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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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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12년차와 48년차의 조우]

나를 탐방한

베트남 여성 특파원

                   역습 취재기

 

 
봄비가 오던 날에

초봄의 부슬비가 내리는 3월의 마지막 날, 한 여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를 만나서 35년 전 사이공 패망 당시에 겪은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한다. 자기는 ‘베트남통신사(TTXVN)’ 서울 지국장 쩐 카잉 번이라고 소개한다.

나는 지국장인 번 특파원이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나타난 그녀는 양장 차림이다.

 

 

해마다 4월이 오면 나는 열병을 앓는다.
꽃 피는 4월이 와서가 아니다.

사이공이 패망하고 베트남이 통일되던 때의 강렬한 햇살과 열대성 소나기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4월의 열병이 시작 될 때 베트남의 탐방자라니 내심으로 반가웠다.

 

 

 

4월 마지막 날의 열병

금년은 베트남 통일 35주년이다. 1975년 4월의 마지막 날 사이공은 패망했고 베트남은 통일했다.

그날 상오 11시, 부이 둑 마이가 운전하는 첫 번째 해방군(북베트남 군) 탱크 제879호가 독립궁 철문을 박차고 진입하던 시간에, 한국일보 특파원인 나는 사이공을 탈출하여 남중국해 상으로 밀려나서 피난선 서전트밀러 호 갑판에 몸을 싣고, 라디오를 청취하며 ‘베트남 통일’의 소식을 취재하고 있었다.

사이공 패망의 해이자 베트남 통일의 해에 쩐 카잉 번 지국장은 나이가 한 살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한 살일 때 사이공에서 벌어진 상황을 이일저일 물으며 디지털 카메라로 나를 촬영했다. 나는 1975년 에 쓴 르포르타주 <사이공 최후의 새벽>과 그 14년 후에 처음으로 베트남에 들어가 취재해서 쓴 특파원보고서 <베트남, 오늘의 베트남>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이공 해방 30주년에 맞추어 2005년 4월에 출간한 증보판 <사이공 최후의 표정 컬러로 찍어라> 한 권을 기증했다. 그녀는 긴박했던 사이공의 마지막 날들에 내가 촬영한 사진들 중에서 여러 장을 골라냈다.

 

 

‘텅덩싸베트남’ 기습 탐방

이튼 날 4월 첫 날에도 봄비가 내렸다. 나는 서울 성북구 동성동 2가에 있는 베트남통신사 서울지국을 전격적으로 탐방했다. 쩐 카잉 번 지국장과 베트남 통신사를 스케치하고 싶어서다.

 번 지국장과 함께 일하는 동료  특파원 한 명은 취재차 외출하고 없었다.

그녀는 그날 두 가지 뉴스에 비중을 두어 본사에 송고했다고 한다.

 

 

우선 침몰한 천안함에 관한 소식이다. "한국 해군이 천안함 침몰에 늦장 대응했다"는 세간의 비판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라고 한다. 또 하나는 여성가족부가 4월에 시작하는 ‘국제결혼 행복프로그램’이다. 한국에 시집을 온 베트남 며느리가 많기 때문에 다문화 가정 문제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쩐 카잉 번 지국장은 다섯 살배기 딸을 데리고 서울 특파원 생활을 하고 있다. 남편은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하노이에서 국가 공무원으로 일한다. 식구가 둘로 갈려있어 서로 그리워하는 가운데 꿋꿋이 살고 있다.

그녀는 하노이종합대학교 문학과에 다니며 2년 동안 ‘한국언어와 문화’ 강의를 수강하며 한국어 기초를 닦았다. 1998년에 베트남통신사에 입사하여 국제부 소속 12년차 기자가 되었다.

  

종군특파원 25O명 순직

베트남통신사는 국영통신사로 원명이 ‘텅덩싸베트남(TTXVN)이다. 호찌민이 주도한 1945년 8월 혁명 직후에 설립되었으니 역사가 65년이다. 2008년에 웹사이트 ‘베트남플러스’를 열고 베트남어, 영어, 불어, 스페인어 판을 내고 있다.

이 통신사 기자로서 기나긴 반식민주의 및 반제국주의 전쟁에 종군하여 순직한 사람은 250명에 달한다고 한다. 쩐 카잉 번 특파원은 입사한 후에 순직한 종군기자들 이름과 사진이 본사 역사자료실에 전시된 것을 보고 느낀 바 컸다고 했다.

그녀는 베트남통신사 현 사장인 쩐 마이 흐엉은 베트남 통일의 역사적인 사진을 찍어서 더욱 유명해진 전쟁기자라고 소개한다.

1975년 4월 30일 상오 11시, 부이 둑 마이가 운전하는 첫 번째 해방군탱크 제879호가 사이공의 독립궁 철문을 박차고 진입하던 그 사진을 찍은 주인공이다. 쩐 마이 흐엉 사장은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후 제주도 기행문을 영자지 베트남타임스에 기고했는데 제목은 ‘한국의 낙원 두 팔을 벌리고 있다’였다.

 

  

□ 사이공 함락 직후 독립궁에 진입한 베트남군 탱크(외신)

 

12년차와 48년차는

그녀는 특파원으로서 남북관계, 한반도를 둘러싼 한미관계와 중일관계, 그리고 경제정책이 자기의 중요한 관심사라고 했다.

그녀가 내게 물은 것은 베트남의 경제전망이다. 나는 중국의 개혁 개방정책과 10년의 격차를 두고 베트남이 쇄신정책(도이머이)을 채택하여 연착륙하고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호찌민시가 옛날에 비하면 어떻게 변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본래 아름다운 사이공의 얼굴이 경제개발로 망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12년차 베트남 여성 특파원과 48년차 한국 전 베트남 특파원은 비오는 날에 만나서 서로 상대를 취재했다.

 

 

 

2010년 4월 2일 새벽에 

                                                                          posted by 안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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