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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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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한국일보-제3신]

 

1975년 4월 30일

 

기적처럼 열린 탈출의 문…

 

절명 앞둔 사이공은 졸고 있었다

 

[마지막 종군 기자 안병찬이 본 사이공 최후의 새벽, 그 후 40년]

 

수정: 2015.05.01 20:10

등록: 2015.04.30 18:3"

 

우리도 나갈 수 있을까요?"

비에 흠뻑 젖어 두려움에 떨던 밤

 

포드 대통령, 美대사 마틴에

"헬기 19대가 마지막" 메시지

 

대사관 경비대 순식간에 후퇴하자

가족들 생각에 캄캄한 절망 밀려와

 

1975년 4월 30일 미군이 미대사관 직원 철수를 위해 동원한 마지막 헬기를 타고 사이공(현 호찌민)을 탈출한 안병찬 특파원이 괌 미군기지를 거쳐 5월 13일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해 마중 나온 부인과 포옹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40년 만에 다시 사이공(현 호찌민)에 돌아와 옛날 그 자리에 섰다.

호찌민은 ‘1975년 4월 30일-2015년 4월 30일’의 통일기념 현수막과 독립궁 철문을 박차며 진입한 소련제 탱크 제846호 사진들이 넘쳐난다.

오늘 4월 30일 상오 7시, 베트남 정부는 호찌민시에서 남부해방 및 통일 40주년 기념행사를 최대 규모로 진행했다. 주석단에는 응우옌 푸 쫑 당서기장을 중심으로 쯔엉 떤 상 국가주석, 응우옌 떤 증 총리, 응우옌 신 훙 국회의장이 도열했다. 기념행사의 주축은 관병식이다.

상오 8시, 베트남 국기인 황성홍기(黃星紅旗)를 호위한 민족대표들이 분열행진을 선도했다. 이어 200개의 당기(黨旗), 베트남 자주통일의 상징인 호찌민 주석의 초상, 독립궁 철문을 돌파한 탱크의 모형이 행진했다.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을 공격하여 해방한 5개 부대의 군기가 지나갔다. 모두 6000명의 무장부대, 민족해방전선 전사대, 여성 무장부대가 레 주안대로를 따라서 통일궁(전 독립궁)을 향해 줄줄이 나아갔다. 통일을 달성하여 어언간 40년, 그들은 정정당당한 승자이므로 행진은 더욱 보무당당했다.

베트남 정부는 바므이땅뜨 4월 30일을 남부해방 및 통일 기념일로 정하고 오늘의 의미를 이렇게 규정한다.

“40년 전 역사적인 승리는 제국주의 세력을 봉쇄 격퇴하여 베트남을 통일하고 재건과 발전의 길을 확립하였다.”

 

뇌우 속의 포화

 

40년 전 1975년 4월 29일 저녁 7시 30분, 나는 사이공 주재 미국대사관 오락센터에서 어둠 속에 세차게 쏟아지는 열대성 폭우를 맞고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있었다. 플래시를 얹은 카메라가 비에 젖지 않도록 애쓰면서 한국 교민과 대사관원들 틈에 앉아 있었다. 탄손누트 쪽에서 대공포화가 붉은 궤적을 그리며 공중으로 치솟고 검은 하늘에는 번갯불이 요동쳤다. 두려운 밤이었다. 모두 주저앉은 채 비를 흠뻑 맞았다.

대사관 타이피스트 고송학은 “안 특파원님, 우리도 나갈 수 있을까요? 무서워요, 불안해요, 옆에 좀 있어줘요”하고 보채면서 어둠 속에 몸을 웅크렸다.

“괜찮아요. 미세스 고는 항공모함에 타게 될 거야.” 나는 웃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공보관 임시직원이던 고송학은 정겨운 여자였다. 내가 무개 지프를 몰고 오고 가다 대사관에서 마주칠 때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달을 했다.

“아유, 안 특파원님, 취재도 좋지만 제발 그만두고 돌아갑시다. 그만두세요. 저하고 같이 돌아갑시다, 네?”

미국 워싱턴

29일 새벽 1시 8분에 비상 작전개시를 보고 받고 잠들었던 대통령 포드는 아침 5시 27분(사이공 29일 오후 5시 27분)에 잠에서 깨어났다.

미국대사 그래이엄 마틴은 아직도 1,000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대사관 구내에 가득하다고 보고했다. 마침내 포드는 강경한 투의 메시지를 마틴에게 보냈다. “마지막으로 19대의 헬리콥터만 더 보낸다.”

그런 다음 포드는 못 박았다. “더 이상은 없다.”

미국 국방장관 슐레진저는 사이공의 마틴에게 추가 작전은 사이공시간 30일 새벽 3시 45분까지 종료해야 한다고 타전했다.

워싱턴 29일 오후 5시 22분(사이공 30일 새벽 5시 22분), 백악관 대변인 론 네센은 기자들에게 발표했다. “마지막 헬리콥터가 방금 사이공을 떠났습니다.”

새벽 0시 20분

4월 30일 새벽, 가장 무서운 순간이 밀어 닥쳤다. 미국 해병 경비대원들이 눈 깜빡 할 사이에 착륙장으로 통하는 철문을 철커덩 잠그고 후퇴해 버렸다. 난민 대열이 일시에 허물어지며 울부짖는 소리, 쇠창살 두드리는 소리가 사이공의 새벽하늘을 찢었다. 최후 탈출 작전의 중단인가. 이 순간 나 역시 캄캄한 절망을 맛보았다. 머릿속에 어머니와 세 가족의 영상이 고동치며 지나갔다. 그것은 가장 짧은 순간에 가장 뚜렷한 모습을 하고 스쳐갔다. 다음에는 적지(赤地)에 떨어질 자신의 운명이 떠올랐다.

새벽 1시 40분, 겨우 마지막 기회의 철문이 다시 열렸다. 나는 일곱 번째로 철문 문턱을 넘어섰다. 이제 눈앞에 에이치(H)자의 헬리콥터 착륙장이 보인다.

 

가 마지막 본 사이공

 

4월 30일 새벽 4시, 나는 8번째 치누크를 눈앞에 보고 있었다. 자동차 전조등의 조명 속에 치누크는 프로펠러를 ‘윙 윙’ 돌리고 있었다. 빨리 뛰어 들라고 큰 몸짓으로 신호하는 미국 해병 대원의 모습도 진동하는 공기 속에 흐느적거렸다. 나는 마침내 프로펠러가 만드는 풍압의 벽을 뚫고 맨 먼저 치누크의 뱃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내 머리에는 번개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기관총수 옆에 자리 잡으면 사이공의 최후를 굽어볼 수 있지 않은가. 흐릿한 조명 속에 헬멧을 쓴 2명의 기관총수가 돌처럼 긴장한 얼굴로 총신을 잡고 창밖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언뜻 맞은편을 보았다. 겁에 질려 눈을 크게 치켜 뜬, 어느 때보다 초라해 보이는 월남군 사령부 브리핑 통역장교 안 대위의 얼굴이 들어왔다. 떠오르기 위해 갑자기 힘을 더하는 프로펠러의 강렬한 금속성의 울림, 치누크는 지체 없이 솟아올랐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 10분.

1975년 4월 30일 새벽, 사이공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쪽에도 포화나 섬광은 보이지 않았다. 사이공은 별같이 초롱초롱한 외등 속에 졸고 있었다. 가로등의 행렬이 판틴 풍, 레로이, 투도, 웬후에, 그리고 한국인의 길 판탄장 등 텅 빈 거리를 비춰주고 있었다. 미국대사관 옥상에서 피어오르는 봉화의 불길만이 사이공의 절명(絶命)을 알리는 유일한 표시였다.

이것이 기관총 창구 너머로 내려다본, 내가 마지막 본 사이공이었다.

사이공의 불빛이 잠깐 뒤에 멀어지고 다음에는 어두운 숲과 강이 아래로 지나갔다. 이윽고 탁 트인 바다가 어둠 속에 훤히 나타났다. 바다 위를 날아가는 동안 긴장이 풀리고 피로가 엄습했다. 깜박 잠이 들었다.

덜커덕, 치누크가 비행갑판에 내려앉았다. 새벽 4시 50분. 40분 비행 끝에 남중국해의 미국해군 상륙운반도크선 덴버호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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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40년

 

2015년 4월 30일 : 40주년 프포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30일 베트남 통일 4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40년 전 남베트남 대통령관저였던 독립궁 철문을 부수고 진입한 북베트남군의 소련제 탱크를 묘사한 기념물이 행진하고 있다. 호찌민=AFP 연합뉴스

 

 

 

호찌민은 통일 40돌 행사 들썩

 

 

사이공 해방시킨 5개 부대 군기

 

관병식 주축 보무당당한 행진

 

 

베트남의 불퇴전의 자주정신이

 

對美종속 아닌 대등한 전략 근간

 

 

 

 

통일 베트남에서 배운다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소설로 ‘수난이대’가 있다. 작가 하근찬은 한국 현대사를 비장하게 그린 이 작품으로 등단했다. ‘수난이대’는 일제의 징용으로 한 쪽 팔을 잃은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한 쪽 다리를 잃은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으로 우리들의 비극을 전한다. 한국은 아직도 분단을 극복하지 못했으니 상징적으로 ‘수난이대’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 베트남은 4·30 항미전승과 5·7 항불전승의 정신을 근간으로 삼아 정경분리의 이름 아래 개방정책을 가속하고 있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배울 점은 불퇴전의 자주정신이다. 특히 우리는 베트남의 통일운동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한국과 베트남의 분단과 통일의 조건은 다른 점도 있고 동일한 점도 있다. 베트남은 대륙 중국에 1000년 간 맞서며 독립을 지켜냈고 유럽 강대국 프랑스에는 100년을 저항한 끝에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더구나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대해서는 20년 전쟁을 벌여서 끝내 패퇴시켰다. 그 강인한 저력으로 베트남은 스스로 통일을 쟁취했다.

나는 베트남이 미국에 대해서는 종속(從屬) 관계가 아니라 대등(對等)한 눈높이로 현실적인 전략을 구사하는데 주목한다. 나는 일찍이 후배 기자를 베트남에 보내 통일열차 2박3일 탑승기를 보도했고 연전에는 나 자신도 통일열차 1박2일 탑승기를 썼다.

굳이 그리스 신화로 비유하자면, 인간은 본래 남녀가 한 몸이었는데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강제로 남녀 두 몸으로 갈라졌기에 본래 상태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자신의 반편을 항상 그리워한다고 한다. 분단 상황은 남녀 관계와 같아서 남북은 궁극적으로 서로 무한히 그리워한다. 우리 모두가 한반도에 남북종단 통일열차를 운행하는 날을 꿈꾸는 소이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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