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블로그 이미지
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취재기] 40+사진들

 

메아리 30

 

농부와 형사와 나

 

 

 

간에 전직 수사 형사인 이노성 씨(현 한국일반행정사협회 연수원 강사)가 오래간 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상안미리에 사는 농부 심순수 씨 네가 손수 재배한 블루베리 한 상자를 나에게 보내드리려 하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전갈이다. 이틀 후 블루베리 한 상자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상표는 무농약 친환경 과일 평창불루베리’, 주소는 대화면 금당계곡로 1191-1, 대표 이름은 심상익이다.

형사 이노성 씨와 대화고추 농부 심순수 씨, 그리고 언론인인 필자가 삼각의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데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사진=블루베리 과수원에서 찍은 농부 심순수 씨(78) 일가. 앞줄 왼쪽부터 손자 문섭과 손녀 유진. 뒷줄 왼쪽부터 심순수 씨부인 홍천란 씨, 심순수 씨, 며느리 및 아들 심상익 씨.

 

 

 

논설위원, 차령산맥 눈 속을 가다

 

내 눈에는 30년 전인 1987년의 정월 초이튿날 설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날 오대산 일대에는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이던 나는 강원도의 그 깊은 눈길을 헤치며 평창군 대화면 상안미리3구 두메산골에 사는 대화고추 농부 심순수 씨를 찾아가고 있었다. 마침 새해 연휴여서 아내를 동반했다. 정강이까지 빠지는 눈길이었으나, 쏟아져 내리는 눈이 멀리 차령산맥 일대를 뽀얗게 가려 아늑하고 포근한 눈세계를 만들었다.

30년 전 내가 눈 속을 뚫고 찾아 갔을 때 심신수 씨 아들 상익은 13살이었다. 블루벨리는 북미 토착 열매로 진달래 목에 속하는데, 이제는 대화 산골 농가에서도 재배하게 되었다. 지금 40대 중반이 된 심상익 씨는 5년 전부터 불루베리를 직접 재배하고 있다. 본래 이 고장 대화는 고추의 산지로 대화 고추는 지금도 알아주는 특산품이다.

당초에 내가 대화농부 심순수 씨를 손수 취재하게 된 동기는 작은 사회면 기사에 있었다.

 

발단이 된 표주박기사

 

19861225일 크리스마스 날 한국일보 사회면 표주박란에 짤막한 사건기사가 한 토막 실렸다. ‘4백만 원어치 사기당하고 밭 천 평 팔아 빚 청산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표주박

서울 서초경찰서는 24일 가난한 농부를 속여 고추 2,047근을 가로챈 김 모 씨(42, , 사기 등 전과 3, 서울 마포구 동교동 113)를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의하면 김 씨는 지난 929일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시장에 고추를 팔러 나온 이 동네 심순수 씨(46, 농업)에 접근, “고추 값을 후하게 줄 테니 이 동네 고추를 모아 서울에 내다 팔자고 제의, 조 모씨 명의로 5백만 원이 입금된 가짜 예금통장을 건네준 뒤, 심 씨와 함께 고추를 싣고 서울로 올라 왔다는 것. 김 씨는 심 씨를 농협영등포지점으로 데리고 가 예금청구서를 써 놓았으니 방송이 나오면 통장을 갖고 창구로 가서 돈을 찾으라고 말한 뒤 사라진 후 고추를 모래내시장에 대다 팔아 450만원을 가로챈 혐의다.”

 

논설위원으로 고정칼럼 메아리를 집필하던 필자는 이 표주박 기사를 읽고 현장취재를 하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곧장 서초경찰서를 찾아가 담당자인 수사과 이노성 형사를 만나면서 현장 취재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필자는 메아리 3연작으로 대화고추와 첫눈’(198716일자)-‘대화고추와 형사’(18일자)-‘메밀꽃 통곡하다’(124일자)를 집필하게 된다.

다음은 본고 초두에 언급한 것처럼 1987년 정초에 눈길을 뚫고 강원도 산간으로 심순수 씨를 찾아 가 만나는 내용을 담은 첫 번째 메아리이다.

 

대화고추와 첫눈’-첫 번째 메아리

 

1987년 초하룻날 자정께부터 서울에 내린 눈은 초이튿날 아침부터 비로 바뀌고 비에 녹은 눈이 빙판을 만들었다. 필자는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서 정초 연휴를 틈타 아내를 동반하고 소형 엑셀 승용차를 운전하여 대화농부 심순수 씨 네를 찾아 나섰다. 서울은 눈비가 내렸지만 강원도 태백산맥에는 소담한 눈송이가 펑펑 쏟아졌다.

해발 1,563 미터의 오대산에서 분기한 차령산맥 옷자락에 들어 있는 산간 부락들에는 한 자를 넘는 눈이 폭신하게 쌓이고, 그 위에 다시 눈이 내려덮였다. 높고 험한 산이 연봉을 이루었으나 소리 없이 펑펑 쏟아지는 눈발이 보얗게 가리어 그 설경이 그지없이 아늑하다.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상안미리3구는 갈미봉 밑에 있는 해발 600미터의 산간 부락이다. 그런데 내가 몰던 엑셀 승용차는 대화 면소재지에 이르러 빙판에 미끄러지면서 한 바퀴 회전하더니 돌 축대를 정면으로 하고 들이받았다. 나는 아내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오른 손으로 제어하다가 승용차가 충돌하는 순간 운전석에서 몸이 튀어 올라 두피가 벗겨지는 상처를 입었다.

하는 수 없이 전면이 망가진 승용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당시 대화면에는 택시가 12대 있었는데 그 중 한 대를 잡고 운전사에게 부탁하여 상안미리 농부 심순수 씨 집을 찾아 나섰다. 강원도 택시는 바퀴에 체인을 칭칭 감고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평창강 상류의 안미천에 걸린 콘크리트 다리를 건넜다. 그곳에서 반 마장쯤 더 나가면 심순수 씨 농가가 있다지만 강원도 택시는 더 이상 산간 눈길을 전진하지 못한다.

우리 부부는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서 언덕을 넘었다. 산허리를 돌아 동구에 이르자 개울가에서 눈발 속에 빨래하는 아낙네를 만났다. 그에게 물어서 마침내 심순수 씨 네가 두 번째 농가라는 것을 알았다.

가난한 농부 심순수 씨는 산비탈에서 1년 내내 땀 흘리며 지은 대화고추를 서울사기에 걸려 몽땅 잃은 사람이어서 대화면 일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심순수 씨의 농가는 옥수수 대로 담을 쳐 놓았는데 헛간은 텅 비어있었다. 그는 어두운 방바닥에 13살의 아들과 16살의 딸과 함께 쭈구려 앉아서 늦은 점심으로 꽁보리밥을 들고 있었다. 반찬은 무청시래기 한 가지였다. 부인은 답답한 마음을 달래러 아랫마을 조카 집에 가고 없었다.

심순수 씨는 정초에 내리는 이 함박눈이 상서롭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었다. 84일 만에 범인이 잡혀 경찰이 2047근 중 1200근을 장물로 압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그는 서초동에 사는 정찬오 교감선생님 사모님인 조명운을 사칭한 40대 서울여자의 말에 걸려들어 대화고추 한 트럭분을 사기 당한 처지였다. 자기가 수확한 것 뿐 아니라 처분을 위임받은 이웃들의 몫까지 합쳐 모두 2047근을 몽땅 잃어버렸다. 그 것은 100근 짜리 부대 20여개로 4톤 복서 트럭 한 차분량이다. 그리하여 심순수 씨는 남의 집 고추 값 397만원을 변상하느라고 전 재산인 조상답 1000평을 농협에 저당 잡힌 후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었다.” (한국일보 메아리, 198716일자)

 

대화고추와 형사’-두 번째 메아리

 

순박한 농부를 개미에 비유한다면 닳아빠진 서울사람은 베짱이가 될 것이다. 대화농부 심순수 씨의 처지는 눈 속에 버려진 한 마리 개미의 신세와 같았다. 개미가 1년 내내 경작한 대화고추를 서울 베짱이가 교활한 속임수로 몽땅 훔쳐간 것이었다.

그런데 심순수 씨는 정초에 내리는 함박눈이 상서롭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었다.

심순수 씨가 서초동 삼익아파트에 사는 정찬오 교감님 사모님 조명운을 자칭한 40대 서울여자에게 홀려 이웃 농가들의 고추를 모 2047근을 모은 것은 추석이 지나고 두 번째로 대화장이 선 날이었다.

그리하여 그가 교감 사모님을 쫓아 4톤짜리 고추 트럭을 타고 생전 처음 서울에 도착한 것이 이튿날(929). 교감 사모님은 심순수 씨 손에 조명운이름의 농협온라인통장(예금액은 전무했다)을 쥐어주고 길성여관에서 하룻밤을 재웠다. 여자가 농협영등포지점에 심순수 씨를 버리고 대화고추 한 트럭분과 함께 자취를 감춘 것은 그 다음날 낮.

서울 서초경찰서 이노성 형사는 그날 당직 근무 중이었다. 이노성 형사가 교활한 서울 베짱이를 기어이 잡아보리라고 결심한 것은 단순히 형사 근성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초동 밤길을 정신없이 헤매다 서초경찰서에 이끌려온 강원도 산골농부를 보자 농촌출신인 그는 가슴이 저렸다. 그는 평창군 하면 한국 제일의 오지이며, 벽지라고 생각했다. 농부 심순수 씨 부부가 다 같이 마흔 여섯 해를 살면서 서울구경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 그곳은 벽촌이었다.

어떻게 가슴이 아팠던지 관할서로 이첩하지 못했습니다. 내 손으로 기어코 잡아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산골농부 모습이 매일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노성 형사의 수시동기에 과장이 없다는 점은 관할책임이 없는 사건을 그가 스스로 떠맡은 것만 봐도 납득이 간다.

이노성 형사는 서울의 경동시장, 모래내시장, 서부역 일대의 고추판매상을 돌며 묻고 또 물었다. 마침내 이 형사는 경동시장의 어느 고추도매상에게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흡사한 여자가 북가좌동에 산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러나 북가좌동의 고추아줌마 김 여사는 동교동으로 이사하고 없었다.

동교동 동사무소로 가서 세대별로 주민등록카드를 확인해 나가던 이 형사는 마침내 용의자인 김 여사의 얼굴을 찾아냈다. 이노성 형사의 연락을 받고 서울에 온 심순수 씨는 김 여사’(46)의 사진을 확인하자 아이구하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노성 형사가 주소지를 여덟 번 지킨 끝에 김 여사를 잡은 것은 1223일 밤, 사건이 난지 84일 만이었다. 3남매의 학비와 1000만 원의 빚에 쪼들린 김 여사는 대화고추 장날을 노려 베짱이의 속임수를 부렸다고 한다. 범인을 잡고 장물로 압류한 분량은 2047근 중 1200근이었다.

 

서초서에 빗발친 전화세례

 

서초경찰서와 담당 이노성 형사는 한국일보의 메아리 대화고추와 형사를 읽은 독자들과 시민들에게서 빗발치는 전화의 세례를 받았다.

광화문에 산다는 신사는 오늘 아침 한국일보를 보니 통쾌한 마음을 금할 길 없더라고 했다. 서초동에 산다는 주부는 이노성 형사의 목소리를 한 번 들어봤으면 좋겠다. 3시간에 걸쳐 다이얼을 돌렸는데 계속 통화중이지만 하나도 짜증이 안 났다고 했다.

서초경찰서 관내 디스코 클럽 경영자는 이노성 형사가 그동안 고생을 하셨으니 실컷 드실 만큼 고기를 준비하겠다. 꼭 나와 달라고 청했다. 동대문구 상봉동에 산다는 학생은 세상에 그런 형사가 있었나. 한국일보에서 조작한 것이 아닌가,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 전화가 100통이 넘었다.” (한국일보 메아리, 198718일자)

 

책상을 치니 하며 죽더라

 

그러나, 서초경찰서 이노성 형사의 인간적인 봉사가 빛을 발할 때, 공안 정국의 일대 시국사건이 발생한다.

114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과대표 박종철 군(1964년 생)이 고문사를 당한 것이다. 박종철 군은 113일 자정께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로 불법 연행되어 혹독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으로 목숨을 잃었다.

116, 당시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기자회견을 통해 저 악명 높은 궤변으로 책상을치니 갑자기하며 죽더라하고 공식 발표했다. 쇼크사가 고문사로 확인된 것은 사망 검진의사인 중앙대병원 내과 오연상 전문의 덕이었다. 그는 청년은 이미 숨져 있었는데 복부 팽만이 심했고, 폐에서는 수포 음이 들렸다고 언론에 밝혔다. 그 해 6월 항쟁이 일어났고 대통령 직선제가 성취되었다.

 

메밀꽃 통곡한다’-세 번째 메아리

 

극도로 대조되는 두 가지 경찰상이다. 젊은 대학생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고두 벌 주검’(부검)이 되어 한 줌의 재로 변해 임진강에 뿌려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허무를 느낄 뿐이다. 가혹행위를 일삼는 경찰 탓으로 사람들은 공분(公憤)을 넘어 허무를 느낄 따름이다.

그 젊은 대학생이 대공분실 취조실에서 변사한 사실을 치안본부가 처음 발표한 것은 115일이다. 수사관이 주먹으로 책상을하고 치자 대학생은소리와 함께 쓰러졌다는 것이 그때 치안본부가 밝힌 거짓진상이었다.

같은 날 강원도 평창군 대화농협 사무실은 온기가 감돌았다. 농부 심순수 씨는 마을 유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농협 강원도 지회장이 춘천에서 먼 길을 찾아와 윤근환 농협 회장의 이름으로 심순수 씨에게 불우농민 돕기 성금 1백만 원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그 현장에 나가 지켜본 작가 최기인 씨(새농민 잡지 기획역) 인정의 메밀꽃이라는 표현을 썼다. 강원도 평창군은 작가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이다. 바로 대화면 북쪽에 메밀꽃 필 무렵의 현장인 봉편면이 있다. 장돌림인 허생원 일행이 봉편장을 거치고 한 여름 달밤에 나귀를 몰고 하얗게 메밀꽃이 핀 산길을 따라 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 여름 밤의 메밀꽃 대신 한 자가 넘게 눈이 쌓인 한겨울에 대화 산간마을에서 절망에 빠져 있던 농부를 구출한 것은 형사 한 사람의 인간적 봉사, 그리고 젊은 형사반장의 이해심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치안본부 취조실에서 고문으로 죽은 젊은 대학생의 입관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아버지는 몇 십번이나 땅을 치며 통곡하고 어머니는 까무러쳤다. 대학생의 주검이 장의차에 실려 백제화장장으로 옮겨져 한줌의 재가 되고 강물에 뿌려진 날은 116일이다.

그날 서울지검 동부지청 231호 김병환 검사는 농부 심순수 씨가 변제받는 방법을 찾기 위해 대화 고추사건 관련자를 한자리에 불렀다. 참석자는 사기피의 자인 김 여사, 장물취득자인 고추 판매상 김 씨, 피해자인 농부 심순수 씨 내외, 담당형사 이노성 순경이었다. 이 자리에서 장물취득자인 김 씨는 남은 고추 1200 근과 현금 100만 원을 농부 심순수 씨에게 변제하고, 피의자 김 여사는 외상 미수금 300만 원을 받아 고추상 김 씨에게 주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젊은 검사도 체류비와 차비를 농부 심순수 씨에게 내주며 위로했고, 고추를 일부분 되찾은 심순수 씨는 근당 1600 원 씩에 팔아 190만 원을 건졌다.

우리는 할 바를 다하는 형사의 봉사에서 하얗게 만개하는 메밀꽃 같은 인정의 꽃을 본다. 반대로 고문을 일삼는 대공수사단 남영분실 형사의 몸에서 사신(死神)의 냄새를 맡는다.

당신들은 서초경찰서와 이노성 형사에게 빗발치듯 전화의 세례를 보낸 시민에게 무엇이라고 말 할 텐가. '인정의 메밀꽃'을 꽃피운 형사가 부끄러워 통곡하지 않겠는가.

하얗게 핀 메밀꽃이 온통 통곡을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한국일보 메아리, 1987120일자)

 

사진=평찬블루베리를 상자에 담는 부인 홍천란 씨

 

이듬해 198811일과 설날에 필자는 이노성 형사와 농부 심순수 씨 부인 홍천란 여사의 안부전화를 받았다. 1989년 정초에도 두 사람은 새해 인사 전화를 걸어왔다. 정초마다 필자가 생각난다고 말하니 언제고 또 안부 전화가 올 것이다. 이노성 형사는 19991월에 경사로 승진했고, 퇴임한 후 행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심순수 씨 아들 심상익 씨는 2010년에 블루베리 800그루를 심고 시설재배(비닐하우스)를 하여 1년에 1톤을 생산한다. 짧은 기간 작업하여 얻는 소득이 2000만원 정도이니 사간 농가로는 괜찮은 사업이라고 말한다.

심순수 씨의 주소인 대화면 상안미리3구는 새도로명 대화면 미달길 153으로 바뀌었다.

  

언론인 안병찬(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TRACKBACK 0 AND COMMENT 2
  1. 이상하 2016.10.31 14:15 address edit/delete reply

    강민창 차 를 96년 내 동생이 교통사고 냈지요 동생차가 강민창 차를 박았죠
    강민창이 추석때 고향 안동 올때 문경에서 ㅠㅠ
    ᆢ 작년 내동생은 사는게 힘들어 목을메고 저하늘 로 떠났습니다 ᆢ
    강민창 치안본부장 이름 들으니 내동생의 슬픈 일이 생각납니다ㅠ

  2. 오늘도 누군가를 위하여 2017.03.29 07:43 address edit/delete reply

    멋진 메아리 감동입니다
    행정사로서도 낮은곳에 많은 희망을 나눠주시길...





ARTICLE CATEGORY

전체보기 (104)
안병찬 인물 창고 (3)
칼럼 (24)
답사기 (5)
베트남 (28)
르포르타주 저널.. (6)
사진 소묘 (1)
글 중계석 (3)

ARCHIVE

  • 157,050Total hit
  • 1Today hit
  • 5Yesterday h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