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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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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내가 만난 사람-김영미 피디②

 

"가냘프고 담대한 여자!"

김영미 소말리아 취재 사진 처음 내놓다


AK47 돌격기관단총 들고
현지 보디가드들과

(참고 : AK47은 구소련의 천재 설계자 카라슈니코프의 1947년작. 미국 다큐멘터리 전문 방송 <디스커버리>는 개인무기 순위에서 돌격용 소총 AK47을 2위에 올렸다. 1위는 인간을 꼽았으니 사실상 세계 최고의 개인 무기인 셈이다.)    
   
                                


16인승 안토노프 기 통째 대절

2006년 7월 초 어느날 , 아프리카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공항. 구소련제 16인승 안티노프 전세기가 한 대가 활주로를 날아 올랐다. 행선지는 서북쪽 갈구두드 주 내륙도시인 실부르.

기내에는 가냘픈 한국여성 김영미 피디가 7명의 무장 보디가드와 통역, 현지 스트링거를 거느리고 있었다. 현지인 기장을 합쳐 탑승객은 11명이다.

그녀는 취재 목표를 위해 거침없이 돌파해 나갔다.

그녀는 소말리아 내전에서 처음으로 대세를 잡은 이슬람법정연대(ICU) 대표인 셰이크 아하메드 하산을 찾아 가는 길이었다. 이 실력자를 직접 만나서 자기가 해변마을 하라데레 해적촌을 찾아가겠으니  납치당한 한국 어선 동원호 선원들을 만날 수 있게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교섭하기 위해서 였다. 

내전 때문에 위험해서 육로로는 실부르로 갈 수 없었다. 그녀는 수소문한 끝에 민간 전세기 안티노프 한 대를 전세냈다. 2박3일에 1만500달러(약 1천800만 원) 지불. 따로 그녀는 무장 경호원 16명을 취재기간 내내 고용했다. 하루 700달러(약 84만 원)씩 40일분으로 2만8000달러(약 3360만 원)를 냈다.

안토노프 기는 벨레드웨이네까지 직선거리 310kkm를 한 시간에 날아갔다. 간이활주로에는 이슬람 법정연대 하산 대표가 보낸 무장요원이 기다리고있었다. 셰이크 하산은 김영미의 간청을 받아들여 해적에게 연락해서 납치당한 선원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유엔 기 출발 직전 주유 중(사진=김영미 피디 제공)

 

 

육로 24시간 주행

전세기를 타고 모가디슈로 귀환한 그녀는 7월9일 일행을 이끌고 유엔 비행기 편으로 모가디슈 북쪽 320km 떨어진 도시 벨레드웨이네로 날아갔다. 그 곳에서 일행은 트럭을 타고 법정연대 대표 하산이 있는 실부르로 이동했다. 하산은 해적촌 할라데레까지 김영미 원정대를 호송하라고 병력 50명을 붙여주었다.

원정대는 트럭 7대에 분승했다. 김영미와 경호원, 통역, 안내원 외에 하산의 병력을 실은 원정대는 길이 없는 열대사막의 수풀지대 150km를 헤쳐나가는데 하루가 걸렸다. 마침내 하라데레 해적촌에 도착한 것은 7월12일.

해적단은 모두 81명으로 AK47 기관단총, RPG7 휴대용로켓(베트남 전 때 공산군이 애용한 B40 견착용 로켓과 동종이다)으로 무장했다.

7월13일 김영미는 하라데레에서 18km떨어닌 해안으로 이동하여 구명조끼를 입고 스피드보트 편으로 동원호에 올랐다. 동원호가 피납되어 100일 째 되는 날이었다. 한국인 선원 8명을 포함해 28명이 타고 있었다.

7월25일 MBC 피디수첩은 김영미가 촬영하고 연출한 '조국은 왜 우리를 내버려두는가'를 방송했다. 외교통상부는 여행금비지역에 들어가 당국을 비판적으로 보도한 김영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김영미는 말한다. "나는 외교통상부에서 세번이나 출국급지를 당했어요." 

 

김영미 원정 경로

2006년 6월26일 인천공항 출발--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디오피아 아디스아바바--미승인국인 소말릴란드 하르게이사--7월3일 소말리아 모가디슈 도착--전세기 편 실부르 방문 하산과 교섭--유엔기 편 벨레드웨이네 도착--육로 24시간 이동 할라데레 해적촌 도착-7월13일 동원호 승선--7월14일 동원호 하선--모가디슈 경유--7월22일 귀국--7월25일 MBC <피디수첩> 방송.

 

김영미는 어떤 피디인가

김영미는 인터뷰하기 매우 까다로운 여성이다. 그녀의 성미때문이 아니다.  타고나기를 나서기 싫어하는 체질이라서 말을 지극히 아끼기 때문이다.

또 그녀는 남다른 고집이 있다. "피디란 카메라 뒤에 숨어서 일해야 올바른 작품을 만들 수있다."고 생각한다. 피디가 카메라 앞에 나서면 작품을 훼손한다고 여긴다.

그녀는 소말리아 동원호를 취재하는데 개인적으로 조달한 자금 1억원을 아낌없이 쓰면서 과감하게 돌파해 나갔다. 그녀는 큰 팀을 만들어 돈을 많이 쓰는 공중파 방송 피디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악 조건에서 단신으로 현장을 뛴다. 자비로 먼저 취재하는 것은 방송국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아서라고 한다. 작품을 만든 후에 방송국과 교섭한다. 이런 길을 그녀는 고수한다.

남다른 '작가주의'를 지키려고 그녀는 그처럼 고지식한 것일테다.



렌즈 앞에서 수줍은 일곱가지 표정

 

  
2010.05.30
                                                                         posted by 안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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