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블로그 이미지
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답사기'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3.11
    튀르끼예 방문기 (1)
  2. 2009.10.09
    [답사기] ④ 거국주의(巨國主義) 대륙풍
  3. 2009.10.09
    [답사기] ③ 김좌진 국민의례와 중화 쇼비니즘
  4. 2009.10.09
    [답사기] ② 조선옷과 고무신의 두 여전사
  5. 2009.10.06
    [답사기] ① ‘중국인이 보는 안중근 의거’

튀르끼예 방문기

□ 오스만 제국의 영화 톱카프 궁전. 마네킹처럼 꼼짝 않고 서 있는 위병과 함께

‘좋은 뉴스’ 신문

튀르끼예(터키)의 이스탄불에는 일간신문 ‘자만(ZAMAN)’이 있다. 1986년에 창간하여 발행부수가 70만에 이르는 전국신문이자 국제신문이다. 튀르끼예에는 36개의 일간신문이 있는데 ‘자만’은 발행부수 50만이 넘는 4대지 가운데 가장 크다. 정치적으로는 어느 정파에도 가담하지 않는 독립신문을 자처한다.
이 신문이 채택한 원칙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1면에 ‘나쁜 뉴스’만을 싣지 않고 ‘좋은 뉴스’를 꼭 싣는다는 점이다. “신문이 나쁜 뉴스와 비판적 뉴스의 폭탄으로 도배질하는 관습을 넘어 선다”는 전략이다.
이 신문은 또 정교하고 세련된 레이아웃으로 시각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선정주의를 배격한 절제된 편집으로 품격을 지키고 있다. 좋은 뉴스를 얼마나 실을지 미리 비율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뉴스를 반드시 다룬다는 신문사의 원칙은 이미 조직문화로 정착했다고 한다.


□ 자만 신문 팜플렛

현재 호주․ 아제르바이잔․ 불가리아․ 독일․ 루마니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지스탄 ․마케도니아․ 투르크메니스탄․ 미국에서 터키어판과 현지어판을 발행하고 있다.
‘자만’은 좋은 뉴스 싣기, 시각효과, 절제미로 질 좋은 신문을 지향하며 ‘이동식 인터넷’의 폭풍에 끄떡하지 않고 사세를 국내외로 확충하고 있으니 연구 대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쪽 끝과 동쪽 끝의 관계

터키는 아시아대륙 서쪽 끝의 소아시아반도 및 발칸반도에 걸쳐있고 대한민국은 아시아대륙 동쪽 끝의 한반도에 위치한다. 두 나라는 위도가 북위 37도~39도로 비슷하다.
터키는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 한반도가 전쟁지대가 되었을 때 참전하여 혈맹관계가 생겼다는 것은 모두 아는 일이다. 이제 한반도가 정전지대를 지나 평화지대로 바뀌고 이윽고 통일지대로 이행하는 것은 역사의 순환이라고 볼 수 있다.
터키는 2001년 6월에 북한의 151번 째 수교국이 되었다. 남북한과 동시에 수교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 기대된다. 오늘에 와서 터키는 국제경제의 최상위 포럼(Premium Forum)인 ‘G20 코리아 정상회의’에 동석하며 이제는 성숙한 세계국가로서 동행하고 있다.

문명충돌과 터키의 역할

‘튀르끼예’는 비잔티움 문화와 오스만트루크 문화가 혼재하는 역사적인 땅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매듭을 한 칼로 절단한 고르디온이 있고 호메로스가 고대의 전쟁을 서사적으로 묘사한 트로이가 있는 곳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한국 네티즌이 좋아하는 서양 클래식 음악 중에 볼프강 모차르트(Wolfgang Mozart)가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터키행진곡’이 있다. 이 곡은 오스만트루크 제국이 소아시아 쪽에서 유럽대륙의 관문을 밀고 들어가서, 아시아적인 터키문화를 전파한 역사의 유산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우리는 터키가 유럽에서 행해야 할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터키는 1963년에 유럽경제공동체(EEC) 준 회원국이 되었고, 2005년부터 유럽연합(EU) 정회원국에 가입하는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이슬람국가인 터키는 지정학적으로 이슬람-아시아권과 유럽-아메리카권 사이에 있으면서 두 문명의 교차로가 되어있다.
터키공화국을 정치경제학자들은 강국으로 보고 있고 미국 CIA는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유럽의 정치지도자 한 사람은 터키가 유럽연합의 일원이 된다면 유럽은 생명보험에 든 것이나 다름없다고 논평한 적이 있다. 유럽 쪽에서 터키의 존재를 얼마나 무겁게 인식하는지 일깨우는 말이다.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이스탄불에 도착하던 날, 현지 언론은 터키의 장성들과 군부 관련자 40여명이 7년 전에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가 드러나 체포되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지금의 정의개발당 정부가 선거로 들어서자 이를 전복하려 꾀했다는 것이다. 정의개발당 정부는 이슬람을 바탕으로 하는 정교일치 정책을 추진하면서 군부를 포함한 세속주의 세력과 마찰을 빚어 왔다. 세속주의는 이슬람 종교를 떠나서 서구형의 근대화를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의 두 얼굴을 하고 있다. 터키는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왜곡된 인식과 태도를 일컫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극복하는데 특정한 역할을 할 수도 있는 잠재력 있는 국가이다. 한편으로 터키는 유럽의 일원이 되려고 목마르게 기다리는 유럽적인 이슬람 국가이다.
 
 

Posted by 안병찬

TRACKBACK 0 AND COMMENT 1
  1. 음음;; 2011.04.05 22:32 address edit/delete reply

    옆이있는꼬마 설마 가이드는 아니겠죠 ..?

    저도 꼭 가보고싶은곳중에 하나인대 부럽내요 ^^




[안병찬 답사기] ④

거국주의(巨國主義) 대륙풍




□ 다롄르바오 1면 머리기사. ‘신념을 가진 공산당 간부의 유서’를 대서특필했다.

중근 의사의 중국 유적지를 답사하던 길에 유난히 눈에 들어온 것은 ‘다롄르바오(大連日報)’의 1면 머리 기사였다. 제목은 ‘신앙 : 한 사람 공산당원의 임종유촉’이다.

공산당 간부의 ‘신앙 유서’

기사는 다롄시 부비서장이던 차오롄신(曹連新)이 지난 6월에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서를 소개하면서 “한 공산당원의 생사관, 가치관, 가정관, 이익관을 감동적으로 표출했다”하고 고양하는 내용이다. 친필로 쓴 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생로병사는 자연의 법칙이다. 나는 대자연의 한 분자에 불과하여 매 개인이 필연코 준수해야하는 죽음의 규율에서 도망할 수 없다. 스스로 자아평가를 하자면 첫째 당과 조국을 위한 사업에 평생 봉사하면서 가정과 처자에게는 미안하기 짝이 없다. 다만 일생 중 청청백백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이어 그는 당과 가족에게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첫째 나의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되 시정부가 주관하여 당기를 덮어서 바다에 장사지내 줄 것을 청한다.
둘째 친속은 정부에 어떤 불합리한 요구도 하지 말고 나의 의견을 반드시 따르도록 당부한다.

중국은 그가 당과 국가에 충성하고 임무사업을 중하게 여기고 극기로 공사에 봉사한 좋은 당원, 좋은 간부, 좋은 공무원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 ‘마오쩌둥 선집’ 등 혁명의 붉은 책(紅色書)을 소개하는 기사.

요란한 50개항 ‘건국구호’

중국은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60주년’을 거창하게 경축하면서 ‘붉은 애국주의’를 치켜세웠다. 일찍이 마오쩌둥(毛澤東) 등 신중국 건설의 주역이 실명으로 나오는 영화 ‘건국대업’은 표가 한 나절에 4500만장이나 팔려나갔다는 소식이다.
이른바 중국혁명사의 원 자료라고 일컫는 ‘마오쩌둥선집’, ‘신민주주의론’ 등 ‘홍색서(紅色書)’의 간행도 잇따른다.
중국공산당중앙판공청과 국무원판공청이 공동명의로 발표한 ‘경축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60주년 구호(口號)’는 무려 50개 항목에 달하는 요란한 다짐과 맹세로 차있다.
그것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60주년을 열렬히 경축 한다!로 시작하여, 우리나라 개혁 개방 및 사회주의 현대화건설의 위대한 승리를 열렬히 환호 한다!로 이어지고, 마르크스-레닌주의과 마오쩌둥 사상을 견지하여 덩샤오핑 이론화 사상을 굳건하게 실천 하자!면서,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자!고 외치고 있다.

중국 본색

‘거국주의’는 중국 본색을 담아낸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제국주의와 미국 추종주의에 정나미가 떨어진 터이다. 바야흐로 중국도 정치 경제의 급상승세를 타고 호시탐탐 거국주의와 중화주의 징고이즘(맹목적 애국주의)의 검은 그림자를 사방에 드리우고 있다. (끝)
 

   Posted by 안병찬
TRACKBACK 0 AND COMMENT 0



병찬 답사기] ③

김좌진 국민의례와 중화 쇼비니즘



□ 김좌진장군 옛 거주지 분향소-태극기와 오성홍기가 걸려있다.


애국가 봉창과 국기맹세

백야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가 근래에 복원한 장군의 옛 거주지는 중국 무단장(牧丹江)시에서 머지않은 곳 하이린(海林) 시 산자진의 농촌에 있다.
관훈클럽 문화탐사 일행이 도착하자 기념사업회의 담당이사는 설치한 마이크로 추모의례를 진행한다. 김좌진 장군의 흉상 앞에 분향소를 만들고 태극기와 오성홍기를 높이 게양했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하는 구령에 따라 “우리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나온다. 이어 애국가 봉창, 묵념, 남녀 대표 분향, 전원 분향의 순서로 이어간다.
나는 이 절차가 너무 ‘국가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소 마땅하지 않았으나 나의 동반자를 비롯해서 여러 인사들은 인상이 깊고 뜻이 있다고 흡족하게 여긴다. 조국애는 해외에서 한층 강화된다는 속설이 맞는 모양이다.



□ ‘일본해(日本海)’로 표기한 발해국 지도(발해상경유적박물관)


당나라의 변방주 발해

이어 우리가 이동한 곳은 무단장 시 서쪽 닝안(寧安)현에 있는 발해유적지였다.
중국은 발해국 상경(上京) 유적을 일찍이 ‘국가급 중점문물 보호단위’로 지정했다. ‘발해상경유적박물관’의 안내판은 “이 해동성국(海東盛國)은 당대 우리나라의 말갈족(만주족의 선조)이 세운 지방민족 정권, 당조(唐朝) 관할 하의 일개 변방주(邊州)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발해국 역사는 중화민족발전사상의 중요한 한 페이지”라고 다짐하고 있다.
그런데 또 있다. 박물관에 게시한 발해국 지도는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하고 있지 않은가.



□ 발해국 군사도(발해상경유적박물관)


일본해변의 발해국

주중 대사관과 총영사관은 국민 세금을 받으면서 여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바로 나서서 일본해를 동해로 고치는 노력을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중국이 오만한 중화사상을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동북공정은 우리말로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과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 아니던가.



□ 발해국 상경 모형(발해상경유적박물관)


연전에 방영한 KBS의 역사드라마 ‘대조영(大祚榮)’을 생각했다. 보지 않았지만 최수종이 고구려 유민인 장수 대조영과 발해국 고왕(高王)으로 분했을 터이다. 15대 229년 간 번영한 발해국을 우리는 고구려를 이은 국가로 인식한다. 중화 쇼비니즘과 마찰음을 낼 수밖에 없다.


[사진=조천용 한국산업기술대학 겸임교수]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


TRACKBACK 0 AND COMMENT 0




[안병찬 답사기] ②

조선옷과 고무신의 두 여전사
중국 애국주의 선양의 ‘팔녀군상’



□ 치마저고리, 고무신 차림을 한 안복순


무단장 시의 명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동남부 무단장(牧丹江) 시.
동북항일연군 5군 1사 부녀단 소속 여성전사 여덟 명을 새긴 전신조각상 ‘팔녀군조(八女群雕)’가 강변의 장빈(江濱)공원에 우뚝 서있다. 높이 13m, 길이 8.8m.의 화강암 조각작품은 육중하고 장엄하다.
여덟 명 전사 가운데 치마저고리를 입고 고무신을 신은 조선족 안순복(安順福)과 이봉선(李鳳善)이 있다. 안순복은 부녀단 피복창 창장이고 이봉선은 부녀단 전사로 기록되어있다. 앞서 뤼순(여순)과 하얼빈에서 안중근에 감동한 관훈클럽 문화답사 일행 가운데 여럿이 안순복의 이름을 보자 “야, 여기 또 순흥 안씨가 있네”하고 농담을 던진다.


□ 앞에서 보는 안복순, 선두는 전사자를 안고 가는 렁윈(한족 부녀단 지도원)


젊은 여전사들의 표정과 동작은 비장하고 결연하다. 여덟 명 가운데 두 명은 이미 전사하여 동지들이 한 명은 끌어안고 또 한 명은 떠메고 가는 형상이다.
이 팔녀동상은 중국중앙미술원이 창작을 맡고 쓰촨미술학원이 조각을 담당하여 예술적 표현력을 과시한다. 1988년 8월에 세웠고 중국 국무원이 이듬해 ‘중점열사기념건축물 보호단위’로 지정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부인 덩잉차오(鄧穎超)가 1980년에 쓴 휘호 “팔녀투강(八女投江)” 네 자가 받침대에 새겨져있다.


□ 치마저고리의 이봉선(뒤에서 두번 째)


동북항일연군 부녀단 여전사들

1938년 중일전쟁 중, 일본 관동군은 송화강 하류에서 ‘3개 대토벌전’을 전개한다. 중국의 동북항일연군 5군 1사에는 30명으로 조직한 부녀단이 있었다. 10월의 싸늘한 기온 속에 1사 병력이 강변에서 야영을 하다가 밤사이 일본과 만주괴뢰군 1000명에게 포위되었다.
1사 부녀단 팔녀전사는 본대가 포위를 뚫고 나갈 수 있게 일본군을 강변으로 유인한다. 그 틈에 항일연군 본대는 탈출에 성공한다. 팔녀전사는 마지막 남은 수류탄 한 개를 던져 적병들이 엎드린 틈을 타서 일제히 차가운 목단강물에 몸을 던져 장렬히 죽는다. 모두 13살에서 24살사이의 꽃다운 나이 였다는 기록이다.


□ 중점열사기념건축물 '팔녀투강열사군조'


중국공산당이 주도한 합동부대

동북항일연군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1935년 8․1선언에 따라 만주지방의 모든 반일 무장대를 연합하여 만든 중국인과 조선인의 합동부대이다.
‘팔녀군상’은 일찍이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가 안중근 의거를 일컬어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두 나라 인민의 공동투쟁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 대목을 떠올리게 만든다. 동북항일연군은 북한 정권수립의 주역인 김일성, 최용건, 김책 등이 핵심으로 가담해 북한 인민군의 모태가 된다. 남한 국군의 모태는 임시정부의 광복군이다.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

TRACKBACK 0 AND COMMENT 0



‘중국인이 보는 안중근 의거’

거사 100주년, 현장을 가다

□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 응징하는 순간(하얼빈 안중근기념관 소형조각)

서명훈 선생의 집대성

올해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안중근 의거의 행적을 찾아가는 관훈클럽 해외 문화유적 답사여행에 합류해 안 의사의 모습을 새롭게 보았다. ‘대한국인 안중근’이 하얼빈 역두에서 조선침략의 원흉이며 동양 평화를 파괴한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후 러시아어로 “코리아 우라!(대한국 만세!)”를 삼창하고 러시아 헌병에 체포된 날은 1909년 10월 26일.
우리일행은 하필 ‘경술국치일’을 사흘 앞둔 8월 26일에 중국의 여순감옥과 여순법원을 찾았다.
일행이 하얼빈으로 옳긴 것은 8월 27일 저녁. 소피텔 호텔에서 열린 세미나는 열기로 달아올랐다.

주제 발표자는 하얼빈시 조선민족사업촉진회 서명훈 명예회장. 78살의 이 전문연구자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안중근 의거가 중국인들을 얼마나 뒤흔들었으며 어떻게 깨달음을 주었는가, 촘촘히 수집한 자료로 알려주었다.

그는 그때의 실정을 밝히기 위해 베이징•상하이•텐진•우한•광저우•선양•장춘•홍콩 등 각지의 도서관과 문서보관소를 뒤지고 다녔다고 한다. 집대성한 자료는 신문보도, 사설, 시사평론, 저명인사의 제사(題詞), 문인들의 찬사, 안 의사 전기, 이토 히로부미 전기 등 400여 편에 달한다.

손중산 양계초 주은래에서

중국의 국부 순중산(孫中山)은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를 듣고 다음과 같은 글로 찬양했다.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나니
백세의 삶은 아니나 죽어서 천추에 빛나리
약한 나라 죄인이요 강한 나라 재상이라
그래도 처지를 바꿔놓으니 이등도 죄인되리


중국 근대사의 정치가요 사상가인 량치차오(梁啓超)는 안중근은 해와 달처럼 영원할 것이며, 자기는 사마천이 안자를 추모하듯 살아서 안중근을 존경할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그 무덤 옆에 나란히 묻히겠다며 우러르는 마음을 표현했다.

폭풍이 야수마냥 울부짖고
싯누런 흙모래 대지를 휩쓸 때
흑룡강 연안에 눈보라 휘날리고

북국의 엄동설한 살을 에는데
그 사나이 지척에서 발포하니
정계의 거물이 피를 쏟았네
장하다 그 모습 해와 달 마냥 빛나리
(후략)


신중국 건설의 주역인 저우인라이(周恩來) 총리는 안중근 의거를 중국과 조선 인민의 공동투쟁 서막이라고 평했다.

“중일 갑오전쟁 후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는 중조인민 공동투쟁은 본세기 초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때부터 시작되었다.”


□ 안중근 흉상 앞에서(하얼빈 안중근기념관)

장개석 장태염 원세개 풍옥상까지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쓴 휘필 ‘장렬천추(壯烈千秋)’안중근의사기념관에 걸려있다.
중국 근대 민주혁명가이자 사상가인 장타이옌(章太炎)은 ‘아시아주 제일의협(亞洲第一義俠)’이라는 글로써 안중근을 찬양하고 ‘안군비(安君碑)’도 집필했다.
심지어 북양대신 웬스카이(袁世凱)와 군인 정치가 펑위샹(馮玉祥) 그 외에 수많은 인사가 안중근을 찬양하고, 주은래 부인이 된 덩잉차오(鄧穎超)는 일찍이 1910년에 상하이에서 창작 화극 ‘안중근 이토 사살’에서 안중근 역을 연기한 기록도 나온다.
(서명훈 발제문에서)

“나도 순흥 안 씨요”

개인적으로 나는 안중근 의사와 같이 순흥 안씨 제1파(큰댁) 혈통인 것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1910년 경술국치에 통분하여 자결 순국한 조부 위당(偉堂) 안숙(安潚)의 충절(독립훈장 애국장 추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원로 중견 언론인으로 구성된 답사일행은 감히 ‘순흥 안씨’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나를 웃음과 박수로 대해준다. 일행은 누구나 안중근의 웅혼한 위업 앞에 감격하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


TRACKBACK 0 AND COMMENT 0




ARTICLE CATEGORY

전체보기 (104)
안병찬 인물 창고 (3)
칼럼 (24)
답사기 (5)
베트남 (28)
르포르타주 저널.. (6)
사진 소묘 (1)
글 중계석 (3)

ARCHIVE

  • 157,213Total hit
  • 3Today hit
  • 2Yesterday h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