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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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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베트남 통일열차-1]

 35년 시공 넘어

‘사이공 해방’ 1700km를 가다

호찌민/글 · 사진  안병찬 기자 

 
100세가 넘은 '전설의 장군'은 여전히 '행동'하고 있었다. 전후 세대는 신자본주의 체제로 말미암아 통속화하고 있었다. 베트남의 산하와 사회 그리고 주민이 35년 전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았다.

 

`100세의 잡 장군

노이행 아시아나 733편을 탈 때부터 표완수 기자는 마음이 설레는 눈치다. 나 역시 이 취재 여행에서 출동의 흥분을 맛본다. 하노이 대우호텔에 도착한 다음 날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두 신사가 더위 때문에 멋을 제대로 부리지는 못하겠지만 마음이나 임무는 근사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림이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발신인은 나의 집사람이다. 이른바 ‘직접독자(가장 가까이 접한 독자)’로서 20년 전에 표완수 국제부장이 쓴 베트남 통일열차 첫 탑승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터라 인사로 한마디 한 것일 테다.  

하노이 길거리는 4월30일 사이공 해방 35주년과 5월1일 메이데이를 묶어서 경축하는 현수막과 간판으로 장식되었다. 올해는 하노이 정도(定都) 1000주년 되는 해다. 하노이는 중국과 1000년을 싸운 뒤, 항불전쟁 9년과 항미전쟁 20년을 치른 끝에 모두 이겨냈으니 용감무쌍한 도시다. 호찌민의 영묘가 있는 이 위대한 도시는 여전히 콧대가 높다. 하지만 이 도시는 내면으로는 고민이 매우 깊어 보인다. 실리경제를 추구하랴, 드높은 혁명의 자존심을 견지하랴, 두 마리 토끼를 좇으며 내부적으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국부 호찌민을 담은 4.30 해방 35주년 기념 현수막

 

호찌민 시의 거리와 건물하다 베트남 금성홍기와 '불멸의 전승일 4월30일'을 기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위는 호찌민 시 중심가인 동코이 거리의 승전 장식 전광판들.


이곳에는 살아서 전설이 된 보응우옌잡 장군이 있다. 디엔비엔푸 이승전의 전략가 잡 장군은 금년에 나이 100살이다. 지난 3월에 하노이 주재 임홍재 한국대사가 이임 인사를 드리겠다고 하자 그는 “일국 대사를 누워서 맞이할 수 없다”라며 사절했다고 전해진다. 병상에 누워서도 그는 행동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에 자원을 확보하려는 중국에 알루미늄 원료인 보크사이트 채굴권을 넘겨주었다. 베트남 쪽에서 환경보호론자와 지식인들이 비판의 소리를 낼 때 그는 그들을 대표해서 베트남 총리 앞으로 “재고하라”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4월30일’의 뿌리


베트남은 ‘바므이탕뜨’(4월30일)를 ‘남부해방일’ 혹은 ‘남부전복일’로 부른다.  베트남은 ‘4·30 항미전승’에 앞서 1954년에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 원정군을 무조건 항복시켜 ‘5·7 항불전승’을 이루었다. 베트남이 항불과 항미 전쟁을 차례로 치르며 통일을 달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117년이다. 그래서 잡 장군은 “4·30 항불전승은 5·7 항불전승에서 움텄다”라고 말했다.

잡 장군이 쓴 회고록 <디엔비엔푸-역사와의 동반>(2004년)을 영문으로 번역한 사람은 미국 여류 작가 래디 보튼이다. 그녀는 ‘세계를 바꾼 결정’이라고 제목을 단 기고문(베트남 타임스 2009년 4월25일자)에서 베트남군이 당초에 디엔비엔푸 총공격일을 1954년 1월 말로 잡았다가 왜 3월13일로 연기했는지, 여러 추적 조사 자료를 제시해서 밝히고 있다. 

 

수정 전략 ‘확고한 공격, 확고한 전진’

베트남군은 당초 ‘신속한 타격, 신속한 승리’를 전략으로 짰다고 한다. 그런데 기습타격 예정일을 11일 남겨놓고 호찌민 대통령은 “승리를 확신할 때만 싸우라. 승리가 확실치 않으면 싸우지 말라”고 명령한다. 잡 장군은 기습의 선봉대인 제308 ‘강철사단’을 라오스 국경 쪽으로 철수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장군의 새로운 전략은 ‘신속한 타격, 신속한 승리’에서 ‘확고한 공격, 확고한 전진’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3월13일 오후 5시를 기해 개시된 ‘확고한 공격, 확고한 전진’의 디엔비엔푸 공략전은 55일간 밤낮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5월7일 프랑스 원정군 사령관 나바르 장군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끝났다.

 

취재원 찾는 방법  

표완수 기자는 4월27일 하노이-사이공 ‘통일열차(등통)’를 타기 전 짧은 시간에 사람을 찾겠다고 나섰다. 20년 전에 사이공-하노이 ‘등통’에 동승했던 도민투안 부부다.

그는 미리 인터넷을 뒤져서 투안이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노이에 도착하던 날 밤에 먼저 공항에 나온 한국 잡지 <윈도 온 베트남> 발행인 유명호씨에게 수소문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호텔의 ‘카페 프롬나드’에서 아침 식사를 하다가 젊은 여성 지배인이 눈에 띄자 벌떡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날 낮에 그녀한테서 투안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표완수 기자가 왕년의 야성으로 기자의 발톱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내심 웃으며 구경만 했다.  


분단 17°선에서

시사인 커버스토리 (2010년 5월8일) 표지-통일열차 차창 밖 사진 취재를 하는 안병찬 기자사진=표완수 기자)  
  

                                                                                                                                                                  통일급행 SE5에 몸을 싣고 1박2일을 가는 동안 베트남 노부부에게 아래 칸 침대는 뺏겼으나 마음은 편했다.  나는 동호이와 후에 사이에 나오는 동하를 사진에 담고 싶었으나 정차역이 아닌 데다가 통과시간이 칼캄한 자정께여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통일열차 특등 11호 객실(객석 17-20) 스케치.(사진=표완수 기자) 


1972년 봄 북군은 파리평화협상 타결을 앞두고 군사분계선인 17°선에서 춘계 총공세를 취했다. 당시 필자는 사이공 주재 특파원으로 첫 번째 근무를 하던 때였다. 나는 최전선으로 달려가기로 결심하고 홀로 사이공을 떠나서 1100km를 북상해 4월5일에 꽝찌에 도달했다.                  

인적이 완전히 끊긴 1번 국도를 따라 최전선인 동하 시내로 들어가던 길이다. 초토화한 동하 시

내가 저 앞에 보이고 포성이 귀를 찢는데, 베트남 삿갓을 쓴 농부 한 사람이 길가의 논을 묵묵히 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농부는 최전선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그는 논을 일구고 있었다. 그날 나는 최대 위기를 넘겼다. 남군 중위의 지프차에 편승해서 마침내 17°선의 동하강 앞 최일선에 진입해서 사진을 찍으려던 찰나, 매복했던 북군 게릴라의 B40 견착용 로켓포의 저격을 받았다. 위기일발, 포탄은 15m 전방에서 작렬하고 우리는 지프차로 줄행랑을 쳐서 꽝찌로 돌아갔다. 바로 이런 사연이 있는 베트남 분단선이다.  

1972년 4월 5일 동하 최전선
          

종단 여행

언제나 같았다. 베트남의 분단 시기인 1971년과 통일 결전 시기인 1975년 3월에 사이공으로 날아갈 때나, 통일 이후 1989년부터 매년 호찌민 시를 찾아갈 때나, 짙푸른 삼림과 굽이굽이 흐르는 메콩강은 한결같았다.

인간은 어떤가. 베트남에서 분단과 전쟁과 통일, 또 도이머이(쇄신)의 길을 저 메콩강처럼 굽이굽이 살아온 인간의 모습은 어떤가. 2010년 4월28일 저녁 8시40분, 통일열차가 40분 연착해서 ‘사이공 역’에 도착하고 보니 이번에는 사이공의 냄새가 후끈한 지열로 전해진다. 역사 바로 옆에는 큰 롯데리아 점 하나가 이채롭게 눈에 띈다.

1975년 4월28일을 나는 ‘사이공 최악의 날’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날 저녁에 사이공은 24시간 통행금지가 선포되었다. 오전 9시에 주베트남 한국 대사관의 태극기가 마지막으로 걷혔고, 오후 6시 남베트남 공군 소속 F5 타이거 등 전폭기 3대가 반란을 일으켜 떤선 공항 관제탑과 미국 대사관 무관단 지휘본부를 기습 폭격했다.

1975년 오전 11시, 북베트남군 첫 번째 탱크가 독립궁 철문을 부수며 진입하고 있다.

(호찌민 람손광장 4.30 해방기념 사진전에서)

 

그 시간에 나는 막 에덴 빌딩 4층의 미국 AP 통신사 사무실에 들어갔다. 돌연 ‘꽝! 꽝!’ 하고 사이공 시내를 울리는 폭발음이 들렸다. 잇달아 폭음이 울리고 육중한 에덴 빌딩의 유리창이 부르르 떨었다. 전 시가에서 ‘탕 탕 탕 탕’ ‘따 따 따 따’ 하고 대공 포화가 지축을 흔들며 울려퍼졌다. 35년 전 4월28일에 나는 그런 말기 상황을 겪고 있었다.

나는 가끔 주인공 추적법을 써서 시간을 종단한다. 이 취재 방법은 장시간에 걸쳐 변수의 변화를 감지하고 탐색해 기술하는 데 유용하다. 내가 가장 긴 시간을 들여 종단적으로 취재한 주인공은 민요작곡가 찐꽁선이다.

분단 시기인 1973년 1월에 그를 처음 만나 인터뷰하고, 통일 이후 1989년부터 2001년 그가 사망하기까지 세 번을 더 만나 27년 동안의 굴곡을 관찰했다. 나의 관심은 찐꽁선이라는 베트남 지식인이 분단과 전쟁과 통일 시대의 굴곡을 헤쳐나가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궤적을 그려보는 데 있었다. 2001년 4월에 통일 베트남 민중으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이 작곡가가 죽으면서 나는 종단 추적을 멈추었다. 

 

  

찐꽁선 기념관에서.

 

1965년 베트남 전쟁 시절부터  오랫동안 기자들의 집합소였던 카페 지브랄.

 

카페 지브랄


우리가 투숙한 콘티넨탈 호텔은 호찌민 중심의 람손 광장 한쪽에 있는 프랑스 양식의 131년 된 최고(最古) 호텔이다. 그 건너편에 AP 통신사가 들어 있던 에덴 빌딩 건물이 있다. 에덴 빌딩 모퉁이에 람손 광장을 바라보는 카페 지브랄이 있다. 콘티넨탈 호텔과 카페 지브랄은 각각 식민지 시절과 전쟁 시절에 오랫동안 저널리스트들의 집합소였다. 그 가운데 카페 지브랄이 문을 닫았다. 50년 된 에덴 빌딩이 호찌민 시 인민위원회의 재개발 계획에 따라 강제철거를 당했다. 그곳에 거주하던 200가구는 이주약정서에 서명하고 4월30일까지 모두 이주하게 되었다.  

호찌민 시 인민위원회는 35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해외언론일주간프로그램을 마련했다. 4월28일 응우옌탄타이 부위원장은 27개국에서 온 언론인 30여 명을 초청해서 간담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에덴 빌딩에 있던 역사적인 카페 지브랄 얘기가 나왔다. 타이 부위원장은 개발업자가 에덴 빌딩을 현대적으로 건축하되 카페 지브랄만은 더 크지도 작지도 않게 복원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거리와 건물마다 베트남 금성홍기와  “불멸의 전승일 4월30일과 5월1일 국제노동절 정신을 기린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다. 중심지 번화가인 동코이, 응우옌우에, 레로이 거리는 승리의 황금색 ‘V’자로 장식한 네온사인이 휘황하게 명멸한다. 4월30일 오전 7시, 통일궁(전 독립궁)에서 당과 정부의 고위 지도자, 국제 귀빈, 그리고 전국 각계 대표 5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가 열리고 군인과 예술가의 행진이 이어졌다. 밤에는 시내 5개 지점에서 불꽃놀이가 하늘을 장식했다.        

'사이공 해방의 날' 모자 상봉-"사형 당한 줄 알았다!"

(호찌민 람손광장 4.30기념 사진전에서)

 

호찌민 시 중심가 레로이 대로의 4.30 기념일 오토바이 인파. 

 
전후 세대의 항변


지금 베트남은 4·30 항미전승과 5·7 항불전승의 기세를 저력으로 삼아 정경분리의 이름 아래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4월30일 열린 통일 베트남 경축행사는 혁명 2세대와 3세대가 주관하는 의례적 행사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의 전후 세대는 그런 혁명 세대와 다른 새로운 정치 문화 속에 성장하며 때로는 갈등 요소를 잉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속에서 전후 세대는 혼란을 느끼고 반역하며 신자본주의 체제로 말미암아 통속화하고 있다.

근간에 호찌민 시에서는 <나의 귀신아내>라는 연극이 500회 이상 공연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희곡을 쓴 무명의 작가는 한 일간신문사 기자인 30대 초반의 쩐반홍이다. 극의 줄거리는 통속적인 반전을 담았다.

작가 쩐반홍은 1975년 4월30일 이후에 태어나 역사적 투쟁담을 귀 따갑게 들으며 성장해왔으나 이제는 새로운 욕구, 다시 해석하고 싶은 욕구가 가슴에 가득하다고 고백한다. “이런 회의가 든다. 1975년 이전에 아버지 세대는 우리의 영웅이었다. 그런데 그때의 영웅이 지금도 여전히 영웅이다. 이것은 진저리가 나고 싫증이 나는 일이다.”

그는 이 사회에서 귀 막고 눈 막고 입 막고 살고, 과거의 가치 속에서 살고 있다고 여긴다. 



‘뱀파이어’ 작가가 된 혁명시인의 딸  

베트남 혁명시인인 반레의 딸 레틴투이의 변모도 돌연변이처럼 비친다. 식품가공학과를 졸업한 20대 후반의 그녀는 베스트셀러 번역 작가가 되어 큰돈을 벌고 있다. 레틴투이는 미국의 여성작가 스테프니 메이어가 뱀파이어와 소녀의 사랑이야기를 쓴 <황혼> <초승달> <일식> <여명> 4부작 시리즈를 차례로 번역해서 출간했는데, <황혼>만 13판을 찍었다. 혁명시인의 딸이 미국의 뱀파이어 통속물을 전문적으로 번역해 돈을 벌다니 대변화가 아닌가.

 

[표완수 <시사IN> 발행인의 "베트남 통일열차 '오디세이'"로 계속]


2010.05.06
                                        posted by 안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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