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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엄기영 사장의 유능제강


 

1년 반 만에 mbc에 갔습니다. 기자앵커 출신인 엄기영 사장을 방문했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 파리 특파원 시절에 서로 알게 된 사이입니다.

mbc는 왕년에‘안병찬의 일요광장’이라는 시사토론 프로를 맡아 1년 반 동안 드나들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몇 가지 이유로 이질감이 들지요. 영상매체 mbc의 그 거대한 조직과 기구, 그리고 끝없이 들리는 잡음 때문입니다.

이번에 모처럼 그 곳에 들렀다가 관찰한 것이 있어서 [안병찬 칼럼]을 썼습니다. 저널리즘을 보는 나의 관점을 담았습니다.

저널리즘이 대상을 인식하는 원칙을 제시한 글입니다. 

  



제목: 엄기영 사장의 ‘유능제강(柔能制剛)


텔레비전 방송국에 가면 이상한 냄새가 난다. 문자 매체인 신문사에서 자란 처지라서 낯선 느낌이 든다.

지난 주 금요일, 1년 반 만에 여의도에 있는 MBC 문화방송에 갔다. 엄기영 대표이사 사장과 업무 차 만날 약속이 잡혀있었다. MBC는 90년 대 후반에 ‘안병찬의 일요광장’이라는 표제로 시사토론을 진행하며 18개월 동안 드나들던 방송국이라 한때는 꽤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 곳은 오로지 신문에서 문자텍스트를 업으로 삼아오던 처지에 입으로 말하고 표정으로 ‘연기하는’ 영상매체의 색다른 경험을 한 곳이다. 더구나 타고난 두 앵커 엄기영, 백지연과 친분을 만들었으니 문화방송을 낯설어 할 까닭이 없다.

□사진=뉴시스

▲ MBC, 낯선 거대함이여

2000년대 들어서는 문화방송에 드나든 것이 8년 동안에 단 세 번이다. ‘유시민의 100분토론’이 김대중 정부의 언론정책을 다룰 때 패널로 참가하고, 김중배 사장을 비롯하여 간부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방송내용을 평가하는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최근의 방문은 ‘하이킥 라이프’를 신문지면에 연재하던 작년 4월에 노익장의 이순재를 취재하려고 스튜디오까지 밀고 들어간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에 MBC에 이질감을 느끼는 이유는 주식회사 체제의 거대함이다. 내가 90년대 들어서면서 떠오르던 주간지 ‘시사저널’을 이끌던 때에 그 외형은 기껏 60억 원 정도였다. MBC는 ‘컬러텔레비전 시대’와 ‘멀티미디어 시대’를 지나서 고화질(HDTV)의 ‘디지털 시대’에 도달한 오늘, 매출이 우리 돈으로 7770억 원(2007년)에 달한다.

본사와 19개 지방계열사, 10개 자회사 임직원은 4321명이다. 계약직은 588명. 실로 거대한 공룡이다. 개인적으로 친숙한 어느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도 MBC의 고액 연봉이 놀랍다고 탄식한다.

지금도 멀티미디어 방송그룹 MBC에서 끓어오른 물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피디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일으킨 파동이 여진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공영방송’을 공언하는 MBC. 영어 머리글자 MBC의 한 가운데를 빨간색 네모로 채우고 ‘정직함, 공정함, 균형감’을 주장하는 MBC가 왜 이리 시끄러운가.

▲ 정직 공정 균형을 주장하는가?

본관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대형 현수막이 여러 군데 내걸려있다. “MBC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국민의 알권리 '피디수첩'이 지킵니다.”

그렇지만 누가 국민의 MBC라고 규정하고 누가 국민의 알권리를 '피디수첩'에 위임했는지 단정할 수 없다. 오로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자기를 옹호하는 구호로 들릴 뿐이다.

시사교양국 피디조합원 일동의 이름으로 9월 16일에 낸 전단은 “경영진은 아직도 이명박 정권에게 내줄 것이 남아있는가? ‘피디수첩’ 제작자를 징계하고 ‘피디수첩’을 폐지하겠다고 나설 것인가? 언론 공공성의 한 축을 담당해 왔던 시사교양국을 해체하고 싶은가?” 하고 여러 말로 항의한다.

약속한 시간, 엄기영 대표는 넓고 텅 빈 대표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엄 사장도 어느덧 흰 머리가 듬성듬성하다. 단정하고 온화한 그 얼굴 그대로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MBC 최고 결정권자인 만큼 속으로는 외롭겠지 생각했다. 피디 세력은 최종 인사권자인 엄 사장에게 퇴진은 아니고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요구하고 있다.

사태가 좀 어떠냐고 물으니 그는 자기가 임하는 의지를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했다. 부드러운 것이 오히려 굳센 것을 제압할 수 있다는 중국 병서 ‘삼략’(三略)의 한 구절이다.

결론은 이렇다. 모든 정치권력은 언론을 지배하려고 끊임없이 공격한다. 피디 저널리즘이건, 신문 저널리즘이건, 모든 저널리즘은 부동의 ‘사실’의 축대를 구축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숭고한 정의’ ‘확신에 찬 믿음’은 사상누각이다.
ann-bc@hanmail.net

국내 유일한 민영뉴스통신사 [뉴시스] 기사등록 : [2008-09-22 11:28:34] / newsis.com


Posted by 안병찬 안병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