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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중독 증후군' 심각하다


[안병찬 시론]

 '월드컵 중독 증후군'

너무 심각하다

 

축구의 열정과 폭력

축구는 본능과 투쟁의 스포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열정과 절제된 폭력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축구에 침투와 침략의 속성이 있다고 본다. 본래 축구는 세차게 날아오는 공을 소중한 머리통으로 박치기 하고 선수끼리 맞부딪치며 몸싸움을 거는 우악스러운 운동이다.

운동 경기는 역사적으로 남성 지배 체제의 소산이다남자는 남성성(사내다움) 을 다짐하기 위해 스포츠 경쟁에 참가한다.

축구 역시 단련된 남성의 육체 위에 구축된 운동이다남자 선수 22명과 남자 심판 3명이 경기장을 뛴다. 그런 남자 축구가 미()와 기()를 운위하면서 폭발적인 흥행을 하게 된 것은 텔레비전의 지배아래 들어가 이윤을 극대화하는 직업 축구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미와 기를 뽐내는 ‘예술 축구’(아트사커)가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많은 여성이 월드컵을 향해 아우성을 치는 모습을 보니 긍금증이 일어난다. 여성들이 일시에 월드컵에 몰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아는 여성교수는 오프사이드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경기 규칙과 상관없이 월드컵 경기에 몰입한다고 했다. 연예 스타에게 열광하는 ‘오빠부대’처럼 꽃미남 축구 선수에게 열광하는 신세대의 출현도 목격한다. 여성 특유의 동반 심리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각설하고.

 

 

과도하지 않은가!

월드컵 1차전에서 그리스를 이기자 한국 천지는 월드컵으로 뒤덮였다.

월드컵 예찬론자들은 좋은 말로 '열린공간의 축제'라고 말한다. 어떤 신문 칼럼은 <축구란 무엇인가> 중에서 다음 대목을 인용하고 있다.

"전투의 고함소리, 자유분방한 축제 기분, 사육제 분위기, 콘서트와 극장의 영광, 종교적 경건함, 이 모든 것이 그 한 장소, 전장이면서 파티홀이고 마녀의 솥이고 오페라하우스이고 성당인 축구장에 모여있다." (한국일보 614일자 지평선 '월드컵 읽기' )

 

한국 대 그리스 전은 토요일(12) 밤에 열렸다조간 신문들은 다음 날 일요일자가 없어 월요일(14) 아침에야 월드컵 승전보를 보도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채웠다.   

서울에서 발행하는 조간지들이 본 섹션에서 한국팀 승전보와 월드컵 소식을 몇 면에 걸쳐 실었는지간략하게 비교해본다.

모든 신문이 제1면은 물론 2, 3, 4...으로 앞 부분에 주로 월드컵 기사를 깔았다

(월드컵 관련 기사를 후반의 스포츠면에 배치하거나 지면의 일부에 실은 것도 포함한다.)

 

경향신문(32면 중) : 9개면+2사설 "사상 첫 '원정16' 첫 단추 잘 끼웠다"

동아일보(36면 중) : 7개면

서울신문(32면 중) : 7개면(그중 한 면은 고함응원과 목 건강에 관한 기사)+칼럼 열린세상

세계일보(32면 중) : 6개면+1사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민국' 축구"

조선일보(36면 중) : 7개면+2사설 '대한민국 축구, 꿈을 향해 거침 없이 내달려라'

중앙일보(36면 중) : 6개면+2사설 '우리 감독, 우리 선수들의 짜릿한 첫 승리'

한겨레(36면 중) : 6개면

한국일보(40면 중) : 7개면+2사설 '출발 좋은 월트컵 이 기세로 계속 가자'+ 칼럼 지평선

 

순기능과 역기능

스포츠의 사회문화적 기능론이 있다.

기능론은 스포츠는 긴장을 완화시킨다(사회정서적 기능), 기존 가치규볌을 인지케 한다(사회화의 기능), 분화한 개인을 집단으로 통합한다(통합의 기능), 스포츠팀과 국가를 동일시하게 만든다(정치적 소기능)고 하여 구조기능주의를 강조하는 관점이다.

이런 입장은 올림픽 경기나 월드컵같은 스포츠를 마약과 같은 존재로 보고 권력의 대중조작구조로 인식하는 갈등론과 대립한다.

한국 학자들 중 일부는 1980년대 들어서 나타난 한국의 사회적 변화 가운데 한 특징은 스포츠행사와 텔레비전 방송이 '공생적 관계'에 있으며, 그것은 거대한 사회세력으로 시청자 머리 위에 군림한다고 보았다.(안광식이화여대 언론학, 서울올림픽기념학술대회에서

이미 미국학자 허팅턴 윌리엄즈는 스포츠와 매스미디어 연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스포츠는 미디어 홍보효과에서 덕을 보고 미디어는 스스로의 대중적 인기를 팔아서 덕을 본다. 미디어와 스포츠는 상호이익을 위해 숙명적으로 상호 공존하게 된다."

 

월드컵 허상

우리는 월드컵 경기장에 나가지 않아도 텔레비전으로 경기현장을 더 세세하게 관람할 수 있다고 기뼈한다. 텔레비전은 이미 강력한 사회문화제도로 자리를 잡아서 어떤 때는 문화전체가 텔레비전 화면이 방출하는 이미지와 소리에 매몰된 것처럼 보인다.

텔레비전은 현실감을 전달하는 능력때문에 본질적으로 현실적인 매체처럼 보일 뿐이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재구성하는' 소리와 이미지를 아주 자연스러운 듯 이해하므로 텔레비전이 어떻게 의미와 쾌락을 만들어내는지, 어리석게도 의문을 갖지 못한다.

텔레비전과 시청자의 관계가 자연스러운 관계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텔레비전이 전하는 사실성(리얼이즘)은 동기를 가지고 편집한 인위적 구성의 소산이다. 우리는 텔레비전이 기술적으로 부호화한 허상을 보고 쾌락을 느끼고 소리를 질러대고 춤을 춘다.

 

미디어 이벤트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월드컵은 수용자로 하여금 월드컵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듯한 '축제의식'을 느끼게 만든다. 그렿게 극적인 장관을 전달하는 매체 행위는 '미디어 이벤트'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미디어 이벤트야말로 수용자를 겨냥한 계획적이고 상징적인 기능의 수행이라고 정의한다.(김지운 외, 성균관대 신방과, 서울올림픽기념학술대회에서)

이러한 야합과 상징조작으로 인해 미디어 이벤트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이나 다른 스포츠 행사를 과장하고 왜곡하여 '의사사건'으로 만든다.

결국 관중은 미디어가 조작하는 '의사사건'의 환상에 들떠서 내나라 중심주의와 자가도취, 편향된 국수주의를 증폭시킨다.

 

몇 가지 징후

몇가지 징후가 나타났다.

"SBS가 주인인 거리응원 거부하자"(무명 님)는 기사가 나왔다. 월드컵 중계권을 독점한 주관 방송사를 겨냥한 내용이다.

"도 넘은 응원 열기, 길거기 꼴불견"(연필 님)이라는 글도 보인다. 월드컵 첫 승리에 '중독되어' 대중교통을 방해하며 날뛰는 사람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경찰은 서울 길거리 응원장 289개소에 운집한 인파은 100만 여명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한다

남아공 월드컵 축구장을 메운 관중이 '부부젤라'라는 아프리카 전통악기로 끊임없이 소음을

일으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나도 월드컵 축구를 텔레비전으로 열심히 본다.

나는 월드컵 조직위원회와 미디어가 이벤트를 팔아서 엄청나게 수지를 맞추고 월드컵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비판적으로 절제하면서' 관전하고있다.

자가당착을 안 느낄 리 없다.  


2010.06.14
                                                                          posted by 안병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