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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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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수사반장 최중락

풍 맞은 '오뚝이' 영감

 

형사문제를 문의하려고 최중락 고문에게 전화를 했다.

“나 지난 2월에 풍 맞고 지금 병원에 누워있어….”

왕년의 포도왕이자 영원한 수사반장인 최중락. 그가 이번에는 중풍에 얻어맞아 쓸어졌다고 한다. 그는 넋두리를 한다.

“미안해, 초라한 꼴 보여서.”

나는 새내기 사건기자 시절부터 포도왕 최중락과 쫓고 쫓기며 우정을 쌓았다. 수사반장 최중락은 이웃의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 인정에 인간미가 철철 넘쳐나는 어른이다.

“강력계 형사는 의리가 있어야해.” 그는 노상 강조했다.

 

입 돌아간 뇌경색

59년차 수사반장 최중락 고문은 ‘40년 중풍전문’이라는 동서한방병원 병실에 누워있다.

지난 2월 27일 토요일 늦은 아침, 그는 은평구 신사동 자택 침대에서 중풍에 일격을 당했다. 왼손이 무력해져서 움직일 수 없었다. 입이 왼쪽 귀밑으로 돌아간 최중락을 발견한 것은 간호사 면허를 가진 며느리였다. 그녀가 응급조치로 손가락을 따서 피를 내자 돌아갔던 입이 반쯤 내려왔다. 최중락 고문은 119로 연세의료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 병상에 누워서 확인 전화를 하는 최중락 고문

 

뇌출혈이 아니고 뇌경색 이어서 다행이었다. 단층촬영을 해보니 우측 중뇌부의 혈관을 혈전이 막아 초승달 모양의 뇌경색이 일어났다.

혼자서 보행할 수 있게 되자 4월 9일에 이 한방전문병원으로 옮겨서 침술치료를 받았다. 이제 돌아갔던 입도 거의 제자리를 잡았다.

“침 한번 맞고 이 입이 돌아왔어. 대단한 거야.”

 

배삼룡 상가서 퍼마신 소주 한 말

그는 중풍을 맞은 것이 전 날에 말술을 마신 탓으로 여긴다.

“배삼룡이 세상 뜬 날 말이여, 상가에 가서 송해, 남버원과 같이 술을 퍼 마셨어.”

“소주 한 말은 더 먹었어. 소주 한 박스가 넘었지.”

본래 그는 두주불사의 주객이다.

그는 앞서 세 번의 병마로 위기를 맞았다.

1994년 11월 4일 제1차 림프종이 발견되었다. 이후 5개월간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고 완치.

꼭 10년 후인 2004년 11월 4일 제2차 림프종 발병. 5개월간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고 완치.

2006년 6월 3일 친구 집의 20계단에서 낙상, 경추 5,6번의 연골파손으로 하체마비 증상이 생김. 수술을 받고 회복.

 

오뚝이 영감이다

이 세 번의 위기를 넘기고 이번에도 회복하고 있으니 노 수사반장 최중락 고문은 영락없이 오뚝이 영감이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으므로 5월 초에 퇴원해서 출근할 생각에 마음이 급하다.

드라마 '수사반장'의 최불암과 함께

 

세상이 알듯이 포도왕 최중락은 살아있는 수사반장이다. 최불암이 분장한 수사반장의 실제 모델이 최중락이다. 문화방송의 범죄수사 드라마 ‘수사반장’은 1971년 3월 6일부터 1989년 10월 12일 까지 장장 18년 간 880회를 계속했다.


디지털 세대, 발로 뛸 것

서울시경 강력주임을 거쳐 경찰청 수사지도관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1991년에 디지털 감지기 민간 경비회사인 에스원(세컴)의 상근고문이 되었다. 그 이래 8순을 넘긴 오늘까지 19년 간 3천여 명의 디지털 세대 보안담당 직원을 상대로 자기 경험을 전수하며 현직을 지키고 있다.

왕년에 발로 뛴 수사 직무경험은 첨단 정보화 시대에도 변함없는 값어치를 지니는 것을 보여준다.

 

□ 자료 확인 중. 며느리 정상애 씨와

 

며칠 전에 그는 병상에서 신문을 보다가 한 강력계 형사가 무속인에게 4억 8천만 원을 사취당한 끝에 자살한 것을 알았다. 마음 아픈 사연을 읽자 당장 조화를 보냈다. 작년 4월에는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검거한 안산경찰서 한춘식 경사를 찾아가 금일봉을 주고 격려했다.

왕년의 포도왕 최중락의 일거리 중 하나는 이처럼 뛰어난 수사실적을 올리거나 고난을 당하는 후배 강력반 형사들을 찾아서 격려하는 일이다.

2006년 10월, 그는 서울 방배경찰서 형사과장 김갑식 경정 앞으로 유전자 감식수사의 성공을 축하하는 난 화분을 보냈다. 프랑스 신문 르몽드의 주필이 ‘우리는 눈이 멀었다’는 제목의 시론에서 “한국의 형사경찰을 깔본 우리가 잘못했다.”하고 자성론을 편 무렵이었다.

 

유전자 수사 때도

 당시 김갑식 경정의 강력팀은 3단계 수사로 사건을 완결했다.

첫 단계는 영아시체유기 사건을 신고한 프랑스인 남편의 동의 아래 DNA 시료를 채취․확보함으로서 부자관계임을 알아낸 일이다.

두 번째는 발로 뛰는 탐문수사를 철저히 한 일이다. 종합병원과 산부인과 병원 300여 곳을 탐문하여 영아의 엄마가 프랑스인 부인 베로니크임을 밝혀냈다.

세 번째는 두 가지 유전자 자료로 영아와 엄마와 아빠의 삼각관계를 통합적으로 입증한 일이다.

 

한국 형사경찰이 처음 유전자 지문 분석법을 활용한 것은 1992년. 의정부에서 발생한 어린이 강간 추행사건에서였다. 그보다 10년 앞서서 최초로 유전자 검사를 수사에 응용한 것은 영국 수사당국이라고 알려진다. 미국의 첫 사례는 1987년 플로리다에서 일어난 성범죄에 유전자 지문을 응용하여 범인에게 22년 징역형을 내리게 한 경우이다.

 

대포폰 수사 때도

 포도왕 최중락은 같은 해 2006년에 서울 강남 경찰서도 직접 찾아가서 국민은행 권총강도를 잡은 강력팀장 유재선 경감 등 후배 형사들에게 점심을 사주고 금일봉을 건넸다.

강남경찰서 강력팀이 전례 없이 빠른 수사로 단 47시간 만에 용의자를 검거한 것은 통신수사와 컴퓨터수사를 통합한 과학수사의 성과였다.

 

범인은  가공인물의 명의를 쓰는 ‘대포폰’으로 경찰 추적을 따돌리려 했다.

강력팀은 먼저 범행에 쓴 권총에 주목하여 발 품이 많이 드는 탐문수사로 도난당한 사설 사격장을 알아내고, 용의자가 사격장에 ‘대포폰’을 건 것을 역 추적하여 핸드폰 대리점을 찾아냈다.

대포폰’을 택배로 배달한 곳은 용의자가 투숙한 여관. 여관 컴퓨터의 인터넷 접속 상황을 분석한 결과 용의자의 여자 친구의 인식번호(ID)가 나왔다. 결국 그녀에게 용의자가 현재 사용하는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서 정확한 위치를 추적하는데 성공했다.

 

□ MBC 수사반장 40년의 회고록(2007년 1월). 가운데가 최중락 수사반장. 뒷줄은 배역인 최불암, 조경환, 김상순, 남성훈 등.


첨단수사 바탕은 '우공이산'

지금 보면 포도왕 최중락의 초상에는 ‘우공이산’의 우화가 배어 있다. 집 앞을 가로막은 태산을 옮기기 위해 90세의 노인 우공이 전 가족을 모아 총력을 쏟아 부은 일은 빛의 속도를 찬양하는 오늘의 감각으로 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다.

왜 바보같이 산을 옮기려고 달려들어? 산 옆으로 지름길 하나만 내면 그만이잖아! 이런 요령이 지배하는 세태이다.

그러니 노 수사반장 최중락이 왕년에 수행한, 발로 뛰고 땀을 흘리는 탐문수사는 인터넷 수사와 유전자 수사로 대표되는 최신형 과학수사와 비교하면 낡은 옛 노래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보라.

서래마을 유전자 감식 수사와 국민은행 권총강도 수사의 성공을 보건대 첨단 수사 기법의 밑바탕은 역시 우공이산 식 탐문수사의 노력이 깔려있지 않은가.

신․구의 절충과 타협의 묘미를 보여준다.

 

 

□ 수사반장 최중락 지금도 근무 중 


2010.04.17
                                                 posted by 안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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