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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티임스 인터뷰 중계 Updated : 2015-05-06 18:30 Ex-Hankook Ilbo reporter still remembers Vietnam War By Kang Seung-woo Ann Byong-chan poses at a Vietnamese news agency during his visit to Vietnam on April 28./ Courtesy of SisaIN Ann Byong-chan, a former reporter of the Hankook Ilbo ― a sister paper of The Korea Times ― is nicknamed the "ultimate correspondent" as he witnessed the final chaotic days of Saigon 40 year.. 더보기
한국일보- 베트남 통일 40주년 특집 제4신 중계 [한국일보 제4신] 빈푹성의 VRG 동화 MDF 공장. 베트남경제 동력 된 한국기업 80만명 고용FDI 40% 육박 맏형 삼성전자, 최근 하노이에 휴대폰 기지 구축 동화기업 성공신화, 亞 목질자재업계 1위 확고히 다져 비공식 비용 커 투자 유의를… 고용 늘리는 업종에만 세제 혜택 베트남 옌퐁공단의 삼성전자 휴대폰 공장. 디엠투이 공단에 입주한 한국업체 동성 비나. 남부 중심 호찌민을 추격한다 베트남의 혁명수도 하노이는 경제 중심도시인 남부 호찌민시의 활달한 분위기가 무안할 만치 활기에 차있다. 근엄하기만 했던 이 북부 도읍이 경제 수도도 겸하고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노이의 의중은 호찌민과 최고층 건물을 놓고 벌인 경쟁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 현대건설이 2010년 호찌민 제1군 지역에 올린 68.. 더보기
한국일보- 베트남 통일 40주년 특집 제3신 중계 [한국일보-제3신] 1975년 4월 30일 기적처럼 열린 탈출의 문… 절명 앞둔 사이공은 졸고 있었다 [마지막 종군 기자 안병찬이 본 사이공 최후의 새벽, 그 후 40년] 수정: 2015.05.01 20:10 등록: 2015.04.30 18:3" 우리도 나갈 수 있을까요?" 비에 흠뻑 젖어 두려움에 떨던 밤 포드 대통령, 美대사 마틴에 "헬기 19대가 마지막" 메시지 대사관 경비대 순식간에 후퇴하자 가족들 생각에 캄캄한 절망 밀려와 1975년 4월 30일 미군이 미대사관 직원 철수를 위해 동원한 마지막 헬기를 타고 사이공(현 호찌민)을 탈출한 안병찬 특파원이 괌 미군기지를 거쳐 5월 13일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해 마중 나온 부인과 포옹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40년 만에 다시 사이공(현 호찌민)에 돌.. 더보기
한국일보- 베트남 통일 40주년 특집 제2신 중계 [한국일보-제2신] 항복전야… 태극기 내려지는 대사관 앞 연신 카메라 셔터만 [마지막 종군 기자 안병찬이 본 사이공 최후의 새벽, 그후 40년] 4월 29일 수정: 2015.04.30 08:20 등록: 2015.04.29 18:24 "2시간 내 긴급 철수" 美 전화 후 본국 통신시설까지 도끼로 내려쳐 "통일 베트남에 다시 들어가 달라" 주불특파원 부임 중 밀서 받고 입국 기회 노렸지만 결국 무산 항미 전쟁 시기 베트남 외교장관 전설의 '마담 빈' 2008년 인터뷰도 사진=975년 4월 29일 사이공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철수에 앞서 김영관 대사와 대사관 직원들이 마지막으로 태극기를 하강시키고 있다. 이 장면을 찍고 있는 사람이 안병찬 특파원이다. [안병찬 제공] 항복전야 남중국해 4월 29일 사이공은 항복.. 더보기
한국일보- 베트남 통일 40주년 특집 제1신 중계 [한국일보 제1신] 1면 소개 기사 고된 취재현장 누빈 '안깡' 베트남과 40년 인연 이어가 [마지막 종군 기자 안병찬이 본 사이공 최후의 새벽, 그후 40년] 수정: 2015.04.28 21:05 등록: 2015.04.28 20:35 사진=안병찬 특파원이 28일 베트남 하노이시의 베트남통신사 역사관에 마련된 순직 전쟁기자 명단 및 초상 앞에 섰다. [시사IN 남문희기자 ] 언론인 안병찬은 스스로를 “한국일보가 배출한 ‘사이공 최후의 새벽’ 특파원 출신으로 아직도 언론 현장에서 작업한다”고 소개한다. 한국일보를 비롯 그와 함께 일했거나 그에게서 일을 배운 기자들은 그를 ‘안깡’이라고 부른다. 안깡은 기자의 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시경캡’(사건기자 팀장)을 1965년부터 71년까지 무려 6년간 한국.. 더보기
성우제의 '아리랑' 성우제의 '아리랑' 영산홍꽃 티셔츠 8월 17일 ‘성우제를 위한 음악의 밤’을 끝내고 며칠 후, 나는 인사동 우리 사무실로 그를 불렀다. 정담을 좀 더 나누고 싶어서였다. 왕년에 원(原) 「시사저널」에서 동고동락하였던 성우제 동우(同友)는 매우 감각적인 차림으로 나타났다. 랄프로렌 폴로 상표의 티셔츠는 영산홍 꽃빛깔처럼 불타는 진홍색. 거기에 흑색의 면제품 반바지 차림으로 검은색 배낭가방을 메었으니 적과 흑이 조화로웠다. 어라, 성우제 군도 반백이 넘으니(그는 1963년생이다) 이제 의상의 앙상블을 터득하였구나! 13년 만의 편지 지난 8월 3일 밤 내 전자우편에 “성우제입니다”라는 제목이 올라왔다. 22시 27분발신이다. 안 주간님, 오랜 만에 인사드립니다. 이곳에 온 지 벌써 13년이 넘었습니다. 다.. 더보기
미니회고-‘ 안깡’의 현장 이야기 [미니 회고] ‘안깡’의 현장 이야기 풍 파 대학에서 전공한 것은 항해학이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무렵인가, 견장이 달린 제복을 입고 금테 두른 사관모를 쓴 국립해양대학생 선배 2명이 모교를 찾아와서 졸업반을 모아놓고 입시홍보를 했다. ‘우리대학은 학비 면제, 숙식 및 관복 공짜에 군 면제의 특전이 있다. 게다가 상선사관(商船士官)이 되어 세계를 여행한다’, 그런 감언이설에 넘어갔다. 그런데 졸업하자마자 뭍으로 올라오고 말았는데 그 사연은 이렇다. 4학년이 되어 견습사관 자격으로 생전 처음 상선을 탔다. 내가 탄 목포호(대한해운공사 소속)가 추운 겨울밤 묵호항에서 닻을 올리고 일본 홋카이도 최남단의 쓰가루 해협을 향해 동해를 서북 방향으로 가로질러 가는데 운수 사납게 ‘7급 폭풍’을 만났다. 풍파의.. 더보기
베트남 통일열차-‘사이공 해방’ 1700km를 가다 [베트남 통일열차-1] 35년 시공 넘어 ‘사이공 해방’ 1700km를 가다 [호찌민/글 · 사진 안병찬 기자 ] 100세가 넘은 '전설의 장군'은 여전히 '행동'하고 있었다. 전후 세대는 신자본주의 체제로 말미암아 통속화하고 있었다. 베트남의 산하와 사회 그리고 주민이 35년 전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았다. ■ 100세의 잡 장군 하노이행 아시아나 733편을 탈 때부터 표완수 기자는 마음이 설레는 눈치다. 나 역시 이 취재 여행에서 출동의 흥분을 맛본다. 하노이 대우호텔에 도착한 다음 날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두 신사가 더위 때문에 멋을 제대로 부리지는 못하겠지만 마음이나 임무는 근사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림이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발신인은 나의 집사람이다. 이른바 ‘직접독자(가장 가까이 접.. 더보기
우리는 왜 통일열차를 탔는가 우리는 왜 통일열차 를 탔는가 2012년 4월-베트남 통일 37주년에 후배 표완수와 동행한 까닭 우리는 삶의 길에서 때로 특별한 사람과 조우한다. 나는 언론의 길을 걸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가운데 아주 각별한 짝이 있다. 뉴스주간지 「시사IN」의 표완수 발행인이다. 나는 「한국일보」수습기자 출신이요 그는 「경향신문」수습기자 출신인데 우리는 1989년에 원(原)「시사저널」에 모여 동반자가 되었다. 여기서 원(原)「시사저널」이라고 말하는 것은 「시사IN」의 구성원이 떨어져 나온 후 남아있는 현(現)「시사저널」과 구별 짓기 위함이다. 표완수 발행인은 해직기자로서 옥고를 겪은 민주언론인이다. 그는 성실한 저널리스트 생활을 거쳐서 탁월한 언론경영인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는 와이티엔(YTN)의.. 더보기
광음 속 아버지의 이름으로 살같이 흘러간 광음 속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제 아버지라는 이름은 너무나 쏜살같이 흘러간 광음(光陰) 속에서 오히려 낯선 이름처럼 느껴집니다. 아버지는 경술년인 1910년생이시니 금년 백 세 살이십니다. 백세시대라고 하더라도 현 세계에서 아버지를 만나는 길은 꿈길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니 시장 한 가운데가 뚫려버린 듯이 멍합니다. 아버지 103세 아버지가 태어나신 날은 1910년 경술년 3월 19일입니다. 그해 10월 4일 할아버지는 마흔 여덟의 나이로 경술국치에 비분하여 괴산의 오랑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셨으니, 아버지는 태어나신지 여섯 달의 간난 아기 때 아버지를 여의셨습니다. 오늘 아버지께 먼저 보고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나는 2010년 11월에 할아버지이신 위당(韋堂) 안숙(安潚)의 한글유고집 를 .. 더보기