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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전쟁저널리즘과 김영미의 조건


최종원-내가 만난 사람

 

여성 전쟁저널리즘과


        김영미의 조건


베르니크 드쿠뒤의 매력

전쟁취재는 거칠고 힘센 남성에 어울리는 직무라는 선입관이 있다. 이것은 편견이다. 구미 언론을 보면 전쟁보도와 혁명보도에서 능력을 발휘한 여성저널리스트가 적지 않다.

내가 1970년대 초반 사이공에 근무하고 있을 때 프랑스통신사(AFP)지국에는 인상적인 여성특파원 한 명이 있었다. 베르니크 드쿠뒤는 라틴계 여성다운 상큼한 용모와 지성적인 매력이 있었다. 눈가에 잔주름이 잡힌 30대 후반의 특파원이었다. 엷은 다색 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거리낌 없는 표정으로 취재활동을 폈다. 볼 때마다 셔츠의 등판은 땀이 배어 있었다.

어느 때 그녀의 모습이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국장 페릭스 보로에게 물었다.

“마드모아젤 드쿠뒤가 왜 통 안보이나?”

“부상했어, 제13번 국도로 취재를 나갔다가 총상을 입었지. 엉덩이를 이렇게 스쳤어.”

보로는 익살스럽게 총알이 날아오는 소리를 “피융!”하고 내면서 손가락으로 엉덩이를 맞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리고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녀는 전선 없는 전쟁터라는 베트남에서 남성들과 다름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전문직 저널리스트였다. 뒷날 미테랑 대통령 시절에 베르니크 드쿠뒤는 엘리제궁을 출입하며 대통령 수행취재를 담당했다.

 

한국전쟁의 히긴스 양


전쟁터에 뛰어들어 때로는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들며 취재하는 종군기자의 문이 처음부터 여성 저널리스트에게 열려 있던 것은 아니다. 역경을 헤쳐 나온 선구적 직업 여성저널리스트의 땀과 노력으로 그런 두드러진 성과는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전쟁〉의 저자인 마거릿 히긴스는 미국의〈뉴욕 헤럴드 트리뷴〉신문 특파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취재했다. 그녀는 독일전선에서 미군 장교들에게“여자가 어떻게 종군한단 말이오?”하고 핀잔을 받았다.

한국전쟁 초기에도 미군은 그녀에게는 일선 종군을 허락하지 않았다. 미8군 사령관 월튼 워커는 “일선은 여자 올 곳이 못된다. 우리는 숙녀를 수용할 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서 히긴스 추방령을 내렸다. 소련의 한 잡지는 총검에 찔려 한국 땅에서 내동댕이쳐지는 ‘히긴스 양’의 모습을 만화로 그리고 ‘맥아더의 첫 승리’라는 제목을 붙여 조소했다.

뒤에 히긴스는〈헤럴드 크리뷴〉신문의 항의와 맥아더 사령관의 특별 배려로 종군을 허락받아 일선에 복귀했다. 그녀는 한국전에서 일선 참호까지 종군한 유일한 여성기자로 기록되었다.

그녀는 45세에 베트남전에서 죽었다. 전쟁의 절정기인 1966년 초 정글에서 취재하다가 그녀가 얻은 병은 ‘게이슈마니이사스’라는 특이한 열대병이었다. 히긴스는 제2차 세계대전, 베를린 봉쇄사건, 소련의 동구권 위성화 과정, 한국전, 베트남전을 잇는 취재의 대장정을 통해 종군 저널리즘의 화신 같은 삶을 산 여성이다.

 

호메이니 만난 오크렌트

크리스틴 오크렌트는 프랑스 국영 텔레비전 앙텐2의 저녁뉴스인〈주르날 뱅퇴르〉를 단독으로 진행하여 이름을 알린 여성 앵커였다. 벨기에 태생으로 파리국립정치대학(세앙스 포)을 졸업한 그녀는 10년 동안 미국 CBS 방송에서 기자로 일하며 단련했다. 그녀는 만나기가 불가능하다던 호메이니를, 차도르를 뒤집어쓰고 망명처로 찾아가서 처음으로 인터뷰해냈다. '국경 없는 의료봉사단’창시자로 현재도 장관을 지내고 있는 베르나르 쿠슈네르와 만나 마흔한 살에 첫 아들을 낳았다

 

힐러리 브라운과 크리스티안 아망푸어

1990년대에 옛유고슬라비아 땅에서 벌어진 전쟁 때도 서방에서 여러 명의 여성기자가 종군했다. 당시에 프랑스 ‘시파 프레스’(SIPA PRESS)의 알렉산드라 블랏 특파원은 유고 내전지역을 취재하면서 만난 여기자들을 소개한 일이 있다. 그는 영국 BBC의 케이트 에이디, 캐나다 CBS의 마리아 트리본티, 미국 ABC의 힐러리 브라운, 미국 CNN의 크리스티안 아망푸어의 이름을 들었다.

특히 힐러리 브라운의 경력은 명성에 어울렸다. 그 전 20여년 동안 그녀가 뛰어온 격변장은 인도-파키스탄전쟁, 욤키푸르전쟁, 포르투갈혁명, 사이공함락, 북아일랜드분쟁에서 남아공화국․로디지아․레바논․엘살바도르․과테말라사태에 걸쳐 있었다. 1990년대의 걸프전쟁도 그녀가 종군한 전쟁이다.

 

걸프전의 이진숙


한국도 걸프전을 통해 한 사람의 유능한 여성종군기자를 배출했다.

MBC의 이진숙 기자는 1993년 1월초 제2차 걸프전 때 CNN의 피터 아네트가 사용한 것과 같은 무게 20㎏자리 인마세트 전화기를 휴대하고 바그다드에 들어갔다. 그녀는 2003년 3월에 MBC 뉴스데스크의 ‘바그다드는 지금’에서 생생하게 현장을 보도했다.

그녀는 중동의 전쟁지역 특파원으로서 전문성을 키웠다. 표준 아랍어를 3년 반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중급 아랍어를 구사했다. 당시 이진숙 기자는 유일하게 ‘우리의 눈’으로 일그러진 전쟁의 모습을 바그다드 쪽에서 알려주었다.

나는 전쟁보도 기자는 전쟁의 고발자가 되어야한다는 점을 이진숙에게 강조하고 싶었다.

 

린들리의 무용담

미국이 응징의 칼을 뽑아 침략한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철새 종군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미국 CNN의 크리스티안 아망푸어는 과장과 허식이 가득한 2류라고 비판을 받은 일이 있다. 그녀는 “사실중심의 탐사보도보다는 시청자를 현혹하기 위해 인위적 방법을 쓰는데 예를 들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호텔 옥상에 올라가 군용 재킷을 입고 전투 중 급박한 뉴스를 전하는 것처럼 연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2명의 극성스러운 전쟁 여기자가 화제를 만들었다. 한 사람은 영국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이본 린들리이다. 그녀는 부르카로 얼굴과 전신을 덮고 여자 행세를 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오려다 탈레반 병사에게 잡혔다. 그녀가 타고 있던 당나귀가 내 뛰는 바람에 숨기고 있던 카메라가 떨어져서 들켰다.

10일간 억류됐다가 무사히 석방된 그녀는 “나를 자랄라바드 시로 연행한 탈레반은 전리품처럼 시가를 끌고 다녔고 이슬람교 개종을 권유했다.”고 말했다.〈데일리 익스프레스〉신문은 ‘탈레반 지옥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적대적인 제목(2001년 10월14일자)으로 린들리의 무용담을 대서특필했다. 그녀는 한 아이의 어머니로 43세였다.

 

강도에 총살당한 쿠들리

프랑스 〈파리 마치〉잡지 기자 미셀 페이라르는 이슬람 여성복을 입고 국경을 넘어갔다가 잡혔다. 그는 스파이 혐의를 받았으나 투옥당하지 않고 자랄라바드 시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그녀가 국제적으로 알려진 저널리스트이며 정보의 자유를 보장 받아야한다면서 석방을 요구했다.

또 한 사람은 특종과 목숨을 바꾼 이탈리아 전쟁 여기자 그라지아 쿠들리이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소속인 39세의 쿠들리는 카불로 이동하던 중 오사마 빈 라덴의 조직인 알카에다의 훈련소에서 독가스를 내는 화학물질 사린 병을 발견해서 특종을 잡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카불에서 90km 떨어진 산악도로에서 탈레반 병사로 위장한 무장 강도를 만나 호주, 스페인 기자 3명과 함께 총살당했다.

“……그러나 어떠한 특종도 기자의 생명보다 귀하지 않다.”그녀가 소속한 신문사의 보르톨리 편집국장이 한 이 말은 전쟁 특종과 기자 희생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김영미의 동기

한국의 김영미 피디는 매우 독특한 여성 전쟁저널리스트이다. 우선 그녀는 어떤 주류 언론에도 소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에 뛰어든다. 특히 그녀는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시간을 두고 취재하는 참여관찰법을 활용한다. 이는 인류학이 선호하는 현지조사 방법과 같다.

1999년 연말에, 그녀는 미화 3000달러를 지참하고 분쟁지역인 동티모르 행 유엔기에 몸을 싣는다. 동티모르 행은 아픈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으려는‘가출’행위같이 보인다. 그녀는 그곳에서 민박을 하며 1년 동안 취재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김영미는 분쟁지대에서 인간의 어떤 조건들을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이 분쟁지역취재전문 피디라는 이름으로 일하게 될지는 몰랐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녀의 혈관 속에는 처음부터 분쟁지대로 향하는 본능의 피가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2010.06.24
                                                                        posted by 안병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