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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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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가벼운 저널리즘 강의abc

"모든 미디어의 근본은 저널리즘이다.

현장과 이론을 가볍게 접목하는 이야기들이다."

 

[신문주간에]

종이와 ‘옴니넷’ 시대

 

당신은 세상을 읽는가

한국 인쇄신문은 금년 4월 7일에 54회 신문의 날 행사를 지냈다. 자축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이번 신문의 날 표어 대상작은 “당신은 지금 세상을 읽고 있습니다.”이다. 왠지 전하는 말이 선명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쇄 중심의 종이신문은 고려 말에 나온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 직지(直旨․1377년)와 그 후에 독일에서 구텐베르크가 성서를 대량으로 인쇄하려고 개발한 금속 활판 인쇄술(1450년경)을 계승했다. 그것이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어 몸 둘 곳이 없을 만치 궁색한 지경에 빠져있다.

오늘의 대세인 인터넷과 모바일 탓이 가장 크다.

 

신문은 황제 매체?

신문의 날에 한국일보는 ‘신문은 황제 매체’라는 제목의 시론을 실었다. 필자는 동서대학교 영상매스컴학부 이완수 교수. 그는 신문에 네 가지를 주문했다. ‘인쇄는 이제 그만(프린트 라스트)’이라는 생각으로 활자와 종이를 버리고 , 기자가 제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콘텐츠 개발자’로 거듭나고, 방송이 아니라 모바일로 승부를 걸고, 정보매체의 허물을 벗어 지식매체로 탈바꿈하라는 말이다.

이완수 교수의 끝말은 “모든 콘텐츠를 쓸어 담을 수 있는 모바일은 지금까지 나온 매체 중에 가장 강력하다.”이다. 그는 신문이 위에 열거한 네 가지 숙제를 실천한다면 옛 날의 영화를 되찾는 일은 희망적이라고 주장한다.

 

'옴니넷' 존재양식

신문과 인쇄매체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독일의 미래학자인 마티아스 호르크스는 20년 안에 인터넷은 이른바 ‘옴니넷(Omninet)'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옴니넷은 모든 콘텐츠가 나타나는 플랫폼이다. 그러므로 옴니넷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한 편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플랫폼이라는 존재양식이 된다.

호르크스는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하더라도 낡은 미디어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고 새롭게 결합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밟는 다고 말한다. 매체는 진화할 뿐이지 돌연변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이로 만든 책이나 잡지는 여전히 남겠지만, 보다 모양이 근사하고 우아하고 냄새가 좋고 접을 수 있게 된다고 내다본다. 또 형태는 종이를 닮은 스크린처럼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변화는 인간 인지능력의 발전이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이 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디지털 반동

호르크스는 신기술의 힘을 낙관하지 않는다. 그는 ‘디지털 반동’이 일어나리라고 예측한다. 이른바 인터넷 도취증(인터넷 유포리어)에 대한 반동이 온다는 말이다.

금년 초 한국에 온 그는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한 대목에서 종이를 칭송하고 그 미래를 낙관적으로 짚었다. “종이는 자료 보관에 탁월한 기능이 있고 건전지가 필요 없으며 다운되지도 않는다.”

그는 인터넷은 지식을 전하는 매개체이므로 뛰어난 기술만 자랑하지 말고 '편안한 기술'이 되도록 만들어야한다고 촉구했다.

 

인터넷 악덕론

불과 10년 전에, 인터넷 위해론이 쏟아져 나온 때가 있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인터넷의 힘과 장래성을 턱없이 과대평가하는 풍조가 있다고 경계했다. 노벨상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인터넷 열풍을 탄 ‘첨단기술주의 폭등’은 피라미드형 사기수법의 결과와 같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는 ‘인터넷 악덕론’이라는 제목으로 경제수필을 썼다. 나는 인터넷은 신문지면이나 영화 영사막 같은 도구에 다름 아니라고 본질을 따졌다. 또 인터넷은 기생충 같아서 숙주(宿主)가 필요한 존재인데도 이를 경고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인터넷은 오직 돈을 향해 돌진하고 쇄도한다, 인터넷은 ‘속도전능주의’라는 이름의 짜릿짜릿한 전율을 줄 뿐이다.” 그렇게 나는 비판했다.

 

모바일 너무 급하다

모바일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기존 경제학은 인간의 욕망은 무한정하나 재화는 부족하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인터넷 경제학은 이와 정반대의 성질을 강조한다. 인터넷 자원(정보)은 공급이 수요를 무한정으로 초과한다. 수백만 명, 수천만 명이 내리받기를 해도 줄어들지 않는다.

인터넷 숭배자들은 인터넷 세계에 절대적인 강자나 영원한 약자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터넷이 정보 부자와 정보 빈자 간의 격차를 만들고, 인터넷형 빅브라더 혹은 초 지능로봇의 출현을 주관할지 모른다는 위험을 외면한다.

스티브 잡스를 필두로 한 복음 판매자들은 모바일 인터넷이 선도하는 미래를 무조건 경이롭게 색칠하며 무한정한 정글의 혈투를 선도한다.

나는 “무한 경쟁과 광속같은 삶의 격변”을 진운이라고 여겨 광풍 질주하는 세기말적 풍조에 염증을 느낀다.

 

□ 독일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마가진 도이치란트.de>에서)


2010.04.12
                                                            posted by 안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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