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시이오(CEO)’ 유아독존 시대

 

 


‘시이오(CEO)’ 유아독존 시대


시이오는 정글의 법칙을 다스리는 제왕으로 행세


미국 제도가 지구촌에 뿌린 씨앗 중에 이른바 '시이오(CEO)'라는 용어가 있다. 시이오(CEO)는 주술이 걸려있는 용어다. 어느 해인가, 영한사전 1989년 판을 보니 시이오를 경영최고책임자(Chief Executive Officer)로 등재해 놓았다. 이로 미루어 보아 시이오라는 말이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체제가 고개를 든 이후인 1980년대 중후반이라고 짐작한다. 현재 한컴사전은 그 뜻을 ‘최고경영자(最高經營者)’로 조금 바꾸어서 싣고 있다.


시이오 지상주의가 기승을 떠는 풍조다. 절대자의 권위를 확보한 시이오는 정글의 법칙을 다스리는 제왕으로 행세한다. 10년 전에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는 주간 경제동향지(‘시이오 인포메이션:CEO Information’)는 시이오의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위기 시에 더욱 빛나는 시이오의 역할’을 다음과 같은 단어로 풀었다.


“최고위(Chief)= 기업과 운명을 같이 하고 책임을 지는 마지막 보루.


경영진(Executive)=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

 

임원(Officer)= 개인이 아닌 사회적 기관(기업)의 중핵기구.


위기에 처한 국내기업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안목과 능력을 갖춘 유능한 시이오 몫임.”


‘시이오 인포메이션’은 2001년에는 ‘전환기 시이오의 역할과 경쟁력’(2001년 5월 16일자)에서 시이오를 다음과 같이 재정의 했다.


“기업 내의 최고위직 임원으로서 기업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에 대한 실질적이고도 최종적인 의사결정권과 책임을 가지는 자를 말함. 이 같은 맥락에서 국가의 대통령이나 대학 총장, 병원장 등도 시이오라 할 수 있음.”


풍미하는 스타 시이오


바야흐로 시이오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핵심어로 한국을 풍미하게 되었다. 시이오는 응축, 유연, 공유, 모험, 특이, 지식, 기본의 7대 미덕을 체질화했다고 자처하고, 오직 저만이 타성을 깨고 변화를 주도한다고 장담하면서 유아독존의 존재로 무한경쟁의 정글을 누빈다.


정당의 대선 주자들은 다투어 가며 자신을 시이오형 지도자라고 내세운다. 한편, 과거의 대통령을 두고 주식회사 대한민국 시이오라고 칭송한 글이 나온다. ‘시이오 총리론’ ‘주식회사 ○○남도 시이오’ 따위 정치 구호가 줄지어 등장한다.


현직 대통령은 내놓고 ‘시이오 대통령’임을 자처한다. 뿐인가. 대통령도, 대학총장도, 병원장도, 식자도, 문화인도 거품이 낀 시이오의 훈장과 벼슬을 열망하는 풍경이다. 시이오는 유아독존의 주술을 걸고 ‘스타 시이오’는 무한경쟁의 신화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무기에 그늘이 지듯이 시이오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엘지경제연구원 김영건 선임연구원은 ‘슈퍼 시이오(CEO)의 그늘’이라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시이오에 의존하는 조직은 전략을 실행할 만한 역량을 갖춘 우수한 인력과 리더의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


바로 ‘슈퍼 시이오 왕국’의 함정을 가리킨 경고이다. 그의 해설에 따르면 미국은 2차 대전이 끝난 후 30여 년 동안 ‘경영자 자본주의’ 시대를 거쳤고, 1980년대 이후 밀려든 불황을 배경으로 세를 얻은 ‘주주 자본주의’시대를 겪었다. 이때 시이오는 입지가 좁아졌다가 최근 다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한겨레 2008년 6월 3일자 참조)


시이오는 태생적으로 독재자


유아독존의 1인 전횡은 시이오의 지도력이 갖는 가장 큰 위험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시이오는 태생적으로 독재자다.


미국 광고회사의 회장을 15년간 역임한 바트 커밍스는 ‘광고계의 자비심 많은 독재자들’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처럼 호령하는 자리에 있는 50여 명의 경영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리더로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가 독재자라는 사실을 아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의 말이 곧 법이요 그래야만 한다.”


커밍스는 ‘자비심 많은 독재자’가 되더라도 아무것도 안 되는 것보다 낫다고 역설한다.


“자비심 많은 독재자는 상황을 평가하고 결정을 내릴 때 공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비스러운 독재자가 되려면 상당한 희생이 요구된다. 자비스러운 독재자가 되는 일은 결코 좋지만은 않다. 그러나 전혀 안 되는 것보다는 낫다.”


금융위기는 미국이 초래했지만 세계적인 위기다. 이 절대 위기에 시이오라는 ‘본질적인 독재자’, ‘자비스러운 독재자’ 들이 어떤 방법과 수단으로 위기를 관리할까, 한 배에 타고 있으니 불안하고 울적하다. (뉴시스 11. 17)


안병 ann-bc@hanmail.net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


 

나에게 반하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안병찬 (환경재단도요새, 2008년)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