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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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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 역사와 문학의 저널리즘 탐험
by 안병찬

'2017/04'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17.04.16
    (13) [호찌민 통신-사이공 중앙우체국 앞 갑자기 목메다]
  2. 2017.04.16
    (16) [호찌민 통신-80년대와 2000년대의 베트남, 조교 최순욱]
  3. 2017.04.15
    (15) [호찌민 통신-권현우 베트남문학 석사, 능변의 국어 표현]
  4. 2017.04.15
    (10) [호찌민 통신-최신청년 그대들을 평한다]
  5. 2017.04.15
    (2) [호찌민 통신-특강 목표 '베트남 자주정신과 기록문학']
  6. 2017.04.15
    (11) (사진 소묘) [호찌민 통신-태양의 도시 수놓은 푸른세대]
  7. 2017.04.15
    (14) [호찌민 통신- "베트남 진출 고려할만 " 김종각 대표]
  8. 2017.04.15
    (17) [호찌민 통신-'끝없는 질문과 필기'- 김영희 교수]
  9. 2017.04.15
    (5) [호찌민 통신-'최신세대의 큰오빠' 홍종윤 교수]
  10. 2017.04.14
    (3)[호찌민 통신-결단성 일벌레 윤석민 교수]

 

42년 지난

 

사이공 중앙우체국

 

갑자기 목메다

 

 

 

 

 

 

42년 전.

1975년 4월 29일 항복전야, 오전 9시 30분. 사이공 중앙우체국 기계실.

 

 

사이공 최악의 날 428

 

텔렉스 호출번호케이2244 한국일보 서울(K2244 HKILBO SEOUL)이 열리자  기사가 텔레스로 토닥토닥 전송된다 .

 

사이공 최악의 날 428…….”

……

……

……

……

 

32분의 송고가 끝나는 순간, 돌연 탁 탁 탁 탁하고 급한 타자 음이 울렸다.

 

 

본사 최후 교신

 

- 누구냐, 미스터 안 그곳에 있느냐?

 

영문으로 찍혀 나온다. 외신부장이 나를 찾는 소리다. 본사 텔레타이프 앞에 앉아 있을 조순환 부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책상 앞에서 대면하는 듯한 근접감이 들었다. 아득한 거리였으나 둘이 호젓하게 마주앉은 기분이다.

 

- 필름은 엘에스티가 떠나는 장면과 대사관 스케치 중심입니다.

  태극기 내리는 필름은 아직 못 보내고 있습니다. 대사관은 어제 태극기를 내렸으니 기사를 보충해 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에게 안부 잘 전해 주세요. 내일이 어머니 환갑인데 전보가 되면 축전을 치겠고 안 되면 텔렉스로 축전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니 환갑 4월 30일

 

- 당신 모친의 환갑행사에는 내가 직접 가보겠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위험한 일은 절대 삼가시오. 즉시 안전하게 사이공을 탈출하기 바랍니다.

- 고맙습니다. 국장 이하 외신부원에게 안부 전합니다. 오후 텔렉스가 여의치 않으면 아침에 다시 해보겠습니다.

-

 

안녕히. 안녕히.

 

조심하시오. 조심하시오.

- 안녕히.

- 안녕히.

 

다시 본사가 멀고 멀어졌다.

이 텔렉스가 사이공에서의 마지막 교신이었다.

 

 

텅빈 거리, 오직 나홀로 달리다

 

 

카메라와 가방을 메고 개미 한 마리 없는 텅 빈 케네디 광장을 나 홀로 뛰었다. 사이공 가톨릭 대성당의 뾰족 지붕이 우체국 건너편에 솟아 있다. 그 앞에 외롭게 서 있는 성모 마리아상은 희게 빛났으나 차가웠다.

마리아 상 왼편에 키 큰 가로수 녹지대가 드넓게 펼쳐진다. 독립궁의 정문과 본관에도 경비병 그림자가 없다.

사진을 찍어야지. 이것이 사이공의 마지막 장면이 될지 모른다.”

 

 

4월 29일 오전 10시 3분

 

 

광장 한가운데로 뛰어가 마리아상을 바라봤다. 마리아의 어깨 너머 사이공 우체국 시계탑.

시계는 오전 103, 저 시간이 나의 사이공 취재를 증명해 줄 것이다.

촬영을 마쳤다. 나홀로 인적이 완전히 끊어진 텅빈 거리를 또 달렸다.

 

 

그로부터 42년

 

 

42년이 지나, 한 밤에 중앙우체국 앞에 가서 언론정보학과 젊은이들 앞에서 그날 송고하던 상황을 전하던 중, 갑자기 목이 메어 말문이 막힌 이유가 무엇인까.

 

4월 30일이 어머니 회갑이어서 어머니가 그리운 감정이 내 마음 밖으로 넘쳐 나왔는지 모른다.

나이가 들면 쓸모 없는 감성이 증가한다 하니 그 탓인지 모른다.

언론정보학과 최신세대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당시 정황을 그려 나가가다 감정이입이 됐는지 모른다.

 

아직도 왜 목이 메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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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과거와 현재를

보도로 연결하다

 

 

 

 


[최순욱 조교의 탐방 소회]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최순욱입니다.

탐방 소회를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80년대와 2000년대의

베트남

 

‘80년대와 2000년대가 뒤섞여 있구나.’ 버스에서 바라본 호치민의 첫 인상이다. 멀리 보이는 상업지구의 빌딩은 서울의 여느 빌딩처럼 높고 화려했지만 버스에서 길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더위 때문인지 문을 활짝 열어놓은 가정집의 외양과 내부는 영락없이 80년대 서울 변두리쯤을 연상하게 했다.

 

더욱 압축된 경제성장

 겪고 있구나

 

이는 베트남이 우리나라가 겪었던 것 보다 더욱 압축된 경제성장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터. 벤탄시장에서 이 생각은 거의 확신에 가까워졌다. 그다지 경제력이 좋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도 하나같이 최신형 휴대폰을 갖고 있었다. 전혀 일이 없어 보이는 행색 초라한 짐꾼마저 아이패드를 펼쳐들고 다른 짐꾼과 한가로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여기에 첫 번째 날에 방문한 호치민의 고급 빌라까지 고려하면 과격할 정도로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엄청난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승리의 역사와 현재의 성장

 발전에 자신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사회에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 국영통신사나 배한타임스, 한국 영사관, 증적박물관, 구찌땅굴 등에서 들은 이런저런 설명에는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이 과거 승리의 역사와 현재의 성장과 발전에 자신감을 갖고 만사를 대한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뉴스로 이어질

탐방 목적

 

금번 베트남 탐방은 학생들에게 이런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의 분위기를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옛날 우체국 앞에서 안병찬 선생님이 보이신 눈물을 학생들이 베트남의 현재와 과연 연결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탐방 일정은 호치민이라는 지리적 공간의 과거와 현재를 보도, 뉴스로 이어보자는 본래의 목적에 충분히 부응했다고 생각한다.

 

최순욱 조교 

 

정보기술 전문 기자 거쳐

 

최순욱 조교는 그 듬직한 체구달리 매우 부드러운 사람이다. 처음에는 여자처럼 낯을 가렸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지자 매우 상냥한 성품을 들어냈다. 말소리도 부드럽다.

윤석민 언로정보연구소장은 "최 조교는 겉보기와 달리 아주 상냥하고 착한 성품을 타고 났다" 말한적이 있다.

 

최순욱 조교는 언론정보연구소 공식 조교(서울대 직원 신분)로 언론정보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여,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정보기술(IT) 전문 신문사인 <전자신문> 기자, <매일경제(MBN)> 기자 생활을 한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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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가 '짜노' 권현우 

 

 

국어와 베트남어

 

 

유창한 능변  

 

 

[결혼사진=호찌민 사진관에서]

 

해설가 권현우. '짜노'는 차를 권하는 베트남 다도.3일 내내 취재학습단을 안내하며 유창한 해설을 도맡아준 권형우 베트남어문학 석사.

그는 정확한 한국어 실력과 능변의 베트남어를 구사하며 해설 실력을 발휘했다. 나는 그에게 해설의 길이를 30% 줄이면 더 좋질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귀국한 그날 그가 먼저 카톡 문자를 보내왔다.

 

짜노의 문자 : 201748일 새벽 이시 22

안병찬 선생님. 청년 안병찬 특파원의 마지막 탈출로를 따라 걸으, 만약 나라면 과연 마지막 기사 송고를 할 수 있었을까, 탈출을 위해 한 시라도 빨리 미대사관으로 달려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을 하면 선생님의 뒤를 따라 걸었습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 건강하시구요, 또 뵙겠습니다.

권현우 드림

나의 답신 : 48일 오후 420

권현우 석사의 국어 표현과 구연 서술의 능력이 뛰어났어요. 귀하가 한국군의 원죄를 참회하는 구수정 학파의 제자라는 것도 확인했소. 구수정 특강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어요. 음식도 잘고르고.

또 봅시다.^^

 

짜노의 문자 : 48일 오후 757

에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보다 더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그때 말씀하신 30%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겠습니다.평안한 주말 되십시오.^^ (음식도 구수정 샘의 리스트를 제가 활용한 것이랍니다. ㅎㅎ)

제가 베트남에 올 때 두 가지 목표가 있었는데 하나는 베트남 관련 평화 활동을 이어가는 것, 또 하나는 베트남 문학 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맙에서 일을 한 지 3년차 정도 되었을 때 베트남 문학 석사 진학을 추진하기로 마음먹었고 자문을 구할 수 있는 한국인을 알아보던 중 호찌민시에서 번역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김주영 씨, 제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많이 쫓아다녔지요.^^

 

 

베트남에 온 계기

 

인권 활동-김주영 발견-

 

베트남어문 유학-구수정 만남  

 

 

권현우 팀장은 맥놀이라는 청년 인권 모임에서 활동을 하다가 시민단체 나와우리에서 주최한 한베평화캠프에 참가하여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와 깊게 만나게 되었고 나와우리에서 1년간 반 상근으로 일했다.

갈수록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베트남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져 2010년부터는 호찌민시에 살게 되었다. 그는 나와우리 한베평화캠프 참가로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구수정 박사가를 만나 전쟁증적박물관에서 설명을 들었다.

그는 "20108월 어느 날, 구수정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서 사회적기업의 틀로 한베평화 운동을 이어가고 싶다며 동참을 권유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하게 되어 지금까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설명했다. 

 

구찌 땅굴을 해설하는 권현우(사진=언론정보학과)

 

짜노는 베트남어 문학석사과정

권현우는 금년 34살로 베트남 생활 7년차.그는 베트남 문학 석사 진학을 추진하기로 마음먹었고 자문을 구할 수 있는 한국인을 알아보던 중 호찌민시에서 번역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김주영 씨,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저회는 성격이나 관심사 등 여러모로 통하는 점이 많았고 금새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많이 쫓아다녔지요.^^"

권현우 씨가 호찌민 국가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베트남어문학과에서 쓰고 있는 석사 논문 주제는 베트남과 한국의 리얼리즘 소설에 나타난 인간 문제 : 또호아이의 소설 세 남자과 황순원의 소설 카인의 후예를 중심으로이다

 

아내는 베트남어 문학박사과정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졸업생인 아내 김주영 씨는 호찌민 국가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베트남어문학과에서 박사 논문 주제 문화 교류와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본 문학 번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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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을 평한다

 

 

최신청년들아

 

 

총영사관 회의실에서 (사진=언론정보학과) 

 

 

지향과 총결 

 

 

이번 현장 취재학습('미래실습 1' 과목 현장지도)이 지향(志向)한 바는,

베트남과 대한민국의 역사적 경험을 비교하고, 베트남의 자주 정신을 탐구하며, 취재 경험을 습득하는 것이었다.  

 

취재학습의 총결방법은,

 ① 수강생 20명이 학습하며 취재한 내용을 기록문학(記錄文 學)적으로 집대성(集大成)하여 발간한다.

 ② 수강생 20명이 포착한 비디오 및 카메라의 영상들로 르포르타주(reportage)적 작품을 제작하여 발표한다.

이 두 가지였다.

 

 

거침없는 동선

 

 

러나 몇 가지 조건의 제한으로 이 강도 높은 현장 취재학습단에 참가하는 최신세대 청년들과 소통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숨 쉴 사이 없이 이동하는 가운데 틈틈이 질문을 던져 알아보니  동유럽 루마니아까지 건너 가서 수학한 학생도 있고, 서남아시 아 방글라데시까지 나가서 반 년 간 봉사활동을 한 학생도 있어, 최신 세대 청년들의 동선이 매우 활발한 것을 알았다.

 

호찌민의 거리거리는 질주하는 오토바이의 물결로 초행은 길을 건너기 두려워한다. 그런데 우리 언론정보학과 청년들은 남녀 구분 없이 벤탄 중앙시장을 둘러싼 6중 교차로의 혼돈과 소용돌이를 뚫고 제길 드나들 듯 한다.

 

외국인 배낭여행자 거리도 삼삼오오 조를 짜서 찾아가 밤늦도록 젊음을 구가한다. 그들이 길을 잃을까, 사고를 입지 않을 까, 하는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자유자재였다.

  

 

기록문학’을 심는다면

 

 

이런 거침없는 활동성에 '기록문학'적인 사고를 심는다면 그들은 사고하고 인문하고 철학하는 큰길을 열 것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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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안병찬 특강 목표

 

베트남 자주정신 그리고

 

기록문학(記錄文學)

 

 

베트남 자주정신을 보자.(사진=언론정보학과)

 

 

 

베트남 자주정신과

 

기록문학(記錄文學)에 관한

 

학습 재 10건

 

 

이번 취재학습단의 젊은 수강생들에게 내가 보여주고 가르치고자

한 바는 두가지 였다. 그하나는 베트남의 빛나는 자주정신이다. 또 하나는 기록문학을 쓰고 기록문학 처럼 사고하는 것이다. 그 전범이 되는 첫번째 책으로 나는 이태의 기록문학서 <남부군>을 강조했다.

 

통일 베트남에서 배운다

 

베트남은 4·30 항미전승과 5·7 항불전승의 정신을 근간으로 삼아 정경분리의 이름 아래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배울 점은 불퇴전의 자주정신이다.

특히 우리는 베트남의 통일운동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한국과 베트남의 분단과 통일의 조건은 다른 점도 있고 동일한 점도 있다. 베트남은 대륙 중국에 1000년 간 맞서며 독립을 지켜냈고 유럽 강대국 프랑스에는 100년을 저항한 끝에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더구나 세계 최강국가인 미국을 상대해서는 20년 전쟁을 벌여서 끝내 패퇴시켰다.

그 강인한 저력으로 베트남은 스스로 통일을 왕성했다. 특히 베트남은 미국과는 종속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눈높이로 현실적인 전략을 구사한다.

많은 한국인들은 베트남의 자존을 보지 못하고 오직 경제적인 잣대 하나로 베트남을 평가하려든다. 최근 베트남 달랏대학에서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유태현 전 베트남 대사는 내가 관여하는 주간 베트남 교민신문(베한타임스)에 이런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우리가 베트남에 우월감을 가질 근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베트남 국민은 물질적인 풍요보다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여 국가와 개인의 최고 가치인 독립과 자유를 국가 이념으로 설정한 품위 있는 국민입니다." 바로 내가 하고 싶던 말이다.

 

 

[수강생에게 제공한 학습 자료 10건 ]

 

1. 편성표(編成表)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특설(特設)

사이공 최후의 새벽 안병찬 특파원과 동행하는

호찌민 통일현장 취재학습단>

 

2. 기록문학과 르포르타주에 관하여

<기록문학記錄文學과 르포르타주(프랑스어: reportage)>의 행동주의 휴머니즘 서술 방법-안병찬 르포르타주 <사이공 최후 표정 컬러로 찍어라>(<사이공 최후의 새벽> 개작) 소개

 

3.구수정 한겨레 전문위원의

<베트남전 종전 30돌 대형특집-보응웬잡 장군 인터뷰>

200553일 한겨레21

 

. [나의 사망기사]

→ □ 표제 : 눈사람(雪人) 되다

커뮤니케이션북스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의 탐험-안병찬(2008)의 머리말

 

5.안병찬 칼럼 [아시아의 안광(眼光)]

<탈오리엔탈리즘이 필요한 이유-

아시아적 가치, 통일 베트남에서 배운다>

 

6.[미제국을 보는 관점]

<미국 '제로섬(Zero Sum)' 시대 갔다,

이제는 중국 '윈윈' 시대>(내일신문 2017-02-13 11:08:21 게재)

 

7.언론 명문 열전 안병찬<현장에 산다베트남 패망의 기록, ‘뇌우 속의 포화)

중앙일보 J플러스-시사(입력 2016.06.08 08:24) 담당 홍병기 에디터

 

8.안병찬의 [호찌민 통신]

<이순흥 회장의 노마(老馬) 메르세데스-벤츠차

빵꾸 수난기와 환골탈퇴 대수리 과정

 

9.신간 <딸깍' 열어주다-멋진 스승들>

성우제 지음 (도서출판 강, 2016817일 출간)

[안병찬 선생님 편

 

 

10.안병찬의 <우리는 왜 통일열차를 탔는가>

2010-35년 시공 넘어 동반 취재 12

20124-베트남 통일 37주년에

시사IN커버스토리

 

호찌민 전쟁증적박물관-한 장의 사진 <사이공의 즉결처형>의 게이트키핑 연구 논문 설명(사진=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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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 통신]

 

 

태양의 도시 호찌민 수놓다

 

 

언론정보학과 푸른세대

 

 

 

 

사진 소묘=서울대 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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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속의 강론

 

 

베트남 진출 문제 

 

 

 잘 생각해 봐 달라 

 

 

 

 

김종각 베한타임스 대표에게 문의했다.

 

"몇 살에 고시 합격하셨소?"

"한국나이 35살요."

그는 만학의 노력파이다.

 

 

호찌민 일정 마지막 날인 4월 7일 오후, 김종각 대표는 학습단의 버스 안에서 수강생들에게 마음에 두었던 말을 전했다.

 

 

똑똑한 현장 지원자 

 

발행인 김종각의 제안 

 

 

베트남 신문사들은 온라인 미디어로 변신을 하고 싶지만 컨텐츠 부족으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 언론사의 고민도 마찬가지라 본다이렇게 변화로 인해 어수선한 때 새로운 기회의 공간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창조적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이해와 융합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도전에 필수

 

복수전공

 

 

요즘 복수전공이 거의 필수라고 들었는데 이러한 도전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라 이해한다.

특히 베트남의 잠재력에는 미디어 분야도 포함되어 있으니 이 기회를 잘 생각해 봐 달라

 

그는 수강생들에게 베트남 진출도 검토해 볼만하다는 뜻을 담았다. 그는 강인한 사람,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의 경력이 말해준다.

 

 

복잡한 그 경력

 

 

삼육대학 신학 학사, 삼육신학대학원 신학석사,한양대학교 법학대학 법학학사,사법연수원 32기 수료,연세대학 건축공학대학원 건축공학 박사과정 이수,건설클레임 전문 변호사.

베한타임즈 대표, 법무법인 집현 대표변호사(서울).

애드윈파트너스 컨설팅 펌 대표(베트남).

 

 

김종각과의 통신

 

 

귀국한 날 김종각 대표의 노고를 치하했다.

"김종각 대표의 역할이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최신세대 앞에서 어느때 보다 빛났어요. 수고 많았소. "

언론인 안병찬

 

 

 

"서울 잘 도착하셨습니까. 이번 일정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 박사님의 열정에 항상 경의를 표합니다."

김종각 배

 

  

 

내가 교민신문을

 

지원한 사연

 

 

'베한타임스'의 전신은 '베트남 교민신문사'인데, 나는 김종각 대표의 간절한 청을 받아들여 2011818 일 동지 상임고문역을 맡았다.

 

나는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아내 이정자 대표와 함께 호찌민에 출장하여 신문사 앞 호텔에 숙박하면서 신문의 편집과 지면설계(레이아웃, 교열과 교정에 이르기까지 제작과정 전반을 두고 열심히 경험지원을 했다. 그렇게 3년간 출장하면서 드는 여행비도 후배에게 광고를 수주하여 충당한바 있다.

  언론인 안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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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역사학자의 내습

 

'끝없는 질문과 필기'

 

조곤 조곤 탈탈 김영희 교수

 

 

비좁은 객석, 인터뷰 서막

기나긴 인터뷰는 호찌민 행 아시아나항공(OZ 732)의 비좁은 일반석에서 서막이 올랐다. 우리는 나란히 객석을 배정받았다. 인터뷰 담당자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영희 교수(언론정보연구소 책임연구원)로 전공이 미디어역사 연구이다.

심층 인터뷰 대상자인 나는 김 교수의 끊임없는 질문에 일일이 상세히 응답해 나갔다. 그이 질문은 끝이 없었다.
5시간 비행 중 4시간이 걸린 면담, 마침내 옆 자리에 앉은 손님이 골을 내고서야 잠정 중단했다.

 

거꾸로 매달아, 조곤 조곤 터는 기법

인터뷰 기술은 전형적인 공식이 없지만, 본질을 입체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공간이 가장 중요하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의 통일취재실습학습단을 이끌고 호찌민으로 가는 길이므로 최상의 공간이다.  

내게 인터뷰 진행은 익숙한 분야이다. 즐겨 사용하는 것은 공격적 방법, 탈탈 먼지털이 하는 방법이다. 김영희 교수는 언론역사학자이므로 조곤 조곤 부드럽게, 내 두 다리를 잡고 거꾸로 매달아 주머니 재산을 차근 차근 털어낼 태세이다.   

 

시도 때도 없는 3박 4일

김 교수는 호찌민에서도 인터뷰를 시도 때도 없이 진행 했다.

아시안 호텔 로비에서, 전쟁증적 박물관과 구찌딸굴 가는 버스안에서, 안병찬 특파원 탈출 경로를 걷는 노상에서, 사람들이 북적대는 벤탄시장 찻집에서.

김 교수는 인터뷰를 3박 4일 동안(항공기 내 포함) 계속했다.

 

[김 교수와 나눈 문자] 

안병찬 : 

나와 작업할 일은 주제가 무어지요? 알려주시면 고맙겠어요.

김 교수 :

아직 본격 착수하지 못했는데 현재 생각으로는 <현장주의 언론인 안병찬>() 이런 제목을 붙였어요.

내용은 여행 중 간단히 말씀드린 것처럼 선생님의 언론활동에서 특히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들을 중심으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가능한 대로 선생님의 활동을 보여주는 기사, 칼럼, 사진 등의 자료를 많이 활용해 그 자체로 사료적 가치가 있으면서 흥미 있게 읽힐 수 있도록 구성하려고 합니다.

준비하면서 선생님께 많이 묻고 자료도 구하고 싶습니다!

 

안병찬 :

하나 걱정은 대화가 자화자찬이 될 때가 없어야 한다는 문제. 더 진지하고 꾸밈없는 설명을 드려야  텐데 참. 이 작업은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어떤 사업에 속하나요?

 

김 교수 :

이 저술 작업은 베트남 방문과 마찬가지로 네이버가 지원하'미래뉴스센터' 사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윤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현장주의 언론인의 한 모델로 선생님을 보여주는 것이 의미 있겠다고 판단하시고, 마침 미디어 역사연구자인 제가 있으니 그 작업이 어떻겠는지 문의하시면서 구체화되었어요.

7월이후 본격 시작할 예정입니다.

선생님 말씀해주신 내용에 당시 상황과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하겠습니다. 상찬으로만 흐르지 않도록 저도 경계하겠습니다.

 

안병찬 : 잘 알겠소이다.

 

[귀국 당일 카톡 교환]

안병찬 : 2017년 4월 8일 토요일 오후 6시 47분

김영희 박사 교수와 동행하여 피로를 몰랐어요. 김영희 역사

학자의 외유내강한 열정때문이오. 앞으로 전개할 동행작업을

기대합니다.                                      언론인 안병찬

 

 김영희 교수 : 오후 9시 12분

선생님! 저도 열정적인 참 언론인 모습을 보여주시는 선생님

을 가까이서 뵙고, 말씀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선생

님을 주제로 책을 쓰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부족하지

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김영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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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세대의 큰오빠'

 

1인3역 돈주머니

 

홍종윤 교

 

 

 

 

수줍음 타는 샌님 교수 

 

2월 7일에 호찌민 현장학습단 운영을 결정하자, 나는 틈틈이 편성표를  구성해나갔다. 모든 작업은 주로 국제전화를 연결하여 진행했다. 현장감이 나고 다채롭고 흥미 끄는 교육과정을 짜는 것은 잔손이 수없이 많이 드는 일이다.

 

나는 편성작업을 하면서 언론정보학과 총책인 홍종윤 교수와 수시로 통화하면서 목소리로 친해졌다. 편성표를 완성한 것은  3월 17일.  

홍종윤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3월 21일 오전 출발준비 특강을 하러 언론정보학과를 찾아갔을 때이다. 홍 교수는 첫 인상이 샌님형으로 다소 수줍음을 탄다고 여겼다. 이번 학습단은 그가 맡고 있는  강의 '미래뉴스실습 1'과 직결되어있어 그는 담당 교수,  여행 총무, 자금책, 강의진행의 1인4역을 맡아 다소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반전

 

 

2박 3일의 통일현장 취재학습단이 호찌민으로 향하면서 그의 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홍 교수는 같은 학과(언론정보학과) 출신이고 본교 학위를 취득한 담당 교수이므로 수강생들을 통솔하는데 최적의 인물이다.

 

그는 배낭을 메고 앞 허리춤에 현금 전대를 찬 완전무장 차 림으로 1인 다역을 계속 수행하니 영락없는 최신세대 수강생들의 큰오빠 받형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운동(사회인 야구팀 감독)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였다. 딱 버러진 가슴에 똑바른 자세로 모든 학생과 모든 과정을 이끌었다. 가장 일찍 일어나고 맨 나중에 취침하면서. 

 

 

홍종윤 교수 뒤태(사진=언론정보학과)

 

 

 

[귀국한 날 나눈 문자]

 

발신 : 2017년 4월 8일 토요일, 오후 5시 44분

 

 친애하는 최신세대의 큰오빠(빅브라더)홍종윤

 교수.

 홍 교수의 일인삼역이 뛰어났어요. 보기와 달리 단단한 체력도 볼만했어요. 이번 학습단의 지도교수 다웠음을 확인 합니다.

언론인 안병찬

 

 

홍 교수 회신 : 오후 6시 44분

 

 안병찬 선생님.

 잘 들어가셨는지요.

 정말 이번 취재학습단 행사의 기획부터 꼼꼼한 세부 진행까지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차적으로 학생들을 위한 행사였지만, 선생님의 20대 청 년 못 지않은 열정에 저 또한 많은 것을 느낀 여정이었습니다.

 글로만 읽고 짐작했던 선생님의 역사적 경험을 호치민의 거리 곳곳을 걸으면서 새롭게 되새겨 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도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조만간 발표행사 자리를 마련하셔 선생님을 다시 한 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홍종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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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뿔도 단김에 뺀"

 

명민한 일벌레

 

윤석민 언론정보연구소장

 

가 젊은 윤석민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원 시사저널의 제

작을 총괄하고 있던  25년 전이다. 어느 대학교의 교수 선발

정에 면접관으로 참석하여 윤 교수를 낙점하는데 동의했고,

때 이래 우리는 동학의 오랜 인연을 맺어왔.

 

2017년 2월 어느 날 , 지금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장으로 언론정보학과 주력인 윤석민 교수가 연세대학교 김희진 교수와 함께 인사동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 오래간만에 돌연히 방문했다.

윤 교수는 언론정보학과 수강생 20명이 현장 취재학습을 호찌민에서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줄 수 있겠느냐, 하고 의사를 물어왔다. 나는 언제든지 연락만하라고 긍정하는 답변을 주었다.

그러자, 윤 교수는 즉시 행동성을 발휘했다. 이튼 날, 우리 속담 대로 쇠(소)뿔은 단숨에 빼겠다는 기세로 김영희 교수(책임연구원) 및 홍종윤 교수(선임연구원)를 동반하여 우리 사무실로 진격해 왔다. 그의 특청에 나는 언론정보학과 수강생들 최신세대를 위해서 '경험 지원'을 하겠다고 흔쾌히 결정했다.

 

 호찌민에서 꽉 채운 3일간의 강행군을 끝내고 귀국한 4월 8일 토요일, 오후 4시 51분에 나는 윤석민 교수에게 일정을 마무리하는 문자를 보냈다.

『친밀한 윤석민 연구소장 교수.

그대의 명민함과 실행력이 이번 학습여행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오. 현장 지휘능력도 뛰어났어요. 그대가 내게 감사하듯이 나도 그대에게 감사하오.

동학 언론인 안병찬

 

5시 2분에 답장이 왔다.

『선생님 무슨요.

금번 탐사 학습 여행은 90퍼센트가 선생님의 기획 연출이자 성과물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 가지로 고단하셨을 텐테 혹시 몸살 등 후유증이 없으실지 염려스럽습니다.

아무쪼록 편안한 주말 보내시기 바라며 일간 학생 발표 행사가 구체화 되는대로 다시 연락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석민 배』

 

윤석민 연구소장은 결단성을 발휘하는 명민한 일벌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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