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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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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세평 소묘]

 

"잡스는 죽었다. 잡스 만세!"

 

 앵커 정운갑의 문자를 받고

 

 

 스티브 잡스-소묘 안병찬

 

 

난주 정운갑 앵커가 휴대전화로 다음과 같은 문자편지 한통을 보내왔다.

 

[정운갑 앵커의 문자젼지]

 

선배님 잘 지내시지요?

지난번 관훈클럽 임원 모임 때 기술결정론적 사회, 죽고 죽이는 서구와 미국 민주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는가?라는 지적 참으로 귀를 반짝이게 해주셨습니다. 저도 칼럼에 선배님 말씀 인용하기도 했고요. 늘 감사드리고 언제 점심 함 모시겠습니다. MBN 정운갑 드림

 

나는 즉시 그와 통화하여 표완수 <시사인> 발행인 및 이상석 전 <한국일보> 사장과 5월 첫주에 점심식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정운갑 앵커가 자기 칼럼난인 '한쪽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나를 인용해서 쓴 글을 찾아읽었다.

그는 기술을 섬기지 말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앵커 정운갑-소묘 안병찬

 

 

[정운갑 앵커의 칼럼]

 

(......)"기술 결정론적 사회에 대한 의구심, 여러분들은 물음을 던져 보지 않습니까? 스티브 잡스만이 영웅이고 신이라는 사고방식 그게 전체가 된 사회인데 기술(技術)이 무엇인지, 문화적 제동은 필요하지 않은가요?”

‘최후의 베트남 종군 기자’로 안깡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존경받는 기자 안병찬 선배의 일갈이 머릿속을 산뜻하게 했습니다. 그는 또 선거의 해인 올해, 상호 유혈적인 이른바 한쪽은 죽여야 하는 한국 정치 풍토에서 서구와 미국의 민주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는지를 살펴보고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지적해 공감을 얻었습니다.(......)

 

기술을 섬기지 말라

 

정운갑 앵커가 기술결정론을 보는 눈이 나와 같다는 점을 확인하니 반가웠다.

일찍이 나는 지난 2월3일에 열린 관훈클럽 역대총무간담회에서 기술결정론에 관해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관훈통신 제163호, 2016년 2월)

 

 

(......)우선 저는 기술결정론적인 이 사회에 대해서 굉장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마트, 디지털, 사물인터넷 이런 것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이런 끊임없는 기술결정론의 시대에서 벗어나는 그런 무게 있는 인문적 사고를 언론계 중심으로 뿌리를 심어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말로 독서하고 글 쓰고 거기서 사유하고 철학하는 이런 문제를 담당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티브 잡스가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스티브 잡스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그리고 기술이 무한이 잡종교배를 해서 하루아침이 달라지는 이러한 기술이 도대체 뭔가, 거기서 문화적 제동을 걸어야 하는 게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 세계를 보고 공포감까지 느끼는 이런 세태에 대해서 우리가 강력한 경고의 목소리를 던지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또 저는 서구와 미국의 민주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믿고 현재 한국의 양당이 서로 피를 흘리며 물어뜯고 한쪽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식으로 벌이는 이런 정치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정치인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하는 새로운 모습을 우리가 보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령 미국같은 제국적인 나라에서도 이번에 보니까 민주당에서 사회민주주의자가 한사람 나와서 소수 독점에 해한 문제를 제기해서 클린턴을 괴장히 위협하고 있더군요. 그러니까 우리가 한국정의 소위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너무나 삭막하다고 보고 정치풍토의 어떤 변화를 시도하기를 기대합니다.(......)

 

 

나는 이글 제목을 잡스는 죽었다. 잡스 만세!’로 정했다.  

잡스는 죽었다. 잡스 만세는 역설적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의 유명한 대자보 제목을 패러디한 것이다.

1970년대 초 어느 날 중국 꽝저우시에 이일철(李一哲) 대자보한 장이 나붙었는데 그 제목은 혁명은 죽었다. 혁명만세!”였다. 중국 혁명정신이 죽고 대신 봉건사회 파시스트전제(專制)’가 대두했다고 역설적으로 뒤틀어 격렬하게 비판한 내용이다. 필자 이일철(李一哲)’ 은 광둥인민예술학원을 졸업한 동창생 리정티엔, 천이양, 황스저 3인이었다.

얼마 후 19741110일 꽝저우시 베이징로 입구에 ‘2만자 이일철 대자보가 나붙어 천하를 진동시켰다. 역시 중국공산당 체제를 꼬집어 맹공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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