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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표주박’을 깰 뻔 했다

44년 전, 3년차 기자로 경찰서를 출입하던 때 일이다.

사회면 가십 란인 ‘표주박’에 쓴 기사 한 편이 문제를 일으켰다. 기사는 다음과 같다.


“서울 을지로 6가에 있는 ㄱ부동산주식회사(사장 김○○)에 속았다고 20여 명이 5일 중부서에 몰려와 아우성을 쳤다. 고발 내용인 즉 ㄱ사에서 구랍 15일부터 시내 각처에 20여 명의 외무원을 풀어 연말 특별대부를 선전-수많은 사람으로부터 가입금과 일주일 불입금을 받아갔는데 연내 지불한다던 대부는 무소식이라는 것.

대조시장의 김 아무개(33)씨는 4만 원짜리 대부를 받아보려고 가입금 1천 5백 원에 나흘간 6백 원 씩을 불입했다가 떼었으며 이밖에도 5만 원짜리부터 40만 원짜리 대부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한국일보 1965년 1월 6일자)


숫자 착오


이 기사를 보고 ㄱ부동산주식회사 대표는 한국일보 발행인을 걸어서 한국신문윤리위원회에 명예훼손회복청구소송을 냈다. 제소인은 “이 기사가 터무니없는 왜곡허위보도를 하였으므로 피소인에 대하여 가장 엄한 제재를 가하는 동시에 제소인 회사의 명예를 회복하는 조치를 취하여 줄 것을 구한다”고 했다.

나는 사회부장의 지시에 따라 소명자료를 준비하다가 똑 떨어지게 소명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알았다. 경찰서를 돌다가 사건을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취재해 전화로 송고한 탓으로 짜임새에 허점이 있었다.

언론회관(지금의 프레스센터)에 있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제소부장 앞에 출두한 나는 조사를 받으면서 일부 숫자의 착오를 인정했다.


제소부장은 중부서에도 출장하여 형사주임과 피해자들을 증인으로 심문한 끝에, “기자의 취재동기에 불미스러운 배경(금품을 요구했다는)은 없으나 기자가 숫자상 착오를 했으므로 ‘주의환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확인’은 만족할 줄 모른다


한국언론윤리위원회의 심의결정은 표주박 기사가 난지 42일 만인 2월 17일에 났다. 주문(主文)은 “제소인의 청구를 기각 한다”(7인 위원 전원일치)였다.

“숫자 오기는 인정할 수 있으나 문책할 만한 것이 못되고, 숫자상 쌍방 주장에 다소 차이가 있으나 고의로 명예를 훼손시키는 것이라고는 인정할 수 없다.”는 요지의 이유가 붙었다.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며, 사실 확인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는 점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초년기자 시절에 겪은 이 ‘첫 경험’은 그 후 나의 기자 생활의 지침이 되었다.

[2009.03.20]


Posted by 안병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