으면 좋겠습니다..오랫만에 제2의 고향 베트남 소식이 들려와 좋습니다.

  15. 불나방 2008.12.28 23:24 address edit/delete reply

    참 멋진 대사관이십니다.전 캐나다에 일년정도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요.오히려 그곳에선 인종차별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요.물론 아닌척 하면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대놓고 하진 않는것 같습니다.우리 나라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 특히 잘사는 나라에선 인종차별 받기 싫어하면서 왜 우리보다 조금이라도 못사는 나라 사람들에 대해선 차별을 그러도 하는지 모르겠어요.부끄럽습니다.제가 느끼는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인종차별 하는 사람들도 흔지 않다는 겁니다..모두가 동등한 사람들이라는거...이젠 의식이 깨일때가 아닐까요? 좋은 글 많은 생각하고 갑니다.감사합니다.

  16. dhksl 2008.12.30 16:20 address edit/delete reply

    국민은 동남아 근로자건 동남아 신부건 수입하는거 싫어하는데 언론만 혼자서 날뛰는 듯하는 느낌을 받는건 나만 그럴까? 아무튼 값싼 인력을 3D 없종에 종사시키고자 한건데 이제는 불체자들도 힘든일 안하려고 하고 한국인이 받는 액수 다 받으려고 하고 더 이상 동남아근로자 필요가 없을 듯하다. 더군다나 힘든일 안하고 범죄 조직을 만들어서 편하게 돈벌려고 하고..

  17. dhksl 2008.12.30 16:23 address edit/delete reply

    불체자들이 한국인은 인정이 많다는것을 알고 그것을 잘 이용해간다. 하지만 그럴 수록 점점더 이제는 이들에 대한 불만과 거부감이 증폭되어 간다. 언젠가는 한번 한국인들이 크게 들고 일어날것 같다.

  18. semsaram 2008.12.30 16:58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녕하십니까? 저는 베트남 여인과 결혼하여 살고있는 사람입니다.
    처와 시장을 보러 가거나 외출을 할때면 주변에서의 관심과 호기심이 저를 당혹케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나 요즘은 국제 결혼이 보편화되어 많은 격려의 말을 듣곤합니다. 제가 당부드리고 싶은 애기는 국제결혼을 하며는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에서의 이질감을 많이 느끼곤합니다.때로는 결혼을 잘했구나하는 생각도들고 후회도 되고,국제결혼을 하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당부드립니다.위와 같은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하실 것 같으신 분들은 국제결혼은 다시 한번 생각에 생각을 하여 신중한 결정을 하여 여러분의 미래에 어느방향이 도움이 되는가를 결정하시기를.....결혼정보업체의 사탕발림에만 현혹되지 마십시요.ex)시부모를 모시고,도망을 가지 않고,남편과 시집 식구들에게 헌신한다....등등. 국제결혼을하시고자 하시는 분들은 주위에 국제결혼 가정이나 국제결혼가정 지원센타 등에서 충분한 상담등을 하여서 여러분이 문제점을 파악하고 난 뒤 결정을 하여주십시요

  19. 조재용 2008.12.30 20:07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진짜 한국인으로 창피해서 이렇게 써 봅니다.그렇게 자격이 없으면 결혼하지 마세요.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든 말을 가르치든지 아니면 베트남 말을 배우던지 이런 노력없이 그냥 때리기나 하고 화나내고 할려면 진짜로 그냥 보내주세요. 한국인 창피하게 만들지 말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결혼을 못한것 아닙니까. 능력이 부족하면 마음이라도 착해서 부인을 사랑할줄 알아야지요. 야만인 같이 화나내고 욕이나하고 그런데 누가 같이 살려고 합니까. 그리고 왜그리 술은 많이 마십니까.
    그러니까 장가을 못가서 외국에서 장가 갈려고 하겠지만 능력과 노력을 하지 않을려면 절대 결혼 하지 마세요. 당신들이 있어 정말 한국인이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합니다. 진짜 베트남에 와 보세요. 한국인이 얼마나 나쁜사람으로 인식을 하고 있는지요. 이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 하여야만 한다고 생각 합니다. 대만 같은 경우에는 정부에서 나이 차이가 너무나면 결혼 허가을 받을수가 없습니다. 괜히 능력도 없는사람이 나이 어린 신부 맞을려고 절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로 한국을 위한다면 말입니다. 그냥 혼자 열심히 사시기 바랍니다.
    정신병자 이런 사람 하고 모르게 결혼시키는 일이 없도록 진짜 부탁 드립니다. 정부에세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시기 부탁 드립니다.

  20. 2008.12.30 21:51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1. 모든것의한울 2008.12.31 07:48 address edit/delete reply

    다른 나라에 와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인데, 저런 분들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마담 빈 "진짜 美人은 능력 가진 창조적 여성"



'마담 빈', 베트남전 종군기자였던 내게 그녀는 전설이었다.
'파리 평화회담의 전설'의 대담이 얼마 전 극적으로 이뤄졌다.
단아하지만 결연했던 그녀를 서방언론은 '신비의 대상'으로 보았다.
부주석·교육장관을 10년씩 역임한 그녀는 베트남 최고위급 여성이다.
미스코리아 행사에서 우연히 그녀를 보았다.
긴급 인터뷰를 부탁해 만날 수 있었다.



지난 7월2일 오후 베트남의 호찌민시에서 열린 미스코리아 후보들의 한복 패션쇼 모습.‘ 한국-베트남 문화교류 한복 패션쇼’는 호찌민과 하노이에서 각 한차례씩 열려 베트남 정·관·재계 인사들로부터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을 자아냈다.

사진 = 하노이(베트남) 김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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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응웬 티 빈(Nguyen Thi Binh)
(오른) 안병찬 前한국일보 ‘사이공의 최후' 특파원· 現언론 인권센터 이사장


하노이는 중국과 1000년을 싸운 뒤, 항불 전쟁 9년과 항미 전쟁 20년을 버텨내고 프랑스와 미국을 이긴 용감무쌍한 도시다. 호찌민의 영묘가 있는 이 위대한 도시는 여전히 콧대가 높다.
지금 이 도시는 실리경제를 추구하랴, 드높은 혁명의 자존심을 견지하랴, 두 마리 토끼를 좇으며 파천황의 대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22년 전에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이래 경제개방의 길을 일로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 특파원으로서 사이공의 패망을 현장 취재했던 필자가 논설위원으로 14년 만에 호찌민시(옛 사이공)를 찾아간 것은 1989년. 그때 내쳐 수도 하노이를 가보고 어느새 또 다시 19년이 흘러 이번에는 한국일보가 주회한 ‘한국-베트남 문화교류 한복패션쇼’를 참관하고 호찌민시에 있는 한국총영사관과 통일궁 현장에서 ‘특파원 역사특강’을 하기 위해 동행했다.



■ 아오자이 입고 한복 행진 바라 본 응웬 티 빈

호찌민과 하노이에서 2007 미스코리아 두 명과 2008 미스코리아 후보 51명은 저마다 한복을 갈아입고 도합 200가지 색깔의 눈부신 조화를 연출하니 그대로 한류의 물결이 되어 흘렀다.

이 순간 20대 초반 신세대인 이들은 ‘미스코리아 상업주의’라는 눈총을 거리낄 것 없이,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한 왕년의 적도(敵都)와 친선하고 모국에 기여하는 한국적인 문화아이콘이었다.

태극기와 베트남 국기인 황성적기(黃星赤旗)를 게양한 하노이대우호텔은 혁명 수도에서 여전히 최고 최대의 호텔이다. 한국이 베트남에 투자하는 국가들 순위에서 첫 자리를 차지해온 저간의 정황을 일깨우는 15층 호텔.

그런데 지난 16일 밤 한복패션 문화행사가 열린 그랜드볼룸 주빈 석에서 뜻밖에‘전설의 여성’을 만났다. 밤색 아오자이에 흰 바지를 입고 나온 그녀는 한복 행진을 열심히 바라보면서 “아름답다”를 연발했다.

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 출신으로 혁명1세대 중 최고의 여성으로 꼽히는 응웬 티 빈(Nguyen Thi Binh). 그녀는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 측 수석대표로 파리평화회담에 참석하면서 서방 미디어에 의해 ‘마담 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40대 초ㆍ중반의 5년간 파리에서 외교활동을 펴면서 마담 빈은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서방 사진기자 레그 랭커스터는 베트남 여성의 쪽머리를 한, 단아하고 단호하며 품위 있고 결연한 그녀의 갸름한 동양미인형 얼굴들을 포착했다.

그녀가 파리평화회담 석상에서 연설하고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의 핵감축운동(CND) 집회에서 연설할 때면 세계 언론은 난리법석을 쳤다. 1970년대 초 필자 역시 사이공 주재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멀리 파리에 나타나는 마담 빈을 신비한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통일베트남의 교육부장관과 부주석을 각각 10년 씩 역임한 마담 빈은 퇴임 후 베트남아동기금 총재, 베트남평화발전기금 총재, 세계고엽제피해자총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갑자기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듯한 마담 빈의 생각을 직접 듣고 싶었다.

오늘의 이념과 관심을 투영하여 끊임없이 해석해내는 작업이 역사라면 ‘마담 빈’과의 만남을 통해서 시대의 순환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철저한 혁명가 출신의 마담 빈이 과연 ‘여성미의 과시’를 이벤트로 삼는 미스 선발대회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 궁금했다.

1927년 생. 금년 생일이 지나 만 82세. 단아하고 결연하던 얼굴은 둥그스름한 보살 할머니 얼굴로 바뀌었다. 그러나 정신은 명석했다. 빈 총재는 뜻밖에도 한국인 양자인 홍선(하노이 허머스앤선개발 대표)씨를 통역으로 대동했다. 호찌민국립대 법대를 졸업한 홍선씨는 유창한 동시통역실력으로 인터뷰를 무리 없이 연결했다.



■ “여성 최고의 미는 여성다움이다”

(안) 여성 최고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빈) 여성의 외형적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여성다움, 아름다운 전통적 여성상, 현모양처의 여성상 뿐 아니라 능력을 가진 창조적 여성상이 필요하다.

(안) 빈 총재는 항불 및 항미 전쟁에 평생을 투신했는데 현재 상황의 여성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보는가.

(빈) 전쟁 당시에는 여성의 역할이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기본적으로 여성스러움은 간직해야 한다.

(안) 여성 혁명 1세대의 최선봉으로 보아도 되는가.

(빈) 항불 및 항미 전에 앞장선 세대지만 최전열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투신한 비밀동지가 여럿 있다. 나는 여성으로 항전에 앞장선 세대의 하나일 뿐이다. 1945년 8월 혁명이 일어났을 때 열여덟 살이었다. 나는 항불 전쟁이 끝나자마자 항미 전쟁에 뛰어들어 30여 년 간 쉬지 않고 항쟁했다. 그리고 나라를 새롭게 세워 발전시키는데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다.

(안) 빈 총재가 베트남임시혁명정부 대표로 파리평화협정에 참가하고 1973년 1월 휴전이 성립했을 적에 나는 한국일보 특파원으로 남부 수도 사이공에 있으면서 휴전을 맞아 취재한 경험이 있다.

(빈) 그랬는가.

(안) 오늘 공연을 본 느낌은.

(빈) 일단 여성들이 많이 아름답다. 한국전통의상이 아름답고 화장이 아름답다.

(안) 아오자이는 어떤 의상인가.

(빈) 아오자이는 긴 옷이라는 뜻으로 민족 전통의상이다. 노동을 할 때 입는 옷은 아오바이라고 한다. 항전 시기에는 주로 아오바이를 입었다. 아오자이는 편한 옷이 아니다.

(안) 이틀 전에 미스 유니버스대회를 나짱에서 개최했는데 어떤 생각을 했나.

(빈) 직접 가보지 않았지만 그 같은 행사를 개최한 것은 좋은 일이다. 미를 뽐내며 여러 국가를 알리는 문화 활동의 일환으로 본다. 베트남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도 되고. 이런 행사를 개최하기는 쉽지 않다.

(안) 여성미의 산업화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

(빈) 여성은 미인대회에만 나가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일도 하고 경제활동에도 많은 역할이 있다. 모든 부분에서 활동하고 있다.

(안) 당신은 어떤 활동에 주력했나.

(빈) 인생을 살면서 문화 활동을 생활의 일부로 삼았다.

(안) 혁명 1세대로서 신세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귀하는 교육자로서 10년 간 통일베트남의 교육부 장관을 지내지 않았나.

(빈) 우리 세대보다 신세대는 발전했다. 우리 세대는 애국심과 조직사랑의 단체의식이 강하다. 그 당시 세대의 책임 때문이었다. 지금 세대의 문제는 전(前) 세대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전 세대의 의무로 지금도 교육문제에 노력을 들이고 있다.

(안) 지금 하는 일은 무엇인가.

(빈) 베트남아동기금 총재로 사회적으로 불우한 아동을 지원하고 따로 고엽제 피해자를 돕는 일도 한다. 평화발전재단 이사장으로서 정치활동을 한다.

(안) 한국인 젊은이를 양자로 삼은 이유가 있는가.

(빈) 우리는 2000년에 처음 만났고 2004년 한국방문을 계기로 양자를 삼게 되었다. 홍선은 귀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안) 한국 드라마를 보는 가.

(빈) 젊은이들이 많이 본다. 나 말인가. 나는‘주몽’을 보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12일 오후 베트남의 호찌민시에서 열린 미스코리아 후보들의 한복 패션쇼 모습.‘ 한국-베트남 문화교류 한복 패션쇼’는 호찌민과 하노이에서 각 한차례씩 열려 베트남 정·관·재계 인사들로부터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을 자아냈다. 김주성기자



* 항불·항미에 앞장선 베트남 여성 혁명1세대 응웬 티 빈은 누구

응웬 티 빈(Nguyen Thi Binh) 그녀는 통일 이후 베트남의 성장 과정을 외교부장관, 교육부장관, 공산당대외위원장(외교부장관을 지도하는 자리), 부주석의 자격으로 직접 주도해 온 인물이기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실리추구 노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여성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여성만의 풍부한 감성뿐만 아니라 강단 있고 단호한 결단력이 요구 된다"고 말했다. 미인선발대회에 대해서는 굳이 양성평등주의의 비판적 시각을 갖지 않고 여성의 미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는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중부지방 꽝남 성 출신인 빈 총재는 젊은 시절에 사이공에서 교사가 되어 수학을 가르쳤다. 프랑스어는 어려서 천주교계 미션스쿨에서 배웠다. 파리협상 수석대표로 활동할 때 유창한 불어를 구사하여 서방 외교관들이 감탄한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홍선씨는 빈 총재의 2004년 5월 방한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했는데 후에 빈 총재가 유일한 양아들로 삼겠다고 해서 모자의 인연을 맺게 됐다고 전한다. 그녀는 현재 하노이 시내의 자택에서 장남, 며느리와 함께 검소하게 생활하고 있다.

국가 연금이 나오고 아들이 베트남 최대손해보험회사 부사장이므로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공병대 고위 장교로 근무한 그녀의 남편은 10여 년 전에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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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바실리카 2008.09.02 12:25 address edit/delete reply

    블로거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이 공간을 통해 기자생활 46년을 회고하고 르포르타쥬 저널리스의 산실이 되길 소망합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39 신고 address edit/delete

      바실리카 공화국 황의홍 대통령님, 훈수 많이 해 주에요.

  2. BlogIcon 커서 2008.09.06 20:20 address edit/delete reply

    안기자님(이렇게 불러드리는게 좋겠죠) 부고기사 잘봤습니다. 소설의 한 장면을 본 느낌입니다. ^^ 이 인터뷰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39 신고 address edit/delete

      문론이지요. 안 기자가 듣기 좋습니다. 부고기사가 소설같다니 즐겁구요.

  3. DJ파리체 2008.09.07 10:17 address edit/delete reply

    안기자님의 글을 보면서 항상, 서사와 서정과 현장이 어떻게 연동할 수 있는지 배웁니다. 건강하게 더욱 빛나는 활동 부탁드립니다.

    • BlogIcon 안병찬 2008.09.27 17:33 신고 address edit/delete

      서사와 서정과 현장의 연동. 너무 좋은 제목이네요. 고맙습니다. 댓글이 늦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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